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올렸는데..뜨는것이 좀 늦네요..기다리시면..
군대는 줄 이다.
오늘은 세월을 쭉 내려가서 군대 이야기를 좀 할려고 합니다.
군 복무때 이야기야 군에 갔다 온 사람들은 밤을 세워 이야기해도 다 못할 정도로 이야기 꺼리가 많습니다.
저도 그 범주에 비껴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리도 그때는 그렇게 해서도 통했는지??
하기사,그때는 군에 복무할 때 자기집에 금 송아지 없는넘 없고 사회 있을 때 한가닥 안해본넘 없을때 였으므로 그렇다 하드라도…..
저의 이야기는 사실에 입각한 스토리를 전할려고 합니다. 믿어주시고…..
전번 글(칼럼방 글:759,761)에서도 밝혀듯시 저의 학력은 대학 2개월 다닌 것이 전부입니다. 말하자면 대학 1학년 등록하고 2개월 만에 군입대 영장이 나왔습니다
아이고 잘됐다~ 공부하기 싫고 적성에도 않맞는 수의학과..??
빨리 군대나 가자~ 하고 입대했죠.
그런데……………………………………??!!
그 수의학과 재학이라는 학력이 논산 수용연대 기록카드에 작성되어 논산 30연대 훈련소 기본 교육후 대구 군의학교로 갔습니다.
그것도 일반 의무병이 아니라 1년에 24명 배출하는 약제병 8주 과정 교육반에서 주특기 특과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약제병 교육반에 온 병사들은 전부 기라성 같은 학력을 가지고 있는
교육생 입니다 약학대학 졸업하고 군에온 사람,의대 본과 다니다 온 친구
등 전부 쟁쟁한 학력을 그것도 약학에 관계되는..
그러니깐 수용연대에서 각자 주특기을 부여할때 경력과 학력을 참고하여 필요한 인원을 배치하면서 저도 그 줄에 들어 간거죠. 그 인원중 제가 제일 마지막 군번으로…아마 지금 생각하면 적당한 한놈이 모자라 저의 기록카드에 수의학과 재학중 그것 보고 마지막으로 저를 집어 넣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그 약제반 교육이 장난이 아니였습니다.
옆 교실의 다른 일반 의무병 교육은 응급처치법과 환자수송,일반 약물학 등 비교적 수월한 교육 이였는데…저희들은 약물학,약제학,등 무지 어렵고 저의 실력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것 갔았습니다.
그때만해도 우리 군에 보급되는 약품은 90%가 미군이 사용하는 약품과 같은 것이 보급되었고 그러니 그 수많은 약품의 약명과 약제학 그리고 약품의 스독커 넘버(군 약품의 고유번호) 외우기 등……정말 강사가 강의하면 저는 노트에 옮겨 적지도 못하고 그의 그리다 싶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훈련소에서 내가 소대 향도를 해 봐서 내무반과 교육장까지 이동할때 인솔하는 구령을 잘한다고 구대장도 하고 같이 교육생 중에 대학 2,3년 다니고 또는 졸업하고 군에 온 친구들이라 내가 제일 나이가 적었지요 해서 내무반 굳은일은 내가 다했습니다…..그 덕에..
뺑이는 쳐도 날짜는 간다고 8주후 수료 측정시험을 치는데 내앞에 실력있는 친구 앉치고 답안지,완벽하게 작성하여 그 친구와 같이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습니다.(이 교육 측정시험에서 낙오되면..전출명령,”일빵빵”이것 아시죠? 보병 주특기 넘버입니다 이것달고 전방 101보충대 갈뻔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그때, 실력도 없는 넘이 무슨 배짱으로 어려운 약제병 교육을 받았는지? 웃음이 절로 납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서울,부산 대구,광주,통합병원 내지는 메쉬(이동외과병원)단위 약제과로 팔려가는데 중국말로 꽌씨없는 저는 제일 변방 강원도 속초 “동해안 방위사령부” 의무실로 팔려갑니다.
그래도 그기에 내가 전입해 가는날 의무실 약제병 병장달고 제대 2개월 남겨놓았는데…조수가 안 와서 그때까지 뺑이치고 있다가 조수 온다고 기뻐서
의무실 주사기 끓이는 사각냄비에 투버너 켜놓고 매운탕과 그 유명한 강원도 “경월소주” 댓병으로 싸놓고 기달립디다.
그리고…인수인계 받는데….제가 뭐 알아야지요…!!
“야~ 배 이병, 너 사회 있을때 뭐하다 군대 왔냐??”
“넵, 저 대학 다니다가 군에 왔습니다”
“뭐..!! 대학,대학 좋아하네,이세끼 특과 학교에서는 뭘 배웠서~?”
“………….”
“APC(aspirin, phenacetin and caffeine)가 뭔 약자 인줄도 모르고 약품수령 청구서는 어떻게 쓸꺼야 그냥 APC로 쓰면 관장할때 쓰는 깡통으로된 소독약이 나와 임마~?? 알겠어, 허 이것참, 큰일났네,제대말년에 아이구 미치겠네~ ”
그러면서 나의 육군 약제병 쫄병 생활이 시작돤 겁니다
허지만 그 고참 제대할 때는……………
“야! 배 이병 그래도 넌 눈치가 있어 빨리 숙달되네 니 쫄병 올때까지 잘해라 군의관 처방전은 그사람이 잘쓰는 약이 있어 군의관 새로 오면 잘 물어보고 약 없으면 비슷한약 그것으로 쓰라고 하고 요즘 오는 군의관들 돌파리들 많으니 니가 교육 잘 시켜라…??!!”
이렇게 하여 어느정도 숙달되어 가고 속초,양양,거진,정동진,옥계,등으로 가끔 대민진료도 나가서 사제 밥도 먹고 장교가족이 아프면 집에 가서 링켈주사도 꽃아주고…..
(링겔주사….? 보통 5%라 말하죠 즉 증류수 물에 포도당 5%라는 이야기입니다 싶게 말하면 멘 물에 설탕물 5% 입니다 여기다 약간 노란색 나는 삐콤 앤풀 하나 타서 장교가죽 부인 아파서 힘 없을때 1000cc 한병,I V(혈관주사) 꽃아주면 맞고 한 20분 있으면 코에서 고소한 비타민 냄새가 낮지요. 그러면 그것이 무슨 큰 보약 영양제인줄 알고 기분 좋아 합니다 병도 다 나은것 처럼….별것도 아닌데……그러고는…
“배 일병 잠깐만 하고는 부엌에 가서 진수성찬 차려줍니다 닭도 한마리 고아 놓은것도 나옵니다.
또 사령관이 파란병에 들어있는 미제 암포젤을 찾는 날이면,그 전날 사령관 술 마신 날이라 의무실 순시도 없습니다.(어이~ 환자들, “편히 쉬어~”)
그렇게 부대 약제병 으로써 막강한 권한과 지위(?)를 가지고 이등병 달고 첫 전입와서 8개월인가? 되었을때 파월 차출명령이 떨어 졌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부대 의무실 다른 병사가 차출되었는데…그 병사는 독자이고 또 다른 병사들은 제대가 일년 이만이고 해서 갈사람은 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겁도없이..“그래~사나이 태어나서 전쟁통 월남에도 함 가보자.”
1972년1월 말경,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날 전군에서 차출된 장병들은 춘천역에서 집결하여 끝도 보이지 않는 군 트럭에 몸을 실고 그때 한참 공사하던 소양강땜 못미처 왼쪽으로 가는, 옛날 5.16혁명 나고 깡폐들 모아 만들었다는 유명한 아흔 아홉구비 고갯길을 넘어 강원도 오음리 “파월 장병 교육대”로 갑니다. 그날따라 내리는 비로 그 높은 재를 넘을때 운해가 잔뜩끼어 트럭에 타고 있던 장병등의 얼굴에는 침묵하면서도 각자 이제 전쟁터 간다는 것을 실감 하고 있었죠 저 역시 살아서 다시 이고개를 넘을수 있을지 참참한 마음 이였습니다.
그리고 몇주인가 실전과 같은 전투교육을 받고 춘천역에서 헌병들이 가족과 만남을 제지한 가운데 파월 장병들을 실은 열차는 밤세도록 달려 이튿날 새벽 열차가 바로 부산 제3부두에 우리을 월남으로 실고갈 거대한 배옆에 바짝대고는 바로 승선합니다 그리고 조금있다.
부두에 나와있는 환송하는 여학생, 가족, 군 관계자들의 환송식이 끝나고 군악대의 우렁찬 파월군가가 울리는 가운데 배가 떠나면서 누구의 선창으로..
‘아~아~ 잘있거라~부산항구야~ 미스김도 잘 있어요 미스이도 안녕히~~’를
부르면서 배는 오육도를 지나 일주일간 망망대해 남지나해을 거쳐 월남 남단, 주월 한국군 사령부가 있는 사이공시(지금의 호지민시)옆 봉타후 항(비들기 부대가 있는)를 지나 퀴논항에 맹호부대를 내려놓고 북으로 올라와서 나트랑항에 백마,십자성부대에 저도 끼어 하선 합니다.
그리고 십자성 부대 보충대에서 또 며칠 교육받고 각자 근무할 부대로 전출 명령이 떨어 지는데 저는 십자성부대 안에 있는 “102후송병원 약제과” 명령납습니다.여기서 저는 또 고민에 쌓입니다. 102후송병원 이라면 무지 큰 병원이고 한국에서 내가 근무한 부대의 약품들은 비교도 할 수 없는 많은 약품을 취급하는데…….아~ 나는 죽었다 싶되요.
건데 짠뜩 겁먹고 병원 약제과에 전입신고 하러 들어가니 …………
“야~ 너 배00 아니가? 언제왔노? 받갑데이..!!”
바로 군의학교 교육받을때 나하고 친했던 대구 경북대 약대 다니가 군대오고 수료측정 시험볼때 답안지 다 보여준 넘 글마가 2개월 먼저 월남와서 여기에 떡하니 있었습니다.
그러니…월남에서도 후송병원 약제과 근무는 순풍에 돛 단듯이 말하면 잔소리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이듬에(1973년 봄) 휴전되고 철수 할때까지 14개월인가 무사히 복무하고 귀국 했습죠.
오늘 글 제목이 “군대는 줄이다” 였습니다만 글을 쓰다보니 엉뚱하게 월남이야기로 흘러갔네요 지금이야 우리군도 체계적인 군 인력을 관리 할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때는 찐짜 어느줄에 끼느냐에 따라서 3년 군생활의 운명이 좌우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했는지? 어느 줄에서 군생활을 하셨는지?
이 글을 쓰면서 힘든 파월교육대에서 같이 교육받고 월남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전사한 전우들, 그들의 희생에 오늘 우리가 있다는 것을 마음깊이 생각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면서……
끝까지 읽어준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2004/11/19 말배
첫댓글 하도 실감나고 재미있어서 긴글인줄 모르고 한 달음에 다 읽었습니다.배박사님,문학소질이 있는 낭만적인 사람이 영업에도 성공한다고 하던데 맞는말인것 같습니다.맟춤법만 좀 틀린다 뿐이지 이거 책으로 내도 재미있겠습니다.사진을 보니 약타러 온사람을 째려보는 눈빛이 끗발있었던 모양이네요.
카사블랑카,.배경음악 죽이고,.,,,중간중간 사진도 정겨웁고,,,미남이셨네...
ㅋㅋ 암튼 배박사님 알면 알수록 대단하십니다.
햐! 깔린 배경음악하며, 술술 풀려 나오는 말씀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같이 구수합니다. 시간 투자를 늘리시어 더 많은 말씀들을... 염치 없이 기대합니다. 그리고 방장님!~ 그 시절에는 그 마춤버비 맛는거시 아닌지??? ㅎㅎㅎ
마춤버비 조금 다르다고~ㅋㅋㅋ 의미 전달이 달라지지진 않잖아요~ 배박사님~... 멋져요~ ^^
마춤버비....우하하....
ㅎㅎㅎ 우악!!!!!!!!놀라워라 왜냐구요? 말배님이 저렇게 미남였다는 사실에 놀라고 두번째는 머리숱이많아서 놀라고 세번째는 배가 안나와서 놀라고 네번째는 사진속에 인물이 키가커보여서 긴가 민가 해서 놀랍습니다.다섯번째는 글솜씨에 놀랍슴다..ㅎㅎㅎ=3=3=3
저는 77-79년 백령도 군생활했는데,많은 선배들이 월남 군대데요.그 당시는 몰랐는데 나중에 사회문제화된 고엽제때문인지 월매나 꼴통짓들을 하는지.엄청빡빡 기었지예.배박사님은 선배군대지만 빡빡긴것 같어서 배아푸네요.다시 군대가서 좀 기다가 오시면 어떨지예?
암튼...충성~~~~!!!!^^
저는 801 입니다. 15사단 사단 의무대에서 근무했습니다
barry님,혹시 810 아니신지? 저는 824입니다.(뭔 암호같다 ㅋㅋ) 마춤버비,ㅎㅎㅎ 그래도 이카페에서 할동 하고 많이 나아 졌습니다. 뭉크님,지금은 옆으로 좀 퍼졌지만 그때는 근육질에 한몸 했어여....
100,,, 앉아쏴, 서서쏴, 쪼그려쏴, PRI쏴, 방독면착용쏴까지 쏘는 것은 안해본 것이 없습니다... 권총도 쏴봤는데 이것은 진짜 안맞더군요... 자살용이란 말 실감했더라는~
홍안의 청년이셨네요.눈빛이 예사롭지 아니하고...저는 9사단과 친했어욤.중2때 밥한끼 얻어먹고 휴전선 구경한 정도.ㅋ~
72년도에 파월 하셨슴..나하고 같은 제대..?나두 72년도 파월 73년초에 귀국한것 같구요 당시의 십자성부대도 한번 가본적이 있습니다. 참고루 전 논산개표루 12169628 이지요. 말죽...님과 비슷하지 않겠어요? 아님 쪼금 선배이시던지. 저두 당시의 사진 한장을 기타사진란에 한장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