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유다인들은 군중을 설득하여 바오로의 활동을 방해한다. 그들은 그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 했다. 바오로가 실신하자, 사람들은 그를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를 살려 냈다. 바오로는 좌절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며 다시 일어선다. 바오로 일행은 다른 곳으로 선교 활동을 떠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다르다. 그분의 평화는 일치와 기쁨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삶을 두려워하거나 마음이 산란해져서는 안 될 일이다. 인내하며 기다리면 결국은 은총을 만나게 된다(복음).
제 1 독서
<두 사도는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교회에 보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4,19-28 그 무렵 19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유다인들이 몰려와, 군중을 설득하고 바오로에게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둘러싸자,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떠나갔다. 21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다음,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으로 갔다가, 이어서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리고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다. 24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를 가로질러 팜필리아에 다다라, 25 페르게에서 말씀을 전하고서 아탈리아로 내려갔다. 26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안티오키아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 이제 그들이 그 일을 완수한 것이다. 27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 신자들을 불러,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과 또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보고하였다. 28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복음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27-31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평화는 알찬 열매입니다. 잎과 줄기가 사람들의 노력이라면, 뿌리는 무엇일는지요? 바로 ‘인내’입니다.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 땅속에서 끊임없이 물과 양분을 빨아올리는 작업이 뿌리의 역할입니다. 평화는 그런 뿌리의 희생이 만들어 낸 결실인 것이지요. 사막에도 풀이 있습니다. ‘포아풀’의 일종인데, 키는 5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뿌리가 ‘600미터’까지 뻗어 있는 풀도 있다고 합니다. 물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기에 수백 미터의 모래밭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화는 포아풀과 같습니다.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 자꾸만 들어가야 합니다. 겉에 드러나면 ‘더 이상’ 뿌리가 아닌 것이지요. 세상의 평화는 대립과 공존을 전제로 합니다. 팽팽한 긴장을 평화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첨단 무기로 무장합니다. 공멸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찌 평화라 할 수 있을는지요? 기쁨 없는 평화를 그분께서 주실 리 없습니다. 5센티미터가 넘지 않는 키의 싹을 틔우려고 600미터의 뿌리가 있었습니다. 보이는 평화 뒤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이 그만큼 크다는 암시입니다. 우리 또한 평화의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립은 답이 아닙니다. 그분을 모셔야 ‘기쁨의 가정’이 됩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먼저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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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와 함께하는 묵상> : †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알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갓 태어난 병아리의 울음소리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노래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 울려퍼진 지도 벌써 4주일이 지나고 지금 부활 제5주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린 잎들이 봄날의 따사로운 햇빛을 받아서 자라나 이제는 제법 그 모양새를 갖추었으며 이산 저산에서 철쭉재 행사를 열면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연두빛의 새잎들이 우리에게 주는 싱그러움이 제법 크다 하더라도 꼴을 갖춘 잎들의 진한 녹색이 주는 선명함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우리들의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여정 또한 부활의 색채가 한층 더 깊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부활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길 빕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잘못을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서 크나 큰 고통을 받으셨고, 부활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활의 삶을‘지금, 여기서’살아가야 합니다. 부활의 삶은 평화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듯이, 우리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으로 평화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마음의 평화가 아닌 고통과 불안에 떨고 있다면 아직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토마스가 자신의 손가락을 예수님의 못자국에 넣어 보아야 믿을 수 있다고 말했듯이, 우리 또한 토마스처럼 예수님의 구멍 뚫린 손바닥에 손가락을 넣어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모습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나약함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십니다.
오늘복음에서 보면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고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평화는 참으로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입니다.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하느님의 평화이며, 또한 성령이 함께 하시는 평화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평화는 어떠한 평화입니까?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그분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노획물인 양 (중히) 여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시어 여느 사람 모양으로 드러나셨도다.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도다"(필리 2,6-8).
예수님의 평화 즉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땀과 피로 물들인 당신의 치열한 삶의 자취 안에서 마지막까지 사랑하심으로 인해서 건져올리신 은총의 평화입니다. 당신의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비워내시고, 쏟아내시고, 흘려내리신 철저한 비움과 순종의 두레박으로 길러내신 샘물입니다.
이는 단순히 삶의 모든 문제들을 외면하거나 눈가림으로 덮어버림에서 오는 '위장된 평화'가 아니라 '격렬한 충돌과 논쟁이 벌어지는' 삶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끝까지 구하는 모습에서 찾아오는 평화입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추종하고,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에서 나오는 평화인 것입니다.
꽃들이 지고 이제는 열매가 맺혀지는 시기입니다. 꽃이 마냥 꽃으로만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고 떨어짐'이 있어야만 합니다. 비워낸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한 여름의 비바람과 태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하시며 기꺼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함께 사시는 분이 계십니다. "너의 힘이 되어 주마" 하시며 길을 가르쳐 주시고, 걸어온 길을 되새기게 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과 함께 평화를 심는 도구로써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말씀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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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너의 힘이 되어주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