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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外編 14篇 天運篇 第4章(장자 외편 14편 천운편 제4장)
- 피지미빈彼知美矉 이부지빈지소이미而不知矉之所以美-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안연顔淵이 노魯나라 악관樂官의 장長인 금金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번 유세遊說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금師金이 말했다. “애석하구나! 당신의 선생은 〈이번 여행에서〉 궁지에 빠질 것이다.”
안연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사금師金이 말했다. “무릇 제사 때 악령을 쫓기 위해 쓰는 추구芻狗가 아직 제사에 진열陳列되기 전에는 훌륭한 대나무 상자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고, 시尸와 축祝의 제관祭官들이 몸을 깨끗이 재계하고서 그것을 받들다가, 이미 진열陳列을 마침에 이르러서는 길가는 사람들이 머리와 등줄기를 밟고 지나가고 풀 베는 사람들이 주워서 불을 붙일 뿐이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일회용으로 쓰고 버린 것을〉 다시 가져다가 훌륭한 대나무 상자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고,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그 곁에서 누워 잔다면, 그는 분명 악몽을 꾸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주 가위눌려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그대의 선생 또한 옛 성왕聖王들이 이미 진설했던 〈인의예악仁義禮樂이라고 하는〉 추구芻狗(쓸데없이 되어 버린 물건物件의 비유)를 주워다가 모시고서 제자들을 끌어 모으고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그 곁에서 누워 자고 있다. 그 때문에 송나라에서는 환퇴가 나무를 베어 죽이려 한 위험을 당했고 위나라에서는 발자취까지 삭제되는 수모를 당하였고 상나라의 옛터나 주나라의 서울에서 궁지에 빠졌으니 이것이 바로 악몽이 아니겠는가. 또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국경에서는 포위당해 7일간이나 불로 요리한 음식을 먹지 못해서 죽음과 삶이 서로 이웃이 될 정도로 죽도록 고생했으니 이것이 바로 가위눌려 고통을 당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무릇 물길을 가는 경우에는 배를 쓰는 것이 제일이고 땅 위를 가는 경우에는 수레를 쓰는 것이 제일이다. 그런데 배가 물 위에서 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땅 위에서 밀고 가려 한다면,
죽을 때까지 하더라도 얼마가지 못할 것이니 옛날과 지금의 차이는 물과 뭍의 차이가 아니겠으며 주周의 문화文化와 노魯의 문화文化의 차이는 배와 수레 차이가 아니겠는가. 지금 노나라에서 옛날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그대로 시행하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마치 땅 위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은 것인지라 공연히 수고스럽기만 할 뿐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고 도리어 몸에는 재앙이 닥칠 것이다.
저 공자孔子라는 사람은 일정한 방향 없이 자유롭게 유전하는 도가 만물에 대응하여 다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孔子西遊於衛 顔淵問師金曰 以夫子之行爲奚如
師金曰 惜乎 而夫子其窮哉 顔淵曰 何也
(공자 서유어위할새 안연이 문사금하야 왈 이부자지행으로 위해여오
사금왈 석호라 이부자는 기궁재인저 안연왈 하야오)
공자가 서쪽 위나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안연顔淵이 노魯나라 악관樂官의 장長인 금金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번 유세遊說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금師金이 말했다. “애석하구나! 당신의 선생은 〈이번 여행에서〉 궁지에 빠질 것이다.”
안연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 공자서유어위孔子西遊於衛 : 이하의 내용에 공자가 송나라에서 곤경을 당한 일부터 시작해서 위나라에서 배척받고 진채지간에서 고초를 겪은 일까지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번의 위나라 방문은 이들 사건이 일어난 뒤의 위나라 방문으로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노魯나라의 서울 곡부曲阜에서부터 위衛나라의 서울인 제구帝丘까지는 똑바로 서쪽으로 약 180㎞에 달하는 거리이다.
☞ 사금師金 : 사師는 악공樂工의 우두머리. 금金은 그 이름. 노魯나라의 태사太師로 추정된다.
☞ 이부자지행위해여以夫子之行爲奚如 : 以~爲... ~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형文形이다. 부자지행夫子之行은 선생님의 이번 유세 여행, 해여奚如는 하여何如와 마찬가지이다.
☞ 이부자기궁재而夫子其窮哉 : 이而는 2인칭 대명사 ‘너’의 뜻. 궁지에 빠질 것이라 함은 크게 혼이 날 것이라는 뜻.
師金曰 夫芻狗之未陳也 盛以篋衍 巾以文繡尸祝齊戒以將之
及其已陳也 行者踐其首脊 蘇者取而爨之而已
(사금왈 부추구지미진야엔 성이협연하며 건이문수하고 시축이 제계이장지라가
급기이진야하야는 행자 천기수척하고 소자 취이찬지이이니)
사금師金이 말했다. “무릇 제사 때 악령을 쫓기 위해 쓰는 추구芻狗가 아직 제사에 진열陳列되기 전에는 훌륭한 대나무 상자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고, 시尸와 축祝의 제관祭官들이 몸을 깨끗이 재계하고서 그것을 받들다가,
이미 진열陳列을 마침에 이르러서는 길가는 사람들이 머리와 등줄기를 밟고 지나가고 풀 베는 사람들이 주워서 불을 붙일 뿐이다.
☞ 추구芻狗(짚으로 만든개) : 풀강아지로 무속에서 사용하는 풀로 엮어 만든 강아지 모형.
☞ 협연篋衍 : 대나무 상자. 협篋은 대로 만든 상자. 연衍은 단簞의 가차자로 상자.
☞ 건이문수巾以文繡 : 건巾은 덮는다.
☞ 시축제계이장지尸祝齊戒以將之 : 시尸와 축祝은 모두 제관祭官. 시尸는 태묘太廟 안의 신주神主, 축祝은 귀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 보통 시尸라 할 때에는 제사 때 신위 자리에 대신 앉히는 어린 시동尸童을 말하고 축祝이라 하면 제사 때 축문祝文 읽는 제관祭官을 의미한다. 제齊는 받든다.
☞ 급기이진야及其已陳也 : 진열陳列을 마쳤다는 것은 제상祭床에 차려놓고 지내는 봉납奉納의 제례祭禮를 마쳤다는 뜻.
☞ 소자蘇者 : 사기史記에 ”주注에 이르기를 소蘇는 풀을 벰이다 라고 했다[史記云 樵蘇後爨 注云 蘇 取草也].”라고 풀이한 것을 따라 소蘇를 취초取草로 해석.
將復取而盛以篋衍 巾以文繡 遊居寢臥其下 彼不得夢 必且數眯焉
今而夫子 亦取先王 已陳芻狗 聚弟子 游居寢臥其下
(장복취이성이 협연하며 건이문숙하고 유거침와기하하면 피부득몽인댄 필차수미언하리니
금에 이부자 역취선왕의 이진추구하야 취제자하며 유거침와기하론)
〈그런데 만일 이렇게 일회용으로 쓰고 버린 것을〉 다시 가져다가 훌륭한 대나무 상자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고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그 곁에서 누워 잔다면 그는 분명 악몽을 꾸지 않는다면 반드시 자주 가위눌려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그대의 선생 또한 옛 성왕聖王들이 이미 진설했던 〈인의예악仁義禮樂이라고 하는〉 추구芻狗(쓸데없이 되어 버린 물건物件의 비유)를 주워다가 모시고서 제자들을 끌어모으고 그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그 곁에서 누워 자고 있다.
☞ 유거침와기하遊居寢臥其下 : 유遊는 한갓 선왕의 법도를 인위적으로 흉내나 내며 옛것에 구속당하는 태도를 의미.
☞ 피부득몽彼不得夢 필차수미언必且數眯焉 : 부득몽不得夢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꿈은, 뒤에 공자가 궁지窮地에 빠진 예를 들고 “이것이 그 악몽이 아니겠는가[시비기몽야是非其夢邪].”라고 하여 ‘몽夢’을 악몽惡夢으로 본 것을 근거로, 악몽惡夢이라 풀이한다. 필차必且는 ‘반드시’의 뜻. 미眯는 악몽에 가위눌린다는 뜻.
☞ 이진추구已陳芻狗 : 이미 진설했던 〈인의예악仁義禮樂이라고 하는〉 추구芻狗는, 제사 지낸 뒤에 쓰고 나서 버린 추구라는 뜻.
故伐樹於宋 削迹於衛 窮於商周 是非其夢邪
圍於陳蔡之間 七日不火食 死生相與隣 是非其眯邪
(고로 벌수어송하며 삭적어위하며 궁어상주하니 시 비기몽야아
위어진재지간하야는 칠일불화식하야 사생이 상여린하니 시비기미야아)
그 때문에 송나라에서는 환퇴가 나무를 베어 죽이려 한 위험을 당했고 위나라에서는 발자취까지 삭제되는 수모를 당하였고 상나라의 옛터나 주나라의 서울에서 궁지에 빠졌으니 이것이 바로 악몽이 아니겠는가.
또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국경에서는 포위당해 7일간이나 불로 요리한 음식을 먹지 못해서 죽음과 삶이 서로 이웃이 될 정도로 죽도록 고생했으니 이것이 바로 가위눌려 고통을 당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 이구절은 공자가 여러 나라에서 곤경을 겪은 것을 예를 들어, 추구芻狗의 비유를 통한, 공자의 시대착오적 행동에 대한 비판이다.
夫水行莫如用舟 而陸行莫如用車 以舟之可行於水也 而求推之於陸
則沒世不行尋常 古今非水陸與 周魯非舟車與
(부수행은 막여용주하고 이륙행은 막여용차하니 이주지가행어수야로 이구추지어륙이면
즉몰세라도 불행심상하리니 고금이 비수륙여아 주노 비주차여아)
무릇 물길을 가는 경우에는 배를 쓰는 것이 제일이고 땅 위를 가는 경우에는 수레를 쓰는 것이 제일이다. 그런데 배가 물 위에서 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땅 위에서 밀고 가려 한다면
죽을 때까지 하더라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니 옛날과 지금의 차이는 물과 뭍의 차이가 아니겠으며 주周의 문화文化와 노魯의 문화文化의 차이는 배와 수레 차이가 아니겠는가.
☞ 심상尋常 : 심尋은 여덟 자[팔척八尺]. 상常은 심尋의 배. 곧 열여섯 자. 여기서는 조금, 보통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고금비수륙여古今非水陸與 주노비주차여周魯非舟車與 : 고금古今이 다른 것이 수水와 육陸의 차이와 같고 주周와 노魯의 다른 것이 배와 수레의 차이와 같다는 뜻이다. 춘추春秋시대 노魯나라에 먼 옛날 주周나라의 예제禮制를 부활하려고 한 공자孔子의 시대착오를 야유한 것.
今蘄行周於魯 是猶推舟於陸也 勞而無功 身必有殃
彼未知夫無方之傳 應物而不窮者也
(금에 기행주어노하논대 시는 유추주어륙야라 노이무공이오 신필유앙하리니
피는 미지부무방지전이 응물이불궁자야로다)
지금 노나라에서 옛날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그대로 시행하기를 바란다면 이것은 마치 땅 위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은 것인지라 공연히 수고스럽기만 할 뿐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고 도리어 몸에는 재앙이 닥칠 것이다.
저 공자孔子라는 사람은 일정한 방향 없이 자유롭게 유전하는 도가 만물에 대응하여 다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 금기행주어노今蘄行周於魯 : 기蘄는 바란다는 뜻. 주周는 옛 주周나라의 문물제도를 지칭한다.
☞ 피彼 미지부未知夫 무방지전無方之傳 응물이불궁자야應物而不窮者也 : 피彼는 공자를 가리키고, 무방지전無方之傳은 한정限定된 방향이 없는 전변轉變 즉 무한변화無限變化를 의미. 전傳은 전轉(구를 전)의 뜻. 응물이불궁應物而不窮은 끝없이 자유자재로[不窮] 대상 세계[物]에 대응[應]하는 근원根源의 이법理法 즉 도道를 말한다.
且子獨不見夫桔橰者乎 引之則俯 舍之則仰
彼人之所引 非引人也 故俯仰而不得罪於人
(차자는 독불견부길고자호아 인지즉부하고 사지즉앙하나니
피 인지소인이라 비인인야론 고로 부앙이부득죄어인하나니라)
“또 당신도 두레박을 보아서 알 것이다. 이것은 잡아당기면 아래쪽으로 엎어지고 손을 놓아 버리면 위를 본다.
저 두레박은 사람이 끌어당겨서 그렇게 된 것이지 〈두레박 쪽에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아래를 굽어보거나 위로 올려다보면서 사람에게 책망받는 일이 없다.
☞ 길고桔橰 : 여기 길고桔橰에 작자作者가 담은 뜻은 천지天地편의 부정적인 것과는 달리, 두레박이 물을 퍼 올리는 원리를 시대의 추세에 따르는 비유로 삼고 있다. 천지天地편 제11장의 자공子貢과 한주漢水 남쪽의 한 노인과의 문답 속에는 고槹라는 기계가 나오는데 거기서는 기계機械와 기사機事, 기심機心은 도와 상충되는 것으로 보아 그 기계‧기술 문명에 대한 장자莊子의 부정적인 입장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 천운天運편의 경우 두레박은 이미 세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 상식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는 것에서, 도가道家도 새로운 시대의 도래到來에 대응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피彼 인지소인人之所引 비인인야非引人也 : 두레박이 제 구실을 하는 것은 사람이 끌어당기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이지, 반대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곧 세상을 다스리는 예의 법도 등의 도구도 세상의 변화 추이에 따라야 하는 것이지, 과거의 예의 법도에 맞춰서 세상을 다스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 무심無心히 부앙俯仰할 뿐인 두레박이 시대착오적 작위作爲를 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故夫三皇五帝之禮義法度 不矜於同而矜於治
故譬三皇五帝之禮義法度 其猶柤梨橘柚邪 其味相反 而皆可於口
故禮義法度者 應時而變者也
(고로 부삼황오제지례의법도는 불긍어동이오 이긍어치하시나니
고로 비삼황오제지례의법도컨댄 기유사리귤유야인저 기미상반하나 이개가어구하니
고로 예의법도자는 응시이변자야니라)
그 때문에 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예의 법도라고 하는 것도 똑같이 시행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황오제의 예의禮義와 법도法度를 열매에 비유하자면 아가위나무,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의 열매와 같을 것이다. 그 나무들의 열매의 맛은 서로 다르더라도 사람의 입맛에 맞는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그러므로 예의와 법도라고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 삼황오제三皇五帝 : 사기史記가 오제본기五帝本紀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삼황三皇에 대하여는 이설異說이 분분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을 지칭하는지 시대에 따라 많이 변화하고 있는데, 복희伏犧‧신농神農‧황제黃帝를 삼황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제五帝는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을 가리킨다.
☞ 불긍어동不矜於同 : 긍矜은 가치 있게 여겨서 숭상한다는 뜻.
今取猨狙 而衣以周公之服 彼必齕齧挽裂 盡去而後慊
觀古今之異 猶猨狙之異乎周公也
(금에 취원저하야 이의이주공지복하면 피 필흘설만열하야 진거이후에야 협하리니
관고금지이컨댄 유원저지이호주공야니라)
지금 원숭이를 잡아다 놓고 주공周公의 옷을 입히면 원숭이는 반드시 그 옷을 깨물고 물어뜯고 잡아당겨 찢어서 깡그리 없애 버린 뒤에야 비로소 흡족해할 것이니
옛날과 지금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원숭이와 주공周公의 차이와 같을 것이다.
☞ 금취원저이의이주공지복今取猨狙而衣以周公之服 : 주공周公은 본래 주나라의 공을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공자孔子가 존경하는 성인聖人의 한 사람인 주공周公 희단姬旦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더 자주 쓰인다. 여기서도 희단姬旦을 지칭한다. 무왕武王의 동생이며 노魯나라의 시조이기도 하다. 의衣는 입힌다는 뜻의 동사. “周公이 예를 제정하여 관면의상冠冕衣裳의 제도가 있게 되었다.”(林希逸)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런 제도를 비웃기 위한 사례로 예시한 것이다.
☞ 흘설만열齕齧挽裂 : 만挽은 당긴다는 뜻으로 만열挽裂은 잡아당겨 찢어 버린다는 뜻.
☞ 진거이후협盡去而後慊 : 협慊은 ‘흡족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때로는 정반대의 뜻인 불만족스럽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故西施病心而矉其里 其里之醜人 見之而美之 歸亦捧心而矉其里
其里之富人見之 堅閉門而不出 貧人見之 挈妻子而去走
彼知美矉 而不知矉之所以美 惜乎而夫子其窮哉
(고로 서시 병심이빈기리 어늘 기리지추인이 견지이미지하야 귀하야 역봉심이빈기리한대
기리지부인은 견지하고 견폐문이불출커늘 빈인은 견지하고 설처자이거주하니
피 지미빈이요 이부지빈지소이미하니라 석호라 이부자는 기궁재인저)
그러므로 〈선왕들의 제도를 흉내 내는 것은 마치〉 서시西施가 가슴을 앓아 마을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다니자 그 마을의 어떤 추녀가 그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겨 자기 집에 돌아가 그 또한 가슴을 부여잡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니
그 마을의 부자들은 그것을 보고는 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는 처자식을 이끌고 그 마을을 떠나 버렸다.
그 추녀는 찡그린 것을 아름답게 여길 줄만 알았고 찡그린 것이 아름다운 까닭을 알지 못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당신의 선생은 〈가서〉 궁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
☞ 서시병심이빈기리西施病心而矉其里 : 서시西施는 전국시대 월越나라의 미인으로 제물론齊物論편 제1장에 이미 나왔다. 빈矉은 이맛살을 찌푸리는 것.
☞ 피지미빈彼知美矉 이부지빈지소이미而不知矉之所以美 : 미美는 동사로 읽어 〈찡그린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는 뜻. 피彼는 그 醜女. 소이미所以美는 아무나 찡그린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어 더 볼 수 없을 정도로 추해지는 등, 언제 누가 찡그려서 아름다운가 하는 이유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