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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억년전 공룡알화석, 보성서 무더기 발견
← 전남 보성군 해안가에서 공룡의 집단산란터를 발굴해 낸 전남대 허민(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공룡알 화석을 들어보이고 있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 선소 해안일대에서 초식성 공룡알 화석이 대규모로 발견됐다. 1996년 해남군 우항리에서 공룡과 익룡 발자국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전남도문화관광국이 1998년 10월부터 남해안 일대에 대한 지질조사를 편 결과, 1999년 5월 25일 선소마을 해안의 중생대 백악기말(약 1억년전) 지층에서 공룡알과 알둥지 화석이 대량 발견됐다고 밝혔다.
공룡알들은 약 3㎞에 걸쳐 5개의 층준에 넓게 분포돼 있으며 대부분 알둥지를 형성하고 있고, 하나의 둥지엔 6∼30개의 공룡알이 들어 있다. 지난 7개월 동안 이 지층에서는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한 10여개의 공룡알둥지와 100여개의 공룡알, 수백개의 알 파편들이 발견됐으며, 직경 1.5m의 세계 최대급 공룡알 둥지도 산출됐었다.
평균직경 9∼15㎝의 알의 모양은 원반형 타원형 구형 등 다양하며 알 껍데기의 두께는 1.5∼2.5㎜ 정도이며 표면은 울퉁불퉁한 돌기에 부분적으로 심한 굴곡이 있는 경우도 있다. 공룡알은 경남 고성과 하동지역 등에서 껍데기가 발견된 적은 있으나 원형 상태의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조선
[2007년] 피천득씨 별세
←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후배와 제자들을 맞으면서 늘 따듯한 웃음을 안겨주셨던 말년의 수필가 피천득.
아사코와의 세 번 만남과 이별을 이야기한 수필 ‘인연’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명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금아(琴兒) 피천득(皮千得·97·사진) 선생이 12월 25일 오후 11시40분 서울 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20세기 한국 문단의 산증인이자 최고령 문인이었던 피 선생은 지난주부터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한때 호전돼 퇴원하기도 했으나 25일 오후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난 피 선생은 10세에 모친을 여읜 뒤 삼촌 집에서 성장했다. 춘원 이광수의 집에서도 잠시 살았던 그는 주요한 선생의 주선으로 중국 상하이 후장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46년 경성대학(현 서울대) 예과 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유족으로 부인 임진호(89) 여사와 세영(재미 사업가), 수영(울산의대 소아과 교수), 딸 서영(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 등 2남1녀가 있다./조선
[2008년] 가수 권혜경씨 별세
‘산장의 여인’을 남긴 가수 권혜경(본명 권오명·77)이 25일 오후 1시께 별세했다.
강원도 삼척 출생인 권씨는 1956년 당시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 3기로 발탁됐고,57년 음반 데뷔곡인 '산장의 여인'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라디오 드라마 '호반에서 그들은'의 주제가인 '호반의 벤치',59년 개봉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동심초'의 주제가를 취입했다.
그러나 1959년 심장판막증 판정을 받은 데 이어 후두암까지 겹치는 등 병마에 시달려 왔다. 권씨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작곡가 박춘석씨와 손잡고 발표한 '물새 우는 해변'을 발표하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편 권혜경의 별세 하루 전 4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가진 조용필은 자신의 애창곡이라며 ‘산장의 여인’을 5만 관객과 함께 합창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조용필이 부른 곡 가운데 다른 가수의 곡은 ‘산장의 여인’이 유일하다.
[1981년] 뽀뽀뽀 첫 방영
《뽀뽀뽀 아이 조아》는 대한민국의 방송국인 MBC에서 제작, 방송하는 유아 교육 프로그램이다. 원래 이름은 《뽀뽀뽀》였지만 2007년 4월부터 《뽀뽀뽀 아이 조아》로 바뀌었다. 1981년 5월 25일 첫 방송되어 첫 방송이 된 지 24년 뒤에는 6946회(2008년 5월 1일 기준)로 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로 시작하는 주제가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지금도 프로그램 명칭이 바뀌었는데도 주제가는 아직도 똑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성 진행자는 “뽀미 언니”라고 불렸는데 20여 명의 진행자가 이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현재 “뽀미 언니”라고 불리는 사람은 없다. 2007년 4월부터 신동과 이하정이 각각 “동동”과 “아라”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가, 2009년 5월 25일부터 이하정에서 나경은으로 MC가 교체되었다./한국어 위키백과
[1973년]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에서 우주실험
← 우주정거장
미국 우주비행사 3팀이 1973년 5월 25일부터 1974년 2월 8일까지 총 171일 동안 차례로 우주정거장인 스카이랩에 머물면서 지질·공학·지구자원·생의학 및 기타 과학분야에 관한 실험을 했다. 스카이랩은 1973년 5월 14일 미국이 새턴 5호 로켓을 이용해 발사한 최초의 우주정거장이다. 우주정거장은 고정된 궤도를 선회하면서 과학 관측·실험, 우주선 연료보급, 위성·미사일 발사 등을 하기 위한 기지로 설계된 유인인공위성을 말한다. 소련은 1971년 4월 19일 살류트 1호를 발사해 최초로 우주정거장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미국은 1983년 실시될 우주왕복선 계획에 이용하기 위해 더 높은 고도로 스카이랩의 궤도를 수정했다. 그러나 태양흑점 활동이 증가하면서 스카이랩에 대한 대기저항이 예상보다 커졌다. 스카이랩은 1978년 6월 처음으로 궤도를 벗어난 뒤, 1979년 7월 11일 지구 대기 속에서 분해되어 추락했다./브리태니커
[1966년] 중국 문화혁명기 최초의 대자보 북경대학에 등장
← 북경대학의 여성 강사인 섭원재 등이 붙인 당간부 비판 대자보(大字報).
1966년 5월 25일 중국 북경대학 학생식당에 ‘송석, 육평, 등패운은 문화혁명에서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등장했다. 대자보의 첫 출현이었다. 송석은 북경시 당위원회 대학부 부장이었고 육평은 북경대학장 겸 북경대 당서기, 등패운은 북경대 당부서기였다.
학생들과 교직원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간부에 대한 비판은 독재권력을 장악한 ‘반당행위’여서 자살행위와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자보 작성자는 좌파인 북경대 여성강사 섭원재였다. 섭원재는 2001년 8월 조선일보 박승준 특파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모택동의 비서 강생의 직접 지시에 의해 대자보를 썼다고 실토했다.
대자보에 의해 매도당한 육평 등은 곧 반격에 나서 그날중에 1천매가 넘는 대자보를 대학구내에 빽빽하게 붙였다. 섭원재는 당의 배신자 등으로 공격받아 위기에 처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6월1일 섭원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자신의 대자보가 중앙인민방송국과 인민일보에서 ‘전국 첫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대자보’로 칭찬받고 있었던 것이다. 뒤이어 육평과 팽패운이 대학에서 추방됐다. 이 모든 배후에는 모택동이 있었다. 모택동은 북경대의 당위원회를 다스리는데 섭원재의 대자보를 활용했던 것이다.
섭원재는 2년뒤인 1968년 모택동에 의해 ‘반혁명’ 죄목으로 8년간, 등소평 등장후인 1980년 ‘마오의 앞잡이’라는 죄명으로 다시 8년간을 복역하는 불운을 겪었다./조선
[1957년] 야당주최 시국강연회 방해 사건
← 장충단공원 야당집회시 깡패들이 각목을 휘두르고 앰프를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야당인사들로 구성된 ‘국민주권옹호투쟁위원회’ 주최 시국강연회가 1957년 5월 25일 오후3시 장충단공원에서 열렸다.
20여만 군중이 입추의 여지없이 광장을 메운 가운데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조병옥이 지난 9년간의 이승만 정권 독재와 실정을 신랄하게 비난하자 청중 속 곳곳에서 파나마 모자에 검은 안경을 쓴 청년들이 "죽여라"하고 외치면서 연단을 향하여 돌과 유리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몽둥이를 든 괴한 10여명이 연단 위로 뛰어올라와 책상을 뒤엎고 식순을 찢어버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 그때 괴한중 1명은 연단옆 마이크 조정기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연사로 나선 조병옥, 장택상, 전진한씨 등은 연단아래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경호를 맡은 김두한 의원 만이 괴한들과 몸싸움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경찰은 괴한들이 연단을 완전히 파괴하고 도망친지 한참 뒤에 나타났다.
이날 난동의 배후에는 이정재가 있었고, 현장 책임자는 유지광이었다. 그러나 국민여론이 급격이 악화되자 검찰은 다시 수사에 착수, 유지광과 명동파 두목 이화룡, 종로파 두목 심종현 등을 구속했다.
조총련은 일본을 거점으로 북한의 해외 공작기지로서 각종 활동을 벌여왔다. 주요활동은 북송사업, 북한 자유왕래 실현운동 등 이른바 민족권리 옹호 투쟁 등이다.
산하단체로는 조총련의 자금원인 재일조선인상공연합회, 조일수출입상사, 동해상사 등이 있다. 이로써 재일교포 사회는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재일거류민단과 조총련으로 양분됐다./조선
[1952년] 부산 정치파동, 이승만 대통령 부산을 중심으로 경남-전남북에 계엄령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직선 대통령선거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개헌안을 부결하고 1952년 4월 17일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 이대통령과 대립했다. 그러자 내각책임제 개헌반대 관제데모가 잇따라 벌어졌고 끝내는 정체불명의 폭력단들이 ‘국회해산’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 무렵 이대통령은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에게 2개 대대병력의 계엄군을 부산에 투입할 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5월 25일 자정을 기해 부산과 영·호남 20개 시·군에 다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6일 헌병대가 국회의원 통근버스를 연행하는 폭거를 자행하는가 하면 야당소속 국회의원 10명을 국제공산당 관련 혐의로 구속했다. 6월 30일 이대통령은 발췌개헌안의 국회통과를 요구하면서 이를 거부하면 국회를 해산하겠다고 협박, 결국 7월 4일 야간국회를 열어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조선초기에는 십자군에 견제를 당했지만 1300년경에는 소아시아에 거점을 확보했다. 이후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건너 유럽으로 진입, 인접한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453년에 모하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함으로써 그리스도교 문명권은 최악의 굴욕을 당했다. 투르크인은 서쪽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도 진출했다. 1517년에 이집트는 투르크의 셀림1세에 점령당했다. 그의 후계자이며 ‘대 술탄’이라고 불리던 술레이만 1세(1520-1566)는 치세동안 바그다드, 로도스, 벨그라드, 부다페스트를 거쳐 당시 서유럽 대부분을 지배했던 신성로마 황제의 수도인 빈 부근까지 지배권을 확장했다.
그리스도교는 투르크 침략의 파도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이슬람교도들에게 필적할 단결과 헌신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교황을 중심으로 단결한 그리스도교 군사들은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가 지휘하는 신성동맹 함대로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에서 이슬람 함대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킴으로 다시는 이슬람 군대가 지중해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다. 전투에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가톨릭 국가 거의 전부가 참여했다./조선
그밖에
2007년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정문 공개
2007년 이지스함 진수한 날 북한, 동해상 및 서해상으로 미사일 2~3발 발사
2006년 박지원씨 징역3년 법정구속 현대비자금 150억은 무죄
2006년 엔론 회계부정 유죄평결
2005년 톱스타 김승우, 김남주 커플 결혼식
2005년 육군교도소 일반에 처음 공개
2005년 리버풀, AC 밀란 꺾고 21년만에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5년 제7차 아세안(ASEAN)+3 NTOs회의 개막식
2005년 한국 브라질 확대정상회담
2005년 기계관련 종합전시회인 2005 부산국제기계대전 개막
2004년 고건 총리 총리직 이임(離任)
2002년 대만 여객기 대만해협에 추락. 225명 전원 사망
1995년 한국-우크라이나 정보통신부문협력협정 체결
1994년 고려 과거시험 합격자 101명 명단 발견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 임시 핵사찰단 방북
1991년 성균관대 김귀정양 시위 도중 사망
1989년 남산1호 쌍둥이터널 착공
1986년 아프리카 난민돕기 ‘스포츠에이드’가 세계75개국서 동시 개막
1984년 제3차 남북체육회담 개최
1984년 페르시아만서 선박 6척 피격
1983년 문교부 과외단속기준지침 마련
1982년 오리엔트특급, 런던-베네치아간 부활
1982년 낙동강 하구 쥐섬 남쪽 앞바다서 쾌속여객선 에어페리호와 피닉스호 충돌, 49명 부상
1979년 시카고 공항서 아메리카항공 소속 DC10기 추락으로 274명 사망
1973년 부산항만관리청 발족
1971년 일본 잡지 ‘논노’ 창간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
1968년 공화당 김용태의원등 2명 한국복지회 사건으로 제명
1966년 3분(粉)폭리 정치문제화
1965년 중공군의 계급제 폐지
1963년 이디오피아서 열린 아프리카독립국 수뇌회의서 30개국 참가하는 OAN헌장에 조인
1961년 농어촌 고리채 정리령 공포
1959년 필리핀 문화-경제사절단 내한
1952년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령 선포
1950년 유네스코, 한국 가입을 의결
1949년 중공군 상해 점령
1947년 현대토건사(현대건설 전신) 설립
1946년 김규식, 여운형 등 좌우합작 접촉
1942년 조선인 군속모집 시작, 미-영포로 수용소에 배치
1935년 베이브 루스, 714홈런 기록
1923년 독일의 화학자 한스 골트슈미트 사망
1922년 이탈리아의 공산당 서기장 베를링구에르 출생
1915년 중국-일본 신조약 조인
1913년 영국 BBC 방송 최초의 종군특파원 딤블비 출생
1913년 한용운 ‘불교유신론’간행
1911년 멕시코 독재자 디아스 대통령 축출
19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발파라이소간 안데스 횡단철도 개통 남미 최초의 횡단철도
1895년 대만도민, 대만민주국 선언. 대만순무(巡撫) 당경송을 총통으로
1865년 가톨릭대 신학부 개교
1865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제만 출생 - 제만효과 발견으로 190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1864년 나폴레옹3세, 노동자의 파업권 승인
1803년 미국 철학자 에머슨 출생
1669년 시칠리아 에트나산에서 화산 분출로 2만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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