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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23:1-17. 돋는 해의 아침의 빛과 구름이 없는 아침과 움이 돋는 새 풀. 2025. 11. 2.
나이에 따라 미혼 여성들의 소개팅의 반응이 천차만별입니다. 20대 초반은 자기가 제일인줄 알고 해줄까 말까 망설입니다. 20대 후반에는 아직도 환상에 빠져 외모와 키를 따집니다. 30대 전반에는 현실에 눈을 떠서 직장과 집안과 사람됨을 묻습니다. 30대 후반은 핸드폰에 만날 장소를 기록합니다. 40대는 살다가 보면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겠지!! 세월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데 요사이는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외모와 재산과 권력과 능력과 힘도 세월 앞에서는 가치가 변하기도 하는데 오늘 다윗은 마지막으로 말을 합니다. 그의 인생 마지막 즈음에 3가지 중요한 사실을 밝히는데 무엇인가요?
1. 지나온 삶에 대한 자신의 평가입니다. 여러분,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요? 터전이 흔들리는 시대라고 합니다. 터전이 흔들리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불안할까요? 딛고 서있는 터전이 흔들린다면 아찔하지 않을까요?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신뢰의 터전이 무너지고 집단 이기주의가 도처에서 분출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조정 기능을 거의 상실한 것처럼 보이고, 도덕적인 해이도 심각하며, 횡령 사고가 빈발하고, 자국보호주의 명분과 관세 때문에 물가는 치솟고, 돈이 된다고 하면 무엇이든지 마다않는 코인시대와 미래 세대의 어깨를 억누르는 국가 부채는 날로 늘어갑니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시대일수록 감정을 조금씩 누그러뜨리고, 서로를 살리는 相生의 길을 모색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소견과 입장을 관철하려고 음성을 높이고 감정이 너무 격해졌습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여기에 편승합니다. 그런데 시11: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은 무엇을 할꼬?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터가 흔들리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만한 지도자를 찾고 그리워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상황에 모두가 만족할 해답은 없지만 그렇다고 꿈조차 버릴 수는 없습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이 기다려지는 시대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마지막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세계 속에 각인 시키고 세계 속에 우뚝 세워놓고 이제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갈 때가 된 것을 알고 있는 다윗은 후손들을 위하여 흐르는 세월 앞에 마지막 말을 합니다. 무엇이라고 합니까? 자신의 삶을 간단하게 1절.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라고 합니다. 다윗이 자신을 향해서 본 시각과 자신에 대한 평가입니다. 사실 다윗은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자랑보다는 경외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떤 경외심 입니까? 지나온 날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높이 세워진 것입니다. 세워졌다는 피동사 속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있음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합니다. 왕이 되고 이스라엘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삶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힘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지극히 산문적인 현실에 몸담아 살면서도 감성을 잃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 얼마나 멋집니까? 영혼의 민감한 감성으로 백성들이 보지 못하는 현실의 미세한 부분에 눈길을 주고,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소리에 민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노래했다는 문자적 표현은 이스라엘과 백성과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사람은 스스로 높일 수가 없습니다. 누구인가 높여 주어야 높임을 받습니다. 높임을 받고,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을 노래했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3절입니다.
다윗을 공의와 경외함으로 다스린 사람으로 평가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여러분, 이 어려운 시대에 사람의 평가가 중요 합니다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 더욱 중요 합니다.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라고 합니다. 사람을 공의로 다스린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가요? 구부러진 척도와 세상의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 하여 두둔하고, 죄를 덮어주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잘못을 뒤집어씌우지도 않았습니다. 부자라고 편들고 가난하다고 업신여기지도 않았으며 예쁘다고 해서 봐주고, 못생겼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나 어떤 일을 대할 때 마음대로 척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험담하고 저주하는 사람들까지 품었습니다. 원수 앞에서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이야기하고 도리어 장군들을 꾸짖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이 되던가요? 어렵습니다. 누가 공의로 다스릴 수 있나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과 관계가 하나님의 일임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지요? 물론 일을 하면서 능력의 부족을 절감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콜링에 대한 믿음과 헌신의 마음입니다.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들 때문에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아름다워 집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드러냈습니다. 경외하는 이의 삶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높임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공의와 경외함으로 백성들을 섬겼다는 뜻인데 이것이 마지막을 정리하는 첫 표현입니다.
2. 인생의 결론입니다. 4절. 그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동녘 하늘에 떠오르는 해는 참으로 장엄합니다. 해돋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무엇일까요? 태평양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와까야마에 서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일까요? 마음을 비우고 日出을 바라보는 마음, 다짐과 결심과 소원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힘이 있어 보이고 광명이 비치고 일순간에 어두움이 걷힙니다. 그런가 하면 구름 없는 아침은 또 어때요? 늘 흐려있는 하늘만 보다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면 영혼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새로운 아침이 되었는데도 근심과 걱정, 고민과 절망과 같은 구름으로 가득한 아침을 맞이하는 것과 구름 없는 아침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다윗은 날마다 구름이 없는 소망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는 비 내린 땅에 움이 돋아나도록 하는 햇살과 같은 존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현재의 지도자는 어떻습니까? 자리다툼에 여념이 없고 그 자리에 왜 있는지를 모르잖아요? 중국의 논어에 不患無位 患所以立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리를 잃을까봐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그 자리에 제대로 설 것인가를 걱정하라는 말입니다. 자격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윗은 자기의 부족함을 잘 알지만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맺은 언약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그의 삶을 든든하고 아름답게 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견고한 소망을 갖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무엇 때문에 견고한 소망을 갖게 됩니까? 5절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참으로 견고한 소망입니다. 여러분, 일은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한 걸음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모세를 원망할 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가서 투덜거리는데, 하나님, 어쩌면 좋지요? 민11:23.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은 하나님이 감당하십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기다리면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완성품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지만 그 땅을 다 비워놓고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평화와 기쁨을 약속하셨지만 완성품이 아니라 씨앗입니다. 땅에 심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정성껏 돌보지 않는다면 가을이 되어도 빈손입니다. 여러분, 현재가 비록 곤고하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발밑이 흔들리는 것 같은 불안감이 시대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지만 하나님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6절에서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려질 가시나무 같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왕가에 반역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입니다만, 하늘의 경고음으로 들려옵니다. 여러분, 마음이 가시나무처럼 메마르십니까? 자신을 위하여 수많은 가시를 만들어 찌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의 여백을 만드시고 완성품을 위한 씨앗을 땅에 심고 거름을 주고 물을 뿌리고 정성껏 돌보시는, 그래서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다윗의 사람됨의 위대함입니다. 다윗은 하나님만 생각하고 높인 것 이 아닙니다. 자기와 함께 고통을 받고, 고생을 하고, 함께했던 모든 사람을 높였습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을 높이고 그리고 난 이후에는 모든 영광을 자기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돌립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데 배반했던 사람들도 칭찬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전의 받은 은혜와 배려는 생각하지 않고, 나 때문에 성공한 사실만 기억하고 감사하지 않으면 뒤 돌아서 헐뜯고 끌어 내립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와 함께 했던 모든 용사를 기록 합니다. 마지막인데 할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할 말이 바로 함께 했던 사람들을 높여주고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렸습니다. 8-17절 사이에 헌신한 세 용사가 나옵니다. 다윗 왕정에서 최고서열의 군대장관은 요압과 아마사였고, 일반장군 중에 최고의 첫째 3인은 본문 앞 8-12절에 나오는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그리고 삼마였습니다. 18-30절에 그 다음에 30인의 군장들이 있었는데 그 군장들 중에 대표가 둘째 3인인데, 그들은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 브나야, 그리고 익명의 한 군장입니다. 본문에는 그 둘째 3인이 다윗을 위해 헌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의 헌신과 충성을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게 됩니다. 참 사랑이 무엇일까요?
3-1. 깊이 잘 듣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을 보면 다윗이 참 철이 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군대가 산성에 있고, 블레셋 군대가 베들레헴 성에 있어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하는데 그때에, 아!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먹고 싶다. 누가 나로 저 물을 마시게 할까? 베들레헴의 우물물은 다윗이 어렸을 때 자주 마시던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시에 어렸을 때의 향수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면 큰 문제가 됩니다. 부하들의 가십거리가 될 만한 말이었지만 세 용사들은 요새 주군이 이상해졌어! 가십 거리로 삼지 않고, 오히려 그 말을 마음속 깊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말을 깊이 잘 듣는 것이 사랑의 기초입니다. 예배 이후에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시면 잘 들어준 그분에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입니다. 말씀을 잘 전하는 것만큼 말씀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왜 교회를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깊이 잘 듣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성경을 볼 때 자신이 높은 줄 알면 말씀은 침묵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레마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족함을 인정하면 그때부터 침묵하던 성경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레마의 말씀으로 들려지고, 설교도 레마의 말씀으로 들려집니다. 축복의 역사는 이때부터 놀랍게 시작됩니다. 또한 말씀을 깊이 잘 들으면 이해력이 커집니다. 공동체가 왜 힘들어집니까? 대개 오해 때문입니다. 매일 반복되면서 별로 생색나지 않는 일은 생색나는 일보다 몇 배 힘이 듭니다. 말로 자세히 설명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마음까지 알아줍니까?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 그런 생각을 하시면 사단이 슬쩍 찾아와 그 생각을 증폭시키고 은혜와 축복을 짓밟습니다. 물론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속상합니다. 그때 기도해서 그런 생각을 물리치고 차라리 내가 상대의 마음을 조금 더 알아주자! 그 순간, 사단은 도망치고 성령이 주시는 지극한 위로와 평강과 복도 넘치게 됩니다. 잘 들어야 합니다.
3-2. 조용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들었으면 불평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 용사는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먹고 싶다는 다윗의 말을 듣고 조용히 물을 구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있던 아둘람 굴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50리 정도 됩니다. 왕복 100리 길을 오직 물을 구하려고 적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은 다윗을 어리석을 정도로 사랑했고 논리를 초월하여 충성했습니다. 어느 날, 이사야가 존경했던 웃시야 왕이 죽자 상심한 마음으로 성전을 찾았을 때에 어두운 현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꼬? 그때 이사야가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소서! 그 고백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드셨겠습니까? 그러면 왜 세 용사가 다윗에게 물을 구하러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다윗이 그 우물물을 먹고 싶어도 가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조용히 행동했습니다. 조용히 행동할 때 더욱 감격이 됩니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가 못하면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만 세 용사처럼 리더의 마음을 읽고 어느새 리더가 원하는 일을 감당하면 감동이 배가됩니다. 말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칭찬하는 말과 분위기를 밝게 하는 말을 많이 해주시고, 꿈과 비전을 격려하고 믿음을 선포하는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말없이, 타당성에 관계없이, 음지에서 헌신하는 것도 감동과 감격을 줍니다. 특히 중요한 전략과 꿈과 비전을 이루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들은 너무 쉽게 발설하시면 사단이 끼어들어 그 말과 정보를 왜곡해서 비전을 방해합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을 얼마나 많이 겪습니까? 하나님보다 앞서서 말이 먼저 나가면 아니 됩니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동시에 말없이 교회를 섬길 때에 길이 열립니다. 여러분, 인생에는 2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여자의 길이고, 또 하나는 방관자의 길입니다. 참여해야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주님의 신부가 신부의 들러리로 전락하면 어떻게 되나요? 막10장에 어느 날,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간청을 하는데 주님의 좌우편을 간청합니다. 이에 나머지 10제자가 분개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주님의 좌우편은 섬기는 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을 원하면 자리에 신경 쓰지 말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막10:45. 주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을 잘 듣고 은밀히 행동하는 것이 사랑의 두 번째입니다.
3-3.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 용사는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가 우물의 물을 다윗에게 드렸습니다. 그 물은 물이 아니라 피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소중한 자신들의 피를 드렸습니다. 생명을 드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이 줄 수는 있지만 주는 것이 없이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진실한 관계는 드림과 나눔을 통하여 형성됩니다. 거목이 쓰러지면 그 쓰러진 거목이 거름이 되어 작은 나무들이 더 많이 생기듯 거름처럼 드려야 합니다. 취하려는 삶은 갈증인 영혼과 눈물이 나오게 하지만 바치려는 삶은 풍성한 영혼과 노래가 나옵니다. 시성 타고르는 바람이 불어 배 안의 등불이 꺼지니 뱃전에 달빛이 차더라! 십자가의 사랑은 영혼을 사랑하고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3-4.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세 명의 용사가 가져다 준 우물물을 받고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그 엄청난 헌신을 보고 다윗은 이기적인 감성에서 깨어났습니다. 자신의 어리석은 육신적인 욕망을 깊이 회개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소중한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그냥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물은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갔던 사람들의 피 입니다. 도저히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 모습을 본 부하들이 얼마나 감동할까요? 부하들은 목숨을 각오한 은밀한 헌신으로 다윗을 감동시켰고, 다윗은 자신의 육신적인 욕망을 과감히 버림으로서 부하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때 그들은 더욱 비전 안에서 하나가 되었고 결국 나라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헌신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드는 가장 소중한 덕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과 세 용사는 모두 위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 마지막은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하였더라.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위대한 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 용사와 다윗을 통하여 무엇을 우리에게 전하시나요? 모든 필요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하는 위대한 이해력과 소리 없이 행동하는 헌신과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하나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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