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장옥관
의자를 개처럼 데리고 다니는 사람 있을까
개 대신 고독을 의자에 앉히고 진눈깨비 내린 비탈길을 내려간다 무릎이 없어서 의자에 앉을 수 없는
슬하의 오후였다
의자에 끌려가는 이를 전철에서 만났다 의자 앞에 정수리 숙이거나 변기에 기대 우는 날이 많았다
개새끼 죽일 놈
의자를 치켜들고 벌벌 떨거나 의자를 엎어놓고
후배위로 올라타는 똥개도 보았다
푹신한 소파를 꿈꾼 적은 없으나 각목으로 짠 직각의 의자, 반듯한 자세로 흐트러진 뼈를 간추리고 싶을 때는 있었다
노을 속에서 등 굽은 의자가
걸어가고 있다 기다림을 잃은 보폭이다
무릎 꿇고 통성기도하는 새벽이 아니다 손목과 발목 묶인 고문대도 아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옥중서신을 의자로 삼은 청춘도 아니다
골목에 내어놓은 의자가
먼눈으로 먼 산을 바라보는 오후다
동네 개들이 찾아와 오줌을 지릴 때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는 자세, 추운 방에서 밤새 새처럼 오그려 잠든 자세
허리도 굽고 하루도 굽고
곧 쓰러질 듯 삐걱대는 저 의자에
너는
굽은 못을 박지 마라 의자는 의자가 아니다
의자가 의자로 있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