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字 隨筆
문득.219 --- 대추나무에서 가을 삼매경에 빠지다
가마솥 더위라고 할 만큼 극성을 부린다. 선풍기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오히려 다소 훈기가 있는 바람이 불지 싶으며 그마저 방향이 조금만 비끼면 열기가 몰려든다. 시원한 바람은 어디로 갔는가. 참고 견디다 에어컨을 가동한다. 삽시간에 집안이 시원한 바람으로 채워진다. 아, 피서가 따로 없다. 역시 선풍기에 비할 수 없는 위력으로 더위가 꼬리를 감추고 냉랭해진다. 이제 여유를 갖고 창밖을 내다본다, 햇살이 만만치 않게 쏟아진다. 그 햇살을 거침없이 받아먹는 대추나무는 녹색 잎이 반들반들 윤기를 토한다. 거꾸로 서서 보듯이 위에서 바닥 쪽을 한눈에 내려다본다. 어깨가 떡 벌어졌다.
지난 6월 중순까지도 빈 가지에 앙상할 만큼 늦잠 자느라 허름하여 볼품이 없더니 부랴부랴 새싹이 돋고 좁쌀 같은 노란 꽃을 슬그머니 피우면서 비로소 외관상 주변의 다른 나무들과 대등하게 나무의 꼴을 만들었다. 잎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요즘은 대추알이 보인다. 볼 적마다 대추알이 긁어지더니 이제는 제법 자라 대추로서 품위를 갖추어 가고 있다. 저 대추나무는 이 무더위가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더위를 든든한 바탕으로 몸집을 불리고 열매를 맺어 다독거리며 키우기에 여념이 없지 싶다. 오직 성장과 열매라는 삼매경에 빠져들었지 싶다. 몸집 키우기는 어느 정도 완성되고 대추알이다.
대추알이 굵어질수록 추석이 가까워지고 한여름 무더위를 잠시라도 잊게 하며 서둘러 풍성한 가을 속으로 이끌고 있다. 햇대추는 제사상 맨 앞줄 첫머리에 올라 조상님께 인사를 올리게 된다. 입추가 되었으니 가을의 전령사 귀뚜리가 통통해져 밤이 깊어가며 귀에 익은 노랫가락이 가을바람처럼 반갑게 들려올 것이다. 조금만 참고 견디세요. 곧 가을입니다. 삼매경은 한 가지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일심불란의 경지를 말한다. 예전에는 독서 삼매경에 빠졌는데, 요즘은 컴퓨터 오락으로 부족해 너도나도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지금 나는 대추나무 열매를 지켜보며 가을 삼매경에 빠져들었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