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수) 사순절 7일 – 평범한 언어
말씀제목
– 평범한 언어
말씀본문 – 로마서 14장 14절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또 확신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없고, 다만 부정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입니다.”(새번역)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개역개정)
말씀묵상
오늘 말씀에서 ‘속된’으로 번역된 단어는 ‘코이노스’(koinov")입니다. 헬라어 사전에서의 일차적인 의미는 ‘평범한’(common)입니다. 그레코로만 사회에서는 땅이나 집을 공동으로 소유할(shared) 때, 어떤 지역이 공적인(public) 용도로 사용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특별한 것에 대해 ‘일반적인’, 사적인 것에 대해 ‘공적인’, 귀족적인 것에 대해 ‘대중적인’, 편파적인 것에 대해 ‘중립적인’, 불평등한 것에 대해 ‘평등한’ 것을 의미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거룩한’이라는 의미를 ‘특별히 구별된’이라는 뜻으로 쓰면서 그 반대말로 ‘코이노스’를 썼습니다. 그 결과 이 말에 ‘부정한’, ‘더러운’, ‘속된’ 이라는 의미가 생겨났습니다. ‘코이노스’는 유대인의 정결법에 따르지 않은 행위를 규정하는 맥락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쓰임이 갖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습니다. ‘평범한 것’을 폄하하는 사회에서 ‘평범한 것’을 ‘거룩한 것’과 대비시키면서, 서민이나 가난한 이들도 자신을 깨끗이 유지한다면 ‘평범’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파격적 사회관을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히 여김받고 주인에게 쓰임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딤후2:21)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부작용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않은 손으로 식사했을 때 ‘부정한(코이노스) 손’이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막7:2-3). 당시 유대인들은 속된(코이노스) 것을 먹지 않는 것, 그리고 속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고 깨끗한 생활을 유지하겠다는 결심이 나쁠 리 없습니다. 그러나 ‘정결’하게 산다고 하면서 다른 이들을 ‘속되다’라고 규정할 때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개입합니다. ‘이방인’을 속되다고 하면서 ‘유대인’이라는 범주 안에 편리하게 자신을 숨기는 ‘비겁함’ 속에,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이기적인 ‘교만’함이 함께 도사리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역사(창조의 섭리)는 인간이 자의적으로 그어놓은 거룩과 부정의 경계를 재설정(재배열)하는 역사입니다. 어떤 이방인은 유대인보다 훨씬 정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고넬료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10:15)라고 하시며 베드로를 고넬료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통용’(shared)이라는 단어가 바로 ‘코이노스’입니다. 신약성경은 당시 귀족의 언어가 아니라 대중이 일상적으로 쓰던 헬라어인 ‘코이네’로 기록되었습니다. ‘코이노스’라는 말에 붙은 혐오와 배제의 딱지가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평범함이 축복임을, 함께하는 삶이 구원의 증거임을 사도행전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하나님, 누군가와 비교해서 나의 우위를 증명해야 안심되는 피상적 거룩을 넘어서게 하소서. 일상의 언어로 겸손하게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