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의 본질(本質)과 그 위력(偉力)<1>
<말선303-19> 참사랑이 뭐냐? 절대(絶對)사랑, 유일(唯一)사랑, 불변(不變)의 사랑, 영원(永遠)한 사랑을 합(合)하여 참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 절대(絶對), 유일(唯一), 불변(不變), 영원(永遠)한 존재(存在)가 있을 때 참사랑이라고 합니다.
<말선169-94> 참사랑이란 하나님의 종적(縱的)사랑과 인간(人間)의 횡적(橫的)사랑이 일치(一致)됨으로 생겨나는 합(合)한 사랑을 말합니다.
<천성경p 2294> 참사랑이란 무엇이냐? 자기 생명까지도 투입(投入)하고 잊어버리고 전체(全體)를 투입(投入)하고 또 전체(全體)를 투입(投入)하겠다는 것이다. 영원(永遠)히 투입(投入)하는 데서부터 참사랑의 참된 상대(相對)를 중심삼고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말선268-82> 참사랑이라는 것은 몸(肉) 마음(心)이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몸(肉) 마음(心)이 하나 되고 가정(家庭)이 하나 되고 자녀(子女)가 하나 되어야 됩니다.
<말선477-223> 참사랑은 뭐냐? 부모(父母)의 사랑, 부부(夫婦)의 사랑, 형제(兄弟)의 사랑의 핵(核)이다. 그것이 뼈다귀와 같이 되어 있고 살과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 일체(一體)가 되는 것이다. 뼈와 뼈끼리는 부딪치면 반발(反撥)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강유(剛柔)가 겸(兼)해야 돼요.
<신천성경p96> 하나님의 창조(創造)의 동기(動機)는 참사랑과 그 대상(對象)인 참사람입니다. 사랑은 상대(相對)가 없으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상대(相對)가 없는데 작용(作用)하게 되면 손해(損害)가 납니다. 사랑은 상대(相對)가 나타나면 없는 것 같은데도 뛰쳐나옵니다. 하나님도 사랑이 있는데 남성적(男性的)인 하나님이 가만히 혼자 있을 때는 그 사랑이 안 나타납니다. 이것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상대(相對)가 사람(人)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始作)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相對)로부터 찾아지는 것입니다. 상대(相對)가 없으면 못 찾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최고(最高) 귀(貴)한 것을 성사(成事)시키기 위해서는 상대(相對)가 필요(必要)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상대(相對)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상대(相對)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自身)도 상대(相對)로부터 절대적(絶對的)인 사랑을 이룰 수 있게끔 상대(相對)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을 위(爲)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놀라운 것이 그것입니다.
<말선51-75> 사랑은 중심(中心)이요. 뜻은 상대(相對)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빼놓은 뜻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아니고서는 하나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선303-260>참사랑이 뭐냐 위하는 사랑입니다. 선(善)은 뭐냐 하면 자기(自己)를 투입(投入)하고 잊어버리고 투입(投入)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290> 사랑이란 주고받는 작용(作用)을 일으키는 힘(力)입니다. 그것은 남자(男子)와 여자(女子)가 주고받는 작용(作用)의 힘(力)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란 힘(力)의 모체(母體)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작용(作用)이 있어야 되고, 주고받는 작용(作用)이 있기 위해서는 남자(男子)와 여자(女子)가 절대적(絶對的)으로 필요(必要)합니다. 즉(卽) 상대요건(相對要件)이 필요(必要)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존재(存在)하기 위해서는, 즉(卽) 주고받기 위해서는 상대(相對)를 필요(必要)로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자(男子)와 여자(女子)가 서로 사랑하며 가정(家庭)을 이루어 왔던 것입니다.
<신천성경p293> 참사랑은 우주(宇宙)를 포괄(包括)하고도 남고, 우주(宇宙)를 통(通)하고도 남고, 우주(宇宙)와 화(和)하고도 남습니다. 그것은 생명(生命)의 원동력(原動力)이요. 운동(運動)의 원동력(原動力)이요. 모든 것의 원동력(原動力)입니다. 그런 사랑이 있는 데서 비로소 생명(生命)의 가치(價値)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에서 이상적(理想的)인 것도 나옵니다.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할 수 있고, 미비(未備)한 것을 보강(補强)할 수 있고, 결여(缺如)된 것을 완결(完結)시킬 수 있게 보충(補充)시키는 것이 사랑의 힘(力)입니다.
그 사랑은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내용(內容)은 전체적(全體的)인 것과 개체적(個體的)인 것이 다를 수 없습니다. 결과(結果)의 세계(世界)에서 원인(原因)의 세계(世界)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보강(補强)되는 힘(力)의 발로(發露)가 있어야 합니다. 그 힘(力)의 발로(撥路)가 결과적(結果的)인 인간에 있어서 충격적(衝擊的)인 힘(力),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자극적(刺戟的)인 힘(力)입니다.
<신천성경p292> 작용(作用)하는 세계(世界)가 영원(永遠)히 순환(循環)할 수 있게 자극적(刺戟的)인 힘(力)을 보충(補充)할 수 있고, 소모(消耗)되는 힘(力)을 보강(補强)할 수 있는 가중적(加重的) 보강(補强)의 힘(力)을 갖고 있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만이 영존(永存)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제일(第一) 귀(貴)한 것은 생명(生命)과 사랑입니다. 생명(生命)은 사랑에 의(依)해 생깁니다.
그러므로 생명(生命)을 가진 사람은 사랑을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사랑의 상대(相對)는 영원(永遠)한 것임으로 영원(永遠)히 그 상대(相對)가 나올 때까지 투입(投入)합니다. 또 상대(相對)를 가진 것도 무한(無限)히 투입(投入)하려고 합니다. 자기(自己)의 근본(根本)까지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무한(無限)하니 그 사랑의 세계(世界)에서 운동(運動)하는 모든 짝은 영원성(永遠性)을 지닙니다. 그러므로 무한(無限)한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對象)이 되면 영생(永生)하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327> 참사랑은 경험(經驗)을 통(通)해 얻고 체휼(體恤)을 통(通)해 알게 되어 있습니다. 참사랑은 말이나 글, 혹(或)은 일반 교육(一般敎育)을 통(通)해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生活)을 통(通)해서만 완전(完全)히 체득(體得)할 수 있습니다. 아기로 지음받은 아담과 해와는 성장(成長)하면서 참된 자녀(子女)의 심정(心情), 참된 형제(兄弟)의 심정(心情), 참된 부부(夫婦)의 심정(心情), 참된 부모(父母)의 심정(心情)을 단계적(段階的) 생활(生活)을 통(通)해 경험(經驗)하고 체휼(體恤)함으로써 완성(完成)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전체적(全體的)으로 체득(體得)할 때 비로소 창조목적(創造目的)을 완성(完成)한 이상적(理想的)인 인간(人間)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恒常) 자극(刺戟)이 필요(必要)합니다. 행복(幸福)은 자극(刺戟)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극(刺戟)이 있어야 됩니다. 항상(恒常) 먹는 밥도 먹을 때마다 배가 고파야 맛이 새로운 것처럼 부부(夫婦)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항상(恒常) 자극(刺戟)을 통(通)해 새로워야 합니다. 부인(婦人)과 남편(男便)이 서로 보면 볼수록 더욱 보고 싶고, 온종일(終日) 함께 있고 싶어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자기(自己)에 대(對)한 연구(硏究)를 해야 되고, 하나님에 대(對)한 연구(硏究)를 해야 됩니다.
<신천성경p292> 우주(宇宙)는 어디서부터 시작(始作)되었느냐 할 때, 도는 데서부터 시작(始作) 되었다는 것입니다. 존재(存在)하는 모든 것은 돌게 마련이라는 것이 본질(本質)입니다. 어떤 것이 영원(永遠)히 가느냐? 영원(永遠)히 주겠다고 하는 것, 영원(永遠)한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永遠)히 주려고 하는 그 사랑이 영원(永遠)히 도는 것입니다. 주는 힘(力)과 받는 힘(力)이 하나 되어 자꾸 주려고 하니까 확대(擴大)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칙(原則)의 힘(力)이 있어서 확대(擴大)되어 우주(宇宙)가 생성(生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란 어떤 것이냐? 완전(完全)히 투입(投入)하고 투입(投入)해서 영원(永遠)한 영점(零點)까지 가게 될 때는 우주(宇宙)가 플러스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게 되면 하나님이 발동(發動)해서 가는 것입니다. 투입(投入)하고 잊어버리고 잊어버릴수록 나를 밀어줍니다. 나를 밀어주고 자꾸 투입(投入)하다 보니 중앙(中央)이 되는 것입니다. 중앙(中央)이 되어서 자꾸 투입(投入)하면 땅(地)으로 파고 들어가지 않고 올라가게 됩니다. 부풀어집니다. 중앙(中央)에서 자꾸 운동(運動)을 하니 둥그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동(運動)하는 우주(宇宙)는 구형(球形)을 이루고 있습니다.
<천성경p2416>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人間)의 사랑이 어디서 만난다구요. 그 결착점(結着點)이 어디에요? 거기는 사랑의 결착점(結着點), 생명(生命)의 결착점(結着點), 혈통(血統)의 결착점(結着點)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가 아니면 사랑과 생명(生命)과 혈통(血統)을 연결(連結)시킬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 자리가 도대체 어디에요. 남자여자(男子女子)의 생명(生命)이 결착(結着)되는 곳입니다. 남자여자(男子女子)의 혈통(血統) 피(血)가 교차(交叉)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생명(生命),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혈통(血統), 그리고 남자여자(男子女子)의 생명(生命), 남자여자(男子女子)의 사랑, 남자여자(男子女子)의 혈통(血統)이 한 점(點)을 중심삼고 연결(連結)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후손(後孫)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천성경p322> 생명(生命)과 사랑 중(中)에 어느 것이 더 귀(貴)한 것인가? 인간(人間)의 생명(生命)은 인간(人間)의 지성소(至聖所)를 대신(代身)할 수 없습니다. 남자(男子)의 생명(生命)이나, 여자(女子)의 생명(生命)이 있더라도 그 생명(生命)에는 지성소(至聖所)가 연결(連結) 안 되어 있지만, 사랑에는 지성소(至聖所)가 연결(連結)되기 때문에 사랑이 생명(生命)보다 귀(貴)한 것입니다.
<참하나님의 조국광복p205> 인간(人間)이 사랑을 제일(第一) 좋아하는 것은 사랑이 전체(全體)를 통일(統一)시켜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주체(主體)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완전(完全)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先生任)이 사랑을 들고나온 것입니다. (말선18-328)
<말선275-310> 하나님의 사랑은 뭐예요? 하나님의 사랑은 아담의 사랑하고 하나 될 수 없고, 해와의 사랑하고도 하나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아담 해와가 하나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보이지 않은 플러스, 마이너스 성상(性相)을 닮은 실체적(實體的) 아담 해와가 되어서 플러스, 마이너스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對象者)가 될 수 있다는 결론(結論)이 나오는 것입니다.
<참하나님의 조국광복p204>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근본(根本)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통일(統一)은 자동적(自動的)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탄보다 더 수준(水尊) 높은 사랑을 하면 사탄도 끌려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최고(最高)의 선(善)과 사랑을 주기 위하여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하신 것입니다.(말선13-95)
사랑이 아니고서는 하나 만들 수 없습니다. 둘을 하나 만드는 데는 말 가지고 안 되는 것입니다. 둘이 하나 되는 데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물질(物質)가지고 하나 되었다면 물질(物質)이 떠나게 되면 도망(逃亡)가는 거라구요. 제3자(第三者)의 소개(紹介)로 말미암아 무슨 사연(事緣)을 통(通)해서 하나 되었다면 그 사람이 없어지면 떠나버리는 거라구요. 둘이 영원(永遠)히 하나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아니면 안 됩니다.(말선51-75)
사랑이 위대(偉大)한 것이 그것입니다. 상하고저(上下高低)의 거리(距離)를 초월(超越)하고,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해 가지고 공동소유(共同所有)의 이념(理念)을 즉각적(卽刻的)으로 공유(共有)할 수 있는 권내(圈內)에 참석(參席)할 수 있고, 참가(參加)할 수 있는 능력(能力)이 사랑의 길에 있더라! 이건 놀라운 사실(事實)입니다. (말선168-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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