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혜의 바다공원 거문도 백도
큰 문장가가 있다하여 거문도라 했다던가?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이 섬에서 김유라는 대학자와 필담을 나누다가 그의 문장력에 탄복하며 거문이 있다하여 얻은 이름이라는 일화가 전해 온다. 지금도 조선시대 유학자로 유명한 김유를 기리는 거문사, 유학자 만해 김양록을 기리는 서산사 등의 역사 유적이 남아있다.
거문도는 본도인 고도와 동도, 서도의 3개 섬으로 이루어진 남해의 작은 군도이다. 여수에서 바닷길로 300리, 망망대해에 외롭고 고독하게 떠있는 섬이지만 천혜의 지형 때문에 일찍이 열강들이 군사적 요충지로 만들기 위해 군침을 흘렸던 아픈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고도 뒷산 양지바른 곳에는 영국군 수병들의 무덤이 남아 있다.
거문도는 지정학적으로 고흥에 가깝지만 행정구역은 여수이다. 예전에는 흥양군(고흥)이었는데 주민 대부분이 여수에 생활 근거지를 두고 수산물을 내거나 생활필수품을 조달했기 때문에 여수로 바뀐 것이다. 여수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거문도는 이제 외로운 섬이 아닌 여수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전에는 거문도를 가려면 여수항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녹동항에서도 운항하는 배가 있어 한 시간이면 충분할 뿐더러 뱃삯도 싸서 많은 사람들이 녹동항을 이용하고 있다.
거문도하면 백도를 떠 올린다. 거문도에서 28Km 떨어진, 남해바다 끝점에 자리한 백도는 하얀 보석을 흩뿌려 놓는 듯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바위섬 군도이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로는 100개의 섬이 있어 백도(百島)라고 했다는데 자세히 세어보니 섬 하나가 모자라서 점을 하나를 빼고 백도(白島)라 했단다. 하지만 실제로는 39개의 바위섬으로 구성된 무인군도이다.
|
거문도
항
|
정기항로와
백도 관광의 쾌속 모습
|
생각해 보면 차라리 무인도이길 잘 한 섬이다. 무인도여서 천혜의 자연 경관이 잘 보존되어 왔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낚시 군들이나 관광객들이 오르내려서 그 많던 나리나 난들이 훼손 되거나 멸종이 될 처지에 놓이자 국립공원 관리법에 의해 출입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
|
거문도는 30년 전 교육청에 근무하던 때 여러 번 갔던 곳이다. 갈 때마다 백도 구경이 소원이었지만 인연이 닫지 않았던지 번번이 날씨가 좋지 않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그 시절에는 통통배를 타고 두 시간 정도 가야만 도달하는 곳이었고 또한 관광객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아 특별히 배를 빌려서야 갈 수 있는 힘든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두 시간이면 관광을 할 수 있는 쾌속선이 정기적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날씨가 그렇게 나쁘지만 않다면 쉽게 다녀 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초가을 바람이 살살 부는 날 거문도 백도가 그리워 집을 나섰다. 녹동항에서 출발하는 8시 배가 한 시간 조금 지나서 거문도 항에 닻을 내렸다. 30년 만에 찾은 거문도는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전에는 일본식 목조 건물과 낡고 허름한 골목과 처마 낮은 술집들이 즐비했는데 어느새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거문항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되어 있었고 부두에는 관광 온 사람들이 붐비고, 수산센터에는 경매꾼들과 상인들로 가득했다.
|
거문도는
가을이면 갈치가 유명한다
|
새로
들어선 부둣가 상점
|
|
한 시간 쯤 부두 구경을 하고 나자 10시에 백도 행 관광선이 출발했다. 쾌속선이 거문도 내항을 벗어나자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더 이상 섬이 없는 남해 바다위에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둥근 금을 그으며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푸르다 못해 검은 바다 위로 듬성듬성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반시간 조금 더 가자 하얀 바위섬들이 보였다. 백도 군도이다.
|
배는 작은 파도를 가르며 작게 요동을 하더니 마침내 하얀 기암괴석들이 도열해 있는 신비로운 섬으로 다가갔다. 가이드는 열을 올리며 백도 자랑을 해 댔다. 짙푸른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바위섬들에게 바다는 마치 사랑싸움을 하는 양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두들겨 댔다. 파도와 바다바람에 씻기고 닳아진 바위섬들이지만 금방 온기가 돌 것 같은 따뜻함과 때 묻지 않는 순수한 모습들이었다. 또한 바위들은 해상 조각공원 같이 직각으로 날카롭게 깎인 채 푸른 바다에 뿌리를 박고 의연하게 솟아있기도 했다. 두리뭉실한 바위, 칼날 같은 바위, 납작한 바위, 거북이도 닮고, 물개도 닮고, 부처님도 닮고, 새악시 닮은 각시바위, 형제바위, 왕관바위, 궁성바위, 바둑판 바위, 비행기 바위, 석불바위, 성모마리아상바위, 피아노를 치는 여인상을 닮은 피아노바위, 매를 닮은 매바위, 남성의 성기를 닮은 서방바위 등 갖가지 바위들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광선과 바다의 색채와 어우러져 형형색색, 천태만상의 해상 조각공원을 연출하고 있다.
|
|
|
|
|
수평절리와 수직 절리가 기묘하게 어우러진 바위들이 때로는 시루떡처럼, 또 는 창검처럼 수평의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수직의 날을 세우고 있는 모습들이다. 백도는 그렇게 섬마다 백가지의 이름과 백가지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하얀 모습으로 무망의 바다에서 무망으로 세월을 삼키며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기의 생을 키워오고 있는 것이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메마른 바위틈을 비집고 원추리, 나리, 풍란, 찔레, 동백나무, 후박나무, 곰솔 등 아열대식물과 어우러진 350여종의 식물들이 산다는 데 이제는 나리나 원추리, 란 등은 사람들의 탐욕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개체수가 줄어들며 그것들마저도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수 만년 이 작은 돌섬에 뿌리 내리고 살았을 생명의 몸부림과 마침내 닥칠 종의 끝자락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자성해야 할 것
같다.
|
|
|
자연이란 제자리에 그렇게 놓여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그렇게 놓여 있을 때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일 테이고 그 아름다움은 파도와 비바람에 깎이고 닳아지고 부서져서야 조각되는 결실일 텐데 인고의 세월을 모르는 무지한 인간의 횡포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또한 저 작은 바위섬에 기대어 천연기념물 흑비둘기를 비롯하여 가마우지, 휘파람새, 팔색조를 비롯한 30여종의 희귀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한다. 그것들은 숭숭히 뚫린 바위구멍에서 비바람을 피하며 보금자리를 만들어 산다니 끈질긴 생명력과 대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이 얼마나 장엄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
|
|
|
상백도와 하백도를 돌며 바다위의 조각공원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배는 바위섬 사이를 빠져 나가며 거문도를 향하고 있었다.
|
|
2005.
10. 3. Forman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