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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사랑의 방정식이 있습니까?
230730낮 (고전13:1-13)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아멘
복음성가<사랑은 언제나> 불러 볼까요?
본문1-3절에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사의 말씀, 얼마나 좋습니까? 은혜로운 말씀 종일 들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예언, 지식, 믿음, 구제, 희생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나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얼마나 동분서주합니까? 때로는 고난을 받기까지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다면 시끄럽기만 합니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에베소교회를 보세요. 위대한 교회입니다. 믿음이며, 사역이며, 진리며, 그만큼 위대한 교회는 찾아보기 어려운 완벽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잘못이 있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잘 돌아갑니다. 다 갖추어진 교회입니다. 그렇게 훌륭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사랑의 감격과 눈물이 빠진 것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2:5절입니다.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교회의 존재를 사라지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즉 사랑 없으면 교회도, 우리들도 존재할 가치조차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 성경은 보여줍니다. 역사상 가장 타락한 종교 암흑기가 로마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시대인 줄 알지만 더 암흑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입니다. “화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 ~” 얼마나 책망하셨습니까? 타락한 종교에서 생겨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총체적인 문제 투성이었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입니다.
요5:42절입니다.
<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이건 예수님의 진단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합니다. "다만", 그러니까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는 것 딱 그것 하나가 그 엄청난 종교암흑기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사랑함이 없는 곳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절에 보면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로 우리 성도들은 이 사랑을 가장 귀히 여기고 사랑을 이루고 실천하는 일을 최고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133: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아름다운교제와 사랑을 보시고 감탄하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일까요?
1. 사랑은 최고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빅톨 위고의 유명한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죄를 범해 감옥에도 여러 번 갔다 왔으나 마음은 변화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하고 어느 교회의 성직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집의 은촛대를 보고는 그의 결심이 깨졌습니다. 그는 그 은촛대를 훔쳐 가지고 나왔습니다. 몰래 도망하려다 경찰한테 붙잡혀 그 성직자 앞에 끌려 왔을 때 성직자는 말하기를 '저쪽 것도 주었는데 어찌 하나만 가져갔는고' 라고 하여 장발장은 마음에 큰 감동을 받고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베푸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계속된 선지자의 외침과 징계에도 불구하고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완악한 인간들을 위해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어 피 흘려 죽게 하신 사랑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고 영생을 주신다고 하는 그 사랑을 보여 주셨을 때 마침내 인간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서 목숨까지라도 버리겠다고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제일 큰 능력입니다.
2. 사랑은 최고의 덕목입니다
갈 5:14에 보겠습니다.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성경에 수많은 계명이 있지만 그것을 줄이면 10계명이 되고, 이것을 다시 둘로 나누면 위로 하나님 사랑하고 아래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 됩니다. 이것을 다시 하나로 줄이면 바로 사랑입니다. 고로 사랑은 성도들이 갖추고 이루어야 할 최고의 덕목인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살인을 할 수 없고 이웃을 해칠 수도 없고 거짓말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드러몬 헨리(D. Henry) 라고 하는 사람은 "세계 최대의 것은 사랑이다" 라고 말했고 골 3:14엔 "사랑은 온전케 매는 띠니라" 라고 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13장은 말씀하기를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유익이 없고, 모든 비밀을 아는 지식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비록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 고 했습니다. 또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고 순교를 해도, 그 속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 했습니다. 최고의 덕은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최고의 덕목인 사랑을 지닌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랑은 최고의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은사에 대해 나옵니다. 성령은 같지만 그 은사는 서로 다른데 지혜의 은사, 지식, 믿음, 병 고침, 능력, 예언, 방언, 통역, 영분별 등 여러 가지 은사가 나타납니다. 그 은사에 대해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길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31절) 그리고는 제일 좋은 길을 보이겠다고 말씀하시며 12장을 끝맺고 13장에 와서 사랑에 대한 말씀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제일 큰 은사요 가장 좋은 길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12:31절과 13:1절입니다.
<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자기가 받은 은사가 제일 크고 좋은 것이라고 서로 자랑하고 다투자 사랑의 은사가 최고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양한 은사가 많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니 고린도 교인들은 서로 다투고 교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은사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인데, 고린도 교인들은 그것도 자기들이 잘나서 받은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받은 은사가 최고라고 자랑하며 서로 다투기까지 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나이가 굉장히 많이 들었을 때, 설교를 하라고 하면 10번이고 20번이고 '성도들이여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왜 선생님은 그렇게 똑같은 소리만 하십니까?' 하고 물을 때에 '사랑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하면서 설교할 때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을 이야기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가장 귀하고 복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실로 여러분들 모두 이러한 가장 귀한 축복인 사랑의 은사를 소유하시길 축원합니다.
4. 자신만의 사랑의 방정식이 있습니까?
여러분, 시인 청파 유치환 선생을 아시죠? 이분이 쓴 그 유명한 <행복>이라는 시를 아시죠? 한번 읊어볼까요?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한 중년 남자가 우체국에 와서 우표를 삽니다. 그리곤 정성껏 쓴 편지를 부칩니다. 편지를 보내기는 하지만, 딱히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보낼 뿐입니다. 이 남자가 1947년부터 1967년까지 20년 동안 한 여인에게 보낸 편지는 무려 5천통이나 됩니다. 6.25 전쟁 이전의 편지는 불타서 없어졌는데, 남자가 죽은 후 여인은 그 편지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받은 편지 중 200여 편을 골라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시집으로 출판합니다.
이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을 한 사람이 바로 1967년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시인 <청마 유치환선생>입니다. 시인 유치환 선생은 통영여중 교사 시절에, 29세의 정운 이영도 여사를 동료 교사로 만납니다.
당시 이영도 여사는 21세에 남편을 결핵으로 잃고 딸 하나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을 보면서 청파의 마음에 사랑이 싹 틉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날마다 기도의 삶을 살던 이영도 여사는 시인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파 유치환 시인은 계속 편지를 썼습니다.
왜 그렇게 수 없는 편지를 썼을까요? 그 이유는 유치환 시인의 그 유명한 <행복>에서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고백과 인생의 노래를 글에 담아 보내는 것이 청파 유치환 시인의 <사랑의 방정식>이었습니다. 이런 태도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리석다, 답답하다, 한심하다...”는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청파 유치환 시인 본인은 누가 뭐라고 하든지 자신은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고 눈물로 그 발을 씻겨드린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그것은 여인은 <사랑을 아는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랑 받는 감격>을 압니다. 또 그녀는 <사랑하는 기쁨>도 압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 부어 드리는 값비싼 향유도 아깝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발에 입을 맞추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식이었고, 주님은 그것을 인정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신앙의 위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사랑의 방정식>을 보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주의 제자들>은 복음을 위하여 순교함으로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 중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주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울었는데, 그녀들의 눈물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이 지난 첫 새벽에, 예수님께서 계신 무덤을 찾아가는 것으로 그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인도의 켈커타 빈민소굴의 병들고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슈바이처>박사는 명성과 부를 버리고 평생을 아프리카 밀림의 원주민들을 치료하고, 그들과 함께 삶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6.25 한국전쟁에는 숨겨진 기독교 비사가 많이 있습니다. 당시 피난을 가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교회당을 비울 수 없다는 일념으로 남아 있다가, 처참하게 순교당한 목회자와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기가 몸담고 섬기는 하나님의 교회를 끝까지 지키고 순교하는 방식으로 주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내려놓음, 더 내려 놓음>의 감동적인 기독교 베스트셀러 저자인 <이용규 선교사>님은 하버드 대학 박사라는 학벌을 내려놓고, 몽골 선교사가 되어 헌신함으로 주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강원도 황간 오지 시골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할머니는 날마다 아끼는 닭이 낳는 달걀 한 개씩을 새벽기도 시간에 강단 앞에 가져다 놓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연로하셔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뒤로 새벽강단에 더 이상 달걀도 놓여지지 않았습니다. 새벽마다 강단 앞에 드려진 달걀 한 개, 그것이 할머니가 주님께 드리는 사랑의 방식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어려운 살림에도 입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정성껏 모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장학 사업을 위해, 선교를 위해 써 달라고 드림으로써 주님을 사랑합니다.
어떤 이들은 절대로 남의 부족함이나 헌담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의 방식인 사람이 있습니다.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프고, 원망스럽고, 실망스러워도 절대로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고 나 한사람 속상하고 말지...하며 위해서 기도하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당을 아끼는 사랑의 표현을 합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교회서 월급 주는 것도 아닌데... 평생을 교회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땀 흘려 봉사하고, 주의 종과 교회와 성도들을 섬깁니다. 오늘날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도님들이 “자기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방식”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마음을 감동시키고, 이런 이야기들이 눈물이 흐르도록 만드는 참된 간증이야기 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로마 황제 최측근 두 사람이 궁궐의 화려함을 버리고 광야에서 수도하는 수도사가 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평소에 무시했던 이 두 사람이 나름대로 주님을 사랑하는 방식을 가지고 표현했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고, 자기 자신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식을 알지도 못하고, 그런 사랑 방식도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사랑의 방정식을 가지고 계십니까?
사랑은 내가 수양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소유하고 행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곧 사랑 충만 인 것입니다.
로마서 5:5에 의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마음이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되는 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마치 달빛은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와야만 우리 또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왜 미움과 다툼과 원망이 생겨납니까? 왜 분쟁이 생깁니까?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능력입니다. 사랑이 최고의 덕목입니다. 사랑이 최고의 은사입니다.
사랑은 어제의 추억도 아니고, 내일의 약속어음도 아닙니다. 사랑은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써야 되는 현찰입니다. 항상 지금이 내 사랑을 표현해야할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사랑합시다. 또 사랑합시다. 그리고 오늘 사랑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