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6(주일) 렘 27:1~11 “우리가 메어야 할 세 가지 멍에" 예산수정교회 주일설교
사람은 누구나 멍에를 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가족의 책임’이라는 멍에를, 어떤 이는 ‘사명과 직분’이라는 멍에를, 또 어떤 이는 ‘질병이나 고난’이라는 멍에를 집니다. 우리의 본성은 그 멍에를 벗어 던지고 싶어 합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고, 부담 없이 걷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놀라운 명령을 주십니다.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2절)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백성에게 “그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단순한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순종의 학교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 가지 멍에, 즉 ‘말씀의 멍에, 주권의 멍에, 진리의 멍에’를 배우며, 그 속에서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시대에 무슨 멍에를 메아야 할까요?
1. 말씀의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1–4절).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시니라,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1–2절) 1) 말씀은 이해보다 순종으로 여는 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상하고 불편한 명령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멍에를 메라’는 하나님의 뜻은, 자존심 강한 유다 백성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묻지 않았습니다. “왜요?”라고 따지지 않고, 그대로 멍에를 만들어 목에 멨습니다. 그의 몸 자체가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삼상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때 순종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할 때, 말씀이 비로소 빛을 냅니다. 2) 말씀의 멍에는 훈련의 멍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그 말씀은 때로 부담스럽고 불편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됩니다. 마치 농부가 소에게 멍에를 메워 일하게 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의 멍에를 메워 순종을 훈련시키십니다. 어린 송아지가 처음 멍에를 메면, 힘들어서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숙련된 큰 소가 방향과 속도를 이끌어 줍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린 소는 어른 소의 걸음에 맞추어 일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훈련의 멍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멍에 속에서 훈련시키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걸음에 맞추어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그 말씀을 벗어나려 하지 말고, 묵묵히 메십시오. 말씀의 멍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배웁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중 감당하기 어려운 명령이 있습니까?
2. 주권의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5–8절).
“나는 내 큰 능력과 나의 쳐든 팔로 땅과 지상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5–6절) 1) 하나님은 모든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내가 만든 세상을 내가 다스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조차 “내 종”이라고 부르십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의 손 안에는 악한 권세조차 도구로 쓰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종종 “왜 하나님이 이런 세상을 허락하셨는가?”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을 만들었고, 그 위의 사람과 짐승도 만들었다.” 즉, 모든 것은 내 계획 안에 있다. 이 고백이 바로 ‘주권의 멍에’입니다. 이는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2) 주권의 멍에는 신뢰의 멍에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뜻을 꺾으십니다. 내 계획이 막히고, 기도가 지연되고, 문이 닫힐 때, 그 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권의 멍에로 훈련시키는 시간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리라.”(시 37:5) 주권의 멍에를 메는 사람은 불안 대신 신뢰를 배웁니다. 이 멍에를 지는 것이 억압이 아니라, 평안의 비밀이 됩니다.
적용)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 이 일도 주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십니까? .
3. 진리의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9–11절).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가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9절) 1) 거짓의 멍에는 달콤하지만 죽음으로 이끕니다.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괜찮다, 곧 해방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백성은 그 말에 위로를 받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지 말라.” 오늘날도 거짓된 위로가 넘쳐납니다. “힘들면 내려놔라”, “네가 행복하면 그게 진리야.” 하지만 진리 없는 위로는 결국 파멸로 갑니다. 하나님의 진리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11절) 진리의 멍에를 메는 자는 살게 됩니다. 불편하지만 바른 길을 택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생존과 회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2) 진리의 멍에는 분별의 멍에입니다. 진리를 붙잡는다는 것은, 거짓과 참을 분별하는 영적 눈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의 위기는 분별력의 부재입니다. 좋은 말, 감동적인 말은 많지만, 진리의 말씀을 구분해 붙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편안함보다 진리의 불편함을 선택하십시오. 진리의 멍에는 때로 무겁지만, 그것이 결국 생명을 살립니다.
적용)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 말씀이 나를 살리는 진리인가?”를 묵상하십니까?
결 론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은 멍에를 통해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그 멍에는 형벌이 아니라 훈련의 도구라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말씀의 멍에, 주권의 멍에, 진리의 멍에를 주십니다.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 멍에를 기쁘게 메는 성도님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