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6. 마흔여덟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1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이선희 권사
성경말씀 에베소서 3:14~19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너무나 사랑했기에 아픕니다.
찬송 200 주의 피로 이룬 샘물
광고 추수감사절 성찬 예배 보류 (코로나 집단 감염)
-. 코로나 집단(일부) 양성반응으로 보호자 방문 금지
찬송 524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14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절,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절,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절,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지난주에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딸을 만났습니다.
큰 회사에서 과장이면 중견 간부이기 때문에
잘살고 있겠다 생각만 하고 믿덥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나름 고충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퇴근하면 아빠하고 저녁 함께 먹자.
목사인 제가 아빠이지만
그리고 서울을 자주 가지만
한 번도 딸에게 전화를 못했습니다.
그저 잘살고 있겠거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딸은 매일 새벽예배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훌륭합니까?
14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절,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우리 딸도 새벽 예배를 드릴 때마다
교회 십자가 밑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두 눈을 감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도
이렇게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성도 한 명도 없는 텅 빈 교회
십자가 밑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으면
그저 눈물만 흐르고
흘렀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종일 기도를 하다가
입신에 들어가면
천국이었습니다.
몸과 영혼이 너무나 평온했습니다.
마치
아기가 엄마 품에서 젖을 빨다가
잠드는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김소월 님의 이런 시가 생각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16절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은
바울은
교회들을 향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 목사들의 모습이어야겠습니다.
벌써 30년 전의 일일 겁니다.
어느 기독교 신문에 이렇게 광고가 게재되었습니다.
부목사 청빙,
조건,
매일 2시간씩 기도하는 분, 매일 2시간씩 성경 읽는 분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목사인 저조차도
이렇게 전혀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속이 강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속이 텅 비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손짓에도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 전, 노회장이신 김춘식 목사님, 노회 서기 김효은 목사님을
광명 테이크 호텔에서 만나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강건하신 김춘식 목사님께서도
코로나 확진 후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점심을 대접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움은
우리 노회의 수장이었던 장 목사께서(70대 중반)
대형교회를 아들께 대물림하는 중에 소천하셔서 노 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8,90대 권사님들과 함께 사니 70대면 청년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허망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족하지 못하고 허덕허덕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마치 우리 요양원을 기웃거리는 길고양이들 같기도 합니다.
17절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우리 요양원 길고양이 중에 박 서방이 있습니다.
우리 박 집사님이 매일 밥을 주니
박 집사님 성을 따서 박 서방이라고 부릅니다.
어제도 박 서방이 기웃기웃거려서
박 서방 배고프니?
야~옹~
그래서 사료를 사다가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길고양이 중에 대장도 있습니다.
박 서방 고양이가 뭐 좀 얻어먹으려 하면
어느새 대장 길고양이가 다가와서 쫓아 버립니다.
그런데 그 대장 길고양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서울 구경하려 자주 갔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살까? 궁금합니다.
그런데 서울에는 사람의 탈을 쓴 길고양이들도 많았습니다.
목사님이 축복받은 비결은
누구에게나 밥을 잘 대접해 드립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길고양이들을 만날 때마다 대접했습니다.
그런데도 대장 길고양이처럼 으르렁으르렁 거립니다.
그럴 때마다 박 서방 같은 길고양이는 오들오들 떨곤 했습니다.
그런 길고양이들의 슬픈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목사님은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사랑을 깨닫곤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도 없겠습니다.
17절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찬송 343장입니다.
1.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흐르되
겁을 없게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니
울어도 못하네
2. 힘써도 못하네 말과 뜻과 행실이
깨끗하고 착하도 다시 나게 못하니
힘써도 못하네
3. 참아도 못하네 할 수 없는 죄인이
흉한 죄에 빠져서 어찌 아니 죽을까
참아도 못하네
4.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후렴,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 하실이 예수밖에 없네
30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울어도
힘써도
참아도 못하는 인생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고단함을
묵묵히 참아냈습니다.
그러다 59세, 일찍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200명이 넘는 장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죽으면 끝이구나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부활의 세상도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잘 살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18절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절,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머리가 좋은 우리 박영수 집사님이 많이 배웠더라면
큰 사업가는 되었을 것입니다.
집념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드리나무를 옮겨 심으려면
포클레인이나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비를 흠뻑 맞으며 끝장을 봅니다.
느티나무가 7,80년은 될 겁니다.
농담 삼아 그 나무를 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엄청 큰 느티나무를 삽만으로 캐면 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라기까지
얼마나 많은 태풍 번개를 맞아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태풍 번개도 친구입니다.
그래서 장석주 시인이 말하기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릴 적에 태풍천둥벼락이 치면
옷장 속으로 숨어서 콩당콩당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우리 어머니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살았습니다.
그러니 대추 한 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태풍천둥번개를 맞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이제는
고난이 유익이라는 것을 살아 봐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얼굴에도 바위 이끼처럼 검버섯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성형외과에 가서 레이저 치료를 받았는데
그래도 검버섯이 지워지지를 않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그 성형외과에 갔는데
그렇게 큰 성형외과 의원이 밤새 도주해 버린 것입니다.
안내문 하나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무슨 의료사고라도 생긴 것일 게다.
그래서 어제는 작은 피부과로 갔습니다.
피부과 의사께서 목사님의 얼룩진 얼굴을 보면서
검버섯마다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이건 2만 원, 이건 5만 원, 이건 7만 원, 이건 3만 원입니다.
그래서 댓 구하기를
원장님! 참 천박스럽군요?
그랬더니
원장께서 박장대소하면서 천박스럽지요?
그리고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18절입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절,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아마 주기도문(마 6:9~13) 이후
이렇게 깊고 아름다운 기도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로마 감옥에서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승리입니다.
목사님도 이렇게
두려움도 없이
당당하고
묵묵히
그리고 바람처럼 무심하게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