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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화 제작 옛추억영상 김세중기관사무사고100만 기념
지금으로부터 31년전 이리기관차사무소 김세중기관사님은 1995년5월23일 장엄한 운전무사고 100만km를 돌파한 바, 기관사 조동화는 기념비디오영상을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아 추억하도다.
유투브 현재조회수는 1만3000회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조동화는 특급조 여객조 화물조 동차조 중 특급 조에 지정되여 현직 기관사로서 김세중기관사님의 무사고100만키로 돌파행사시 비디오 촬영을 하며 지도실의 모습과 출근인사하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촬영한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역사적 기록이었다.
조동화기관사는 취미가 비디오영상촬영이로소니 구글에서 “철도기관사 조동화” 검색하면 철도인으로 상세히 AI가 설명해 줄것이다.
▶김세중기관사님 100만키로 돌파 근무사업 일정(시발역1:00전 출근 16:01출근)
특급조 김세중 강창국 기관사2인근무
이리-서울역 운행후 수색객차 회송 수색합숙소 숙박 휴식
시발열차 제276열차 이리17:01 -서울20:04------M276 서울20:20-수색20:35
귀로열차 제81열차 H81 수색8:55-서울9:10------ 81열차 서울 9:35-이리 12:07
▶비디오기념촬영한 조동화 근무사업(시발역1:00전 출근 23:09출근)
특급조 조동화 이길남 기관사2인근무
이리-서울역 운행후 수색객차 회송 수색합숙소 숙박 휴식
시발열차 제516열차 이리00:09 -서3:25------M516 서울3:40-수색3:55
귀로열차 제275열차 L275 수색12:55-서울13:10------ 275열차 서울 13:35-이리 16:28
조동화 비디오에 열정이 대단하였도다.
밤세 야간 열차 운행후 쉬지도 않고 김세중기관사님 수색역에서 100만행사 차량 출고준비하는데 나와서 비디오를 촬영하고 있었구나.
어찌되었던 인자 세월은 희미한 기억 저편이 되고 말았구나.
서울기관차사무소 출고선에서 수색합숙소에 휴식하는 이리기관차 기관사들이 모두 나와 무사고 100만KM 준비에 합심하여 태극기와 무사고깃발 등 플랭카드를 부착하였다.
서울기관차 출발선 100만행사 준비에 황상택 전홍식 서정기 안종서 황일규 박천명이 참여하였고, 고석근지도기관사가 첨승 안전지도을 위한 첨승자로, 제81열차 승조승무기관사는 특급조 김세중 강창국기관사였다.
다들 현업을 은퇴하였고 강창국 황일규는 저세상사람이 되었구나.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 옛영상을 보며 세월을 되돌아 보니 실로 가슴벅찬 감회를 느끼도다.
김세중기관사님의 무사고 100만 축하행사에 서울역에 환영 나온 30여명의 친구들과 지인들의 축복속에 제81열차는 서울역을 9:35분 정시에 출발하여 익산역에 12:07무사고로 도착하였다.
<↓조동화 그는 기관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직무를 수행하며 1991년7월 화창한 날씨속에 장엄한 무사고 40만키로를 돌파하였다.
지상의 마도로스 조동화기관사는 고객님들을 태우고 서울역을 출발직전이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이 보인다.
아 옛날이여.
멋진 지상의 마도로스 나이방 낀 조동화기관사는 3000마력의 위용을 자랑하며 경부선과 호남선과 전라선을 질주하였다.
조동화기관사는 1985년 여름 서대전-대전간을 김영한기관조사와 승무시 대전천 200m 교량상에서 6-7명의 어린이가 놀고 있는것을 발견 급정차하여 소중한 생명을 구했던일이 생각이 난다. 그시절에는 철길에서 어린이들이 많이 놀던 시절이라 사상사고가 많이 발생했지. 지금은 철길에 2만5천V의 전기기관차 운행으로 사람이 들어갈수 없도록 팬스로 막아 놓았다.
김영한기관조사는 몸관리를 잘못하여 오래전에 저세상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리역에 도착하여 1950년 6.25 전쟁중 산화한 50여명의 순직비에 신원철기관사와 헌화하여 추모하였다.
신원철기관사는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되여 원대효도요양병원에서 재활 치료중이다.
산화한 사람중에 나의 처 외삼촌 강휘영님의 이름도 세겨져 있다.
조동화 그는 이런사람이었다.
趙東和는 1950년 6.25 동란중 부친 조병옥과 모친 延日鄭氏 정순봉사이에서 김제시용지면와룡리267번지에서 長男으로 태어났다.
옛날 이름은 조재곤이라 하였고 金堤趙氏 시조 조연벽의 24세손으로 문량공 趙簡의 후손이다.
김제 와룡의 기차길옆 나의집에서 어린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기차가 검은연기를 내품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렁차게 움직이는 기차의 기관사의 꿈을 갖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종친 조찬익(당시 익산기관차사무소 운전조역)할아버지한테 국립철도학교 원서를 가지고 와 기관사과에 지원 합격후 1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20살 약관의 나이에 청운의 꿈과 희망을 안고 철도청공무원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다가 군에 입대 3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1975년 복직하여 40여년 철도를 天職으로 알고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청춘의 젊은이가 2009년 停年退職했다.
1985년 여름 김영한기관조사와 기관사직무를 수행 중 서대전-대전간 운행시 대전천 약200m교량상에서 6-7명의 어린이가 놀고 있는것을 발견 교량 한가운데 급정차하여 소중한 생명을 구했던일,
1986년 모일 동차열차를 운전중 군산역 장내신호기 부근에 10여미터 경포천교량이 있었는데 컴컴한 가을날 아가씨 한 사람이 교량 한가운데 꿈적도 않고 서 있는것을 조동화기관사는 미리 발견하여 교량상 아가씨앞에 정차했었다.
아마도 실련을 당하여 이 세상을 하직하려 했으나 조동화기관사가 살리여 그 아가씨는 좋은 배필 만나 이 세상을 항해 하고 있을까?
그냥 지나간 시절이 생각나 끄적끄적 하나이다.
조동화 젊은시절 비디오카메라에 취미가 있어, 1991년경 서울 세운전자상가에서 신기하게 느껴졌던 소니 비디오 카메라를 200만원을 들여 구입했었지요. 소니 녹음기도 몇 대를 샀는지 모르겠네.
몇달 월금은 날라가버렸지.
지금 화폐가치로 따진다면 2천만원도 넘는돈이여.
조동화 그는 이런사람이었지.
당시 무사고100만키로 행사시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여 집에서 비디오로 보는 시절이었지.
내가 몇사람 무사고100만키로 행사시 촬영을 했는데 아마 비디오테이프들은 장롱속에 쳐 박아놓고 볼수 없을거야.
비디오가 다 오래되여 고물이 되어버렸으니 테이프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
테이프를 4차산업 스마트혁명시대에 유튜브로 변환, 옛시절 영상을 추억하고자 세월이 많이 흐른 오늘 빛을 보게 되었네요.
세월이 참 많이도 흘러 추억의 영상속 거의 모든사람들 은둔해 버려 얼굴이 보이질 않고, 또 아예 어떤이들은 저멀리 저승길 소풍 떠난 사람도 있네요.
인간의 삶이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왔으니 삶에 이유가 없고,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정답없는 인생, 내가 하고자 하는것 하면서 행복 느끼며 살면 그것이 행복아닐까 생각해본다.
조동화의 벗님들!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되찾을 수 없는게 세월이니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하지요.
한치앞도 모르는 인생길 내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할 일은 오늘이 좋은날이며 오늘이 행복한 날이 되게 하는 것이다. 시드니 스미스한말인디 오늘을 행복하게 살면 되야.
그냥 일상에 감사하며 , 소소하게 웃으며 ,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나의 존재에 언제나 감사하면 되지.
무상한 삶의 여로에서 하루 하루 소중하게 삶을 가꾸며 행복한 삶이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여. 건강관리 잘 하시고 즐거운 시간 되소서.
☞김세중선배님 근황
김세중선배님은 전북옥구군대야면지경리 대차부락에서 3남4녀중 장남으로 1944.4.23(현재나이 83세) 태어나 아버님께서 병환으로 23세되던해(아버님 나이46세) 돌아가시고, 어머님을 모시고 대야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다가 직장을 따라 이리에서 신혼의 시절을 보내었으며, 쉬는날이면 대야에 계시는 어머님을 찾아뵈며 장남노릇을 성심 성의껏 시골일을 도우며 직장근무에도 충실하였다.
김세중선배님은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다.
김세중선배님은 철따라 어머님 모시고 여행을 하였으며, 부모님의 기념일을 챙겨드리고 집안의 제사등 대소사를 온 가족이 모여서 화기애애하게 친목하여 왔다는 아름다운 가정이었다.
세월이라는 거역할수 없는 자연섭리에 따라 어머님께서 수년전에 저 세상으로 가시었다.
알고 보면 세상 살아가는 것이 모두 그런 것이고,
김세중선배님도 사시사철 항상 푸르른 소나무와 대나무 처럼 청청할것 같았것 만 어느새 눈가엔 잔주름이,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리어 지난 날의 혈기방장했던 청춘과 젊음은 오간 데가 없으시다.
철도에 혼신을 다하고 100만키로 금자탑을 이루었으나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가 장구한 시간의 시공속에 붕정만리의 한획을 장식하고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오시었습니다.
붕정만리의 여정속에 김세중선배님 무슨큰 목표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되어집니다.
현재 김세중선배님은 여러모로 건강이 여의치 않으며, 수년전 아주머니께서 저세상으로 떠나시여 힘든삶을 살아가시고 계시다.
꾸준히 몸관리 잘하시기기를 비나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체의 신비에 대하여 알아보자
인간은
입에서 항문까지 8.5 킬로미터라~~~~~~~
인체의 핏줄은(동맥, 정맥, 모세혈관의 총길이) 120,000km이다.
경부고속도로 왕복 900km 이니까, 133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이다.
지구둘레가 40,008km이니까, 지구를 3바퀴 돌 수 있는 거리이다.
놀라운 건 혈액이 몸을 한 번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6초 정도밖에 안 걸린다.
이렇게 긴 핏줄을 이해한다면 피가 맑아야 병이 없고 오래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뇌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와 100조개의 신경 연접부를 갖고 있어 신경의 연결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성인의 머리카락 숫자는 10만개, 수염은 3만개, 잔털은 30만개.
하루 호흡수는 2만번 정도로 들숨과 날숨 공기량은 8000ℓ가 된다.
우리가 거의 깨닫지도 못하는 눈 깜빡임은 눈을 보호하고 각막을 매끄럽게 하는데, 1분에 15번, 한 시간에 900번이다.
재채기는 코의 점막이 자극을 받아 일어나는 경련성 반사 운동이다.
눈을 감고 재채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채기는 시속 160Km의 속도로 퍼지는데 이는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보다 훨씬 빠르다.
남자의 몸은 60%가, 여자의 몸은 54%가 물로 되었기 때문에 대개 여자가 남자보다 술에 빨리 취한다.
여자가 아기를 출산 때는 자궁 입구가 평상시 때보다 500배나 크게 열린다.
인간에게는 맛을 알아내는 9,000개의 미각이 있다. 혀의 뒷부분은 쓴, 중간부분은 짠맛, 앞쪽은 단맛을 느낀다.
콜레스테롤은 인간의 몸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콜레스테롤은 음식물안의 지방을 녹이는등 생리작용에서 생화학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콜레스테롤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간에 부담을 주고 혈관 속에 쌓여 급기야는 혈관을 막아서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 몸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삶의 의미
독일 출신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가 인간의 삶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들어보자구.
우리는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살고 있었죠! 나는 태어나겠다고 결정한 적이 없는데도요. 때로는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언제 존재하겠다고 결정한 적이 있느냐는 말이지요. 정말이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난감한 현실을 두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피투(被投)되었다’ 즉 ‘던져졌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던져졌죠, 그것도 내가 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던져졌습니다. 이 외모로, 이 나라에, 현재의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기껏해야 100년이라는 시간을 살다가 떠나가게 됩니다.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어디로 가기는 가는 건지조차 알 수가 없지요.
그 100년이라는 시간도 생각해 보면 참으로 허망합니다. 초반 20년은 이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는 데 보내야 합니다. 말년의 20년은 아픈 몸으로 고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맘대로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봐 줘야 60년입니다. 이러려고 태어났을까요? 그 60년의 시간도요, 이 규칙 저 규칙 지켜가며 살아야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뭔 의무는 그렇게도 많은지 말이지요. 독일 출신의 생(生)철학자인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가 이러한 황당한 인간의 삶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들어보실래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밖에서 보면 얼마나 무의미하고 보잘것없게 흘러가고 안에서 갖는 느낌으로도 얼마나 숨 막히고 제정신이 아니게 흘러가는지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들의 삶은 빛바랜 동경이자 괴로움이고 보잘것없는 일련의 생각을 품고 인생의 사계를 거치며 죽음을 향해 꿈결처럼 허우적거리며 걸어간다. 이들은 태엽이 감기고는 왜 그런지 알지도 못하고 가는 시계의 태엽 장치와 같다. 한 인간이 태어날 때마다 인생이라는 시계의 태엽이 새로 감기는 것인데 이는 이미 수없이 연주된 손풍금 곡을 악절마다 소절마다 보잘것없게 변주하여 거듭 되풀이하기 위해서다.
인간을 ‘왜 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가는 시계의 태엽 장치’에 비유한 것이 인상 깊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알 수 없는 힘’을 ‘의지’라고 칭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의지는 ‘자연 속의 모든 힘’이고 바로 ‘모든 사물을 지금의 사물로 존재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이 의지는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에 따라 어떤 일은 잘 풀리고 어떤 일은 안 풀립니다. 인간은 잘 풀리는 일은 좋다고 하지만, 잘 안 풀리는 일은 나쁘다고 하면서 고통을 느낍니다. 잘 풀리는 일은 계속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잘 안 풀리는 일은 앞으로는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그 일들을 쳐다보며 힘이 듭니다.
물론 세상살이가 재미있기도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할 때는 기분이 좋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악기나 스포츠 그리고 각종 취미 활동 등 배워 볼 것도 많습니다.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득문득 의문이 듭니다. 학교, 직장, 결혼, 아이..., 이 모든 싸이클을 다 돌고 나면 뭐가 남는 걸까요? 남들이 말하는 기준을 다 충족시킬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기준을 다 충족시키고 나면 나는 뭐가 되는 거지?’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살다 가는 건가...? 인생은 뭐지?’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궁핍함으로든 무료함으로든 고통스러운 그 무엇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궁핍함이 싫기에 부를 추구하지만 쇼펜하우어가 보기에는 부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부를 가진 사람은 많은 재산을 유지하려고 전전긍긍하느라 행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쇼펜하우어는 “부는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므로 재산은 진정한 행복의 원천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무료함에 대해 생각해볼까요? 요즘 엄청난 인기를 거둔 〈오징어 게임〉에서도 무료함에 지친 사람이 등장하지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핍함에 시달린다고 느끼기 때문에 무료함이 주는 고통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도 없는 경우에는 더이상 추구하고 싶은 것이 없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바라다보면 행복이 너무 드물게 느껴지고 또 행복이 가고 나면 고통이 더 심해지기에 차라리 고통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지요.
사실 쇼펜하우어가 삶의 의미가 뭔지를 결론 내릴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삶은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에 의해 이유도 없이 펼쳐지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니 말입니다. 인간은 의지의 움직임에 따라 울고 웃게 되어 있을 뿐이니 의지에 의해 결정당하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이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의 덧없음을 직시하면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없는 의지의 움직임에 따라 울고 웃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깨닫고 나면 더 이상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더욱이 우리가 삶이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결론을 내린다고 해서 삶이 정말 그렇다는 보장이 없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삶이 어떠한 이유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없음을 생각하면, 삶이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일 뿐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설명이 매우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맹목적인 힘에 의해 달라지는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 것일까요?
쇼펜하우어는 동고(同苦, Mitleid)를 말합니다. 나만 이 맹목적인 의지의 움직임에 따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이 벌어지게 되어 있는 삶의 맹목성을 인정하면 다른 사람을 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나뿐만 아니라 저 사람도 이 답 없는 삶의 움직임의 그 맹목성 때문에 힘들어하는 인생의 동지, 이 고통의 바다를 함께 건너야 할 동료로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는 데에는 물론 자신이 마주한 현실이 좋으니 나쁘니를 따지는 자기중심성을 탈피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쇼펜하우어 철학에서는 ‘너와 내가 완전히 구분되는 개체’라는 의식에 빠져 있는 것이 부적절합니다. 어쩌다 의지가 그러한 방식으로 구현되어 그 자리에 서게 된 존재가 너이고, 의지가 이러한 방식으로 구현되어 이 자리에 서게 된 존재가 나이기에 그렇습니다. 너와 나는 의지의 큰 흐름을 실현하는 매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너와 나는 그렇게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타인이 이 고해(苦海)를 헤쳐 나가느라 나만큼이나 힘든 또 한 명의 사람임을 알게 되면 우리에겐 설명할 수 없는 연대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어려움을 겪으면 응원하게 되고 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있으면 기뻐하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타인에 대해 막연한 연대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쉽게 불행해집니다. 인간은 연대감을 느낄 때 행복한 존재입니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밥 먹으면 배부른 것처럼 ‘그냥 그렇다’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동고의 실제 사례는 많습니다.
시한부 소년은 왜 노숙자들에게 샌드위치를 주고 싶었을까
미국의 시애틀에 살던 11살 소년 브랜든의 얘기도 그러합니다. 어려서부터 희귀병으로 고생한 브랜든은 지난 2008년, 열심히 치료를 받았는데도 결국은 2주밖에 삶이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생명의 불꽃이 얼마 남지 않은 브랜든에게 엄마는 하고 싶은 것이 무어냐고 묻습니다. 힘없이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브랜든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노숙자들의 캠프를 봅니다. 그리고는 “저 사람들에게 샌드위치를 주고 싶어요”라고 말합니다. 브랜든의 이 소원은 여러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어 많은 사람들이 샌드위치 캠페인에 참여하게 만들었습니다. 캠페인을 통해 많은 노숙자들이 〈브랜든의 샌드위치〉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브랜든은 행복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원도 이루어졌으니 꿈을 잃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이 소년은 왜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샌드위치를 주고 싶었을까요? 죽음 앞에 선 브랜든의 소원이 왜 만나지도 못한 타인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왜 사람들은 브랜든의 샌드위치를 응원하게 되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습니다. 죽음 앞에 서면 ‘정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구분이 명확해집니다. 우리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보지 못해서 이를 경험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리고 막상 죽음 앞에 서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타인을 더 위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죽음 앞에서 제 삶의 의미를 정립하게 된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원 철학과 진학을 앞두고 등록금을 모으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강도를 만나 학교에 내려던 등록금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 강도가 칼을 들고 있었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세상 모든 것이 의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담배 연기보다도 더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인생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 무엇인가는 또 왜 해야 하는 것일까?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무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깊게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철학과 대학원에 왜 가야 하는지조차 불투명해졌습니다.
저는 오랜 고민과 방황 끝에 ‘담배 연기보다도 더 허무한 인생’을 철학에 던지기로 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사상이라는 그물로 엮는 철학자는 행복하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을 만나면서 제가 원래 철학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삶에 닿아 있는 철학으로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동지들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철학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를 잘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날로 고민을 접고 철학과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삶에 닿아 있는 철학을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삶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잘 구분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대학교수가 되는 것보다 철학을 쉽게 전하느냐 전하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도 ‘삶에 닿아 있는 철학’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문적인 어려운 논문을 쓰는 것보다 쉬운 말과 글로 ‘지혜로서의 철학’을 전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죽음 앞에서 정립되는 삶의 의미, 그 열쇠는 나 자신이 길을 선택하는 사람
삶의 의미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삶의 의미를 어디서 느끼는가를 관찰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공통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것에서는 의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삶의 의미는 자기 자신을 위할 때가 아니라 타인을 위할 때 정립됩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는 보통 죽음 앞에서 정립됩니다. 제가 보기에 인간은 동고(同苦)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죽어가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다 보면 우리가 이르게 되는 종착지는 바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동고’입니다. 그리고 동고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나갈 것인지에서 나의 삶의 특수성이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라는 슬프지만 엄정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이 죽어가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부터 잘 고민해 보세요. 여러분도 저와 동일한 결론을 얻게 되는지 아닌지 잘 살펴보세요. 삶을 죽음으로부터 도망 다니는 시간으로 채우면 삶의 의미와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나의 죽어가는 삶을 어디에 던질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자신만의 단단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스스로 부여한 의미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 나가는 것, 그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가장 지속적인 행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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