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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문성현
윤 영 수
12월 19일, 그들은 승용차 두 대로 충청도의 선산*을 다시 찾았다. 추석을 앞두고 부모님 산소에 오른 때가 지난 9월이었으니 석달 만이었다. 국도에서 내려서서 산모롱이를 끼고 이십 여 분, 가을걷이를 끝낸 층계논이 물결처럼 번져간 산자드락*에 차 두 대가 나란히 섰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이내 가풀진*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두 일곱이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 셋은 문씨 집안의 형제 우현과 승현, 그리고 사위 강만익이었다. 우현의 손에는 흰 보자기로 싼 상자가 들려있었다. 그의 형인 문성현의 유골이었다. 뒤를 따르는 우현의 여동생 정희와 문씨 집안의 며느리들 역시 소복을 입고 있었다. 암갈색의 추루한⁕ 반코트에 자주색 목도리를 두른 초로*의 여자는 파출부 일을 하던 예산댁이었다. 그녀는 간간이 애구애구 곡소리를 내며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아내었다. 얼었다가 녹은 풀 더미들은 데쳐놓은 무청처럼 휘늘어졌고 그늘진 바위너설*에는 흰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늘은 푸르지도, 딱히 희지도 않았다. 겨울 날씨치고는 그저 그만했다.
그들은 이내 부모님의 무덤가에 닿았다. 우현이 유골 상자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젊은 여자들은 가져온 보퉁이를 끌러 음식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산소 자리가 명당이구먼. 잘해놓았구먼.”
예산댁이 나란히 자리한 쌍분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잔디가 아직 성근 왼쪽의 무덤 앞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아이구 아줌니…… 아줌니, 저 알아보시겄슈. 예산댁여유. 그간 어떻게 지내셨슈. ……이년이 죽일 년이구먼유. 우리 착한 성현이헌테 잘해야 허는 건디, 이년이 무슨 맘으루다 흥뚱항뚱했구먼유. 아줌니, 이년 잘못한 거 용서해주서유. 성현이 세상 뜨고 나서 솔직히 이년도 맘이 편치는 않었구먼유. 아줌니, 아줌니.”
산소 자리는 조촐하고 아늑했다. 쌍분이 사이좋게 자리한 반달 모양의 음택*은 남향으로 양지발랐고 주위의 둔덕에는 소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져 푸근했다. 채비가 끝나자 그들은 모두 같이 절을 올렸다. 그리고 우현 내외부터 차례로 술을 올렸다. 승현 내외, 정희 부부, 그리고 예산댁도 술을 올렸다. 우현이 상석*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이 이제 여기 왔습니다. 제가…… 형을 잘 돌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예산 아줌마가 고생 많았습니다. 그나마 형이 편히 지낸 것은 예산 아줌마 덕이었습니다.”
“내, 내가 돌봐준 게 뭐 있다고, 아이그 아줌니.”
예산댁이 땅을 치며 다시 울음을 터뚜렸다. 우현의 말이 나직이 이어졌다.
“형이…… 부모님 곁은 싫다고, 화장한 후에 산이고 강이고 멀리 뿌려달라고 했지만, 그래서 저도 형의 말에 따르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어머니, 다른 곳은 못 미더워서 어머니 곁에 데리고 왔습니다. 형은…… 아버지 어머니께 너무 염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형 만큼 아버지 어머니를 그리워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어머니…….”
우현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이어지자 모두들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끝까지 눈물을 뵈지 않던 강만익조차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먹였다.
“……형을 맡아줄 사람은 아무래도 어머니밖에 없겠어요. 우리도 머지않아 이 주위에 다 묻힐 거고…… 어머니, 형만 따로 멀리 가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형이 너무 안됐잖아요. ……이제 우리 식구가 다시 모일 때에는, 형은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완전한 몸으로 살아갈 거예요. 형은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저희가 제대로 형을 돌보지 못해서 죄송해요, 어머니.”
우현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강만익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낮게 드리운 겨울 하늘은 자세히 보면 그래도 푸르스름한 기운이 있었다. 바람은 없었다.
출생
착한 사람 문성현(文成賢)은 1957년 7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 130번지에서 태어났다. 경상도 합천의 천석꾼이던 고조부 문천웅이 전답을 처분한 돈으로 서울로 올라와 자리를 잡은 지 어언 80년, 토박이 서울 양반은 아니로되 그만하면 사대문 안에서 남부럽지 않은 남평문씨(南平文氏) 집안의 장손이었다.
성현의 출생이야말로 집안의 경사였다. 그의 할아버지 문희수와 할머니 김 입분의 기쁨은 비할 데가 없었다. 슬하에 육 남매를 두었건만 아들이라고는 막내로 태어난 성현의 아버지 문덕규 하나뿐이었던지라 며느리를 들인 후로는 두 양주*가 하루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자손을 고대해오던 터였다.
할머니 김입분은 성결*이 세고 급했다. 가슴에 담은 생각이나 말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거나 내뱉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아들 덕규의 혼사를 치른 지 두 달이 채 못 되어 그녀는 ‘이렇게 소식이 없다니 집안의 대가 끊길 것이 분명하다’며 드러내어 걱정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며느리 이경순을 불러 내외의 은밀한 정분까지 낯이 뜨거울 정도로 족대겼다.*
성현의 어머니 이경순은 서울 남산골이 친정이었다. 시댁만큼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효와 법도를 중시하는 유학자 집안의 장녀로서 타고난 기품이 차분하고 온순했다. 덕규는 아내 이경순을 좋아했다. 어머니의 괄한 성질이 좀 무엇하던 그로서는 아내의 유순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애정은 한결같았다. 훗날 덕규가 병을 얻어 이경순을 홀로 남겨두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비록 길지 않은 십여 년의 세월이었지만 그들은 서루를 진심으로 위하고 고마워하며 한 쌍의 원앙처럼 다정하게 살아갔다.
성현이 태어난 날은 양력 7월 8일, 여름 날씨치고도 더위가 유난히 빨리 몰려와 사람이고 나무고 도무지 맥을 못 추던 한여름 대낮이었다. 산모가 진통을 겪던 이틀 동안 마치 당신이 아이를 낳기라도 하듯 곡기를 끊고 집 안팎을 서성이던 시어머니 김입분은 며느리의 산고가 고비에 이르자 당신이 먼저 혼절을 하여 한바탕 소동을 불러일으켰다. 가까스로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금쪽같은 손자가 태어난 후. 남편 문희수가 농으로 ‘손녀딸을 보았다’며 건넨 말을 진담으로 알아듣고는 다시 혼절, 집안 식구들을 또 한 번 질겁하게 만들었다.
성현의 출생은 누구에게보다도 어머니 이경순에게 있어 꿈같은 축복이었다.
“네가 이제야 이 집 며느리가 되었고나.”
시집온 지 이 년, 한여름에도 살얼음판을 걷는 듯 가슴을 죄던 그녀로서는 시어머니의 환한 웃음이 도대체 낯설기 짝이 없었다.
“아들 다섯에 딸 둘은 되어야지.”
하루에도 일곱 차례 손수 끓인 미역국을 들여놓는 시어머니의 열성이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더럭 겁이 나곤 했다. 이 모든 일이 꿈은 아닌가, 그녀는 잠을 깰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들을 얻은 기쁨은 사실 꿈이었는지 모른다. 아이의 행동거지가 심상치 않음을 가장 빨리 눈치 챈 이야 당연히 아이 어머니 이경순이었다. 아이는 모든 행동이 정상이 아니었다. 젖을 빠는 모양 하나를 보아도 그러했다. 허겁지겁 젖을 빨아대는 품이 배가 고픈 것이 틀림없었지만 꽉 물려지지 않는 입술 틈새로 젖의 태반이 흘러내려 어미의 가슴과 배를 적셨다. 아이는 밤이고 낮이고 울어젖혔다. 울다 보면 그나마 먹은 젖을 토해내었다. 아이는 허기가 져 또다시 어미의 젖을 빨아대었다. 어미가 아이 곁을 잠시도 떠날 수 없었다. 아이도 어미도 못할 노릇이었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모양새 역시 기이했다. 움직 임이 아니라 버르적댐이었다. 아이의 손가락들은 한데 뭉쳐 오그라진 채로 펴질 줄을 몰랐다.
“사내아이가 늦되고말고.”
할머니 김입분이 침을 튀기며 아이를 옹호했지만 아이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늦되는 아이가 재조가 있는 법이지.”
할아버지 문희수가 단언 했지만 그것은 단지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문씨 집안의 장손 성현이 여누 아이 같지 않다는 소문은 그해 겨울을 나기 전에 이미 동네에 짜하게 퍼져나갔다. 골목 어귀에서 ˙한 평짜리 양품점을 하는 떠벌이 과수댁은 골목을 지나는 동네 여자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얘기 들었우? 솟을대문집 갓난아이 말야’라며 입을 떼었다. 소문의 씨는 문씨 집안의 식모아이 숙자였다.
“영 이상해요. 목도 못 가누고 울기만 하고. 아줌마도 툭하면 우는 걸요.”
일부러 소문을 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 소리나 지껄이는 동안만큼은 양품점 진열장의 물건들을 마음대로 만져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홍빛의 영롱한 진주 목걸이, 유리 반지, 조개껍짙로 만든 브로치, 그리고 갖가지 색깔의 입술연지…… 열한 살 계집아이의 눈에 비치는 양품점의 모든 물건들은 한마디로 황홀 그 자체였다. 동네 아낙들이 수군거렸다.
백일 때도 봐. 떡만 돌리고 끝낼 노인네가 아닌데 말야.
여태껏 목도 못 가눈다면 사람 되겠어? 백일이 두 번은 지났구먼.
동네 아낙들의 눈치가 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김입분이 떠벌이 과수댁을 불러 호통을 쳤지만 그 일은 결국 붙는 불에 키질한* 격이 되었다.
“딱장대 노인네 성질머리하구는. 구구절절이 외울 거 뭐 있어? 아이 한번 봬주면 끝날걸.”
양품점에 돌아온 과수댁은 팔을 걷어붙이며 침을 튀겼다.
“두고 보자니까. 아이 돌잔치야 안 하겠어?”
그렇다. 한번 보여주면 그뿐이었다. 돌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김입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대청마루를 건너와 아이의 손에 장난감을 쥐여주려 안간힘을 썼다. 아이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었다. 아이는 바늘에 찔리기라도 한 듯 심하게 울어댈 뿐이었다. 무언가 큰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아이의 불만과 불편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온몸이 새빨갛게 달아 우는 아이를 밤새 얼러대는 이경순의 몸이 온전할 리 없었다. 몸져누운 이경순을 보고 김입분은 건넌방 문이 부서져라 처닫았다.
“집안 꼴 잘 되어가는구나, 허구한 날 젊은것이 드러누워서는. 저리 몸이 부실하니 부정을 탄 게지. 내 처음부터 너무 약하다고 안 하던감!”
여름이 왔다. 성현의 돌상이 대청마루에 차려졌다. 일가친척들과 동네 여자들이 몰려왔다. 할머니 김 입분은 안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커다란 교자상*에 켜켜르 괴어 올린 음식 들이 번듯하게 놓였다. 안쪽으로는 돌잡이* 물건들이 놓였다. 쌀과 지폐, 청홍 색실로 묶은 실타래와 대를 쪼개어 만든 조그만 활과 화살이었다. 아버지 덕규가 어렸을 때 익히던 천자문 한 권도 곁들여졌다. 성현은 아무것도 쥘 수 없었다. 손에 무엇을 쥐기는커녕 앉지도 목을 가누지도 못했다. 어머니 이경순의 품에 안긴 채로 돌상을 받은 성현은 온몸을 버르적대며 울어젖혔다. 아이의 울음은 끝이 없었다. 아이의 간댕거리는 목은 그대로 부러질 듯 위태했다.
사진사는 결국 아이 어르기를 포기했다. 덕규 부부에게 아이의 목을 거머잡고 곧추안으라고 말했다. 그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사진사의 플래시가 그대로 터졌다. 이미 잔치가 아니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이고 계속될 것 같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겨우 잦아들기 시작했다. 수십 명이 모여 선 대청과 마당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정적만 가득했다.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 이는 아이어미 이경순이었다. 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그녀의 나직한 흐느낌이 참으로 자닝하고* 애잔했다.
“발칙한 것! 이 좋은 날에 눈물을 짜다니.”
할머니가 갑자기 안방문을 열어젖히며 호통을 쳤다. 그 서슬에 가까스로 잠들었던 성현이 다시 깨었다. 아이는 또다시 발갛게 울어대었다. 한 여자가 이경순에게서 성현을 거칠게 빼앗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걱정 없어 새댁! 내가 이런 아이 옛날에도 봤어. 세 살만 되어봐, 멀쩡해.” 양품점 과수댁 이었다.
“두고 보라니까. 하늘을 두고 맹서해. 글쎄 두고만 보라니까!”
그녀가 따지듯이 주위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마술에서 깨어난 듯 제각기 떠들어대며 덕담을 늘어놓았다.
세상에, 목청 큰 것 좀 보게. 그놈 참 사내답다.
녀석 성격이 얼마나 다부진지. 사내아이는 뚝심이 있어야 해.
두고 보세요, 어렸을 때 부모 속 썩인 자식이 효도한다잖아요.
훗날 성치 못한 성현이 휠체어에 실려 골목으로 산보라도 나올 양이면 반색하며 튀어나와 훨체어를 밀어춘 이가 바로 양품점의 과수댁이었다.
“우리 착한 성현이 세상 구경 나왔나··… 얼마나 잘생겼어? 눈매도 서글서글허니.”
혹여 누가 성현의 흉을 잡을라치면 과수댁은 눈에 핏발을 세우며 달려 들었다.
“그 착한 것이 무슨 죄가 있어. 사지 멀쩡히 태어나서도 인간 같지 않은 종자가 하나 둘이야? 뚫린 입이라고 툭허면 입질은. 그래! 내 자식이야. 어쩔 테?”
종합병원에 아이를 데려간 때는 돌이 지나서도 두 달 후였다. 의사의 진단에 따라 성현은 그날부터 ‘뇌성마비아’가 되었다.
가족들의 노력에 따라 좋아질 수…… 있지요. 그렇죠.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경순은 다시 회임했다.* 아이는 성현과 두 살 터울이었다. 섣불리 좋아할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본식구는 물론 행랑채 식구들조차 쉬쉬 마음을 졸였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이경순은 두 번째의 아이를 낳았다. 사내아이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낭보*였음에도 아무도 밝게 웃거나 떠들어댈 수 없었다. 사랑채에 앉은 할아버지 문희수와 할머니 김입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고의 울음소리가 또렷이 들리는데도 김입분은 헛염주알만 열심히 돌렸고 문희수는 애꿎은 장죽대만 빨아대었다. 숨 막히는 하루가 지나고 아이는 힘차게 젖을 빨기 시작했다. 젖을 흘리지도, 심하게 울지도, 손발을 버르적대지도 않았다. 성현의 동생 우현은 정상이었다.
김입분은 우현을 자신이 기거하는 안방으로 옮겼다. 아이가 젖을 찾을 때에만 며느리 이경순을 불러 안방에 들였다. 성현과 절대로 같이 두지 않았다. 김입분은 이경순을 볼 때마다 치미는 부아를 참지 못했다. 그녀의 행동이 곱고 순종적 일수록, 그녀가 성현 곁에서 안간힘을 쓸수록 김입분은 더더욱 화가 끓었다.
“농사를 짓다 보면 쭉정이도 있는 법이지. 온전치 못한 녀석 뭣 하러 싸고돌아, 젊디젊은 것이! 다른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경순은 우현 밑으로도 정희, 승현 남매를 낳았다. 시부모가 바라던 5남 2녀는 다 채우지 못했으나 착한 며느리로서, 현명한 아내로서, 5남 1녀의 자상한 어미로서 그녀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도리를 충실히 해내었다.
젊잖은 선비였던 할아버지 문희수가 자리에 누운 것은 막내 승현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친구의 칠순 잔치에 간다고 마당을의 섬돌*을 밟다가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졌던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의 낙상이 중풍으로 이어져 운신을 못하게 되자 식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묏자리를 잘못 썼다니께. 잘못된 것은 고쳐야지.
종중 어른의 말씀은 거스르기도 어려웠다. 성현의 증조·고조부모의 묘가 선산의 다른 등성이로 이장되었다.
푸닥거리를 해야 된다니까요.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면 뭘 해요. 딸네들이 고집을 피웠다. 여자들이 하염없이 손을 비비고 절을 해대었다.
부적이 용한 점쟁이가 있어요. 백발백중, 낫지 않으면 돈을 돌려준대요.
대문에, 방의 네 벽에, 천장에 갖가지 모양의 붉은 부적이 붙여졌다. 환자의 옷에, 요 밑에, 그중의 어떤 것은 재로 변하여 환자의 몸속에 들어앉았다.
등에다 쑥뜸을 이레 동안 하면. 흰닭에다 노인의 옷을 둘러 시오 리 밖에다 묻고 오면. 어린아이의 오줌을, 미친개의 고기를, 갓난아이 태반을 잘게 썰어 씹지 않고 삼키면. 백 사람에 백 가지 처방이었다.
그 와중에도 성현은 때마다 울어젖혔다. 외며느리 이경순은 시아버지의 한약을 달이다가도 건넌방으로 허겁지겁 뛰어들었다.
“병신 자식에 시아버지 쓰러뜨려. 무슨 염치루 이 집에서 버티는지.”
남편이 시앗*을 보아 혼자 사는 둘째시누이가 종알거렸다. 듣다 못한 덕규가 아내 편을 들었다.
“누님은 상관 말아요. 이러구러 해도 애 넷을 낳은 어미요.”
김입분이 발끈 화를 내었다.
“이런, 제 누이헌테 눈 흡뜨는 것 좀 보게. 집안 장손이란 게 계집 치마폭에 폭 싸여서는.”
모든 불상사는 이경순의 탓이 되었다. 사람 꼴도 갖추지 못한 자식놈 끼고도느라 시아버지 병구완은 뒷전, 조신한 척 얌전한 척 암상*을 떨면서 동기간의 우애나 끊어놓는 발칙한 계집. 온순하던 덕규의 품성이 거칠어진 것도 계집 하나 잘못 들인 탓이었다. 남편의 병 수발에 지친 김입분이 딸들의 말전주*에 술그머니 동조되어 며느리 이경순을 힐난하기 시작했을 때, 골목 어귀의 양품점 과수댁이 공헌을 했다.
“기가 막히더라니까요, 아주머니. 산신령처럼 수염이 긴 스님이더라구요. 우리 가게 앞에서 이 댁을 가리키면서 이런단 말씀이에요.
‘쯔쯔, 저 솟을대문집에 큰어른께서 명이 다하셨구먼.’ 제가 깜짝 놀라서 물었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그것 참, 자손 중의 하나가 액막이를 해왔구먼. 벌써 몇 년 되었구먼. 효손이구먼.’ 가만히 듣자 하니 우리 성현이 얘기 아니겠어요. 아주머니, 혹시 칠팔 년 전에 어르신이 큰일 날 뻔한 적이 있으셔요?”
김입분이 떠듬떠듬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남편 문희수가 한번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러네 참. 열이 심해설랑은, 몸살 뒤끝에.”
“저런저런, 세상에 무서워라, 스님 말이 똑 맞구먼요. 그때 어르신 명이 다 된 것을, 저승에 있는 어르신 어머님께서 상제님께 애면글면* 매달리셨대요. 그러니, 누군가 집안사람이 대신 액을 막아줘야 하는데…… 아드님이 외동이시니까 그도 못 건드리겠고, 하는 수 없이 맏손주가 액을 당했다는 거예요. 여러 형제를 낳을 테니 그게 낫다고…… 냉수 한 잔을 벌컥벌컥 드시더니, 그만 눈 깜빡하는 사이에 그림자처럼 사라졌어요. 세상에, 간도 떨려라. 아주머니, 신령님이 틀림없지요?”
이경순의 곤란한 입장을 알고 허황한 이야기를 둘러대어 준 과수백은 김입분이 세상을 떠나고도 수삼 년 골목 어귀를 지키며 살았다. 과수댁이 이사를 가고 이상스레 연락이 끊기자 이경순은 그 사실을 니무나 안타까워했다. 맵고 쓰고 달고 짠 시집살이를 해내는 동안 이웃들이 보여준 호의야말로 그녀에게는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었다.
시어머니 김입분이 신흥사의 큰스님을 공들여 초청하여 성현을 내보인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람 구실도 못 할 천하의 걱정 가마리*라며 입에 올리기도 남부끄러워하던 노인네가 우리 집 장손이라며 스님 앞에서 눈물을 내비친 사건은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스님, 우리 늙은이들이야 다 살았으니 무슨 원이 있겠습니까. 내, 이, 우리 맏손주 성해지는 것만 보면 당장 혀를 깨물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절에 공양미를 내라면 천 석이라도 할 것이고 머리카락을 잘라 공을 들이라면 당장 신을 삼겠습니다. 이 어린것만 생각하면 내 가슴이 이렇게 메이는데, 이 어리숙한 애어미는 어떻게 살랍니까. 우리 영감 세상 뜰 때 부디 이 아이 온전해지게 모두 가지고 떠나게끔, 스님, 제발 못한단 소리 하지 마시고…… 내, 무슨 짓이든 해볼랍니다. 우리 손주 손가락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움직이는 것만 보면 이
한 목숨 선선히 바칠랍니다.”
문희수는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병석에 누운 지 2년, 성현이 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내 죽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되었다.”
딸들의 가슴 맺히는 통곡에도 불구하고 김입분은 참으로 담담했다.
문희수의 삼년상을 치르던 해에 김입분은 갑자기 세상을 떴다. 어처구니없는 교통사고였다. 버스를 타고 친척집에 가던 김입분은 운전석 옆 모터에서 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승객 몇몇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는 새에 김 입분은 재빠르게 버스의 비상 손잡이를 비틀어 밖으로 뛰어내렸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버스 옆을 지나는 트럭이 있었다. 버스 모터의 연기는 차가 정지한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건만 애꿎게도 칠순의 그녀는 트럭에 치여 즉사하고 말았다.
김입분의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녀의 다섯 딸, 그 누구보다도 외며느리 이경순의 울음이 뼈에 사무쳤다. 세상에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속정 깊으신 양반을 이리 갑자기 불러가시다니…… 어머니. 어머니, 이제 아범이랑 저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간대요.
희망
훗날 문성현이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을 때, 가장 어린 날의 광경은 막냇동생 승현의 돌날이었으니 그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 그는 방 안에 혼자 누워 있었다. 힘겹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곁에 없었다. 얼마나 울어젖혔는지 목이 잔뜩 쉬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문 저쪽에 모여 들떠들고 있었다.
뭘 잡나 보자구. 돈을 잡아 재벌이 되려나, 책을 잡아 학자가 되려나.
잡는다, 잡아…… 앗따따, 활이다 활! 큰 장군이 될라. 좋지 좋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다. 성현은 계속하여 울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울 수가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그는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마구 몸부림을 치며 울었을 것이다. 아무도 자신처럼 벋정대며 울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그 순간에 깨달았다. 자신은 다른 이와 너무나 달랐다. 다른 사람들은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했다. 불편할 때나 화가 날 때나 무언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는 마구 고함을 지르며 울어젖혔던 것이다.
그날부터 그는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절대로 울지 않았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그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말을 하려 해도 입이 따라주지 않았다. 답답했다. 그러나 다시는 고함치며 울지 않았다. 자신의 울음소리는 그 누구에게보다도 스스로에게 너무나 끔찍하고 지겨웠다. 그는 벙어리처럼 행동했다. 배가 고파도, 대소변으로 아랫도리를 적셔도 그는 짜증을 내거나 화내지 않았다. 다른 이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 그는 다만 참고 견뎌내었다. 그때부터 그는 슬펐다. 울음을 몸 밖으로 터뜨리지 않으니 몸 안에 눈물이 고였다.
조용해지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마음이 안정되고 나니 그는 자신의 고개가 필요 없이 마구 흔들림을 깨닫게 되었다. 오른쪽으로 조금 튼다고 하는 것이 어느새 고개는 어깨 너머까지 돌아갔다. 다시 똑바로 하려고 하면 이번에는 왼쪽으로 홱 돌아가 버렸다. 그는 조금씩 요령을 터득해갔다. 무엇보다도 침착해야 했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팔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펴지지 않는 손가락, 발가락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마음만 푸근히 진정하고 나면 남이 민망할 정도로 사지가 꼬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체머리*를 흔들면서 헤벌어진 입으로 침을 흘리는 것이 얼마나 흉한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그때부터 그는 참으로 슬펐다. 벌어진 입을 다물고 나니 가슴으로 드는 헛헛한 바람을 내쏟을 방법이 없었다.
훗날 문성현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의 이부자리 밑에 간직하고 있었던 장난감 활은 바로 막냇동생 승현의 돌상에 돌잡이로 올렸던 물건이었다. 댓개비*를 다듬어 노끈으로 묶은 장난감 활은 그의 어린 시절 희망의 상징이었다. 일부러 누가 그에게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방구석에 놓인 활을 보고 그가 몸을 뒤치어 자신의 요 밑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우현의 나이가 여섯 살이었으니 아마도 어른들을 피해 성현이 있는 건넌방에 가지고 와서 놀다가 무심코 놓고 갔음이 분명했다.
앗따따, 활이다 활! 큰 장군이 될라. 그 작고 조찹한 활에는 사람들의 덕담이 묻어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뒤풀이했다. 하아, 하, 화, 화아아알. 화아알. 활.
조용해지고부터, 체머리를 흔들지 않고부터, 입을 다물고부터 그는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그 속에 산과 들, 밀림이 있었다. 몸집이 큰 코끼리, 기린, 갖가지 색깔의 크고 작은 새들이 있었다. 먼 나라에는 이상한 풍습을 가진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세상은 볼수록 흥미진진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이처럼 앉지도 서지도 걸어 다닐 수도 없는 그에게는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다른 이들의 삶이 한편으로는 가슴 떨리는 열망이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부숴 버리고 싶은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그래도 어린 그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다른 이와 결코 같을 수는 없지만, 너무나 더디고 서투르기는 했지만 그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벋버듬한* 채로 자라는 그의 몸피, 그는 그때 고작 십 대였던 것이다. 힘겹기 짝이 없었지만 그는 텔레비전으로 기어가 자신이 보고 싶을 때 그것을 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라디오를 켜고 끌 줄 알게 되었다. 선풍기도 작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결심을 했다. 혼자 앉는 법을 익히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란 없다고 그는 뇌까렸다. 가슴속에 희망을 품은 한창 자라고 있는 십 대의 사내아이에게는 스스로 앉는 연습이란 단지 모든 것의 시작에 불과했다. 자유롭게 앉을 수 있게 된 후에는 그는 다리로 서는 연습을 할 계획이었다. 두 다리로 선 후에는 조심조심 발짝을 떼고, 그리고 걷고, 뛸 예정이었다. 개켜놓은 옷처럼 축 처진 자신의 아랫도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머지않아 그는 다른 아이들처럼 거리를 활보할 것이었다. 신이 나면 춤이라도 멋지게 추어댈 참이었다. 그리고…… 말을 타고 들판을 가로질러 활시위를 당길 예정이었다. 까마득히 보이는 들판 끝 과녁에 예리한 화살을 날리면 쏘는 것마다 명중, 명중. 앗따따, 활이다 활! 큰 장군이 될라. 그는 조용히 입을 떼었다. 하아, 하, 화, 화아아알. 화아알. 활.
그는 우선 자신이 앉을 때에 벽과 방바닥에 괴던 방석과 쿠션들을 치워버렸다. 그리고 방구석 모퉁이에 자신의 어깨를 밀어붙였다. 가누어지지 않는 목이 문제였다. 팔의 힘을 다하여 상체를 솟구치는 순간 목은 앞으로 처져 부러져 나갈 듯 아팠다. 그는 그대로 너부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없이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너부러졌다. 온몸으로 젖어드는 땀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닥으로 잦아들면서 그는 수없이 머리를 부딪쳤다. 머리가 깨져 피가 흘렀다.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머큐로크름을 발라주었다. 거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수백 번 수천 번 그는 몸을 솟구쳐 올렸다. 머리의 상처는 아물만 하면 다시 터졌다. 온몸에 멍이 들어 밤새 끙끙 앓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쉴 수 없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앉고 서고 걸어야만 했다. 될 듯 될 듯 하다가도 몸은 다시 바닥으로 잦아들었다. 벽의 도배지 안쪽으로 흙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드디어 혼자 앉기에 성공했다. 그때로부터 보름이 지난 어느 저녁에 그는 두 번째로 혼자 앉았다. 그는 요령을 터득해갔다. 재빨리 상체를 들어 올리면서 반동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그가 제대로 앉는 데에는 적어도 오 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익숙하게 앉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계속했다. 그가 앉는 연습을 한 건넌방 벽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쉬운 대로 덧붙인 도배지가 이삼 일이면 흙과 함께 떨어져 나갔다. 벽 속의 외얽이*가 허옇게 드러나는 참이었다. 어머니가 환히 웃으셨다.
“그래 성현아. 그깟 흙벽 뻥 뚫어버려라.”
혼자 앉는 법을 익히고 나니 휠체어에 앉는 것도 훨씬 편했다. 누구보다도 신이 나신 분이 아버지였다. 주말이 되면 아버지는 성현을 훨체어에 태워 골목 밖으르 데려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 차들, 상점들. 아버지가 들뜬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성현아, 힘드냐? 안 힘들지? 하나도 안 힘들지?”
물론.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힘들다니. 더 힘든 고난이, 더더힘 든 고난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해도 그는 절대로 힘 들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곧 다른 사람들처럼 서고 걷고 달릴 참이었다. 아버지는 끝없이 휠체어를 밀었다. 까짓 보도블록으로 포장된 모든 길, 이참에 다 걸어낼 참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그는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바로 옆벽에는 벌써 오래전에 아버지가 그를 위해 붙여놓은 한글 자판 괘도가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치려 애썼던 그 복잡한 글자들이 어느 날 눈에 들어오면서 그는 무엇이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후드득 터져 나가는 줄 알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과자·라면·초콜릿의 이름, 만화 영화의 제목, 길거리에 내건 수많은 간판들을 그는 웅얼웅얼 소리 내어 읽었다. 신문에 쓰인 알 수 없는 한자 말들의 뜻을 알기 위해 그는 초조하게 아버지를 기다렸다. 퇴근하여 돌아온 아버지는 웃옷도 벗지 않은 채 성 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집안 식구들은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의 동생들도 학교에 갈 때에는 잊지 않고 형에게 인사했다. 또 학교에서 돌아오면 으레 건넌방 문을 열었다. 그들의 손에는 학교 공작 시간에 만든 바람개비, 길가에서 산 과자나 떡볶이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꿈을 꾸기 좋아했다. 꿈속에서 그는 걷지도 뛰지도 않고 날아다녔다. 간단했다. 바람개비만 입에 물면 그리 되었다. 계단이 많은 곳을 내려갈 때에는 그는 한 발짝에 서너 계단씩을 건너뛰었다. 그는 호수나 강, 넓은 바다 위도 스치듯이 떠다녔다. 간단했다. 한 발이 빠지기 전에 또 한 발짝을 떼기만 하면 그리 되었다.
그는 그림을 좋아했다. 화가의 그림을 보고 그는 무슨 의미일까 상상하기를 즐겼다. 그는 고전음악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성악곡이나 현악곡이 마음에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든 일류 고등학교의 잘생긴 학생이었다. 어떤 때는 귓등에 새의 깃털을 꽂고 어깨에 활통을 멘 힘센 사냥꾼이기도 했다. 그는 벼르고 있었다. 얌전히 개켜놓았던 바지가 주인의 손에 들려 입혀지듯 그의 훌쭉한 다리에 빵빵하게 살과 피가 들어차는 날, 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야아아호오오 고함을 칠 예정이었다.
그가 말을 제대로 하게 된 데에는 이제껏 그를 돌봐주던 숙자 누나가 떠나간 사실이 한몫을 했다. 숙자 누나가 시집을 간 때는 그가 열세 살이 되어서였다. 그녀의 신랑은 골목 바깥 큰길에서 도장포*를 하는 총각이었다. 어머니는 숙자의 혼인을 준비해주면서 무척 섭섭해했다. 그녀가 가까이 있지도 않고 신랑을 따라 시댁인 춘천으로 떠나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숙자도 몇 날 며칠을 두고 울었다. 그녀가 시골에서 할머니 김입분의 손에 이끌려 이 집에 온 것은 16년 전, 어머니 이경순이 시집오기도 전의 일이었다. 천지에 의지가지없는*
코흘리개 계집아이가 이제는 스물넷의 어엿한 처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숙자를 보내며 못내 가슴 아파했던 이유는 숙자가 행랑채의 마지막 사람이라는 점도 있었다. 할머니가 거느리고 있던 행랑채의 침모*와 찬모,* 머슴은 이미 내보낸 상태였다. 대가족을 이끌어 나갈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안 사정이 기울어진 데에는 할머니 김입분의 급작스러운 죽음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문씨 집안의 살림을 도맡아 해온 사람이 김 분이었다. 그녀로부터 돈을 빌려간 이웃과 친척들이 그녀가 죽자 이자는커녕 원금도 제대로 갚지 않고 시치미를 떼어버렸다. 문씨 집안은 졸지에 덕규의 구청 공무원 월급만으로 살림을 꾸려가야만 했다. 다른 수입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 속에서도 아버지 어머니는 숙자의 혼인만큼은 정성을 다했다. 데리고 있는 동안 식모 품값은 주지 않되 살림을 제대로 가르쳐 후히 시집 보내주겠다는 것이 할머니 김입분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성현의 시중을 들기 위해 시간제 파출부가 오기 시작했다. 양품점 과수댁의 먼 친척이라는 상주댁은 무척 무뚝뚝한 여자이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근 삼 년 동안 성현의 뒷바라지를 맡아주었다.
“헤헤이, 이런 자석 뭔 호강을 보겠다고 밥을 믹이노.”
성현을 처음 대하는 그녀의 눈이 매몰차기 짝이 없었다.
“무 우 우”
“무우가 뭣꼬, 빙신. 물! 말도 몬하나?”
상주댁은 투박지게 성현의 앞에 물그릇을 놓고 나가버렸다. 숙자 누나 같으면 성현의 눈빛만으로도 물그릇을 입에 대어주었을 것이었다. 상주댁은 성현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오오우주우. 뭐라 카노? 버젓이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소변통을 대어주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상주댁을 내보낼 처지도 아니었다. 파출부를 구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열세 살이나 되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성현의 뒷바라지를 맡아줄 여자가 흔치 않았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한 성현은 하루에도 수십 번 가슴으로 방바닥을 찧었다.
“형이 하는 말은…… 너무 짧거든. 길게, 계속 얘기해봐. 숨을 참아봐.”
듣고 보니 우현의 말이 맞았다. 고르게 내뱉는 숨이 말이 된다는 이치를 그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푸후후후우우. 푸후후우우우우. 그는 큰 숨을 들이쉬어 천천히 내뱉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숨을 얕게 들이쉬어 낱말 하나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 가득 숨을 들이쉰 채로 조금씩, 천천히, 고르게 토해내는 것이 요령이었다.
우와아아어어어. 우오오아우어어. 따지고 보면 성질 다라운 상주댁이 은인인 셈이었다. 그녀가 다른 식구들처럼 자신의 외마디 고함을 참고 견뎠더라면 그는 말을 제대로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깃이었다. 우와아아어오오우우우으으. 그는 가슴이 설레었다. 그도 다른 사람처럼 말할 수 있으리라. 때로는 거세게 따지기도, 때로는 부드럽게 남을 감동시키는 시구절을 읊을 수도 있으리라. 우어어오우우으으우이이우. 그는 행복했다. 길게 목소리를 빼노라면 듬직한 어른이 되는 기분이었다. 성악가가 된 기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성악가 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검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한 유명한 성악가가 된다면 ―변성기가 지난 그의 목소리는 매력적인 이음이었다―그는 무대 위에서 상주댁의 이름을 밝히고 그녀에게 공을 돌릴 예정이었다. 식구들 외의 사람들이 성현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시작한 때는 그가 호흡을 조절하기 시작한 지 일 년이 훨씬 지나서였다.
성현은 누운 채로 몸이 커갔다. 사춘기를 맞아 얼굴에는 여드름이 났으며 때로는 몽정을 하기도 했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말을 걸었다.
“문성현, 그만하면 자네도 미남이야.”
그는 자신의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의 옷과 수건을 개켜놓았고, 또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의 소변통을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버르적대며 방을 기어다니는 자신을 그는 달팽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이제 알에서 갓 깨어난 누에라고도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이부자리와 베개를, 한쪽 구석에 놓인 방석들을 똑바로 쌓아 올렸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부터 그는 자신의 버르적거리는 행동을 다른 이들에게 감추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 대면하는 때는, 설사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나 귀여운 막내 승현이라 할지라도, 똑바로 이불을 덮고 누워 있거나 아니면 등받이가 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였다. 용변을 볼 때, 주위를 치울 때, 라디오를 켜고 끌 때조차 그는 혼자이기를 원했다. 아니, 성현 자신도 없어야 했다. 무슨 일을 할라치면 그는 먼저 머리맡에 놓인 좌경(座鏡)부터 돌려놓았다. 버르적대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자식이 웬수라 카더이. 어디 시굼창에라도 쿡 박히가 죽으뿌리마 핀겠데이.”
상주댁은 아들 때문에 무척 속이 썩었다. 중학교 때부터 다른 친구들의 물건에 손을 대더니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이웃집 담장을 넘어 들어가 돈을 훔치다가 소년원에 가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학교도 그만둔 지 벌써 오래, 며칠 전에는 월세를 내려고 모아둔 돈을 장롱에서 훔쳐내어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했다. 성현이 상주댁에게 열심히 말했다.
“아줌마, 그래도 아줌마는 우리 어머니보다 나아요. 우리 어머니는, 내가 멀쩡한 몸만 된다면 평생 감옥에 들어가 계시라 해도 그렇게 하실 거예요.”
아줌마가 방에 걸레질을 하다가 그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빙신이라도 속은 말짱하데이. 오마이 걱정을 해주는 걸 보이. 빙신 아들이 낭종에는 효자 노릇 한다이께네.”
상주댁이 처음으로 성현이 신문지로 싸놓은 대변을 낯 찡그리지않고 치워주었다. 효자. 효자가 된다…… 그렇고말고. 앉고 서고 걷기만 하면 그는 세상에 다시없는 효자가 될 예정이었다. 그의 가슴이 하루 종일 뿌듯했다.
그러나 성현은 얼마 되지 않아 배신을 당했다. 그에게는 집안 식구들이 건네주어서 한푼 두푼 모은 돈이 있었다. 그 돈이 송두리째 없어졌던 것이다. 상주댁이 왜 갑자기 오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식구들에게 성현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상주댁이 오기를 고대했다.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꼭 필요한 돈이었다면·…‥ 그는 중얼거렸다. 사실 그에게는 딱히 돈을 쓸 데도 없었다.
새로 온 파출부는 성현과 별말을 하지 않았다. 상주댁보다 훨씬 젊은, 말이 없는 여자였다. 성현 역시 말을 걸려고 애쓰지 않았다. 다른 이들을 믿고 의지할수록 그들에게서 느끼는 배반감도 더욱 크다는 사실을 그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상주댁은 넉달 만에 나타났다.
“이야, 많이 컸구나, 우리 강아지. 미안테이, 내가 죽을 년이고마. 문디이 코에서 마늘 빼어 묵는다꼬, 내 우예 그 돈을 건드렀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어머니가 자초지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상주댁이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했다.
“기특데이. 우예 그리 속이 깊노.”
성현은 그날 밤 오랜만에 후련한 기분으로 잠이 들몄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어쩌면 우울하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닐지 모른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고통이 있으면 보람도 있는 법이다. 지금은 괴롭지만……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의 가谷속에는 희망이 있었다. 다른 이에 비하자면 자신의 출발은 너무나 더디고 몇백 배 힘이 들었지만, 그에게도 장래에 대한 부푼 희망이 있었다.
혼란
그의 삶에 혼란이 온 것은 열여섯 살 때였다. 병원 검진을 받은 아버지가 간암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암 발생 부위가 두 군데라서 칼조차 섣불리 댈 수 없는 상황이라 했다. 성현의 고모들이 몰려와 벌써 상이라도 당한 듯 동생을 붙잡고 울어대었다.
애그애그 우리 귀한 동생, 어 노릇을 어찌하면 좋으냐.
정작 어머니는 멍한 상태였다. 여느 때처럼 시누이들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것이 또한 흉이 되었다.
자네나 실컷 먹게, 이 마당에 밥이라니. 보름 한 달을 굶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독하기도 해라.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고.
과음이 원인이라니. 금지옥엽 우리 동생이 왜 술을 퍼마셨겠나. 집안에 화근덩어리를 떡허니 모셔두고 요조숙녀 노릇만 하고 앉었으니 생간이 타지.
어머니는 안방의 아버지 곁에 진득이 있지 못했다. 툇마루로 장독대로 하릴없이 서성이며 얼이 빠진 채 무어라 중얼거렸다. 한밤중에도 어머니는 환자인 아버지 곁을 떠나 성현이 있는 건넌방이나 사랑을 서성거렸다. 무엇이 어떻다는 말인지 그녀는 도통 가슴에 와 닿지 않는 눈치였다. 성현도, 성현의 동생들도 어머니의 거동만 살폈다. 혼란스러 웠다.
상주댁의 말소리가 그렇게 똑똑히 들린 데에는 그날따라 집 안팎이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뒤꼍에 연탄을 쌓는 연탄 배달부에게 건네는 말소리였다.
“멀쩡한 사내가 암이 웬말이고. 지랄 같은 고모들 말대로 그기 다 빙신 자식 때문에 은결들은* 탓 아니겠나. ……이참에 성치 못한 자석이 세상 버리마 월매나 좋겠노. 아버지 명 이어주고 대신 죽으마마, 다 핀할 긴데.”
그러했다. 성현 자신이 문제였다.
죽으면…… 죽으면 편할 거야, 그는 중얼거렸다. 따지고 보면 죽지 못할 것도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열여섯의 나이에 자살을 생각해야 하는 자신이 너무나 불쌍했다. 그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참으로 오랜만의 눈물이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마흔이 넘는 인생을 살았다. 건강한 몸으로 다른 사람 못지않게 편안히, 즐겁게 살아왔다. 자신은 어떤가!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아버지 대신 죽어달라고? 그가 일부러 아버지를 괴롭힌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를 이렇게 낳아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 어머니 아니었던가! 아무도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죽기로 마음먹었다. 죽어주지. 그래, 죽어주지. 자신이 죽는다고 해서 아버지의 병이 나을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렇다, 그 사실도 이참에 확실히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죽고 사는 일과 전혀 관계없이 아버지는 돌아가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자. 그리고…… 새로 눈물이 솟았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자살까지 하게 되었는지 그들은 뼈저리게 뉘우쳐야 하리라. 평생 동안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해야 하리라. 고모들, 그중에서도 아무렇게나 지껄여대는 둘째고모, 상주댁, 상주댁의 말을 듣고 글쎄 말이오 응수하던 연탄 배달부 아저씨.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서러움 속에서도 그는 한 줄기 칼날 같은 통쾌함을 맛보았다. 그들이 자신의 무덤 앞에 엎드려 가슴을 치며 용서를 구해도 소용없다.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한구석에 치워놓은 사이다병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저것이었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병을 깨뜨려 날카로운 유리 조각으로 팔목의 동맥을 긋는 모습을 그는 텔레비전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밥을 굶어 죽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너무 더디다. 그동안 상주댁은 자신이 뭐라 떠벌렸는지 까맣게 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병의 주둥이 부분을 힘겹게 거머쥐었다. 방바닥에 병을 내리쳤다. 사이다병의 아랫부분은 의외로 단단했다. 툇마루 쪽 문턱으로 기어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유리 조각이 방바닥에 튀었다. 소리는…… 의외로 크지 않았다. 그는 병의 주둥이를 거머쥔 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가 병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면. 누가 얼른 눈치를 채고 들어와 자신을 만류해준다면. 그러나 바깥은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는 비감한 마음으로 깨진 사이다병을 자신의 왼쪽 팔목 위에 올려놓았다. 눈을 감았다.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새빨간 피가 방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무서웠다. 그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입술이 갈라진 어머니, 그리고 이미 얼굴이 잿빛이 된 아버지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시는 이러면 안 된다. 성현아, 아버지와 엄마가, 우리 식구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지?”
“아버지…… 내가 대신 죽으면 좋겠어요. 정말예요. 아버지, 아버지는 나 때문에 속이 상해서 병이……”
아버지가 서글프게 웃음을 지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이 너무나 서글펐다.
“아니다, 성현아. 부모는 항상 자식 앞에서 죽는 거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셨듯이. 누구나 다 부모의 죽음을 당하고, 또 언젠가는 자식을 남겨두고 죽는 거다.”
둘은 얼싸안았다. 실컷 울었다. 아버지 품에 안긴 지도 무척 오래된 일이었다. 성현은 아버지의 콧김을 목과 어깨로 느끼면서 아버지의 몸피가 의외로 헐쭉하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섬뜩했다. 환자인 아버지가 자신을 등에 업고 병원으로 허겁지겁 달렸을 모습이 떠오르자, 그는 아버지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성현은 팔에 붕대를 감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성현은 이미 이름난 효자가 되어 있었다. 상주댁에게서 얘기를 전해들은 양품점 과수댁이 골목 입구에서 성현을 잡고 울먹였다.
“착하고 기특한 우리 성현이. 어린것 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아버지의 병세는 조금씩 조금씩 나빠져 갔다. 집안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집 안팎을 뛰어다니며 수선을 떨던 동생들도 완전히 풀이 죽어 말소리조차 기어들어 가는 듯했다. 어머니는 절에 나가기 시작했다. 부처님께 하루에 천 번의 절을 올린다고 했다. 성현은 아버지 곁에 있기를 자청했다. 아버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하고 싶었다. 아버지가 잡수시는 약을 때맞춰 알려드렸다. 아버지가 주무실 때에는 아버지의 이불을 똑바로 덮어드렸다. 고맙다, 아버지가 성현을 보고 미소 지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건넌방에 되돌아왔다. 아버지가 혼자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장작개비처럼 마른 몰골로 때도 없이 구역질을 하는 당신의 모습을 성현에게, 식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사지를 가누지 못하는 한심한 아들을 보는 것이 아버지는 무척 힘든 모양이었다. 그를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외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신경질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자상하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낯설 었다.
아버지는 죽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성현은 죽음을 생각했다. 혼돈, 어두움, 한없이 넓은 허공. 그렇다. 그는 아직 죽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자살 시도는 한마디로 어리광이었다. 아버지는…… 너무나도 안된 일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자신은 자신이었다.
아버지가 운명하시던 날 낮에는 동생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없었다. 어머니와 성현만이 곁에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한 번이라도 보아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만 쳐다보았다. 오래오래 어머니만 쳐다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동생 우현의 나이가 열여섯으로 고등학교 일 학년, 정희가 중학교 이 학년, 막내 승현이 초등학교 오 학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고 앓아누웠다. 온 세상이 뒤죽박죽,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상주댁이 성현에게 밥을 떠먹이며 말했다.
“밥맛이 나나. 자석이 부모 잡아묵는다 카더이, 참 세상 무습다.”
방바닥에 흐트러진 밥알을 쟁반에 주워 올리며 그녀가 또 입을 놀렸다.
“그러이 전생에 웬수인기라, 부모와 자석은.”
그는 마구 소리를 질렀다. 자도투 어떻게 참을 수가 없었다. 이마에 끈을 동인 어머니가 건넌방으로 기어왔다.
“어머니, 이 아줌마 가라고 해.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해.”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자살 소동도,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더 괴롭힌 일도 따지고 보면 상주댁의 속살거림 때문이었다. 성현이 너무 질색을 하니 어머니도 하는 수 없었다. 상주댁 대신 낯선 파출부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달포*쯤 후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파출부는 오지 않았다. 파출부를 마음 놓고 쓸 집안 형편이 이미 아니었다.
아버지를 여의고 난 후 비쩍 마른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드러누워야 했다. 수만 번의 절을 하면서 얻은 관절염도 문제였지만 성현의 뒷바라지가 너무나 힘에 부쳤다. 성현은 어머니에게 의견을 내놓았다. 건넌방 옆에 화장실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대소변은 자신이 처리해볼 심산이었다. 어머니의 대답이 없자 그는 갑자기 너무나 비참했다. 집을 개조하자면 돈이 많이 들 터였다. 돈 한 푼이 아쉬운 때였다. 이참 저참에 자신이 죽어버린다면 개조고 뭐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죽을 용기가 없었다. 그는 무서웠다. 아
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혼란 속에서 하루, 이틀, 날이 흘러갔다.
그의 몸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렸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한 번 앉을 때마다 버둥대는 시간이 삼 분여,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앉는 동작은 되지 않았다. 두 발로 선다는 것은, 개켜진 옷처럼 늘어진 그의 다리에 살과 피가 붙는다는 것은 너무나 허황된 꿈이었다. 아무리 다리에 힘을 주는 동작을 되풀이해도 그의 하체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신념, 노력, 투지…… 웃기는 낱말들이었다. 나폴레옹의 사전에는 ‘불가능’ 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했다. ‘불가능’ 이 라는 단어는 그의 사전에서 빠져나와 새끼를 쳐서 온 세상에 버글버글 한여름의 파리 모기처럼 들끓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잠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쩌다 실수하여 아랫도리를 더럽힐 때에는 그는 그만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정희는 결국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정희는 친지의 소개로 작은 의류업체의 사무직원이 되었다. 어머니는 정희가 내미는 첫 월급을 받고 많이 울었다. 성현은 울지 않았다. 나고 남이고 간에 우는 것이 도대체 지겨웠다.
어느 날 동네 아저씨 둘이 대문을 두드렸다. 큰길에서 복덕방을 하는 아저씨와 목수 아저씨였다. 성현의 목욕을 도와주겠다는 얘기였다. 양품점을 그만두고 껌, 과자 나부랭이를 파는 골목 어귀의 과수댁 아줌마가 간곡히 부탁을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 했다. 하체에 붙은 살이 없다 뿐이지 드러누운 채 어른처럼 커진 성현의 몸뚱이는 참으로 남자들의 힘이 아니고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성현이 너, 그렇게 기특하다며? 동네에 소문이 났던데.”
그들이 성현의 옷을 벗기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너무 수치스러웠다.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기형의 몸뚱이를 내보여야 하는 자신이 너무나 무참하고 창피했다.
“기특하긴요. 그래 봤자 아버지 잡아먹은 화근덩어리인걸요.”
그의 날 선 대답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어깨며 등, 다리, 발가락까지 열심히 때수건으로 밀고 물을 끼얹을 따름이었다. 그는 속으로 마구 들이대었다.
아저씨들이 단 한순간이라도 나처럼 불편해보았어요? 어쩌다가 기분 내키는 대로 착한 일 해보겠다는 객기에도 내가 고마워해야 해요? 눈물이라도 흘려드릴까요?
목욕이 끝나고 난 후에도 성현은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어머니가 수백 번 감사하며 그들을 배웅했다. 그는…… 밤새도록 후회했다. 왜 그들에게 그리 퉁명스레 대했을까. 자신은 왜 이렇게 심성이 꼬여 있는 것 일까. 그는 머리를 수없이 방바닥에 찧어대었다.
그는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만이 안간힘을 쓰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었다. 장애자 수용소. 나라에서 지원하는 무료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자신과 비슷한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수용소가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수용소에 가야겠어요.”
어머니가 깜짝 놀라 만류했다.
“더 이상 놀림을 받으며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진짜예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서 마음 편히 살고 싶어요.”
진심으로 그러했다. 몸 고생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만 편하다면 어디라도 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방을 둘러보았다. 그렇게도 몸을 부딪쳐가며 앉으려 애썼던 벽. 자신의 대소변을 밀어놓아 냄새가 찌든 방 한구석. 바람이 불면 파르르 파르르 떨리던 문풍지.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땀을 흘렸던 자신의 흔적들이 우스꽝스럽기조차 했다. 노력해서 될 사람이 따로 있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요 밑에서 장난감 활을 꺼내었다. 그것을 부러드드라려다가…… 그만두었다. 이상하게 힘이 빠졌다. 활만큼은 내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수용소로 가져갈 수도 없었다. 그는 툇마루 쪽의 덧문으로 기어갔다. 외풍을 막으려고 쳐놓은 방장* 뒤에다 그는 그것을 힘겹게 끼워놓았다.
수용소는 황량한 언덕 위에 길게 누운 술래브집이었다. 마치 감옥소처럼 아무 장식도 없는 시멘트 건물에 조그만 창문들만 줄지어 나 있었다. 어머니가 수용소의 방을 구경하겠다고 몇 번이나 간청 했는데도 직원은 딱 잘라 거절했다.
“다 사람 사는 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와 우현이 돌아가고 그는 자신이 기거할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의 풍경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다섯 평 남짓한 방 안에 이십여 명이 뒤엉켜 버르적대는 모습을 본 순간 그는 그만 입을 벌리고 말았다.
방바닥에 너부러져 납작하게 엎드린 채 잠자는 어린아이. 머리가 옆으로 심하게 돌아가 마치 목을 몸통에서 따로 떼어 옆에 놓은 듯 했다. 또 다른 아이는 팔다리를 마구 비트적대고 있었다. 온 사지가 버둥거려 그의 모습은 마치 하늘을 보구 자빠진 풍뎅이, 바퀴벌레 같았다. 성현은 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제까지의 자신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곧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그 역시 바로 그들처럼 사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긴장하여 굳어버린 목은 시계추처럼 사정없이 도리질을 쳐대고 헤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흘러나왔다. 구역질과 어지럼증으로 정신이 아득해왔다. 자신의 방에서 자신의 거울에 비쳤던 끼끗한 모습은 그가 아니었다. 평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미소를 머금었던 그 얼굴은 그가 아니었다. 일그러진 입과 비틀린 목으로 사지를 버르적대며 짐승의 소리를 내는 바로 이들이 문성현, 그였다. 지옥의 풍경 같은 이곳이 바로 그가 있을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더욱 무참했던 것은 방방마다 가득 수용되어 있는 장애자들 거의가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자신은 이들의 두 배 가까운 세월 동안 두 배나 큰
몸집으로 버르적대며 가족들을 괴롭혀왔던 것이다.
저마다의 소리로 울부짖으며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면서 다투는 모습은 차라리 희극이었다. 그동안의 세월이 얼마나 빛나는 행운이었던가, 그는 너무나 확연히 깨달았다. 그들이 식사로 방바닥에 받는 딱딱한 떡, 빵들을 보며 그는 식구들이 자신의 입 안에 숟가락으로 떠 넣어주던 따뜻한 밥과 갖가지 반찬들을 기억했다. 그들이 깔고 앉은 귀중중한* 이부자리를 보며 그는 자신의 새물내* 나는 깔끔한 이부자리를 기억 했다. 조그만 얼룩이라도 생겼다 싶으면 미련 없이 뜯어내고 빨고 삶고 풀을 먹여 다려주시던 어머니는 참으로 보통 분이 아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이제 자신의 삶을 마쳐도 아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온 이십 여 년은 치욕과 궁핍 의 지옥이! 아니라 너무나 포실하여* 감히 짜증을 내었던 꿈의 천국이었음을 그는 가슴 속 깊이 깨달았다.
일주일 만에 그의 어머니가 수용소를 찾아왔을 때 그의 뺨과 코는 피부가 벗겨져 발갛게 부어 있었다.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닦느라 바닥에 깔린 담요에 쉴 새 없이 얼굴을 문질러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성현의 상한 얼굴을 보고 통곡했다.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떼어놓을 생각을 하다니, 이 에미가 독한 년이지. 가자. 이제는 다시 헤어지지 말자.”
그는 사양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성현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의 방이 있었고 그의 텔레비전과 그의 라디오와…… 활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었다. 그의 몸을 씻겨주러 다시 찾아온 동네 아저씨들을 반갑게 맞으며 성현은 환히 웃었다.
“천국을 보았어요. 여기가…… 천국이에요.”
“그래?”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더 이상 자신의 거취 문제로, 생사 문제로, 자신의 몸이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자신을 볶아대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대로, 되어가는 대로 둘 일이었다. 과수댁 아줌마가 어깨를 으쓱대며 한마디 했다.
봐, 성현이 얼굴이 얼마나 훤한가. 성인군자 같잖아. 실제로 그는 얼굴이 훤했다. 성인군자처럼 마음이 밝고 한가했다.
평온
큰동생 우현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군대에 갔다. 그가 군대에서 돌아오고 두 달 후에 막냇동생 승현이 자원입대했다. 군대 생활 삼 년이란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고민거리이면서도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는 잘만 활용하면 삼 년간의 유여 기간이기도 했다. 집안 분위기가 훨씬 나아졌다. 대학에 다니던 승현의 등록금이 당분간 보류되었다는 사실과 우현이 제대를 했으니 정희보다도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희망이 집안 분위기를 고무시켰다. 우현은 선박운송 회사에 어렵지 않게 취직이 되었다. 우현이 첫 월급을 받으면서 맨 처음 한 일은 집안에 상근하는 파출부를 댄 것이었다. 파출부의 봉급이 일개 초임 사원 봉급으로는 반에 가까운 큰 비율이었지만 그 일이야말로 집안에 가장 시급한 조치이기도 했다. 관절염으로 문밖 출입도 자유롭지 못한 어머니에게는 그만한 호사가 없었다. 어머니는 한사코 파출부 들이는 일을 마다하였지만 파출부가 옴으로써 집안 분위기가 밝고 명랑해진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뜨내기 파출부가 몇 사람 오간 뒤 고정적으로 출입하게 된 여자가 예산댁이었다. 성현의 대소변 뒷바라지를 눈 찌푸리지 않고 할 정도로 트인 구석이 있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간살스러운* 구석도 꽤 있었다. ‘아이그 우리 불쌍한 성현이, 세상에 없는 착한 백성’과 ‘이런 빌어먹을 애물단지, 너 편하고 나 편하자면 어서 죽는 게 부주*여’를 아무렇지 않게 뒤섞어 말하는 여자였다.
우현이 취직을 한 그해에 여동생 정희는 회사의 동료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하여 생계를 도운 지 육 년, 따지고 보면 정희만큼 착한 딸도 드물었다. 성현의 매제가 된 강만익은 피부가 검고 다부지게 생긴 시골 출신의 청년이었다. 편모슬하로 대학에 진학시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뼈가 저리던 어머니는 정희의 결혼에 안간힘을 썼다. 양가가 서로 없는 형편에 맞추기는 했지만 혼사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정희 부부는 서울 변두리의 단칸 전세방에 보금자리를 차렸다.
큰동생 우현에게 입대하기 전부터 사귀는 아가씨가 있다는 사실은 집안 식구들이 다 알고 있었다. 정영옥이라는 이름의 동갑내기인 그녀는 아버지가 지방 공무원이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이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어떤 운명 같은 것을 서로 느끼고 있었다. 가름한 얼굴에 순해 보이는 인상, 다른 이가 보아도 둘은 신통하게도 오뉘처럼 닮았다.
우현은 요새 젊은이가 아니었다. 자신이 결혼을 하더라도 어머니와 형 성현을 한집에서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정영옥도 요새 여자는 아니었다. 시집살이가 싫어서 결혼을 재고하는 따위의 얄팍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외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정영옥의 집안에서야 걱정이 많았다. 방마다 연탄을 갈아 넣어야 하는 전통 한옥의 살림살이, 대소변 시중까지 받아주어야 살아가는 시아주버님,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병약한 시어머님. 둘째라고는 하지만 웬만한 집안의 맏이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짐을 떠맡은 며느리 자리였다. 정영옥의 어머니가 집에 찾아왔다. 두 부인은 손을 맞잡고 안방으로 들어가 하염없이 흐느끼며 수많은 말을 나누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날 밤 성 현에게 말했다.
"우현이 살림을 따로 내주자꾸나. 대가족 살림이란 게 딱히 힘들고 불편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집보내는 입장으로서야 왜 안 그렇겠니.”
어머니는 성현 옆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시이머니 김입분을 그리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무리 싫다는 고부지간이라도 살을 맞대고 살다 보면 정이 드는 법이라는 사실을 어머니는 체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현의 결혼이 무사히 끝났다. 신혼여행지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힘없이 웃으며 성현에게 말했다.
“우리 성현이도 장가를 갔으면 좋았겠지?”
어머니의 눈에 금방 눈물이 맺혔다. 성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고개가 또 심하게 돌아갔다. 어머니의 눈물만 보면 그는 도대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리 착한 성현이…… 너하고 내가 한날한시에 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먼저 죽으면 네 걱정에 눈을 못 감겠고, 네가 먼저 죽으면 내가 가슴 아파서 안되겠고.”
성현의 나이 서른한 살 때에 그들은 정든 동숭동의 한옥을 떠나게 되었다. 디귿 자 또는 니은 자의 그만그만한 한옥으로 이루어졌던 마을이 큰길 쪽으로부터 한 집씩 허물어져 음식점, 카페들로 바뀌어간 지는 이미 십여 년이 되었다. 부근에 있던 국립대학이 강남으로 이전되고 그 자리에 공원이 들어서면서 이름하여 ‘문화의 거리’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성현의 집은 한옥 중에서도 안채와 사랑채, 행랑, 뒤꼍의 광까지 붙은 대지 110평의 꽤 큰 집이었다. 앞과 옆의 주택 여덟 채를 모조리 매입한 부동산 재벌이 마지막으로 남은 이 집을 손에 넣기 위해 집요하게 들러붙었다. 여느 집의 두 배인 이 집만 합치면 꽤 번듯한 소극장 건물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매매계약을 하고 돌아온 날 어머니는 집 안팎을 둘러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집의 바깥 담장 회벽에는 아버지의 어린 날 친구들이 긁어놓은 ‘덕규네 집’ 이라는 낙서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할머니 김입분이 직접 열쇠를 챙겼던 광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혼례를 올릴 때 마당에 내놓고 잔치를 벌였던 널평상들이 새것처럼 건재했다. 그나마 어머니에게 위로가 될 일이 하나 있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까지 매년 손을 보아온 팔작지붕*의 안채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끌끌하여* 한 호사가에 의해 통째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건물값이야 물론 이미 집을 사들인 주인의 몫이었지만 그들이 살던 안채가 청평 부근의 위락 단지에 그대로 보존된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녀에게는 너무나 큰 위안이었다.
동승동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40평형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던 날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다 조상님들이 배려해주신 덕이다. 너희 아버지, 할아버님 할머님이 하늘에서 굽어보고 계시다.”
아파트는 좋은 점이 꽤 있었다. 추운 날에도 외풍이 별로 없었다. 방뿐 아니라 거실도 따뜻하고 아늑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행복해했던 것은 돈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한옥을 처분한 돈이 그만한 아파트를 또 한 채 살 만큼 넉넉했다. 어머니는 동숭동 한옥에서 이웃으로 지내던 이들을 초대했다. 한껏 호기를 부려 음식을 장만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즐겨 드시던 맛깔스러운 반찬들을 갖춰 그들에게 대접하는 일이야말로 어머니가 가슴에 품어오던 소망이었다.
성현은 아파트 생활에 곧 익숙해갔다. 그의 방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었다. 성현은 자신의 배설물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꿈 같은 일이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 셈이었다. 새로 구입한 푹신한 의자도, 리모컨으로 조절할 수 있는 델레비전과 전축, 무선전화기도 참으로 편리했다. 벽을 따라 나지막이 놓인 정리장은 그의 깔끔한 성품에 꼭 맞는 가구였다. 더 이상 몸이 나아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샬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늑한 방에 편안히 누워 그는 아름다운 꽃무늬로 두배된 천장 반자*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사 남매를 불러 모아 남은 재산을 나눈 때는 막냇동생 승현이 제대하여 대학을 마저 마친 후 혼처가 정해지고 나서였다. 성현에게도 정희에게도 그녀는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 몸이 성치 않은 성현이야 누구보다도 돈이 있어야 했고, 대학에 다니지 못하고 시집을 간 정희도 남편보다는 돈을 믿고 사는 것이 옳을 듯싶었다. 욱하는 성품의 사위 때문에 어머니는 속을 많이 끓였다. 외손자 남매가 유치원에 다닐 정도로 컸는데도 정희는 짧은 소매의 옷을 잘 입지 못했다. 피멍 자국이 조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승현의 결혼, 우현의 첫아들 탄생. 이러구러 즐겁고 분답한* 일들로 꿈같은 날들이 흘러갔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아파트의 외벽을 끼고 성당이 있었다. 주말이면 성당의 종소리가 어김없이 들리곤 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어머니가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는 못 하는 일이 없으시다. 앉은뱅이도, 장님도 고쳐주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천국에 간단다, 성현아. 아버지도 천국에 계실 거야, 할아버님도, 할머님도.”
어머니는 몇 달 후에 영세를 받았다. 어머니의 청으로 성당의 봉사자들이 찾아왔다. 한 달에 두 번, 그들이 성현의 몸을 씻기고 이발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성현씨, 현씨를 위해 기도할게요.”
성현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도…… 기도 따위로 해결될 일은 없었다. 그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 하느님뿐 아니었다. 부처님도, 공자님도, 이 세상의 어떤 강력한 힘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고쳐주지 못했다. 자신의 몸을 고치지 못한다면 그들은 신도 무엇도 아니었다. 스스로의 몸에 대해 앙앙불락하지만* 않는다면 그리 모자란 것이 없다고 성현은 생각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었다. 평온했다.
분노
동생들의 발걸음이 별 이유 없이 잦아졌을 때에도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지 않았는데도 그는 그저 무심했었다. 우연히 말을 꺼내었다가 그는 가슴에 선불*을 맞은 듯 놀랐다. 저녁을 먹은 후 남자들이 모두 성현의 방에 들렀을 때였다.
“무, 무슨 일이라니? 아냐 형, 아무것도. 어머니가 약하시니까 그저…… 그동안 우, 우리가 어머니께 너무 부, 불효한 것 같아서.”
우현이 깜짝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딱히 감출 일도 아니라니까요.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집안의 장남이잖아요.”
줄담배를 피우며 새로이 말을 꺼낸 이는 정희 남편 강 서방이었다.
“감추기는 뭘, 이 친구는?”
우현이 성급히 말을 돌렸다. 성현은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해봐. 무슨 일이야.”
글쎄 아무 일도, 우현이 얼버무렸다. 강 서방이 불끈 말을 질렀다.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라니까요. 아닌 소리로, 장모님 돌아가시면 누가 제일 문젠데…….”
“어, 어머니가 돌아가셔? 무, 무우우슨.”
성현의 입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이 고장 난 시계추처럼 마구 돌아가고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마음을 안정해야 한다고 그는 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그의 사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미워서 어쩔 줄 몰랐다. 가슴이 터지는 듯했다. 가슴을 싼 겹겹의 세포들이 갈가리 찢어져 마구 흩날리는 기분이었다.
“아냐, 형. 아니라니까.”
우현이 그의 손을 잡았다. 성현은 우현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성현의 이가 딱딱 부딪쳤다. 무으아우어어어으으. 무슨 말인지 자세히 물어야 했다. 무우어어오오오우어. 입이, 일그러진 입이 제자리로 와주지를 않았다.
“내가 말할게, 형.”
옆에서 외면하고 있던 승현이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잘 들어 큰형. ……어머니가 암이래. 골수암. 얼마 못 사신대. 지금까지도 많이 아프셨지만, 앞으로는 더 많이 아프실 거야. 몇 달 못 사신대.”
방 안에는 고요가 흘렀다. 그들은 모두 얼굴을 돌렸다. 성현은 한참 동안 버르적대었다. 자신의 사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자신의 체머리가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그는 자신의 온몸에 못이라도 박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우현이 나지막이 뇌까렸다.
“형을 무시해서가 아냐. 어머니도 모르고 계셔. 형이 알면 어머니가 금방 눈치 채실 것 같아서. 어머니가 당신의 병을 아시면 지레 돌아가실 것 같아서. 그리고 형도…… 형도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꾸이이어어어으우우우. 이것은 꿈이다, 악몽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조용히 해, 형…… 어머니가 눈치 채셔.”
그는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그는 눈을 똑바로 크게 떴다. 360도를 돌아낼 듯이 그의 목은 양쪽으로 무섭게 돌아갔다. ΞI는 의자에서 그대로 허물어져 내려 이부자리 위에 고꾸라졌다. 그제서야 목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뒤틀린 입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꾸우우이이아아오오오우으으. 이것흔 꿈이다, 악몽이다. 그는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하느님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조물주가 존재한다면 그에게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을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여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하느님, 주위 사람들의 같잖은 눈길과 동정 속에서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도록 자신을 규정한 하느님, 집안의 기둥이신 아버지를 빼내어가 버린 하느님, 이제 겨우 안정이 되어 한숨 돌리고 나니 보란 듯이 어머니의 목숨을 요구하는 잔인한 하느님. 이럴 수는 없었다. 누구도 어머니를,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라 하더라도 그의 어머니를 마음대로 휘저을 수는 없었다. 도대체 어머니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이런 일을 벌이는 이는 하느님도 절대자도 아니었다. 극악한 악마, 뱀, 온몸에 부스럼이 난 해괴한 도깨비나 할 짓거리였다.
밤이 가고 다시 아침이 왔다. 아침 햇빛이 아파트 창을 통해 그의 방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쏟아져 내렸다. 그는 어머니가 창가에 놓아준 난초분들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꿈이다, 그는 생각했다. 그는 시를 읊듯이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꿈이다, 너무도 험한 악몽이다. 그는 거실을 건너 어머니가 계신 안방으로 기어들어 갔다. 어머니의 얼굴이 핼쑥했다. 그는 자신의 온 내장이 녹는 듯한 뜨거운 불길을 억지로 삼켰다. 그는 어머니의 여윈 손에 자신의 얼굴을 대었다. 그는 어머니의 말을 다시 회상했다.
너하고 내가 한날한시에 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먼저 죽으면 네 걱정에 눈을 못 감겠고, 네가 먼저 죽으면 내가 가슴 아파서 안 되겠고.
그렇다. 자신도 어머니와 함께 죽으면 그뿐이었다. 참으로 이 흉한 삶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잿빛으로 초췌한 어머니가 눈을 떴다.
“성현아. 왜…… 어디 불편하냐.”
성현이가 웃으며 대꾸했다.
“아뇨. 아버지 생각이 나서요.”
어머니가 눈을 다시 감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래…… 아버지가 보고 싶구나. 왜 이리 온몸이 아픈지. 병원에서는 아무 일 없다는데도.”
눈물이 성현의 뺨을 타고 흘러 어머니의 손을 적셨다.
“어머니. 오래 사세요. 어머니 돌아가시면 저도 죽어요.”
어머니가 빙긋 웃었다.
“그럼. 우리 성현이를 두고 에미가 먼저 죽을 수 있나.”
어머니가 손을 뻗어 성현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다시 잠드는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은 꿈이다, 악몽이다. 그는 눈을 부릅떴다. 인간 역시 그저 다른 짐승들처럼 이 땅에 태어나서 살다가 어느 날 죽어갈 뿐이다. 하느님의 섭리,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이라는 존재, 그런 것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넨 허구일 뿐이다. 하느님은 없다. 그는 어머니를 대면하지 않았다. 독실한 신자가 된 어머니 앞에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끔찍한 절망과 배반감 속에서 그는 이를 갈았다. 그는 삶에 대해서 심한 분노를 느꼈다. 이 지긋지긋하고 우스꽝스러운 삶. 자신을 마음대로 농락하고 자신에게 마음대로 침을 뱉고 일방적으로 뺨따귀를 때리는 삶. 자신의 삶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은 무엇 이었는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도 용서할 수 없었다. 해가 뜨고 해가 졌다. 어머니는 점점 더 힘을 잃어갔다.
방사선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는 마구 토하고 괴로워했다. 그런 와중에서 성현은 예산댁에게서 밥을 받아먹었다. 때맞춰 식욕을 느끼고 음식을 맛있게 받아 넘기는 자신의 몸뚱이에 대해 그는 분노했다. 자신은 인간도 짐승도 아니었다. 그러나…… 뻔뻔하고 염치없기로 치자면 신도 마찬가지였다. 조물주를 포함하여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세 번째의 암 치료를 받으러 새로 입원하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식들이 알고 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꼭 이십 년이로구나. 아버지를 보내며 내가 약속했었지. 앞으로 이십 년만 더 살고 당신 곁에 가겠노라고. 내 몸과 마음을 백옥같이 깨끗하게 간직했다가, 아이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당신 곁에 가겠노라고. 이제 이십 년이 되었구나.”
정희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왜 이십 년이라고 하셨어요. 삼십 년, 사십 년이라고 하시지. 저희는 어떻게 하라구요.”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띄엄띄엄 이어졌다.
“그때는 이십 년도 너무 길어서…… 너무 아득하고…… 너무 멀고 끔찍해서.”
성현은 어머니의 얼굴을 외면했다. 그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성현의 손을 찾아 잡으며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성현아. 아버지가 엄마를 부르는 것은…… 네가 이제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판단하신 거다. 그렇지? 우리 성현이가…… 이렇게 의젓하게 어른이 되었으니 무엇보다 엄마는 그게 기쁘다.”
네 번째의 방사선치료를 위해 다시 병원에 들어가는 어머니는 이미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치료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아예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눈빛이 참으로 자닝했다.* 그 순간이었다. 살가죽만 남은 어머니의 손에 꼬옥 쥐어진 묵주*를 보며, 그는 불현듯 어머니의 몸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의 다른 곳이 아니라 어머니 몸속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어머니가 얼른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할머니 곁에 평안히 가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배려였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고통과 좌절, 뜻 모를 분노로 점철된 단련의 시기인 모양이었다. 그는 그날 밤 어머니가 벽에 걸어놓은 십자가를 보고 처음으로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는 하느님, 이제 더 이상 어머니를 심하게 다루지 마세요. 그냥 얌전히 데려가세요. 부탁이에요.”
어머니는 일주일 만에 시체처럼 늘어진 몸으로 돌아왔다. 머리카락이 빠져 머리통이 훤히 드러나고 입술은 부르트고 갈라져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어머니는 물 한 모금조차 넘기지 못하고 토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웬만치 진정되자 동생들은 다른 방으로 가서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입원한 동안 교대로 병실을 지키느라 동생들도 젖은 빨래처럼 늘어져 있었다. 성현은 밤새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 깊이 팬 주름, 뺨에 피기 시작한 검버섯. 홀몸으로 자식들을 키우느라 몸을 아끼지 않으신 어머니, 성치 못한 자신의 뒷바라지 때문에 밤잠을 설치시던 어머니. 어머니처럼 착하고 진실된 분은 참으로 없었다. 어머니는 인간이 아니었다. 성녀였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정말…… 정말 어머니는 자신에게 아무 책임이 없었을까? 자신이 이렇게 불구가 된 데에 어머니는 전혀 책임이 없었던 것일까? 아무런 죄도, 마음에 거리낄 아무런 실수도 없이 이렇게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어떻게 자신만, 왜 동생들은 멀쩡한데 나만!
속 시원히 어머니께 여쭤보면 되잖아.
자신의 귓가에 앙증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참으로 자신은 악독한 인간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이제는 삭정이가 되어 죽음을 앞둔 어머니에 대한 모독이었다. 어머니의 이제까지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사악함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계속 그의 귀에 대고 고시랑거렸다.*
앞으로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이제 곧 돌아가시면. 정신을 잃으시면. 평생 동안 의심하고 사느니 속 시원하게 여쭤보는 것이 낫잖아, 안 그래?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귀를 방바닥에 마구 짓찧었다. 그러나 소리는 더욱더 거세져 갔다.
용서하면 되잖아! 설사 어머니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셨더라도. 어쩌겠어? 어머니를 용서하면 될 거 아냐. 이제 와 어쩌겠느냐구?
어느새 그는 팔을 들어 어머니를 가만가만 깨우고 있었다. 자신은 그런 놈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짐짓 자살 소동을 피워 가뜩이나 곤고한* 아버지를 괴롭힌 어리석은 놈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에 자신을 쳐다보아 주지 않은 사실을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꼬부장하게* 가슴에 묻어둔, 비열하고 유치한 놈이었다. 이제 그는 어머니를 괴롭히고 있었다. 아무런 이득도 없이 다만 궁금함 때문에, 끝없이 밀려오는 격심한 통증을 잠깐 잊고 잠이 든 어머니를 깨우는 자신은 참으로 극악한 인간이었다.
어머니의 눈에 가까스로 초점이 잡혀왔다.
“여쭤볼 일이 있어요. 사실대로 말씀해주셔야 해요.”
그는 조용히 입을 떼었다.
“어머니, 내 몸이…… 언제부터 이랬어요. 정말로, 태어날 때부터 이랬어요? 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이렇게 태어났어요?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었어요?”
성현을 그윽이 바라보던 어머니가 힘없이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눈에 꾸덕꾸덕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해대었다. 그렇다. 범인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갓난 자신을 떨어렸든지, 아니면 배 속에 있을 때 무슨 실수가 있었던 것이 틀림 없었다. 모든 것은 어머니 책임이었던 것이다. 그 속죄로, 그 괴로움 때문에 어머니는 평생토록 성현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링거주사를 꽂은 어머니의 부은 손을 바라보았다. 주삿바늘을 수없이 꽂아대어 손등은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울지 않았다.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용서해드릴게요.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놀라지 않을게요. 어머니가 실수하셨어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다시 눈을 떴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 힘들겠지, 성현아? 너…… 이 에미 없이 혼자 사는 게…… 아무래도 힘들겠지? 어쩌면 좋으냐.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어머니의 흐느낌 속에서 그는 진심으로 통회했다.* 어머니에게 품어왔던 의심은 참으로 허황한 것이었다. 자신은 얼마나 가증스럽고 추악하고 비열한 인간이었던가. 몸보다도 마음이 더욱 응등그러져* 있는 이 못난 자식에게 어머니는 얼마나 성스럽고 격에 맞지 않는 귀한 분이셨던가. 그는 더 이상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다.
그는 그길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시는 것만이 가장 좋은 일이었다. 그것만이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속을 썩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 순간이 하루, 한 시간씩 다가오고 있었다. 맨바닥에 그대로 엎드린 채 밤을 지새웠다. 자신처럼 극악한 놈은 눈물을 흘리는 것 자체도 죄악이었다.
어머니의 유언대로 어머니의 장례는 집에서 치러졌다. 병원 영안실을 쓰면 성치 못한 성현이 참가하기 어려울 테니 집에서 치르도록 하라는 말씀이 어머니가 남기신 단 한마디의 유언이었다.
성현은 맏상주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대소변을 보거나 아니면 피곤이 몰려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는 꼬박 벽에 기대어 앉은 자세로 빈소를 지켰다. 그가 앉아 있는 자세로 문상객들을 맞는 일은 성한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힘들어하는 것보다 수백배 수천배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버텼다.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인사이자 속죄였다. 자신의 기력이 다하여 이대로 죽는다 해도 그의 자리는 그곳이었다. 그는 너무나 아름답고 푸근한 어머니의 영정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식구들과 함께 선산에 올랐다. 우현과 승현이 그를 번갈아 업었다. 그는 펴지지 않는 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께 절을 올렸다. 그로써 어머니는 평 안해지셨다. 오월이었다. 좋은 계절이었다. 산등성이에 흐드러지게 핀 아카시아 꽃내가 향기로웠다.
살아 있음
집에 돌아온 성현은 그대로 곤드라졌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 날 늦은 아침이었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우현과 우현의 처였다.
“일어났수. 배고프지, 형?”
우현이 가지고 온 국에다 밥을 말아서 성현의 입에 순가락을 대어주었다.
“그동안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잖아. 어머니가 아시면 너무 걱정하시겠수.”
그는 기계처럼 입에 음식을 받아서 씹기 시작했다. 자신의 저주받은 삶은 영원히 계속되리라. 살아 있음으로써 전혀 가치도 보람도 없는 자신의 욕된 삶은 영원히 계속되리라.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 죽음보다도 훨씬 못한 삶은 영원히 영원히 이어지리라. 그는 음식을 오래오래 씹어 삼켰다.
그는 당분간 우현의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드나들던 예산댁을 우현의 처가 다시 불렀다. 성현에게 익숙한 예산댁이 오게 되어 다행이었다. 정희 부부와 승현 내외도 그를 보기 위해 자주 왔다. 정희는 성현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돌아가실 때까지 딸로서 화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나는 정말 몰랐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강 서방을 따로 불러서 울면서 부탁하셨대. 당신이 가시면서 사위 술버릇과 손찌검 버릇을 가져가시겠다고. 제발 당신 달라고, 내놓으라고. 종잇장처럼 얇은 어머니의 손힘이 얼마나 세던지…… 강 서방이 어머니 손을 마주 잡고 실컷 울었대. 어머니를 마지막 보내드리면서도 그렇게 속을 썩여드렸으니……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사람의 마음이 이상했다. 정희의 흐느낌에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는 어머니에게 자신 말고도 자식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당혹스러웠다. 어머니의 네 자식 중의 하나. 그렇다. 자신은 단지 사분의 일에 불과한 자식 하나였다. 그런데 성현은 자신이 단 하나의, 어머니의 목숨과도 같은 자식이라고 착각해왔던 것이다. 사지가 멀쩡한 우현도, 승현도, 정희도…… 자신만큼 귀한 어머니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씁쓸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도 괜히 가슴이 미어져 내렸다. 그는 푸후후 억지로 웃었다. 자신이야말로 끝없이 투미하고* 미련한 짐승이었다.
우현의 집에 기거하고 있으려니 우현의 처에게 미안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승현과 정희 식구들이 자주 찾아와서 집 안이 번잡스러워지니 모두 다 자신의 탓인 것 같아 점직했다.* 그러나 그가 우현과 따로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까탈스러움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버르적대는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현의 처야 그러는 일이 없었지만 철모르는 다섯 살, 네 살의 조카 녀석들은 아무 때나 성현의 방을 열어젖혔다. 그 일을 가지고 싫은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우현과 우현의 처로서는 아이들로 하여금 큰아버지를 스스럼없이 대하게 함으로써 그를 심심치 않게 해주려는 배려였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특히 용변을 볼 때에는 너무나 불안해서 며칠씩 변비가 오기도 했다.
“따로 나가서 살아야겠어.”
물론 우현은 극구 말렸다. 자기 식구들이 무언가를 잘못했으면 양해하라며 사과하기 바빴다. 성현이 편안히 웃었다.
“나도 혼자 살아봐야지. 얼마나 신나는 일이야? 예산댁만 와주면 걱정없어.”
어머니와 함께 살던 아파트는 이제 필요 없었다. 13평형의 작은 아파트를 얻기로 했다. 어머니가 굳이 방이 네 개나 되는 큰 아파트를 고집한 데에는 우현 내외와 함께 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이제 연탄 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뜨거운 물도 잘 나오는 아파트니까. 우현이 내외가 원하면…… 내가 먼저 말을 꺼낼 수야 없지 .
어머니는 웃으면서 빈 방 두 개를 둘러보시곤 했다. 그 어머니는 이제 땅속에 묻혀 있었다. 짐을 꾸리느라 방으로 거실로 ˙바삐 움직이는 우현을 보며 그는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원을 풀어드리지 못한 사실을 알면 우현은 너무나 가슴 아파할 터였다. 따지고 보면 우현, 정희, 승현 모두 착하고 욕심 없는 효자 효녀였다. 자신만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심신을 괴롭힌 사악한 자식이었다.
자신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는 날, 그는 우현의 차 안에서 우스갯소리처럼 말을 꺼내었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줘. 나는 내 몸이…… 별로 마음에 안 들거든.”
우현의 안색이 변했다. 그가 길 옆에 차를 세웠다.
“죽다니. 형,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성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웃었다.
“사람은 언제고 죽을 테니까…… 화장을 한 후 뼛가루는 산으로 들로 멀리멀리 뿌려줘. 내가 못 가본 아주 멋있는 데에다. 설악산, 제주도, 아주 경치가 좋은 곳으로. 아버지 어머니 산소 곁에는 절대로 뿌리면 안 돼. 거기는.”
갑자기 목이 잠겼다. 성현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의 고개가 대신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경치가 별로라서 말야. 너, 귀찮다고 거기다가 뿌리면 안 된다. 나한테 혼난다. 알았냐?”
우현이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거든 얼른 전화를 걸어.”
이사를 한 첫날, 우현은 석 대의 전화기를 사다가 거실과 방, 화장실에 놓아주었다. 성현의 호방한 흰소리*를 들으며 우현 내외는 밤이 늦어서야 뒤숭숭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혼자 남았다. 처음으로 혼자만의 밤을 지새웠다. 한편으로는 불안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유로웠다. 그는 말을 걸었다. 벽에게, 문에게, 창문에게, 집 안의 모든 물건들에게.
“잘 지내보자. 내가 어쨌든 너희들 주인이니까. 까불면 없다.”
그는 이불도 제대로 덮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새벽이었다. 그는 거실로 천천히 기어 나왔다. 으어어어어어,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의 아파트는 십 층, 정동향이었다. 해가 먼 산 위로 막 떠올라 그의 눈을 대번에 찔러대었다.
“고마워, 고마워.”
그의 아파트에 맨 처음으로 들어온 손님은 붉은 해였다. 햇빛은 어느새 그의 몸을 감싸고 테라스와 거실을 가득 채우고 현관문에까지 깊숙이 가 닿았다.
어느 해인가 그의 가족들은 바다에 간 적이 있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탈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와, 그의 훨체어와, 어린 동생들을 챙기느라 고생이 많았다. 밤이 늦어서야 그들은 바닷가 여관에 도착했다. 성현은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그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사위*가 온통 깜깜했다. 아버지와 그, 둘뿐이었다. 아버지는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그를 부릎에 앉혔다. 싸르륵대는 바닷물 소리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이윽고 바다 끝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바다와 하늘이 한데 뒤엉킨 먼 저쪽에서 새빨간 덩어리가 솟아났다. 해는 동그랗지 않았다. 납작하고 네모졌다. 그 붉은 덩어리가 조금씩 위로 부풀더니 어느새 세로로 긴 타원형이 되었다. 빨강에서 주홍으로, 주황으로 색깔이 바뀌면서 해는 잠깐 사이에 두 개가 되었다. 하나는 하늘로 둥실 떠오르고 하나는 바다로 가라앉았다. 오우우어어어오오오, 그는 너무나 신기하여 끊임없이 탄성을 질러대었다.
해다, 해야. 성현아.
바로 그 해였다. 먼먼 동해바다에서 하늘로 떠오른 해. 아버지의 그 해가 서울에까지 날아와 그의 거실에 기어들고 있었다. 아버지, 아, 아버지. 그는 마음 놓고 소리 내어 울었다. 아버지의 따뜻한 목소리와 너털웃음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두 팔로 윗몸을 일으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오래오래 해바라기를 했다. 번데기에서 갓 나온 나비가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리는 모양이 꼭 이러하리라. 그는 이제야…… 성충이 된 것이었다.
현관문을 한참 동안 달그락대며 따고 들어온 이는 예산댁이었다.
“잘 잤어, 성현이? 새집서 좋은 꿈 꿨남?”
그는 환히 웃었다.
성현은 예산댁의 시간에 맞추어 자신의 생활을 맞춰나갔다. 오전 아홉 시가 지나 아침밥을 먹었고 오후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저녁을 먹었다. 한 번의 배설은 아침녘에 했다. 저녁을 일찍 먹으니 처음에는 좀 배가 고팠지만 곧 익숙해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성현의 마음에 든 것은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바깥 풍경이었다. 자동차가 지나는 큰길, 큰길 건너 납작하게 옆드린 이삼 층 높이의 주택가, 주택가 뒤쪽으로는 나지막한 언덕과 먼 산줄기. 하늘, 산, 들, 거리, 바뼈 움직이는 인간들. 그는 그들을 실컷 내려다보고 또 보았다.
저녁이 되면 그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동기간들의 안부 전화가 오면 즐거운 목소리로 웃었다. 성현 쪽에서도 제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참견을 하는 적도 있었다.
날씨가 추워진대요, 아이들 옷 좀 단단히 입히세요.
그 동네가 내일 단수라니까 물을 받아야겠네요.
승현의 처는 ‘큰아주버님 말투가 어머니를 똑 닮았다’며 깔깔거렸다. 그녀는 성질이 급한 면은 있었지만 목소리가 성우처럼 곱고 예뻤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인간의 문화 문명이 나날이 발달해가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양치액이 특히 고마웠다. 칫솔로 이를 닦기 어려운 그는 하루에도 몇 번 입속을 개운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좋았다. 그리고 그의 거실에 찾아드는 햇빛. 물론 그는 가끔, 너무나 쓸쓸했다. 여자, 아내…… 그런 생각은 물론 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살아 움직이는 무엇이, 자신의 몸놀림이 아닌 독립적인 무엇이 있으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며칠 동안의 궁리 끝에 그는 예산댁에게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다 달라고 했다. 그녀가 펄쩍 뛰었다.
“개까지 시중을 들란 말여? 나보고 개새끼 똥오줌까지 받아내란 말여 시방? 이 꼴이 모자라서?”
예산댁은 심성이 고운 여자는 아니었다. 화가 날 때에는 당장 세상을 뒤엎어버릴 듯 포달*을 부렸다. 그러나 그는 예산댁을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예산댁 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있었다.
“그런 양반은 없고말고. 세상에 에미라고 다 똑같은 줄 알어? 그런 어머니는 천하에 없구먼. 천당에 가셨을 게여. 만일에 못 갔다면 그건 하늘도 아니지. 하느님 부처님 다 없는 것이지.”
예산댁은 진심으로 그의 어머니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예산댁의 흠은 다 가리고도 남았다.
동생들은 자주 그를 찾아왔다. 직장이 있는 우현과 승현 부부는 주말 저녁에 주로 왔다. 우현의 처는 이틀, 늦어도 사흘에 한 번씩은 집에 들러 불편한 점이 없는가 둘러보았다. 정희 내외는 잘 오지 못했다. 강 서방의 직장이 대구로 옮아가는 바람에 아이들까지 모두 그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잊지 않고 시외전화를 넣어 안부를 묻곤 했다.
창문 밖 하늘은 때로는 흐리고 비가 왔다. 안개가 자우룩이 끼는 날도 있었다. 은행나무들의 푸른 잎이 바래는가 싶더니 어느새 노랗게 물이 들었다. 가을이었다. 문득문득 자신이 왜 계속 사는가,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었다. 자신은 왜 사는가. 텔레비전 드라마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왕 살던 삶이니까 그냥? 큼직한 수레바퀴가 굴러굴러 어딘가 장애물에 부딪혀 멈출 때까지? 너하고 나하고 한날한시에 죽으면 좋으련만.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반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가끔 어머니의 꿈을 꾸었다. 동숭동 한옥에서 빨래를 하시거나 장독의 뚜껑을 여닫고 있었다. 꿈속의 어머니는 그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것이 좀 섭섭했다.
그는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실 베란다로 내다보이는 새벽 풍경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무엇이 있었다. 먼 산에서 동이 트는가 하면 어두운 사위가 온통 진한 잉크빛으로 바뀌었다. 그 검푸른 투명의 색깔은 또 어느새 파랗고 깨끗한 물이 되어 모든 집과 나무와 산들을 헹구어내는 듯했다. 그때쯤이면 앞동에 우유 배달을 하는 소년의 기우뚱대는 자전거 솜씨가 웃음을 자아내었다. 또한 그때쯤이면 거의 틀림없이 현관 앞 복도를 툭탁대며 뛰는 발짝 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에 사각대며 떨어지는 신문 소리가 상쾌했다.
모든 일상이 자리 잡혀가자 예산댁이 꾀를 부리기 시작했다.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예산댁은 얼굴을 찡등거리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온몸이 쑤시고 결리니 이제 나도 죽을라나 벼. 내 팔자에 어느 하루 방구들 지고 누울 수도 없고.”
성현은 그녀를 방에서 쉬도록 했다. 13평형의 아파트에는 방이 하나뿐이었다. 예산댁이 누워 있는 동안 그는 거실에 있었다. 뭐, 괜찮았다. 베란다 문을 통하여 집과 거리와 사람들과, 산과 들과 하늘을 보았다.
그 일이 예산댁에게는 너무나 쉽게 버릇이 되었다. 그녀는 성현의 집에 와서 오전 내내 그의 방을 차지하구는 코를 골며 잠을 자거나 아니면 자기 식구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어대었다. 점심 때가 되면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섯 시가 가까워지면 예산댁은 그를 재촉하여 저녁밥을 먹였다. 그릇들을 치워야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저녁밥은 네 시 반에서 때로는 네 시, 세 시 반으로 앞당겨지기도 했다.
“내가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겠어서 말여. 몸이, 몸이 아니라니께. 내일 아침에도 좀 늦을 것 같어. 아침에는 여기 바닥에 놓인 것 먼저 먹고. 그다음에 냉장고에 있는 것 먹고 말여. 그릇은 여기 양푼에 담아놓고. ……워쩌겄어, 이, 몸이 말을 안 들으니께.”
예산댁에게 정기적으로 월급을 주는 일은 우현의 처가 맡았다. 예산댁은 자신의 행실이 그녀에게 알려짙까 봐 꽤 신경을 썼다.
“내 할 일은 어쨌든지 다 하잖여? 워쩌겄어. 아무리 몸이 아퍼도 내가 성현이를 책임져야지. 돌아가신 아줌니를 봐서라도. 아이그 아줌니…… 천당에 가셨겄지.”
어머니 이야기만 꺼내면 성현이 꼼짝 못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이용하고 있었다.
드디어 예산댁은 며칠에 한 번씩 날을 거르기 시작했다. 그는 우현의 처에게 예산댁의 소행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화했을 때 예산댁이 없으면 말을 얼버무리느라 애를 먹었다.
“잠깐, 슈퍼에 심부름 보냈어요. ……그럼요, 열심히 잘해요. 걱정말아요.”
집안이 더럽고 깨끗하고는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식사였다. 식사가 불규칙해지니 아무래도 속이 편치 않았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한 끼 식사만으로도 하루를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놀랐다. 멀쩡한데요, 그는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게 말을 건네었다. 어머니는 식구들이 세끼 식사 중 한 끼라도 부실하게 먹는 눈치면 큰 걱정을 하곤 했다.
해가 저물면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이 끝나는 시각이면 라디오를 켰다. 그리고 그는 잠깐잠깐 눈을 붙이면서 희봄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기다렸다. 그는 아예 거실로 이불을 끌어가 거기서 잠을 자기도 했다. 잠자리에 누운 채로 새벽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근사했다. 어머니가 안 계셔서 편한 점도 있네요, 그는 어딘가에서 듣고 계실 어머니를 향해 키득대었다. 난방이야 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찬 기운이 도는 베란다 쪽에서 잠자는 성 현을 보면 어머니는 또 한바탕 걱정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작은 사건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예산댁이 오지 않은 날 아침에 우현의 처가 집에 들렀다. 성현은 급히 둘러대었다.
“예산댁이 조금 아까 전화를 했어요. 오늘 좀 늦는다고. 금방 올 거예요. 제수씨는 그만 가세요.”
그녀는 굳이 예산댁을 보고 가겠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예산댁은 점심때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우현의 처가 그의 점심밥을 정성스레 차려 왔지만 그는 먹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짐짓 배가 아프다고 엉너리*를 쳤다. 그녀가 떠주는 밥을 받아먹기가 너무나 거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예산댁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집에 계시네요? 지금 좀…… 우리 집으로 오시지요. 아뇨, 아주버님 아파트 말고, 우리 집이요. 말씀드릴 일도 있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예산댁은 오지 않았다. 아침마다 우현의 처가 성현의 아파트에 왔다.
“괜찮아요, 제가 먹여드릴 게요.”
그녀가 숟가락을 들이대었다. 하는 수 없었다. 빵만으로 몇 끼를 버틸 수는 없었다. 그는 예산댁의 안부를 물었다. 우현의 처가 대답했다.
“일을 못 하겠다고 해서요. 지금 다른 좋은 분을 알아보고 있어요.”
성현은 그녀를 불러 앉혔다. 새로 오는 파출부와 익숙해지기보다는 아무래도 예산댁이 나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어머니의 추억이 있지 않은가. 예산댁이 연이어 며칠을 오지 않는다 해도, 한 달 보름을 일하지 않고 버둥거린다 해도 그는 예산댁을 다른 이로 바꿀 생각이 없었다. 우현의 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그 고마워, 우리 착한 성현이. 내야 사실 다른 집에 일을 가도 마찬가지지마는, 마음이 그리 섭섭하더라구. 돌아가신 아줌니가 눈에 삼삼한 게. 고마워, 성현이.”
예산댁이 너무나 기뻐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은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눈은 하늘에서 내릴 뿐 아니라 아래쪽으로부터도 일구어서 올라왔다. 어지러이 날리는 눈송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는 아슴푸레 잊혀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할아버지는 그저 그윽이 그를 내려다보곤 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확실하지 않지만 흰 한복 두루마기가 꽤 치렁거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할머니. 할머니는 성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머니에게도 무척 쌀쌀맞게 말씀을 하곤 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모를 일이다. 어머니가 그토록 할머니를 그리워한 것을 보면 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네가 울음을 그치고 점잖아지니까 할머니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신흥사 큰스님이 용하긴 용하시다며. 할아버지가 그대로 병석에 누워 계신데도 네 보약을 지어 와서는 얼른 달여 먹이라고…… 할머니 은공을 잊으면 안 된다. 얼마나 너를 아끼셨는데.
설이 다가왔다. 한복을 받쳐 입은 어린 조카들이 절을 하는 모습은 정말 귀엽고 깜찍했다. 특히 우현의 큰딸은 어리광을 잘 떨었다. 우현의 처가 또 예산댁에 대한 말을 꺼내었다. 예산댁이 성실해졌던 것도 잠깐, 또다시 빠지는 날이 있음을 그녀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성현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알아요, 제수씨 마음은. 그런데…… 더 이상 말하지 말아요. 예산댁이어야 해요.”
그리고 다른 동기간들에 게도 당부했다.
“이제 됐어. 바쁘게 사는 것 뻔히 아는데 자꾸 오려고들 애쓰지 말고. 내가 어디 어린애냐? 사람 무시하지 마라.”
그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생활이, 자신에게는 자신의 생활이 있었다. 동생들에게 더 이상 폐가 될 수는 없었다.
성현은 자기 몫의 유산을 은행에 예금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살아갔다. 우현의 처를 통하여 예산댁의 봉급, 아파트 관리비 따위를 내었다. 그리고 남는 돈을 용돈으로 썼다. 그중의 대부분은 식구들의 생일, 기념일 따위의 선물값으로 나갔다.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별로 없었다. 그의 옷이라든가 자잘한 살림살이는 우현의 처가 대주었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항상 고마웠다.
성현의 수중에 돈이 있다는 사실을 예산댁이 알게 된 이후로 예산댁은 태도가 좀 묘해졌다. 성현에게 턱없이 잘하는가 싶다가 또 한편으로는 엉뚱하게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소변기를 청소한 다음에 일부러 제자리에 가져다 놓지 않아서 애를 먹인다든지 때 아닌 공치사를 늘어놓는 따위였다.
“내가 뭐, 여기 아니면 갈 데 없는 줄 아남? 성현이 네가 불쌍하니까 마음 약해서 있는 거지. 이년의 팔자야 아무리 뼛골 빠지게 일을 해주어도 누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고. 평생 동안 아둥바둥 돈 몇 푼에 목이 매여…… 오늘도 손주새끼가 감기에 걸려 캥캥거리는데 하루치 감기약 지을 돈이 없으니 말여. 이만 원만 있으면 병원비를 하겄는디 말여.”
그녀의 눈치가 빤했다. 성현이 돈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기간들이 보는 앞에서는 예산댁은 걸쌍스레* 일도 잘했다.
“워쩌겄어. 아줌니를 봐서라도 내가 성현이를 책임져야지. 전생에 무슨 빚이 있는지. 걱정들 말어유. 내가 있응께.”
우현이나 승현과 마주치는 날이면 으레 그녀는 따로 행하*를 건네 받을 것을 기대했다. 어쩌다 한번 지나치는 날이면 예산댁은 영락없이 그 돈을 성현으로부터 채웠다.
“내가 이렇게 몸이 부서진들 누가 알아줘? 세상에 못돼 먹은 것들. 즈이덜 편하자고 떠억허니 맡겼으면 다만 미안한 줄은 알어야지. 그깟 일이만 원 아껴 재벌 되겄구먼.”
때로는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라디오의 음악 소리를 크게 틀기도 했다. 아버지의 야위었던 얼굴이 떠오르면 그는 언제고 마음이 언짢았다. 아버지의 간암이 음주 때문이었다면 그 술을 마시게 한 장본인은 문성현 자신이 분명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가슴속의 응어리가 암이 된다면 분명히 성현 자신이 돌아가시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두 분에 대한 자책감만 아니라면 그는 내내 아버지 어머니만을 생각하며 지냈으리라. 그는 음악 소리에 맞춰 큰 소리로 노래를 지어 불렀다.
“성치 못한 제게 삶을 주신 어머니, 오늘도 안녕하세요, 오오. 저는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계속 살아가고 있어요, 오오. 나쁘지는 않아요, 견딜 만해요, 제 목소리 어때요? 오오.”
힘이 빠지면 빠질수록 머리가 깨끗해져 왔다. 상체에서 살이 빠지니 또한 마음이 홀가분했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아랫도리에 살과 근육이 붙지 않아 고민하던 때는 옛날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굵은 팔, 그리고 무언가 잡동사니로 가득 찬 가슴과 머리에서 불필요한 바람이 빠져나가면 마찬가지였다. 얌전히 옷을 개키듯이, 상체에서 바람이 마저 빠져나가는 날, 그는 편안하게 삶의 과정을 마칠 수 있을 것이었다. 삶, 죽음, 그런 구분이 딱히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봄꽃들이 활짝 피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된다. 어머니를 산에 묻고 돌아올 때의 아카시아 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훨체어에 실려 아버지와 동생들과 함께 동물원에 갔던 일은 오랫 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기억이었다. 봄인지 가을인지 아무튼 날씨가 꽤 쌀쌀했다. 담요를 무릎에 덮고는 있었다. 정말 신이 나는 날이었다. 파란 하늘, 솜털구름, 긴꼬리원숭이, 코끼리. 그가 오줌을 싸지만 않았어도 얼마나 좋았을까. 어렸을 때에는 조금만 긴장해도 너무 즐거워도 옷에 오줌을 지리는 버릇이 있었다. 성현이 갈아입을 옷이 모자라 식구들이 모두 서둘러 집에 돌아와야 했다. 그 일이 그때에는 그렇게 억울했다. 막냇동생 승현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동안 떼를 쓰며 울었다.
예산댁이 오지 않는 날이면 그는 냉장고를 열어 빵을 씹었다. 때로는 대낮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바깥을 내다볼 때도 있었다. 저녁이 되고 밤이 되었다. 밤이라 해서 그가 특히 우울해하지는 않았다. 해가 새로 뜨려면 먼저 져야 했다. 사방이 깜깜해져야 다시 새벽이 밝아올 수 있었다.
온 집 안을 마구 어질러놓기도 했다. 기분이 내키면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화장실 ˙바닥에 있는 걸레를 집어다가 거실을 닦기도 했다. 승현이나 우현에게 부탁해서 신문에 광고가 난 책들을 사왔다. 소설, 수필, 종교인들의 명상록들이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물론 그는 가끔, 너무나 외로웠다. 혼자라는 사실이 끔찍하여 우현 내외와 함께 살아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대하기가 너무 싫었다. 이 세상의 아무도, 예산댁조차도 십 층의 이 아파트 호수를 잊어버려서 아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한 달에 두 번, 성당 봉사자들의 방문은 계속 이어졌다. 성현˙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불행한 이에게 베푸는 봉사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자신처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리라. 다만·…… 새로 바뀐 봉사자들이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는 사실이 섭섭했다.
“성현씨, 영세를 받으시죠.”
성현은 말없이 웃으며 그들을 위해 준비해놓은 초콜릿이나 과자를 내밀었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기뻐했다.
“영세를 받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세요.”
봉사자들의 하느님, 어머니의 하느님. 그러나 성현은 자신을 하느님께 맡길 수 없었다. 하느님에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봉사자들의 하느님, 어머니의 하느님 품 안에는 아버지, 할머니, 그 외의 다른 많은 착하고 좋은 분들이 깃들여야 했다. 자신처럼 사악하고 비열한 인간은 가까이 범접하지 않아야 했다. 어느 소설의 넋두리처럼 자신은 아마도 전생에 지은 죄가 너무 흉측해서 장애인으로 태어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죄값을 치러야 했다.
연이어 이틀을 빠지고 나면 예산댁은 어김없이 순대나 호떡 따위를 내밀며 문간에서부터 너스레를 떨었다. 때로는 다른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너랑 똑같다니께. 전철역 입구에 너부러져 있는디…… 누가 비닐 봉지에 떡을 담아서 바닥에 놓아주더라. 그걸 밥이라고 먹더먼. 행복한 줄 알어. 너처럼 팔자 편한 이가 없어. 손 하나 까딱 않고 세상 편치 뭘 그려. 뜨뜻한 집에서 남이 해주는 뜨뜻한 밥 먹겄다. 오뉴월 개팔자지 뭘 그려.”
그녀는 갈수록 극악하고 교묘하게 돈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었다. 성현의 지갑에 직접 손을 대지 않는다뿐이지 성현의 돈이 몽땅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손주놈이 그렇게 목매달아 애태우는 로봇 한 개 이만 원, 아들 녀석 선보는 데 입고 나갈 티셔츠 하나 삼만 원, 집안 연탄아궁이 금 간 것 수리하는 데 쓸 비용 팔만 원, 성현이 돈을 아끼는 듯싶으면 그녀의 입에서는 갖은 비아냥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돈줄 쥐고 오래 살고 싶어? 그 돈 두었다 백살 천살까지 장수해, 장수허라구. 멀쩡한 부모 잡아먹고는, 웬만한 이 겉으면 혀 깨물고 자살이라도 했으련만.”
그는 예산댁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자신이야말로 추악하고 파렴치한 인간임이 분명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돈줄을 끌었다 당기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더러운 악한이었다. 그는 죽었어도 벌써 죽었어야 했다. 죽음이란 어떤 상태일까 그는 생각했다. 잉크빛의 새벽도, 소나기가 그친 산뜻하고 깨끗한 거리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상태. 신문이 사각대며 떨어지는 소리, 창문을 흔들어대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
예산댁의 횡포는 날로 심해져 갔다. 하루 걸러 빠지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집에서 쉬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집의 파출부 일을 해주면서 이중으로 돈을 받는 눈치였다. 봉급날이 가까워오면 예산댁은 어김없이 어머니에 대한 덕담을 늘어놓았다.
“아이그 우리 착한 성현이 아줌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아줌니 생각만 하면 내 가슴이 아직도 찌르르하다니께.”
당신 같은 버러지는 단숨에 해치워 버리지, 그는 영화에 나오는 무법자처럼 예산댁의 등 뒤에다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예산댁을 해칠 힘이 없었다. 그리고…… 예산댁은 그에게 어쨌거나 필요한 존재였다. 그녀의 도움 없이는 자신은 그나마 먹을 수도 배설할 수도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예산댁은 자신의 손자 건호를 데려오기 시작했다.
“성현이 심심할까 봐서. 같이 있으면 좋잖여? 말동무도 되고.”
아이 아버지는 벌이도 없이 집에서 빈등대는 중이고 아이 어미는 예산댁처럼 파출부 일을 한다고 했다. 다섯 살짜리 건호 녀석은 장난이 심했다. 녀석은 한순간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성현의 주위를 어지러이 돌고 그의 이부자리를 밟고 그의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손을 댔다.
“아찌, 아파? 아찌 다리가 왜 이래? 병신이야?”
그가 자신을 야단칠 힘이 없다는 사실을 재빨리 간파한 녀석은 갈수록 방자해져 갔다. 그의 몸을 발로 툭툭 차고 일부러 몸 위로 넘어지기도 했다.
다른 일은 참을 수 있었다. 녀석이 그의 귀와 코를 잡아당겨도, 라디오를 넘어뜨려 귀퉁이를 깨뜨려도 그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활이었다.
“이거 뭐야? 이거 내 거다?”
녀석은 어느새 그의 요 밑에 넣어두었던 장난감 활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깜짝 놀라 건호에게 팔을 뻗었다.
“이, 이리 줘.”
“싫어.”
“그거 이리 줘야 돼. 아찌 거야.”
“싫어.”
“아, 아줌마!”
“싫어! 내 거야!”
녀석이 아망*을 떨었다. 성현이 활에 집착할수록 그는 더더욱 활을 움켜쥐고 내놓지 않았다. 예산댁이 방에 들어와 되레 소리를 질렀다.
“나이가 시방 몇 살인데 아이허고 싸워? 그깟 댓가지가 뭐라고 애를 울리는 거여?”
“아 안 돼, 안 돼! 이리 줘, 빨리!”
성현은 마구 울부짖었다. 그의 목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싫어!”
녀석의 손에서 활이 망가지는 데에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나가, 나가! 나가라구!”
성현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우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현의 처가 받았다.
“나예요…… 예산댁 좀 나가라구 해요. 제발, 저 애 좀 데리구 가라고 하세요.”
성현은 힘이 없었다. 체머리가 흔들리자 어지러워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바닥에 머리를 떨어뜨렸다. 정신이 혼미해왔다. 예산댁이 수화기를 낚아채었다.
“새댁이구만? 아이그 오랜만여. 별일들 없고?·… 아니, 이게 시방 별일이 아니고, 우리 손주가 왔는디, 그저 놀자는디 저렇게 화를 내네. 어린애잖여. 어리광이 보통인감? 마흔 된 우리 큰애기.”
예산댁이 까르르 웃어대었다. 노끈이 끊어진 활이나마 녀석이 가져다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정말 가슴이 막혀 죽어버렸으리라. 예산댁은 우현의 처를 상대로 끝없이 전화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녀, 아녀. 우리 손주가 얼마나 얌전한디. 오늘 처음 따라왔지. 성현이가 심심헐 것 같어서. 괴롭히다니, 세상에 그런 일은 없지. 오기는? 올 것 없어. 내가 있잖여. ………글쎄, 아무 걱정 말라니께 새댁은?”
전화를 끊은 예산댁이 성현을 내려다보았다. 성현이 기진하여 이부자리에 홍건히 쏟아놓은 오줌을 보고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
“원 시상에. 뭐 뀐 놈이 화낸다더니! 오줌을 싸질러 놓고 할 말 없응께 애꿎은 애를 잡어? 죽어, 잉? 죽으라구. 똥내 오줌내 질려서 내가 죽을 판잉께, 제발 그만 죽어, 잉?”
죽음이란 모든 이와 모든 인연과 끊어지는 것. 세상 잡사에서, 몸과 마음이 겪는 모든 장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성현도 죽고 싶었다.
육 개월째 이어지는 텔레비전 주말 연속극을 그는 그저 버릇처럼 보고 있었다. 금요일이 될 때마다 내일이 토요일이고 내일 밤이면 연속극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 했다. 우연히 본 단막극에는 공교롭게도 극중 어머니가 암환자였다. 그는 또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며칠 동안 우울해했다. 삶은 그렇게 메워져 갔다. 며칠은 그런대로 괜찮게 때로는 반갑게, 그리고 또 대부분의 날들은 우울하고 슬프게. 노란 비닐 장판의 이음새에 낀 때를 보면서 그는 두 팔로 윗몸을 버티기가 버거움을 느꼈다. 몸이 많이 부실해진 모양이었다. 윗몸에 들었던 헛공기가 이제는 많이 빠진 모양이었다.
“성현씨 힘내세요. 하느님의 큰 뜻을 아실 날이 올 거예요.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도 다 존재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봉사자들은 항상 환하게 웃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기야 어머니에게…… 역설적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는 쓸모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귀한 희생정신과 헌신이 찬란히 타오르기 위한 도구로서. 성치 않은 자식을 통하여 어머니는 이 세상의 지고한 어머니 상을 완성한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어머니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하느님께는 그러할까? 졸렬하고 야비하고 어리석은 인간들. 나름대로 머리를 글려 자신은 남보다 낫다고, 자신만은 존재 가치가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인간이라는 종자들.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서 인간이 필요한 것일까? 하느님이 가진 무한한 사랑과 연민을 증명하기 위한 대상으로서?
꿈을 꾸었다. 어렸을 때 갔던 동해였다. 큰 배가 떠 있었다. 아버지가 배를 향해 그의 훨체어를 밀었다. 모랫바닥에 훨체어 바퀴가 빠져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를 업었다. 그러다가 그만 아버지가 주저앉았다. 아버지 바지가 다 젖어 올랐다.
차갑지요.
그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고개가 돌아가는 바람에 잘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울고 있음이 확실했다.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바다 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이었다. 무서울 때에는 무서웠다. 집 안이 울리도록 쩡쩡 소리를 지르고 술을 심하게 마셨을 때에는 천둥처럼 으아아아아 비명 비슷한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아버지 곁에 계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일인지 모른다. 인간이 죽으면…… 의식도, 영혼도 끝일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너무나 불안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아버지 어머니 묘소 옆에 묻혀도 되지 않을까, 한 줄기 빛처럼 날아드는 희망에 잠깐씩 가슴이 부풀었다.
예산댁의 손자 건호, 자신의 평화를 매번 깨뜨리는 그 녀석을 그는 하염없이 미워하고 증오하고 저주했다.
“나쁜 새끼 평생 빌어먹고 살 놈. 밥 한술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온갖 사람을 다 괴롭히고 살아라.”
우스웠다. 이 세상에서 그가 아는 모든 욕을 다 가져다 한데 붙이면 바로 자신의 처지가 되었다. 빌어먹을 놈. 평생 사람 구실 못 할 놈. 부모 속이나 더럭더럭 썩일 놈. 자신이 속수무책으로 건호의 장난감이 될 때마다 그는 푸후후후후 자조의 웃음을 날리곤 했다. 그는 문득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실체가 없으므로 다른 이로부터 괴로움을 당할 수도 없는 상태. 감정이 없으므로 슬플 수도 노여울 수도 없는 상태.
우현 내외는 성현의 마른 체구를 보고 걱정을 많이 했다.
“병원에 가봐야겠어, 형. 말라도 너무 말랐다구. 안색도 창백하고.”
그는 거부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병원은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힌 지 오래였다. 체념하고 돌아서는 우현의 뒤통수에 희끗희끗 섞인 새치를 보고 성현은 가슴이 내려앉았다.
늦가을 바람이 문을 흔드는 어느 날, 성현은 아무렇지 않게 ‘이제 죽어야 하지 않나’ 중얼거렸다. 그런 결단이 구체적인 죽음을 맞는 일보다 먼저 오는 것은 당연했다. 소변이 마렵기 전에 소변통을 찾아 놓아야 하는 것처럼. 완전한 어둠이 내리기 전에 거실 스위치를 올려두어야 하는 것처럼. 그가 죽는다면 누가 가장 곤란을 받을까, 그는 생각해보았다.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을 예산댁, 그리고 큼지막한, 살아 있는 장난감을 잃어버리는 건호 녀석.
“그것 하나는 맘에 드는군.”
그는 건호의 짓궂은 행동거지를 생각하며 얼른 죽어야지, 하고 중얼거렸다. 머리가 쿡쿡 쑤셔왔다. 거실에서 며칠을 자고 났더니 감기 기운이 있었다. 마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않고 성한 이들에게 얹혀 기생충처럼 살아온 사람의 삶치고는 끔찍이도 오랜 세월이었다.
아침을 먹을 시간이었다. 바닥에 내려놓은 주전자에서 물을 따르려다가 그는 주전자째 물을 옆질러 버렸다. 윗옷이 보리차에 흥건히 젖어 들었다. 주전자에는 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목이 말랐다. 주전자 주위에 쏟아진 한 모금의 물을 그는 개처럼 핥아 마셨다. 그리고 그는 몸을 끌어 다른 자리로 옮겨 갔다. 젖은 옷 때문에 몸은 이내 한기가 들었다. 예산댁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제 왔으니 내일이나 오면 다행이었다. 우현의 집에 전화를 결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우현은 이미 회사에 나갔을 터였다. 우현의 처에게 짖은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말하기도 뭣했다. 비몽사몽 잠이 들었다. 머리가 뻐개지는 듯 아팠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성현은 예산댁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바꿔 .”
“나는 할머니가 아냐. 건호야.”
작은 악마. 그놈이었다. 성현은 다시 말했다.
“건호야, 할머니 바꿔 .”
전화 가지고 장난질은? 예산댁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전화가 그대로 딸깍 끊겼다. 성현은 잠깐 엎드렸다. 잠깐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꽤 흐른 모양이었다. 그는 전화를 다시 걸 수 없었다. 수화기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위가 너무 깜깜했다. 팔을 휘저으면 수화기가 잡힐 것이 분명했다. 단축키만 누르면 우현의 집에 연락이 될 것이었다. 팔을 뻗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마구 흔들어 깨우는 사람은 예산댁이었다. 대낮이었다.
“이런 이런, 내 어젯밤 꿈이 그리 사납더라니께.”
예산댁이 허둥지둥 미음을 그의 입에 떠넣었다.
“글쎄, 왜 이리 사람 복장을 질러. 빵에는 손도 안 대고. 혼자 먹겠다고 했잖은감!”
그는 미음을 잘 삼킬 수가 없었다. 정신이 가물가물 꺼져갔다.
“괜찮으세요?”
어느새 우현의 처가 와서 근심스레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웃으려고 애를 썼다. 잘 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셔야 되겠어요.”
아뇨, 이번에는 확실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예산댁이 징징거렸다.
“시상에. 동기가 여럿이면 뭐 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들여다도 안 보는데? 아이그 불쌍한 우리 성현이. 어제저녁에 갈 때꺼정만 해도 멀쩡 했는디. 이를 워쩐대.”
예산댁이 울먹이면서 다시 미음을 퍼 넣었다. 그녀의 넋두리가 이어졌다.
“아줌니 살았을 적에는 이렇지 않었구먼. 성현이 밥 한 끼만 ˙부실히 먹어도 얼마나 걱정을 허셨는디. 다 필요 없다니께. 동기가 무슨 소용이랴? 시체를 쳐 나가도 모를 거여.”
성현은 우현의 처가 주는 해열제를 억지로 삼켰다. 온몸이 나른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자꾸 졸음이 왔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저희 집에 가세요. 아줌마도 내일부터 우리 집으로 오시구요.”
예산댁이 갑자기 당황하는 품이 역력했다.
“새, 새댁이 무, 무슨 시중을 든다구 그려? 아무래도 여기 따로 있는 게 낫지. 내가 있잖여? 내가 성현이 곁에 꼬옥 붙어 있는데 뭘 그려. 내, 돌아가신 아줌니 심정을 헤아려서라두……”
성현이 눈을 떠서 우현의 처를 바라보았다. 집안의 맏며느리 노릇을 묵묵히 잘하는 착한 제수였다. 성현의 말소리는 가을바람 소리처럼 연약했다.
“예산댁이 잘해주니까…… 걱정 말아요. 나는…… 아무 데도 안 가요.”
“그러지 마시고 아주버님, 이러다 큰일 나요. 열도 있고 자꾸 까부라지시는데.”
“여기가 편하다잖여, 성현이가? 걱정 말어요. 무신 일이야 있을라구. 이 사람이 이리 꼼짝 못허니 내가 큰일이구먼. 대소변 치우는 일 허며. 그래두 워쪄, 내 일인디. 내가 성현이 에미 아닌감.”
예산댁이 생색을 내었다. 우현의 처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성현이 천천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간에 그녀만큼 우애있기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너무나 무거웠다. 죽음이란…… 온몸을 내리눌러 움쭉할 수 없는, 눈 한 번 뜰 수 없는 압박의 공간. 무거운 흙더미 밑에 깔려 신음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숨조차 쉴 수 없는 화석의 공간. 그는 기뻤다. 자신의 삶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저녁에는 우현이 그를 설득했다. 성현은 한사코 병원에 가기도, 우현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마다했다.
“그대로…… 놓아두어. 자꾸 괴롭히지 말아.”
눈을 떠보면 누군가가 그의 곁에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산댁이 미음 숟가락을 내밀고 있기도 하고 우현의 처나 때로는 승현이나 정희가 있기도 했다. 그는 또 눈을 감았다. 힘이 없었다.
눈을 뜨니 승현이 걱정스레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성현은 오랜만에 입을 떼었다. 그는 열심히 말했다. 혓바닥이 자꾸 안으로 꼬여들었다.
“화…… 알.”
승현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뭐? 뭐 필요해? 다시 말해봐, 형.”
“화…… 아아알, 화아……”
“여기 있잖아?”
활을 성현에게 가져다준 사람은 작은 악마 건호였다. 그것은 이미 활도 아니었다. 한쪽 끝에는 조금 긴 노끈이, 다른 한쪽 끝에는 그보다 짧은 노끈이 묶여 흔덕거리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긴 대꼬챙이일 뿐이었다.
“이거? ……원, 형두 참. 건호 장난감은 왜 뺏어?”
승현이 소리 내어 웃었다. 건호가 말했다.
“이거, 이거 내 거 아냐. 아찌 거야.”
건호는 그것을 성현의 오그라진 손에 끼워주었다. 성현은 승현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열심히 입을 크게 벌렸다.
“승현아…… 이거…… 나 줄래?”
활은 원래 승현의 것이었다. 승현의 돌상에 올랐던 그 활이었다. 승현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그저 성현의 눈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형 줄게.”
“이거, 여기 끊어졌어.”
건호가 성현의 손에서 대꼬챙이를 다시 빼내어 승현에게 넘겨주었다.
“아아, 이게 활이야? 이렇게 묶어?”
승현이 건호에게 물었다. 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이 그를 쳐다보았다.
“형, 이거, 이렇게 묶어줘?”
성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는 승현이 너무 고마웠다. 승현은 이불을 꿰매는 굵은 실을 찾아와 활줄을 탄탄히 먹였다. 그리고 성현의 오그라진 손에 그것을 다시 정성스레 끼워주었다.
앗따따, 활이다 활! 큰 장군이 될라.
대청마루에 둘러선 동네 아줌마들의 시시덕거림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는 모든 이에게 감사했다. 그토록 미워하던 건호가 자신에게 활을 주다니.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고 싶었다. 졸음이 또다시 쏟아졌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속에서 그는 많은 이들을 차례로 만나보았다. 눈을 떠보니 검은 옷을 입은 신부가 서 있었다. 그가 물었다.
“문성현 씨, 하느님을 믿습니까.”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하느님, 그 하느님이라면 믿고 말고. 어머니 곁에 갈 수만 있다면. 그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신부를 올려다보았다.
문성현의 시신은 집을 떠나 성당으로 옮겨졌다. 신부가 그의 검은 관 위에 성호를 그었다. 작년 봄, 그의 어머니의 장례미사를 집전했던 신부였다. 장례미사가 끝난 후 그의 유해는 동생들의 오열 속에 화장장으로 떠나갔다. 1996년 12월 18일. 문성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지 만 39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창작과비평』 95호(1997년 봄); 『착한 사람 문성현』 (창비 1997)
윤영수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1990년 『현대소설』 신인상에 단편소설 「생태관찰」 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병자, 불구자, 건달, 장애인, 여성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와 붕괴 직전에 놓인 가족 관계 등을 주로 다루어왔다.
소설집 『사랑하라, 희망 없이』 『착한 사람 문성현』 『자린고비의 죽음을 애도함』 『소설 쓰는 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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