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이희규 문학관 원문보기 글쓴이: 麻田 이희규
①중국 만리장성 |
② 멕시코 치첸 이차의 마야 유적지
③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④ 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⑤ 로마 콜로세움
⑥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
⑦ 인도 타지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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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만리장성 (제작시기: BC 4-AD 7세기 위치: 중국 주요특징: 북방유목민 침입 저지용으로 길이 6,700km로 우주에서 식별 가능한 유일한 인공구조물임
▲멕시코 치첸 이차의 마야 유적지 (제작시기: 800년 이전 위치: 멕시코 유카탄반도 주요특징: 마야문명 중심지 치첸 이트시의 유적 가운데 하나로 정상에 신전이 위치함) |
▲페루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제작시기: 1460-1470년 위치: 페루 쿠스코 주요특징: 해발 2,430m에 세워진 잉카제국의 마지막 도시로 잉카 멸망 후 잊혀진 뒤 1911년에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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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제작시기: 1931년 위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주요특징: 두팔을 벌리고 있는 높이 33m의 예수 석상으로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옮겨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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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콜로세움
(제작시기: 70-82년
위치: 이탈리아 로마
주요특징: 로마제국의 원형극장으로 검투사들의
싸움을 관람할 수 있는 5만명 수용규모의
오락시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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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 (제작시기: BC 9-AD 40년 위치: 요르단 주요특징: 아라비아사막 끝 나비테아 왕국의 산악도시로서 암석의 조각과 수로 등이 유명함) |
▲인도 타지마할 (제작시기: 1632-1654년 위치: 인도 아그라 주요특징: 무굴제국 황제 샤자한이 왕비 마할의 죽음을 애도해 건립한 묘로서 마할의 왕관이란 뜻) |
- 세계 신 7개 불가사의 후보
칠레 이스터섬 거석상
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높은 철탑. 높이 약 300 m. 이 탑이 세워진 뒤 40 년간 최고 높이를 자랑했음.
1973년 시드니에 세워진 오페라 극장. 요트의 닻 모양과 조개 모양을 본뜬 지붕이 바다와 조화를 이룬다.
고대 이집트의 제3왕조~제6왕조의 왕묘. 거대한 3 개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모두 9 개의 피라미드가 있다.
캄보디아 서북부에 12세기 초 돌로 만든 왕실 사원. 주요 건물은 중앙 사당과 이를 둘러싼 삼중의 회랑
중국 본토의 북변, 몽골 지역과의 사이에 축조된 성벽. 지도상의 길이는 약 2700 km이나 실제는 5000 km에 이름. 성벽 높이는 6∼9 m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테네의 언덕. 동서 약 270 m, 남북 약 150 m. 서쪽 입구를 제외한 다른 세 방향은 가파른 절벽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10~13세기에 번성했던 마야 신제국의 도시
14세기 이반 3세가 모스크바에 세운 궁전. 구 소련 때 이후부터 정부와 공산당의 여러 기관이 들어 서 있다.
영국의 솔즈베리 근교에 돌기둥이 말굽 모양으로 늘어 서 있는 고대의 거석 기념물. BC 1900년~BC 1500년경 건축된 것으로 추정.
537년 이스탄불에 세워진 초기 비잔틴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물. 흔히 ‘성 소피아 성당’이라 부른다.
아그라에 있는 이슬람교 묘당.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 샤자한이 왕비를 위하여 세움(1632년~1653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평을 받는다.
요르단 남부에 있던 고대 도시.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였다 106년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됐다.
내용출처 : 본인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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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7대 불가사의 | ||||
1.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피라미드에 대해 현재 남아 있는 최고의 기록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BC 5세기)의 역사권2에 있다. 그는 기자의 대 피라미드에 관하여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건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쿠푸는 카이로 남서쪽 15 km에 위치한 기자에 최대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이것은 대피라미드 또는 제1피라미드라 일컬어지며, 높이 146.5 m(현재 137 m), 저변 230 m, 사면각도는 51 °52 '이다. 각 능선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오차는 최대의 것이라도 5 °30 '에 지나지 않은 만큼 극히 정교한 것으로, 피트리에 의하면 평균 2.5 t의 돌을 230만개나 쌓아올렸다. 진정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로서 그 장대한 규모와 간결한 미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다. 내부구조는 복잡해서 독일의 보르하르트에 의하면 계획이 2번 변경되었다고 한다. 북측의 지면에서 약간 위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 그대로 하강하면 암반 밑에 설치된 방에 도달한다. 이곳이 제1차 계획의 매장실이고, 그 위에 있는 통칭 ‘왕비의 방’이 제2차 계획의 매장실이다. 그리고 제3차 계획에 의해 피라미드는 완성되었다. 제1피라미드 남서쪽에 카프라왕의 제2피라미드가 있다. 높이 136 m, 밑변 216 m, 동쪽에 있는 장제신전에 450 m의 참배로가 뻗어 하곡신전에 이른다. 유명한 스핑크스는 하곡신전에 가까운 참배로 북쪽에 엎드려 있다. 기자에는 그 밖에 멘카우레왕의 제3피라미드와 왕족들의 소(小)피라미드 6기가 있다. 2.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Pharos) 등대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c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B.C28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떻게 등대에 불을 지폈을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3.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세미라미스 공중 정원(Hanging Garden) BC 500년경 신(新)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하여 수도인 바빌론에 건설한 정원이다. 실제로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높이 솟아있다는 뜻이다. 지구라트에 연속된 계단식 테라스로 된 노대(露臺)에, 성토하여 풀과 꽃, 수목을 심어놓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삼림으로 뒤덮인 작은 산과 같았다고 한다. 유프라테스 강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물을 댔다고 전해진다.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왕비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서 공중 정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왕이 되자 메디아 왕국의 키약사레스 왕의 딸 아미티스를 왕비로 맞았다. 산이 많아 과일과 꽃이 풍성한 메디아에서 자란 왕비는 평탄하고 비가 잘 오지 않는 바빌론에 마음을 두지 못한 채 항상 아름다운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왕은 왕비를 위하여 메디아에 있는 어떤 정원보다도 아름다운 정원을 바빌론에 만들기로 결심했다.왕의 명령을 받은 재주가 뛰어난 건축가, 기술자, 미장이들은 곧장 작업에 들어가 왕궁의 광장 중앙에 가로·세로 각각 400m, 높이 15m의 토대를 세우고 그 위에 계단식 건물을 세웠다. 맨 위층의 평면 면적은 60㎡에 불과했지만 총 높이가 105m로 오늘날의 30층 빌딩 정도의 높이었다. 한 층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수천톤의 기름진 흙을 옮겨 놓고 넓은 발코니에 잘 다듬은 화단을 꾸며 꽃이랑 덩굴초랑 과일 나무를 많이 심도록 한 이 파라미드형의 정원은 마치 아름다운 녹색의 깔개를 걸어놓은 듯이 보였다.그런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 곳에서 이렇게 큰 정원에 물을 대는 것은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은 정원의 맨 위에 커다란 물탱크를 만들어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펌프로 길어 올리고 그 물을 펌프로 각 층에 대어줌으로써 화단에 적당한 습기를 유지토록 하였으며 또한 그때그때 물뿌리개를 이용하여 물을 공급하도록 하였다. 정원의 아랫부분에는 항상 서늘함을 유지하는 방을 많이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창 너머로 바라보는 꽃과 나무의 모습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또한 방에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방 위에는 갈대나 역청을 펴고 그 위에 납으로 만든 두꺼운 판을 놓았다.공중 정원에 대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지만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의 페허는 오늘날까지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에페수스 시는 소아시아에 있는 고대 이오니아 지방의 열두 개 도시 중 하나로서 B.C 6세기 경에 이미 서아시에서 상업의 요충지로 번영하여 가중 부유한 도시로 알려졌다. 이 곳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바로 아르테미스 신전이다.이 신전은 당시 최고 부자였던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B.C 560∼B.C 546)때 세우기 시작하였다. 높이 20미터 정도의 훌륭한 이오니아풍의 백색 대리석 기둥을 127개나 사용한 이 신전은 완성되기 까지 120년이 걸렸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에페수스를 방문하여 이 신전을 돌아보고는, 기자에 있는 피리미드에도 떨어지지 않는 걸작으로 묘사하면서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나 헤로도토스가 에페수스를 방문한 지 1세기 정도 지난 뒤 그 훌륭하고 아름다운 신전은 어리석은 한 인간에 의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B.C 356. 10월 "어차피 나쁜 일을 하려면 후세에까지 알려질 수 있는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한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자가 신전을 계획적으로 불태워 버린 것이다. 그 후 디노크라테스가 불타 버린 신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에페수스의 여인들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 등을 팔았고, 왕들은 크로이소스 왕을 본받아 기둥을 기증하기도 했다. 더욱이 아시아 원정 길에 올랐던 알렉산더 대왕은 한층 완성중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았겨 "만일 에페수스인이 이 신전을 나의 이름으로 세워준다면 모든 비용을 내가 내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페수스인들은 다른 나라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야심이 강한 에페수스인들은 자신들의 신전을 지금까지 어떤 신전보다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여, 그 당시 가장 훌륭했던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신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파르테논은 길이가 69m. 폭이 30m, 높이 10정도로서, 대리석 기둥을 58개나 사용한 신전이었다. 에페수스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정도의 규모로 만들기 시작했다. 높이 18m짜리 기둥을 127개나 사용했고, 길이는 120m, 폭은 60m로 했다. 또한 신전의 건축용 자재는 가장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을 사용했으며 중앙의 넓은 홀에는 네 방향으로 대리석 계단을 딛고 올라갈 수 있게 하였다. 그 규모나 화려함은 당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처음에는 땅의 신 크로노스와 여신 헤라를 숭배했지만 뒤에 제우스 신을 숭배하게 되어서 B.C457년에 제우스 신전을 만들었고 그 안에 '피디아스'가 만든 제우스 상을 안치하였다.제우스 신상과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은 피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피디아스는 8년여의 작업 끝에 제우스 상을 완성했는데, 그는 제우스의 신성함 위엄과 함께 너그러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걸작 중의 걸작 제우스 상은 오늘날 안타깝게도 남아 있지 않다. 대지 위에 우뚝 세워진 신전에는 양옆에 열세 개씩, 양끝에 여섯 개씩 장엄하고 무거운 도리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완만하게 기울어진 지붕이 덮여 있다. 이 신전의 한가운데 있는 제우스 상은 높이가 90㎝, 폭이 6.6m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12m 정도 되는 상은 거의 천장을 닿고 있다.제우스 상은 나무로 만들어져 그 위에 보석과 흑단, 상아를 박아 장식한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금으로 된 발 디딤대에 올려져 있는 양다리는 거의 예배자의 눈높이와 일치하였다. 오른손에는 금과 상아로 만든 승리의 여신(Nike)상을 떠받치고 있으며 왼손에는 황금을 박아 장식한 지팡이(왕홀)를 쥐고 있다. 지팡이 위에는 매가 앉아 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어깨에는 꽃과 동물이 새겨진 황금의 아름다운 망토가 걸쳐져 있다. 제우스 신전의 발굴 움직임이 18세기 경부터 일어났고 처음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다. 1829년 프랑스인이 제우스 신전이 있던 자리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메도프, 기둥, 지붕 등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1875년경에 독일 정부의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의해 올림피아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제우스상이 있던 신전도 거의 드러나게 되었다. 1950년대 제우스 신전 터에서 피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제우스 상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히 밝혀졌다. 6.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의 마우솔러스 영묘(靈廟) - Mausoleum
거상(巨像). 그리스어 콜로소스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기자의 스핑크스 등을 보고나서 칭한 말이 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도스섬의 콜로서스이다.로도스 항구에 서 있던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은 높이가 36 m나 되었으며, 린도스(로도스 섬 동쪽에 있던 고대 도시의 이름)의 카리오스에 의해 BC 280년경 건조되었는데 BC 224년의 지진 때 붕괴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현존하는 것도 많으나 모두 기념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세계7대불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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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희규 문학관 원문보기 글쓴이: 麻田 이희규
첫댓글 이중 내가 가본곳 (중국 만리장성) ) (이탈리아 로마 콜롯세움 경기장) (피사의 사탑) (프랑스 파리 에펠탑)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사원) (호주시드니 오페라하우스 ) 이번에 가는 (인도 타지마할 ) 등 이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