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산에 가지 않기로 하고 어머니댁에 간다.
난 집을 지을 재주라곤 하나도 없다.
돈이라도 잘 모았으면 좋으련만, 먹고 사는 거 외에 내가 받았던 월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술 값으로 싸구려 산행장비로 가닥없는 책 사재기로.....
형제나 친척을 돕지도 못했고 자식을 돈 더 들여 가르치지도 못했고...
작은 집을 수리하며 내가 가진 재주에 대해 새삼 물어본다.
너는 세상을 살아갈 재주가 무어냐?
교사자격증? 가식적인 웃음? 위선적인 친절?
몇 줄의 글을 읽어 말로 팔아먹는 허세
그것도 재주인가?
바보는 제 의도를 살려 집을 짓고 비용도 줄이자고 하지만, 난
일하는 사람들 기분 상하지 말게 하라고 윽박지른다.
그의 노고에 대해 내가 하는 거라곤 그를 또 토라지게 하는 것이다?
왜 이리 서툴고 서투른지. 이제 익숙해질 나이도 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이런 회피도망자 엉터리!
점심을 먹고 도착하기로 하느데 일찍 나선다.
이 깊어가는 가을을 어디서 즐길까?
쌍봉사 팽나무나 감나무도 물이 들었을까?
대원사 입구 벚나무는 이파리가 다 떨어지진 않았을거다. 황정승 영당까지 들러오면
적당한 가을걸음이 될 수도 잇겠다.
송광사 계곡 솔밭 사이 몇 개의 활엽수도 가을일거다.
화순 남면을 지나 하얀 억새가 밭을 이루는 주암호변을 지나 모후산쪽으로 들어간다.
남계리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단풍이 노랗고 붉다.
주차장에서 젊은 부부 등산객이 나오고 있다.
도토리를 주워 담을 비닐봉지를 챙겨 걷는다.
유마동 관세음보살 다리 위에 서 보고 유마사로 올라간다.
키 큰 전나무 사이로 아직은 초록의 단풍나무 있는데 안쪽엔 노랗고 붉어진 나무가 반긴다.
도토리도 많다. 누구도 지켜보지않지만 눈치를 보며 도토릴 줍는다.
다리를 건너 건너편의 나무들을 본다. 낙엽에 바람에 흩날린다.
주머니가 부풀어 스님들 계시는 요사쪽으로 가지 않고 관음전쪽으로 오른다.
한 떼의 산객들이 소란하게 사진을 찍으며 오른다. 대구에서 온 산악회다.
관음전 앞 마당 감나무를 돌아 옆의 큰 단풍나무 사이로 들어가 사진 찍는 척하며
굵은 도토리를 줍는다. 산신각 앞까지 주우며 비탈을 올라 돌담위 단풍을 본다.
오래 전 내가 운치잇다고 했던 유마사 대문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법당 앞은 따스하다.
모후산 위로 파란 하늘을 보며 정상으로 오르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나오며 또 도토리를 줍는다. 욕심 그만 부리자고 나온다.
임대정 원림과 유마사 대원사 서재필기념관 봉갑사 쌍봉사를 잇는 하룻길을 종필이네와
단풍구경해도 좋겠다.
문덕을 지나 복내까지는 벚나무 길을 따라, 복내를 지나 미력까지는 노랗게 변해가는
메타세콰이어의 가로수길을 따라 점심으로 양탕을 미력양탕집이 아닌 그 앞집에서 먹는다.
첫댓글 내가 좋아한 옛 유마문, 2005년 무렵까지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