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소리
최진근(수필)
도심의 아파트에서 개구리소리를 듣는다. 어린 시절에는 귀가 아리도록 들었지만 고향을 떠나 서울 서산 밀양 대구의 여러 아파트로 이사를 다녔지만 개구리소리를 듣지 못 헸다. 다행히 2022년에 준공한 대구 수성구의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지 며칠이 지난 뒤 개구리소리를 들으니 ‘도심의 아파트가 어릴 적 고향마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녁7시를 전후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밤이 새도록 계속되기도 한다. 음역은 고향에서 들었을 때는 바리톤같이 우렁찬 소리였지만, 도심아파트에서는 알토나 소프라노 같이 들린다. 그 소리는 그날의 감정에 따라 성악가의 독창이나 중창, 합창단의 합창 같기도 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기도 하다.
개구리 소리를 듣고 있으면 지난 날 시골마을의 여름밤에 몸을 누인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우고 밤하늘을 처다 보며 도란도란 얘기를 하다가 개구리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면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동네 또래들이 저녁이면 마을에 있는 큰 감나무 아래 모여 가지고 온 삶은 감자와 옥수수, 고구마를 먹을 때 논에서 지르는 개구리소리가 시끄럽다고 돌을 던지면 뚝 그쳤다가 잠시 후 더 세게 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개구리들은 ‘왜 우리의 평화를 해치느냐’고 항의하는 분노의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생일 때 학교에서 돌아와 소소한 집안일을 돕고 밤이 되면 호롱불을 켜고 공부를 하다가 열시 쯤 휴식을 할 겸 집 앞 논둑에 있는 바위에 앉아 개구리소리를 들었다. 온종일 집안일에 지쳐 곤히 주무시던 어머니가 어떻게 알고 오셔서 내 어께를 포근히 감싸 안고 토닥토닥 두드리며 ‘앞으로 잘 자라서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할 때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지르는 개구리소리는 어머니 말씀을 잘 듣고 따르라는 채찍 같이 들였다. 그 말씀을 들은 지 육십여 년이 훌쩍 흘렀지만 가슴에 훈장 같이 박혀 있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시던 어머니는 수년전 돌아 가셨다. 오늘 따라 개구리소리를 들으니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고, 마을 앞 골목길과 감나무, 우물, 논, 바위, 또래 친구들의 모습이 아련히 스쳐지나간다.
나는 아파트 5층에서 기억 속에 잠자던 개구리 소리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작은 생태연못이 있었다. 연못 주위에는 인공으로 만든 작은 바위산이 있고, 바위산 주위에는 작은 나무들이 있었다. 연못에는 개구리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다시 올라가 손전등을 잽싸게 가지고 와서 연못 주위를 이리저리 비추며 찾아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튼 날 아침에 다시 연못으로 가서 찾아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아서 바위와 나무사이를 헤집어 보았지만 개구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틀간 뒤져도 개구리가 보이지 않자 혹시 개구리소리를 녹음해서 주민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관리사무실에 물어 보았으나 개구리 소리란다.
지인 몇 사람에게 ‘아파트에서 개구리소리를 들었느냐’고 물어보니 모두가 의아해 하며 못 들었단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개구리가 어떻게 들어왔을까, 크기는 얼마만 할까가 궁금했다. 한 때 건축 붐이 일었을 때 외국에서 수입해온 목재로 집을 짓다 보니 바퀴벌레가 옮겨와 성가시게 한 일이 떠올랐다. 이아파트에도 정원을 만들려고 나무를 옮겨 심을 때 따라 온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러든 어느 날 이슬비를 맞으며 연못 주위에 설치한 운동기구로 근력운동을 하는데 손잡이에 얌전히 있는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너무 반가웠다. 크기는 엄지손가락 손톱정도였다. 이 작은 것이 어찌 그렇게 큰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잠이 오지 않아 아파트 쉼터로 갔다. 나이가 지긋한 부부가 희미한 불빛 아래서 다정히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반가워 인사를 하자 막걸리 한 잔을 권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마셨다. 잔을 권하며 “개구리소리에 취해 쉼터에 왔다”는 말을 했다. 그분들도 창문을 열고 듣다가 쉼터로 나와 고향을 생각하며 추억 속으로 긴 여행을 하고 있단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나왔다고 하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얘기를 풀어 놓았다.
“아파트 단지에서 개구리소리를 듣는 것은 행운이지요. 이 소리는 점차 잊혀져가는 고향을 부르는 소리로 들여요. 산골오지마을에 살다가 도시로 이사 온지 오십 여년 이 훌쩍 지났지요. 배운 것이라고는 장사뿐이어서 여러 곳을 다니며 과일을 팔며 살았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개구리 소리를 듣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 저 소리를 들으면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나도 ”이 소리를 들으면 고향에서 살았던 추억에 젖어 잠을 설칠 때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고향의 저수지, 연못, 시냇가, 논에서 개구리를 늘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고향에 가도 잘 볼 수 없더군요. 개구리가 노래하던 우리 집 앞 논이 개발되어 주택이 들어섰고, 일부는 비닐하우스를 하고 있어서 하룻밤을 지내도 개구리소리는 듣지 못했어요. 다행히 아파트에서 들으니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네요.”
그날 이후 가끔 그를 만나 밤이 이슥하도록 묻어둔 고향 얘기를 캐내며 그리움을 달래곤 한다. 한 번 두 번 만나자 친해져 함께 식사를 하며 정을 나눌 때도 있다. 같은 아파트에 오래 살며 이웃 한명 알기가 어려운 세태인데 개구리가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다.
오늘도 어둠이 살포시 내리면 창문을 열고 개구리들이 출연하는 음악회를 관람해야겠다. 한 잔의 와인을 들고 개구리가 연주하는 음악 속으로 유영遊泳할까
첫댓글 잊혀져가는 고향의 소리, 개구리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입니다.
선생님 잘계시지요 반갑습니다 무더위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언제 한번 개구리소리도 듣고 막걸리도 한잔하게 가봐야 겠네요. 부산오면 연락하세요. 차한잔 합시다. 건강하소서.
예 대구에 오시면 차 한 잔 나눕시다 저도 부산가면 뵙고싶습니다
예 그러지요. 늘 건강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