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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에 접어들자 섬진강은 이미 완연한 봄빛이다. 연초부터 매화나무 아래엔 큰개불알풀꽃(봄까치)과 광대나물꽃이 피더니 2월에 접어들자마자 산속 복수초가 피어나고, 마침내 전남 광양시 다압면 소학정마을에는 섬진강 첫 매화가 봉오리를 터뜨렸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하동공원의 홍매화도 피고, 뒤질세라 매화향기를 맡은 황어 떼들이 남해바다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오른다.
돌이켜보니 야생화를 찾아 전국 곳곳을 찾아 나선 지 꼭 1년이 되었다. 카메라를 둘러멘 채 모터사이클을 타고 자그마치 7만km를 달렸으니, 지구 한 바퀴 반을 돌아다닌 셈이다. 지난 15년 동안 3만 리 이상을 걸어 다녔지만, 그 무렵에는 순례자와 풍경만 기록했었다. 지난해 이맘때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선 이 땅의 야생화부터 세세히 기록하자고 다짐했다.
많이 늦었지만, 그러하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도보순례를 했던 기억과 전국 어디든 언제나 달려갈 수 있는 모터사이클, 그리고 카메라가 있기에 가능했다. 아직 야생의 광릉요강꽃과 해오라비난초 등 새해에 꼭 만나야 할 숙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야생화 공부 10년 이상을 한 이들을 어느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었다. 물론 사진 공부도 더 해야 하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사실 그동안 야생화는 이미 내게 엄청난 선물을 주었다. 야생화는 나의 애인이자 의사였고 스승이었다. 나이 쉰을 넘기면서 한순간에 무너진 내 몸을 살려주었고, 무덤덤해진 정신을 일깨우며 꿈속에서도 나타나 그리움과 간절함을 되살려주었고, 때로는 회초리를 든 무서운 스승으로 다가와 나태해진 시창작의 열정을 되살려주었다. 앉은자리 그대로 최고의 빛과 향기로 저마다 최고 최상의 경지를 이룬 온갖 야생화들이 마치 내 생애를 관통해간 사람들처럼 여겨졌다. 산속에 엎드려 큰절을 하듯이 날마다 꽃을 보며 다시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새해 아침부터 틈만 나면 섬진강변과 지리산자락, 그리고 따뜻한 남쪽 바닷가를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덕분에 그토록 꿈을 꾸던 설중화(雪中花)를 찍었다. 그것도 설중 변산바람꽃과 복수초, 노루귀를 단 하루 만에 찍는 기적을 맛보기도 했다.
야생화 담으러 1년 동안 전국 7만km 돌아
올해 복수초를 처음 찍은 날은 1월 26일이었다. 지난해에는 2월 15일에 찍었으니 무려 20일이나 빨리 핀 것이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꽃’ 복수초는 언땅과 눈밭을 뚫고 나온다고 해서 얼음새꽃, 눈색이꽃이라고도 한다. 마치 한겨울 고드름처럼 무슨 복수할 일이라도 있는 듯 날을 벼르고 벼르다가 피어나더니 대뜸 “부질없는 짓, 다 내려놓고 술이나 한 잔 하자”며 황금 술잔을 내민다. 복 ‘복(福)’에 목숨 ‘수(壽)’ 자를 내밀며 새해 설날맞이 인사를 하는 것이다. 한낮 기온이 잠깐 영상 15℃를 넘기자 어디선가 한 겨울 토종벌들이 날아와 화답을 하기도 했다.
혹시나 하고 섬진강 첫 매화가 피었나 둘러보았지만 아직은 1주일쯤 더 기다려야 할 듯해, 잠시 소학정 매화나무 아래 쉬는데 ‘야생화 사부’인 김인호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주에 납매가 피었다”는 전언이었지만 이미 해는 기울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바로 그날 김인호 시인과 설 연후 마지막 날의 출사 약속을 잡았다. 1년 전에 만났던 변산바람꽃의 그 황홀한 자태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변산아씨’라는 애칭이 붙었겠는가.
마침내 2월 2일 이른 아침 세 남자가 만났다. 야생화에 미친 남자 ‘꽃미남 3인방’이었다. 나의 야생화 사진 사부인 김인호 시인, 또 그의 사부인 김해화 시인과 함께 했으니 야생화 시인 3대가 함께 모인 것이다. 일단 여수 오동도에 가서 동백꽃을 보고 혹시나 변산아씨의 안부도 물을 겸 기수를 남쪽으로 돌리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그곳(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에 가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변산아씨들이 환하게 반겨주었다. 여여하게도 곱고 고왔다.
그러고 보니 올해의 첫 변산바람꽃도 지난해보다 13일이나 빨리 피었다. 아마 내륙의 변산바람꽃 중에서 단연 제일 먼저 피어난 꽃일 것이다. 김해화 시인도 20년 넘게 찍어왔지만 2월 8일이 가장 빠른 기록이라고 했다. 야생화 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하나같이 “이렇게 빨리 핀 적은 없다”고 했다.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먼저 끌리고, 쏠리고, 꼴리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변산아씨의 개화로부터 시작되는 야생화와의 연애 시즌이 다가온 것이다.
예년보다 너무 일러 이상기후 등 불길한 징후도 없지 않지만 애써 이 또한 축복이라 믿어보는 것이다. 추위가 한 번쯤 더 지나가면 노루귀도 쫑긋 귀를 세울 것이라는 희망으로 안절부절못하고 달뜬 마음으로 며칠을 더 보냈다. 입춘 한파가 다가온다는 소식에 일찍 피어난 변산아씨는 어찌 견딜지 안쓰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하나의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 욕망은 다름 아닌 설중화였다. 복수초와 변산아씨에게는 시련의 눈보라여서 미안하고 미안한 일이지만 내게는 자꾸 축복으로 받아들여지니 이를 어쩌랴. ‘벗들이여, 독하게 지독하게 견뎌라’ 주문을 외며 기상청 일기예보를 살펴보았다. 마음은 이미 목요일 밤과 금요일 사이, 마음의 기설제(祈雪祭)를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설제는 마치 거짓말처럼 적중했다. 지난 2월 6일 이른 새벽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남도의 여수에 3cm 이상의 눈이 내렸다. 오히려 지리산과 섬진강은 쾌청한데, 이른 아침 기상청 일기예보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바로 그곳, 변산아씨들이 막 꽃망울을 터뜨린 그곳에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수고 뭐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후다닥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도의 눈길을 내달렸다. 어쩌면 목숨을 거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설중 변산아씨의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그러나 목적지 30km를 남겨두고 라이딩을 포기해야 했다. 눈 내린 도로가 얼어 승용차들도 모두 길가에 멈춰 있었다.
하지만 천재일우의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눈 쌓인 도로 옆에 모터사이클을 세워두고 시내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서 한참을 기다렸다. 눈 그친 하늘에서 따스한 햇살이 비치자 도로가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시내버스가 천천히 다가왔다. 눈 보기 어려운 여수사람들은 지방도 곳곳의 오르막 내리막길에 승용차들을 세워둔 채 출근한 것 같았다. 공무원들이 가까스로 제설작업과 모래를 뿌려주는 바람에 버스는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눈 속의 변산바람꽃 앵글에 담아
어느새 산속의 눈도 막 녹기 시작했다. 바쁜 마음에 미끄러지며 산길을 기어 올라가니 오호라, 눈 속의 변산바람꽃들이 막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희디흰 눈으로 세수를 한 그야말로 ‘생얼’ 그 자체였다. 입춘 한파를 겪고 곧바로 눈에 파묻혔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변산아씨들이 고맙고도 눈물겨웠다. 낮은 포복으로, 오체투지의 자세로 눈밭을 뒹굴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채 50분도 지나지 않아 햇볕을 받은 눈들이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것이었다. 잠시 숨을 돌리며 흥분을 가라앉힌 뒤 산을 넘어 응달의 계곡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다. 예상대로 설중 복수초와 아직 어린 분홍 노루귀가 반기고 있었다. 그러나 채 30분도 되지 않아 눈은 완전히 녹고 말았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여수에서 단 세 시간 정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뒤늦게 헐레벌떡 먼 길을 달려온 이들은 허탕을 치고 말았다. 이른 새벽에 꾼 꿈이 좋았던 것일까. 지리산 정상 바로 아래 한 동굴에서 강물처럼 맑고 푸른 물이 뿜어져 나왔었다. 그 동굴 주변에는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온갖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만화방창 꽃피는 무릉도원이었다. 그런 장면 뒤에 얼핏 아직 젊은 시인 고은 선생이 승복을 입고 있었고, 신경님 시인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이 무슨 뜬금없는 꿈인가 싶기도 했다.
어찌됐든 3대째 내리 적선한 일도 없을 듯한데 변산아씨와 어여쁜 분홍 노루귀, 복수초를 한꺼번에 설중화로 만났으니 이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야생화 전문가들도 일생에 단 한 번 마주치기 힘들다는데, 그것도 아직은 2월 초순의 여수에서 단 세 시간 만에 만났으니 고스톱 용어로 치자면 1타3피를 한 셈이다. 예년보다 빨리 꽃이 핀 데다 때마침 눈이 내리고 바로 그 순간에 도착하는 삼박자가 딱 맞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대개의 설중화는 꽃샘추위 때인 3월과 4월에 변산반도나 강원도의 만항재 등에서나 볼 수 있다.
집에 돌아와 차근차근 사진을 들여다보는 데도 손과 심장이 떨렸다. 며칠 뒤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그동안 소홀했다 싶어 섬진강 매화를 보러 갔다. 동해안에는 폭설이 내린다는데, 섬진강변에는 성질 급한 매화들이 슬슬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백년 된 고목인 소학정 백매와 하동공원의 홍매를 보고, 소학정마을 어느 집에서 처음으로 용매화를 보았다. 이처럼 백매, 청매, 홍매, 수양매, 용매, 비매 등 매화 종류도 여러 가지다. 용매는 나뭇가지가 용틀임을 하듯이 구불구불 솟아오르고, 수양매는 나뭇가지가 땅 아래쪽으로 처진다. 비매는 말 그대로 날아갈 듯한 포즈를 취하는데 실은 일본의 분재용이다.
그래도 아직 새 봄을 맞을 준비가 채 안됐는데, 매화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니 덩달아 마음이 바빠졌다. 소학정 백매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니 보름 뒤쯤부터 수만 그루의 매화나무들이 꽃망울을 팝콘처럼 터뜨릴 것이다. 맨 처음 피어난 매화 한 송이,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역광에 올인했다. 한파를 이겨낸 정면의 얼굴도 보기에 좋았지만 지는 해를 바라보며 돌아선 그녀의 자태 또한 심장을 뛰게 했다.
분홍노루귀·복수초도 한꺼번에 만나 행운
집에 와서 자세히 보니 의도하지 않았던 사진도 한 장 건졌다. 치마를 입은 한 여인이 막 피어나는 매화꽃을 향해 앞치마를 두른 채 손수건을 흔들며 버선발로 달려가는 모습이 마치 환영처럼 새겨져 있었다. 몽환적이라는 말이 이런 것일까. 살다보면 우연의 순간이 이렇게 필연의 자세로 말을 걸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그 말을 다 못 알아들었지만, 새 봄을 기다리며 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카메라를 들고 섬진강변을 어슬렁거리다 보니 아주 낯이 익은 것들이 말을 걸어왔다. “나도 꽃이다!” 섬진강 갯버들, 요요 버들강아지들의 항변이었다. 자세히 보니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처럼 버들강아지 수꽃들이 너무나 화사했다. 그 흔한 버들강아지를 이제야 자세히 바라보다니! 암꽃은 푸른 기운 그대로 수수한데 비해 수꽃은 뽀송뽀송한 솜털과 더불어 붉고 노란 술들이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이 또한 시절인연이려니 생각하니 더없이 소중하다. 올해 담지 못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마저 무슨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갈 수 있을 때 가고, 볼 수 있을 때 보고, 찍을 수 있을 때 찍을 뿐이다.
아주 가까이 매화가 피고 그리 멀지 않은 골짜기에 복수초와 변산아씨가 피어 반기니 원고를 쓰다 잘 안 풀리면 벌떡 일어나 바이크를 타고 산책 겸 다녀온다. 숲속에 엎드려 같은 눈높이로 맞절 인사를 하다보면 ‘그래, 이보다 더 좋은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돈은 없지만, 돈도 안 되는 일이지만, 또 그게 무슨 자랑거리도 아니지만 이 숲속에서는 대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래도 나의 전 재산이 입산 초기보다는 늘지 않았는가. 신형 바이크와 17년 된 구형 오프로드 바이크, 그리고 노트북과 카메라가 전부지만 이마저 과분할 정도다. 노트북이 망가지면 아예 안 쓰든지 육필로 쓰면 되고, 카메라가 망가지면 눈과 마음에 담으면 되고, 바이크가 망가지면 걸어 다니면 되니, 이것이야말로 나의 배수진이다. 그러나 아직은 저 산속의 어여쁜 아씨들을 만나러 언제라도 바이크를 타고 달려갈 수 있고, 만나서 찍을 수 있고, 모셔와 오래 저장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설레게 한다. 지난 겨울 방송촬영 때문에 서해 삽시도라는 섬에 다녀 온 적이 있었다. 대천항에서 삽시도 가는 새벽 첫배 위에서 일출 직전의 여명을 찍은 사진이다. 먹먹하고도 아찔한 블루-. 영혼에 색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호주 밀림에서 보았던 파랑나비 율리시즈보다, 인도양의 깊은 바다 울트라 블루보다, 벨기에 출신 화가이자 안무가인 얀 파브르의 ‘블루의 시간’ 연작들보다 더 푸르다. 저 여명의 푸른빛처럼 아주 가까이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에헤라, 봄이 오는 섬진강에 나아가 물수제비를 뜬다. 여전히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5대강을 다 걷다가 만난 이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물수제비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혼자 던지고 잽싸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속사 촬영을 수십 번 한 뒤에야 겨우 터득했다. 강 건너 마을에서 누가 훔쳐봤으면 “웬 미친 놈!”이라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봄은 봄이다.
한 편의 시
단지 그 물맛이 아니었으므로
이원규
전라선 밤기차를 타기 직전이었다
단지 물맛이 그 물맛이 아니었으므로
서울역파출소 앞 지하도에서 세상의 가장 얇은 이불
1998년 5월 8일자 신문지 한 장을 덮어쓰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생수병에 담긴 맑고 찬 소주를 마셨다
사표를 던지고는 빙하기의 바퀴벌레 더듬이를 세운 채
서소문 빌딩 8층 내 의자에서 아주 잘 내려다보이는
서울역의 노숙자로 스며든 지 열흘째 밤이었다
이만하면 됐다, 시인 박봉우 식의 서울 하야식!
환멸의 도시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나도 나를 못 믿겠으니
제발이지 불귀불귀불귀 주문을 외며
하나 남은 더듬이마저 담뱃불로 지져버리고는
구례구행 막차에 올랐다 바로 어젯밤 같은 16년 전의 일
나이 들수록 단지 물빛은 그 눈빛이 아니었으므로
겨우 맑은 물 한 모금 마시러 지리산까지 왔다
어릴 적 날마다 밤마실 나가던 청상과부 어머니
고향 하내리의 참샘에서 맨 먼저 길어와
장독대 위에 올리던 하얀 사발 속의 정화수
바이칼 호수의 만년설이 녹은 물
그 차고 맑은 물 한 모금의 눈빛은 아니더라도
고운 선생의 세이암 아래 두 귀를 씻고
달빛 어른거리는 당몰샘의 천년고리 감로수
생니 시리도록 마시고픈 해발 1320미터의 임걸령 옹달샘
빗점골 폭포수와 칠불사 찻물 한 바가지
첫 햇살 받으며 똑똑 떨어지는 서출동류 석간수
그 물 한 방울의 목소리를 들으러 섬진강까지 왔다
큰 산 푸른 숲의 배꼽에 얼굴을 묻고
입술 부르튼 고라니가 마시고
혓바닥이 마른 산새들이 먼저 와서 마시는
맑은 물 한 모금이 되려고 16년 전 전라선 밤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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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버들강아지가 이렇게 예쁜지 몰랐네요.
버들강아지
섬진강변에 낮익은 바이크있어 찾아보니
이시인님 강가를 헤메시데요.
그날 사진보여주며 버들강아지
빨강색 설명하셨는데 막걸리와 함께 휘리릭..
요안나님이 글 올려주시는 덕분에 편하게 잘보고 있습니다 ^*^
입학식때 말씀하셨던 변산 바람꽃이 이렇게 생겼군요...신기해요.
매화꽃도 넘 예쁘고...힐링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