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에 있는 산수유마을을 갔다. 산수유마을 중에서도 산동면 위안리에 있는 상위마을이 유명하다. `산동`이란 지명은 1000여년 전 중국 산동성의 처녀가 이 고장으로 시집을 오면서 가져온 산수유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천년 또는 몇백년 수령의 산수유나무들이 3만주나 가득한 마을... 이 동네 산수유마을에는 국내 산수유 열매 생산량의 30%를 차지할 만큼 산수유 나무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산수유축제기간임에도 산수유 고목들은 아직 노란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돌담길을 걷노라니 어딘지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 제주의 올레같은 돌담길은 밭을 일구고 집터를 고르며 나오는 잡돌을 몇백년을 두고 쌓아 온 흔적이리라. 제주에선 오래 전 감귤이 귀한 시절에는 귤나무를 돈나무라 했는데, 여기 상위마을 에선 산수유를 돈나무라 했다고 한다. 또는 효자나무라 하기도 했고... 해방공간과 전쟁통에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는 것도 닮았다면 내 고항 제주와 닮은 고장이다.
산수유 피다 - 권옥희 보낼 수 없는 계절 끝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계절의 방황 끝에서 산수유, 노오란 꽃망울 움켜잡으며 3월에도 함박눈 내리네 상처 난 것은 아파 뭉클뭉클 솟는 슬픔 봄은 멀리 있어도 보드라운 혀끝에 감기어 그립다는 말 끝내 뱉고 마네 그래도 빛 잃은 별처럼 말랑말랑해진 겨울이여 이제는 안녕을.
2012년 3월 25일
산수유 그 빛나는 노란물결 구례 산수유마을
섬진강 강물을 따라 언뜻언뜻 비치던 산수유 노란빛이 상위마을 주변으로 모두 집결한 모양이다. 마을을 완전히 뒤고 있는 산수유가 지리산으로 봄을 밀어 올린다. 산수유 그 노란빛 앞에서 잠깐 ‘현기증’을 느꼈다. 혹 이 마을의 주인은 사람도 집도 아닌 산수유나무가 아닐까. 이름조차 ‘산수유 마을’이다. 산수유꽃은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쌀알의 크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결정(結晶) 같은 그 꽃잎이 모아지고 한데 뭉쳐져 눈에 담기는 풍경이 모두 노랗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 노란빛이 물결처럼 흔들려 상위마을 전체가 출렁거린다. 먼발치에서 산수유 군락을 처음 대면했을 때의 아득했던 느낌이 상위마을에 닿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온천지대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상위·하위 마을의 산수유는 절정을 넘어서고 있다. 마을은 봄을 찾아 나선 발길들로 붐비고, 산수유나무 아래에서는 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돌담, 묘봉골 그리고 산수유 그늘
적어도 구례 산수유 마을에서는 산수유꽃으로 쏟아지는 찬사의 절반은 돌담의 몫이어야 한다. 산수유나무 주변으로 무수히 쌓여있는 돌담들, 산수유의 아름다움은 돌담으로 인해 그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먼발치에서 보면 그 많은 돌담들이 산수유를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돌담이 쌓아진 시기는 산수유보다 훨씬 이르다. 마을에 산수유가 심어지기 시작한 것은 500여 년 전이다. 중국 산동성에서 이곳으로 시집온 처녀가 처음 가져와 심었다고 전한다. ‘산동’이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담은 마을의 생성과 운명을 같이 한다. 아주 오래 전 잡목과 바위뿐인 지리산 비탈로 들어와 마을을 만들던 사람들이 집터를 고를 때 나오는 바위와 돌로 이 돌담들을 쌓아 올렸다. 산수유 마을에서 오래된 시간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은 돌담이 간직한 세월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돌담뿐만이 아니다. 지리산 맑은 물을 담고 흐르는 묘봉골도 산수유와 함께 흐른다. 맑은 계곡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산수유 그늘. 묘봉골 아래에서는 산수유 노란빛에 가려 하늘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아픔
산수유꽃을 들여다보면 너무 아름다운 것은 슬프다는 말이 떠오른다. 작가 윤대녕도 산수유꽃에 운명처럼 배어있는 그 아득한 슬픔을 읽고 산수유는 <마른 가지에 뿌옇게 튀어 올라 비구니 애처로운 머리통에 비죽비죽 돋는 머리칼 끝들을 생각나게 한다>고 했다. 온천지대를 지나 상위마을로 오르는 십리길, 산수유 노란빛이 비구니 애처로운 머리통에 감도는 푸르스름한 빛과 자꾸 겹쳤다.
산수유가 간직하는 슬픔이 어디 이것뿐일까. 산동면 위안리는 해방전후에만도 130여 가구가 모여 살아 산골마을치고는 제법 규모 있었다. 그러나 지리산이 간직한 역사의 슬픔이 마을을 덮쳤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다수 주민들이 목숨을 잃고 지금은 겨우 40여 가구만 그 슬픈 땅을 지키고 산다.
마을에 나이 70을 넘긴 노인이 아예 없는 것도 시대의 아픔에서 연유한다. 이념이 목숨을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던 시절 산수유 마을은 날마다 붉게 타올랐다. 산수유 마을에 가서는 결코 꽃의 아름다움만 읽고 내려와서는 안될 일이다. 산수유꽃은 그 슬픈 넋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피어오르는 것이다.
교통-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곡성 옥과에서 빠져나온다. 지방도를 타고 구례로 들어와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방면으로 계속 직진한다. 지리산 온천 교차로에서 오른쪽 길로 진입한 후 바로 우회전한다. 지리산 온천에서 4km 직직 하면 하위마을을 거쳐 상위마을까지 닿는다. 88올림픽고속도로를 타고 남원에서 빠져나와 구례방면 19번 국도를 타고 상위마을로 오는 방법도 있다.
먹을거리 - 구례읍에 부부식당(061-782-9113)과 평화식당(061-782-2034)이 있다. 우리밀로 만든 부부식당의 다슬기 수제비는 개운한 국물맛이 일품.
평화식당은 30여 년 동안 오직 비빔밥 하나만 만들어온 식당. 콩나무, 녹두나물, 시금치, 배추숙지, 육회, 김가루가 골고루 들어가는 비빔밥에 시원한 새우국이 따라나온다. 소머리를 쌀뜨물처럼 뽀얗게 우려낸 설렁탕도 별미다.
정상철 기자 <전라도 닷컴>
|
첫댓글 돌담길 하며...시골 내음이 물씬 풍기는군, 열매가 익는 계절에 가보고 싶다.
산수유마을 입구에는 호텔도 많고...
산언덕 개울가에는 민박집도 많더라고....
몇 집이서 함께 가 놀면 좋겠더군~ ^^
하근디 돌아댕견 조아시켜. 고생허연 찍은 사진 잘 봠져.
하근디 돌아댕견...
몸살 날 정도~ㅎㅎ
놀아도 젊어서 놀아사주....
양훈아!
백작부인과 함께 좋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부럽다!!ㅎㅎㅎ
부럽긴...ㅎㅎ
차타고 떠나면 되는 일을~
우리나라도 좋는 곳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산수유는 공진단의 첬번재로 많이사용되는 중요한 원료의 하나이며 육미지향탕을 만드느데 꼭 필요하다 허하신분들 기력보강하는데(정력) 좋은 약제이다 집에서 끓여 마셔도 아주 좋습니다!!!
역시 식품에 대헤선 우리 오사장이 박사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