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30주년을 기념하는 말은 진주혼식珍珠婚式이다. 함께 살아온 세월에 비례해서 금은동에 이어 다이아몬드까지 이름 짓는 게 이해는 되지만, 뜬금없이 진주혼식이라니 무슨 의미일까? 흔히 결혼기념식에 대하여 25주년인 은혼식이나 50주년인 금혼식은 널리 알려졌지만 진주혼식은 금시초문이었다.
결혼 30주년 즈음, 며칠간 진주혼이란 말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무작정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결혼을 했었던 그 시절의 살림살이가 떠올랐다. 아이들을 키우며 애면글면 하던 일들과 시부모를 모시며 눈물 흘리던 서러움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러다가 진주혼식의 의미를 알았다.
'하늘처럼 파랗게 웃던 당신, 꽃잎처럼 부르던 나의 노래' 가 있었다. 그러나 '쓰디쓴 눈물로 돌아눕던 밤마다 자라난 상처들'이 어느새 내 안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삼십년 어느새 우리들의 하얀 가슴은 영롱한 진주'(拙詩 '진주혼'에서)가 되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결혼 전에 궁합을 보았는데 서로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재미로 보았을 뿐, 그런가? 그럼 잘 맞춰서 살면 되지. 넘치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는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결혼에 이르렀다.
그는 산골 출신, 나는 바다 출신이다. 산골사람은 산처럼 깊고, 바닷사람은 바다처럼 넓다. 산골사람인 그는 마음이 깊었다. 결혼 당시 직장 초년생이었던 그는 성실하고 반듯하고 야무진 일처리에다 사무실의 잡다한 일을 도맡아서 했다. 매사에 적극적인 데다가 궂은일은 나서서 모두 처리하니 어디서나 환영받았다. 어쩌면 나도 그런 이미지 때문에 넘어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 좋은 성격은 어린(?) 신부인 나를 외롭게 했다. 그 당시 직장 문화가 회식 아니면 야근이었기에 신혼 초부터 늦은 귀가는 필수이고, 외박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일터에서 앞장서던 잡무처리 실력이 가사에서는 발휘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는 산골 출신답게 지독히도 보수적인 남자였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명확했고, 남자의 일에 여자가 절대 토를 달면 안 된다는 게 원칙이었다.
반공일이라 불리던 어느 토요일, 그의 낮부터 시작한 음주는 외박으로까지 이어졌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니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저 밤을 새워 기다릴밖에 도리가 없다. 이미 마지막 버스도 떠난 지 오래되었다. 자정무렵에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앞마당 감나무 아래를 서성거리다 올려다 본 하늘엔 별 하나 없이 캄캄했다. 변두리 단칸방에 세 들어 긴 밤을 지새우고 있는 초라한 청춘을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슬프고 외로운 마음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울다 잠든 새벽에도 그는 오지 않았다. 마침 당직이었던 일요일 아침, 나는 그의 아침 밥상을 차려놓고 출근을 했다. 밥상 위에 작은 쪽지를 써 두었다. 조금은 미안해 할 정도의 서운한 마음과 '왕후의 밥, 걸인의 찬'(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이지만 맛있게 먹으라는 애정을 담은 글이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맞이했다. 나는 적어도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어쩔 수가 없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뭐 그런 말 한 마디는 돌아올 줄 알았다. 화가 난 나는 '어떻게 사람이 미안하단 말을 안 해요?' 하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그의 대답은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남자가 미안하단 말을 어떻게 해.'
이제 와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때 집을 나왔으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의 속성을 발견했을 때 내 앞에 놓인 삶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남자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못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야 하는가. 누구에게 터놓고 의논도 못하고 혼자만 끙끙 앓았다. 결국 나는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했다. 뱃속에는 아기가 자라고 있었고, 도저히 집을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후로도 그는 미안한 일을 수없이 되풀이 했지만, 미안하단 말이 밖으로 나온 일은 거의 없었다. 가슴 속에는 상처들이 늘어났고, 결혼 생활은 계속되었다.
시골에 계시던 시부모님을 모셔오게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들 넷인 집안의 셋째 아들이었던 그는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가 눈치를 보면서 나서지를 않자, 불쑥 우리가 모시겠다고 했다. '우리라니?' 마음속에서 물음이 터져 나왔지만, 별다른 저항 없이 내가 던진 의문을 조용히 집어넣었다. 나에겐 한마디 의향을 묻지도 않고 그 혼자 정해버린 결정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올라오셔야 하는 늙은 시부모님, 누군가는 모셔야 하는 상황인데 내 부모 네 부모를 가릴 게 무언가. 괜스레 좋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보통 대가 세신 분이 아니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쪽진 머리를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분이었다.
당신이 명백하게 잘못한 일이었어도 어머니 앞에서 잘못한 사람은 나여야 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돌아누운 어머니의 등을 보면서 나는 무릎을 꿇고 늘 용서를 구했다. 어머니의 고집스런 성품에 번번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긴 은비녀를 보고 어머니의 삶도 고단했음을 알았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후 마지막으로 꽂았던 어머니의 은비녀. 오랜 세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단단히 감싸느라 휘어진 은비녀. 어머니가 남긴 단 하나의 유품인 은비녀는 휘어 있었다. 고집스레 살아온 어머니의 인생길도 진주 밭이었으리라.
진주는 조개의 표피 안에 생긴 비정상 물질이다. 조개의 몸속으로 들어온 이물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분비물이 생긴다. 그리고 이물질을 둘러싸는 오랜 과정 속에서 진주가 탄생한다.
생각해 보면 결혼이란 단순히 사랑하는 두 남녀의 결합이 아니다. 지금까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상대방을 받아들이기 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처음에 서로는 자신과 다른 상대를 이물질이라 여긴다. 그의 모습 자체를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내게 맞추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하고 서로를 알아간다. 때로 그게 잘 안되면 싸우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 과정에서 잘 화합을 하면 은혼식과 진주혼식을 거쳐 금혼식과 금강혼식을 맞이할 수 있다.
또한 부부란 서로를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서로를 바라본들 더 이상 꿀이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좋은 사람이랑은 결혼하지 않는 거라고. 좋은 사람은 심장 속에 남겨두어야 한다고. 어찌 보면 맞는 말인 거 같다. 그래서 행복한 부부는 서로를 마주보는 것이 아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라고 한다. 혼자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 외로우니까 함께 사는 것이다. 한때는 내 편이었다가 영원히 남편(남의 편)으로 사는 그를 기다리는 시간, 30년간 기다려온 밤들을 거쳐 탄생한 진주가 영롱하게 반짝인다.
첫댓글 남편이 나보다 어릴 텐데 재밌네요 ^^
옛날에 어른들이 다 그렇게 가르쳤어요. 남편이 그러고 싶어 그런 게 아니라는 거죠ㅎㅎ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해요..
제가 '글로 당신을 고발할 거라고 선포'하는데도 그냥 웃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심지도 않은 깨가 갑자기 나오나요. ㅎㅎ
진주가 서말, 글 쓰는 재미가 더 좋아요. ㅎㅎ
푸하하하. 꼭 내 얘기를 하는 것같아서 웃습니다.
그래도 난 요즘은 변해서 잘못하면 바로 무릅을 꿇고 빕니다. 쫏겨나지 않으려고. 부군께서도 지금은 나처럼 변했겠죠?
아니라면 조금만 기다리면 대왕대비마마가 되실테니 걱정 마시고 그때에 실컷 부리세요. 에휴! ㅋㅋ
성격은 변하지 않고요.. 하루 두끼를 집에서 먹는 두식이가 되었지요. ㅎㅎ
삼시세끼 곧 올텐데 걱정입니다. ㅋㅋ
음, 수고하셨고요. 앞으론 좋은 날만 계속 될 거예요. 한 가정을 지키셨으니 세계평화에 이바지 하셨다 생각하세요.
그래놓고, '내가 시인을 만들었어요.' 한답니다.
@윤슬 강순덕 ㅋㆍㅋ 맞는 말 같기도하고요
호된 시집살이를 잔잔한 미소로 잘 승화시켰군요...(혹 수필집 내면 신랑이 이 작품은 빼라고 할 걸......)
'행복한 부부는 서로를 마주보는 것이 아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누구 남편은 아내를 시인으로 만들고, 누구 아내는 남편을 소설가로 만들고... 다들 그렇게 비슷하게 사는가 봅니다.
오늘 오전에 마흔 다 되어가는 제자가 결혼한다며 청첩장 보내 왔더군요..
제자에게 딱 한 마디 했지요..
"여자를, 특히 아내를 이해한다는 건 신의 영역이니 아내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대신 네~네~하며 사랑만 아낌없이 퍼부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지고 아내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라~!"
신의 영역이 아닙니다.. 애정을 갖고 이해를 하셔야죠.. 무조건 네,네는 사양할게요..
그러니 '아내는 안에서만 아내, 남편은 남의 편'이란 이상한 정의가 나오는 겁니다..
재미만 있다면 참으로 재미없어요. 자제분들이 증명하잖아요? 혹시, 친구집이나 상가집은 거의 모든 남펀들의 넋두리 핑계지만 이제는 넉넉하게 웃지않을까 싶습니다.
네. 재미만 있다면 재미없지요. 진주 서말이 생겼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세월 참 빠르죠 ?
우리도 진주혼식때
기념으로 네식구 함께 제주도 다녀왔는데
또 그사이 7년이 지났네요
윤슬님도
참 잘 ~ 살았어요 짝 짝 짝 ~~
십년 이십년 삼십년...참 대단한 거 같아요.
요즘이야 세상이 바뀌었지만...
유작가님도 진주 좀 챙기셨나요? ㅎㅎㅎ
결혼 30년, 힘들고 어려웠던 세월을 거쳐 진주를 탄생시켰으니 성공한 결혼생활 하셨군요. 앞으로는 더욱 행복한 가정 이루고 사시길 빕니다.
수제 진주라 그런지 아주 반짝반짝 영롱합니다. ㅎㅎ
십년 더 살면 玉이 되겠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