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성경적 실천의 현장과 클레로스(244) – 사도들의 실천과 클레로스(223) – 히브리서 강론(3)
히브리서 강론(3) – 3장 1절 ~ 4장 11절
(오늘은 안식에 들어가게 하시는 구원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3:1-6)
히브리서의 저자는 천상의 초대에 동참한 세상과 분리된 형제들(세상 원리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에게, 우리가 사도이며 대제사장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의 깊게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렇게 권면하는 이유는 유대교 안에서의 메시아 개념을 바로 잡으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 존재가 메시아라고 잘못된 메시아관에 젖어 있었던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신이지만, 저자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요1:1-3)
모세는 하나님께서 장차 말씀하실 것을 증언하기 위한 종으로서 하나님의 집안 모든 일에 신실한 사람이었으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에 대해 신실한 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집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된 한 몸 공동체에게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이란 그리스도께서는 머릿돌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 하나의 벽돌로서 하나님의 집으로 건축되는 우리들이라는 의미이다.(행4:11-12)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 (3:7~19)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굳어지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검증하고 40년 동안 내가 하는 일을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그 세대에게 분노하였으니, 그들은 언제나 마음이 미혹되어서 나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노라”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굳은 마음이란 돌과 같은 마음으로, 생명체에 정해진 코스대로 가는 것이다.
즉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이 길은 갑질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코스이다. 반대로 살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은 새 길이며 푯대를 향한 길이다.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하는 것이 굳은 마음의 표현이다.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목적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며 생명체의 본능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제시하는 길에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자기들이 원하는 길로 오해하면서 율법만 잘 지키면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복을 주신다고 오독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생명체의 본능이 자기들이 원하는 길로 가도록 하기 때문에 이런 오독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자들은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한 자들은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신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언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옮겨오라고 하신 길은 안식의 길이다. 그러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 자들은 투쟁과 갈등의 생지옥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의 개념은 안식을 상징하는 날이다. 생지옥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는 안식이 없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 오는 포지션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다.
수신자들이 굳은 마음을 가지지 않도록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안식의 길은 새로운 길이며 하나가 되는 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남겨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 (4:1~11)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약속이 아직 남아있는 동안에 그대들 중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듣기는 들었는데 신뢰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신실함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신뢰하게 된 우리들은 그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안식을 받았다고 선언했지만(수1:12-13), 아직 안식이 과제나 약속으로 남아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쁜 소식을 먼저 들었던 자들이 불신으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없었던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의 쉼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떠나신 것과 같이 자 기의 일을 멈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은 영원한 안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자기 일을 영원히 그치는 것이다. 구원을 받은 자는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다. 그러면 안식에 들어간 후에는 무엇을 하며 산다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기독교의 오류는 안식일을 아무것도 안 하는 날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은 아무 일도 안 하는 날이 아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다.(눅14:1-6) 예수님도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다. 그러나 병 고침은 본질이 아니다.(눅5:15-16) 병을 고치신 이유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로 옮겨가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회개하고 간구하게 만들기 위해서 병을 고치신 것이다.(눅10:8-15)
새로운 길은 현재와 미래의 우리의 것을 구하는 것이다. 즉 클레로스의 성장과 확산을 구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교회를 위해서 살라, 가난한 자를 도우라, 전도하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사랑은 자기 것을 구하지 않고 하나 됨을 구하는 것이다.
안식의 삶은 현재와 미래의 우리를 위해서 사는 삶이며, 좋은 진주를 찾는 삶이다. 각자 자기를 위해 사는 삶은 생지옥의 삶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삶이다.
좋은 진주를 찾아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성장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각자도생하면서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공포와 탐욕으로 살던 삶에서 나와서 현재와 미래의 우리들을 위해 사는 것이 안식의 삶이다. 그런 안식에 실제로 오늘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이 안식의 삶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은 안식의 모형을 가지고 씨름했으나, 진정한 안식의 개념은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 안에 거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신실한 자들이 되어서 서로를 믿음직스러워하는 관계 속에서 사랑하며 사는 삶이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엄숙 자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