◆ 대구의 재밌는 이야기 4 ♧
대구는
풍수지리학 적으로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교했을 때
비슬산과 팔공산에 둘러싸여
움푹 들어간 아늑하고 따뜻한 자궁자리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물이 많이 탄생 했었고
(대통령이 무려 다섯 분)
내란, 외환, 우환이 적었으며
6.25 때도 마지노선을 지켰고
이 나라가 위태로울 때 마다
국채보상운동이라든지 각종 학생운동,
IMF 때도
금 모으기 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곳입니다.
또 미녀도 많은 도시죠.
물론,
한민족이 아플 때 마다 어루만져 주다보니
옛날부터
약령도시가 발달하였고
최근에는
세계적인 의료도시로서 각광받고 있지요.
이러한 특성은
옛날옛적부터
이 지역이 산과 물이 맑아
사람이 살기 좋은 터 였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대한민국 근대에는
부패한 여당과 맞서는 대단한 진보도시였기에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학생운동이 시작된 곳입니다.
♡ 대구의 재마있는 이야기 5 ♡
대구 모노레일 3호선을 타다보면
건들바위(대구입암)역이 있습니다.
건들바위라는 이름의
유래는 잘 알 수 없으나
예로부터
그 모양이 갓 쓴 노인같다고 해서
삿갓바위라고도 불리었습니다.
200년 전에는
이 바위 앞으로 맑고 깊은 신천이 흘러
많은 시인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하며 즐겼던
경치 좋은 명소의 하나였으며,
서거정 선생이 노래한 대구 10경 중
입암조어의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 정조 때
시가지 일대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하여
제방을 만들고
물줄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더이상 이곳으로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바위는
조선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무당이나
점쟁이들이 몰려와 치성을 드렸는데,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인들이
치성을 드리러 많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현재는
바위 앞으로 도로가 설치되어
당시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주변을 아름답게 꾸며
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특히
물이 흐르던 옛 모습을 재현해 두어
옛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배려 하고 있습니다.
대구의 재마있는 이야기 6 ♧
청라언덕과 동무생각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선생이
마산 창신학교 교사 시절,
노산 이은상 선생과 교분을 쌓게 되었으며,
박태준 선생이 1911~1916년까지
계성학교에 다녔던 자신의 집
(현 섬유회관 인근) 앞을 지나던
한 여고생을 잊지 못했던
짝사랑이
작곡의 동기가 됐다는 것이다.
동산은
그가 현재의 제일교회 옆
3·1운동 계단을 지나 등교하던 길이었다.
그 여학생은
한 송이 흰 백합 같은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박태준 선생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했으며,
그녀는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버렸다고 한다.
이은상 선생이 이 사연을 듣고
‘노랫말을 써 줄 테니 곡을 붙여보라’고
박태준 선생에게 권유함으로 탄생한 것이
‘동무생각’이다.
'동무생각'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쓰고 있는데,
이 ‘청라’가
지금도 푸른 담쟁이로 뒤덮은
동산병원 내
선교사 사택 일대의 언덕을 말한다고 한다.
‘동무생각’이
청년 박태준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그 여고생이
당시의 신명여자학교(현 신명고) 학생이냐,
대구공립여자보통학교 (현 경북여고)
학생이냐 하는 논란도
한동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으나
공교롭게도
경북여고 교화가 백합이었고,
경북여고 개교는 1926년인데 비해
신명여고 개교는 1907년으로
‘동무생각’ 작곡 시기(1922년)보다
빠르기 때문에
신명여자학교가 맞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박태준 선생의 집과
신명여자학교의 등굣길은 일치한다는 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동무생각’ 3절에 나오는 가사
‘서리바람 부는 낙엽동산 속 꽃 진 연당에서…’의
연못은
동산에 물을 대주던
‘선황당 못’이라는 것도 이번에 밝혀졌다.
이 연못은
1923년 서문시장 확장과 함께 메워졌다.
♧ 대구의 재밌는 이야기 7 ♧
#서문시장
조선시대 3대 시장은
평양시장, 강경시장, 서문시장입니다.
서문시장은
영남권 최대 전통시장으로서
옛이름인 '대구시장'은
원래
대구 북문 밖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23년 일제에 의해서 지금의 위치로 왔는데요.
본래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에는
'천황당'이라는 못이 있었습니다.
비산동,
내당동에 있던 88개의 고분을 헐어서
그 흙으로 못을 매립하여
지금의 서문시장이 서게 된 것입니다.
이 천황당 못에는
처녀귀신의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옛날,
천왕당못에는 선남선녀들이 즐겨 찾았고
봄 가을이면
근처의 여자들이 모여 놀이를 하곤 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처녀가
이곳의
남자에게 희롱을 당한 뒤
처녀는 비관하여
이 곳
'천황당 못'에 빠져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뒤
이 못은 매립되고
서문시장이 들어 섰는데
그때 죽은 처녀귀신이
자신의 한서린 죽음을 기억하기 위하여
서문시장에
자주 불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장의 상인들은
잦은 화재가 처녀귀신의 억울한
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원혼을 달래주는 굿을 올려 주기도 했습니다. |
첫댓글 대구 자랑이 대단합니다 내륙이라 생선이 비싸지요 ㅎㅎㅎ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