別母(별모)
안축(安軸:1282~1348)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죽계(竹溪: 지금의 풍기)에서 중앙에 진출한 신흥사대부의 한 사람.
1324년(축숙왕 11)에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
요양로개주판관(遼陽路蓋州判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332(축숙왕 복위 1) 전법판서(典法判書)로 복직됐다.
1344년(충목왕 1)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지냈다.
1347년(충목왕 3)에 판정치도감사(判整治都監事)가 돼 양전(量田)에 참여했다.
경기체가 「관동별곡(關東別曲)」 과 「죽계별곡(竹溪別曲)」으로 명성을 얻었다.
1347년 흥년군(興寧君)에 봉해졌다.
순흥(順興) 소수서원에 제향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근재집(謹齋集)』이 있다.
저녁에 뵙고 아침에 헤어져 오래 머물지도 못하고
暮逢朝別未留連 모봉조별미류련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붙잡고 샘물 같은 눈물만 흘리네
母子相持淚似泉 모자상 지루 사천
부모님을 모시고자 해도 세월은 이제 점점 짧아지는데
養志光陰今漸短 양지광음금점단
알 수 없어라, 부모님 은혜 언제 보답할지
不知何日報恩憐 부지하일보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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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분주하다
아버님 제사 준비로 한창 바쁘다.
서방이라는 작자는 글을 쓴다고
방콕을 하고 있으니.....
빨리 끝내고, 나간다고 입으로 떠들고 있다.
이제 나가 봐야겠다
혼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