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모든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고 언덕너머로 다가오는 동물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시간을 프랑스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해마다 수능성적이 발표되고 대학별고사를 치르기 전까지의 시간은 수험생들에게 있어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혼란스러운 시간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혼란스러움의 정도가 더 심한 편이다. 이번 시간에는 2008 정시 논술고사를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의미에서 출제가 예상되는 주제를 짚어보기로 한다.
통합논술, 깊게 공부하기 보다는 넓고 다양하게 사고해야
이번 2008학년도 수시 2학기 모집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통합논술은 거대담론을 위한 배경지식을 평가하기보다는 주어진 자료(제시문)의 정확한 독해를 통해 개념과 원리를 도출하고, 이를 다른 영역과 연관 짓거나 응용하는 문항들이 주를 이룬다. 고교 교과과정을 통해 이미 다루어진 내용이거나 이와 유사한 수준의 자료들이 주어지고, 논점이 분명한 논제들로 구체적인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답안을 요구한다. 이번 수시 논술고사에 대해 대학들은 공통적으로 ‘인문·사회영역 전반에 걸친 이해’와 ‘서로 다른 과목을 넘나드는 통찰력’을 키울 것을 강조했다. 올해 치러진 모의 논술고사 문항들의 출제경향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셈이다. 따라서 제시문을 통해 주어진 부분적·특수적·단편적 개념과 원리들을 전체적·보편적·종합적 논리로 연결지어 심화·종합하는 사고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제시된 자료들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어떻게 파악하느냐가 답안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논술의 재료는 고등학교 교과과정 수준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과서’가 가장 좋은 논술교재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대해, 막상 어떤 교과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차라리 출제가 예상되는 논제를 짚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과거의 ‘족집게형’ 논술준비는 효력이 없다. 모든 대학들이 암기한 답안을 철저하게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예상 논제에 대해 답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들이 이번 수시 2학기 전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오히려 암기한 듯한 인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나의 포괄적인 논제나 주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고 그것에 맞게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스스로 논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세트형 복합논제가 주를 이루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논술의 재료(주제, 내용)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또 그 범위는 고등학교 교과과정 수준의 내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대학과 전문가들은 ‘교과서’를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기본 제시문에서 ‘개념과 원리’를 도출해 내야 하는 것이 모든 논제에서의 기본이며 첫 번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입시에서의 그 ‘수준’이란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료(제시문)는 직접적인 교과서 지문이나 교과서 수준의 개념과 원리를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술에서 논제의 내용적 측면에 대해 알아보자.
내용적 측면의 통합논술 논제 분류
논제의 형식적인 분류는 이미 동일한 지면을 통해 본 연구소에서 제시했던 것처럼 요약형, 비교·분석형, 자료해석형, 찬반토론형, 견해제시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논제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자료(제시문)에서 가장 먼저 찾아내야 하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개념과 원리’인데, 이것은 교과서의 지문 또는 교과서 수준의 제시문에 이미 포함돼 있다. 이러한 ‘개념과 원리’와 결합되는 소재를 영역별로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통합논술에서 가장 기본적인 유형은 개념과 원리의 교과영역 간의 논제이다. 이것은 1차적으로 ‘개념과 원리’를 도출해내는 1차 자료와 ‘개념과 원리’로 해설·해석되는 대상인 2차 자료로 제시된다. 1차 자료는 사회·문화/경제/정치/윤리/국사 등의 인문영역과 수학/과학 교과 등의 수리영역을 주된 준거로 제시하며 영역간 연관논리를 묻는 문제다. 2차 자료는 언어영역인 고전과 현대의 문학작품과 미술영역으로 제시하며 1차 자료로 2차 자료를 해설·해석할 것을 묻는 논제가 주된 경향이다. 물론, 유형 I 영역의 표현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산문형태일 수 있고 시각자료 형태일 수 도 있다.
이번 수시 2학기에서 인하대는 ‘직업 선택의 문제’와 관련해 ‘시민윤리’ ‘윤리와 사상’ ‘사회’ ‘사회·문화’ ‘경제’ 교과서를 골고루 자료로 제시한 논제를 출제했다. 그리고 고려대는 1차 자료로 감정노동 개념을 주고 2차 자료인 ‘시(詩)’ 해석하기를 요구했다. 가장 보편적인 교과영역 간 논제는 인문사회교과와 수리교과와의 영역 간 연관성을 묻는 것이다. 연세대 수시문제에서 수학교과의 ‘대표값’개념을 ‘중용’과 ‘중간계급’과 연관지어 설명할 것을 요구하는 논제가 출제됐고 한양대와 이화여대도 유사한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또 괴델의 ‘불안정성 논리’와 다른 인문영역간의 연관문제를 출제한 외국어대학교도 포함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개념과 원리’를 ‘시사쟁점’에 적용해 해석하거나 응용하는 유형이다. 시사쟁점은 신문기사나 도표의 형태로 가장 많이 출제된다. 수시 2학기 중앙대에서는 ‘이타주의’ ‘호혜성’ ‘측은지심’의 제시문들과 OECD회원국의 사회보장 지출 비용과 상대적 빈곤율, 그리고 원조액을 도표로 제시해 분석하는 문제를 출제했다.
마지막으로 ‘개념과 원리’를 궁극적인 물음인 ‘철학적 논제’와 결합한 유형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을 2008 수시 2학기에서 살펴보면 경북대의 ‘인식’의 문제, 경희대의 계열별 논술고사에서 ‘진리’에 관한 상반된 견해와 인문계 일반유형에서 ‘행복’에 관한 견해를 묻는 논제가 인문사회 제시문과 함께 출제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유형은 분리돼 개별적으로 출제되는 것보다 복합적으로 출제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기존의 대학에서 발표한 모의문항이나 이번 수시에서도 이 모든 과정이 결합해 출제됐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유형 I과 유형 II, 그리고 유형 III이 한 문항아래 개별 논제로 순차적으로 나오는 형태이다. 먼저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를 묻고, 그것을 현실문제로 구체화·확장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 이후 마지막으로 그 사안에 대한 궁극적이고 바람직한 대안을 묻는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예상되는 교과 영역의 개념과 원리
그렇다면 교과영역에서 출제 예상되는 논제 또는 읽어 봄직한 부분은 어디인가를 묻는 질문에 답해야 될 때가 됐다. 한마디로 말하면 왕도는 없다. 이번 수시에서도 궁극적인 주제들은 현대사회와 인간 소외 그리고 대안, 바람직한 인간사회 등이 주를 이뤘지만 이러한 거대 담론으로 논술을 준비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실전연습을 통해 세부적인 개념과 원리 그리고 그것을 연관 지을 수 있는 구체적 논리를 만드는 훈련만이 살길이다. 써보고 첨삭 받고 고치고 다시 써보는 과정의 반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보조적인 방법은 존재한다. 지금까지 말해왔듯이 교과영역내의 개념과 원리를 찾아내고 응용해보는 훈련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교과인가? 시간이 충분하다면 모든 교과서의 개념과 원리들을 읽어보고 꼼꼼히 정리하면서 기출문제 훈련에 활용해보자. 그러나 시간이 모자란다면 먼저 ‘경제’와 ‘사회·문화’교과서만이라도 개념과 원리를 정독해 보자. ‘경제’ 교과서의 ‘시장경제의 개념과 원리’, 그리고 ‘소비’ 단원도 필수적이다. 사회·문화교과서는 사회와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시사쟁점과 긴밀히 연관돼 있고 그 모든 내용들을 아우르고 있다. 기출문제에서도 논리를 연결시키거나 확장시킬 때 경제논리와 더불어 기본개념으로 가장 많이 제시되고 있다. 간단하게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난이도는 만만치 않다!
교과서를 제시문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쉬울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실제 통합논술유형을 치렀던 학생들은 모두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논제의 형식적 분류나 내용적 분류 모두가 복합적으로 결합돼 출제되기 때문이다. 같은 층위의 양면적 논의만이 아니라 다층적인 분석과 요구사항들이 중첩돼 있는 것이다. 또 교과서의 개념과 원리를 정립한 학자의 원서가 제시문으로 출제될 경우 학생들은 난색을 표현하곤 한다. 해결방법은 출제자가 의도에 따라 교과서 범위를 확장한 것을 역으로 파악한 뒤 교과서 수준으로 좁혀내어 개념과 원리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개별 제시문들의 층위를 파악하는 것이다. 개념과 원리를 뽑아내야 하는 자료인지, 적용해야 하는 자료인지, 응용해야 하는 자료인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전모의고사 유형을 찾아 여러번 써보고 고쳐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