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나딘 라바키
제작년도 : 2018년
저녁을 먹으면서 이미 맥주 한 캔을 마셨는데, 술이 더 마시고 싶어졌다. 무거운 영화 한 편을 보고나서 그때도 술이 마시고 싶으면 마시리라 마음 먹고, 영화 '가버나움'을 보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는 사교육걱정 지역모임의 효진 샘을 비롯 이미 작년부터 다수로부터 추천받은 영화이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한 소년의 이야기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빈곤의 참상이 너무 적나라해서 순간순간 마음이 조마조마할 때도 있다. 어떤 비평가들이 비판한 '빈곤 포르노'라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무리한 비난만은 아니다. 물론 레바논 출신 감독 나딘 라바키은 그런 글을 쓰는 동안 거리에 나가 처참한 삶을 목도하라고 일갈했다지만.
소년 자인은 실제 베이루트 빈민가에서 캐스팅됐다. 이 영화를 찍은 이후, 자인과 가족들은 노르웨이에 살게 되었고 14살에 처음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또다른 수많은 자인들이 지금도 레바논의 빈민가에서 부모가 만든 마약음료를 팔고, 어린 아기들은 한 발이 묶인 채 방안에서 울고 있을 것이다. 이런 영화를 통해 세상의 어두움을 직시함으로써 우리의 삶과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미미할 지 모른다.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부스러기처럼 작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를 ‘모르는 나’와 ‘아는 나’는 다르다. 매일 매일 그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만, 이마저도 무력하다고 안해버리면 내 삶은, 이 세상은 그 부스러기만큼이라도 나아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작년에 하반기부터는 조금씩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동네 영화관에서 홍상수의 <도망친 여자>, 윤단비의 <남매의 여름밤>, <테넷>,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집에서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코로나 직전 극장에서 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관객이 나를 포함 2명에 불과했던 <레이니데이 인 뉴욕>까지, 자그마치 7편이나 된다.
저녁을 먹은 뒤 밤마다 영화를 한 편씩 보던 기홍씨는 영화를 보기 전과 보고나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에게 영화는 어떤 것이기에 그렇게 늘, 매일같이 보고 싶었던 걸까. 돌아보니 영화를 좋아하는 기홍씨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왜 그렇게 영화가 좋은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그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모르는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