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 이도우 / 시공사
이도우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찾아보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이도우 / 팬덤하우스" 2016년 2월에 기록이 있다. 쭈욱 훓어보았다. 따스한 기억을 가진 소설이었는데, 이 소설도 같은 부류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내용은 전하지 않는게 좋을 듯 하다. 이야기의 서술이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뭔가를 풀어가면서 읽도록 전개되기 때문이다.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인데 나에게는 통한 셈이다.
그렇지 않은 소설이나 영화도 많이 있지만, 나에게 영향을 미친 서양 소설에서는 주로 첫눈에 반해 관계를 만들고 그 뜨거움을 유지하는 쪽으로 묘사되는 것으로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에 반하여 우리의 사랑은 좀 다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남자는 첫눈에 사랑을 느낀 경우이지만 십여 년을 마음속으로 간직한다. 고등학생에게 사랑이라니 그냥 신비로움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첫사랑을 느끼고 그것이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루어진다면, 소설깜(!)이다. 결실(?)을 맺는 경우가 많이 어렵기에 이루어진다면 "소설깜"이라고 하는 것이겠다.
따스한 소설이다. 따스하다고 끝까지 읽히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되기 위해서 작가는 장치를 넣어두었다. 주인공 남녀의 배경을 다 드러내놓고 시작하면 이건 읽기 힘든 이야기다. 너무 뻔한 것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하고 보니, 요즘 드라마가 다 이런 식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상황이 바뀐다. 그리고 몇 개의 장면이 지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렇게 전개된 이유를 보여준다. 바로 몇 시간 후일 수도 있고, 몇 년 후일 수도 있다. 어떤 판타지에서는 전생일 수도, 다른 차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궁금하라고, 궁금해야 다음 쪽을 읽을것이니까. 다음 쪽을 읽어야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접할 수 있으니까...
무엇이 좋은가. 좋고 그렇지 않고는 분명 개인 취향에 의존한다. 계곡에 앉아서 조그맣게 흘러내리는 개울, 언젠가는 물이 흐르지 않았을 흐름을 한나절을 바라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던 기억을 가진 사람에게 해당하는 "좋음"이다.
계곡 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그 물소리, 물속에서 뭔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부딪히다 자리를 보존하지 못하고 아래로 굴러가야만 하는 돌과 또 다른 것들. 그리고 힘겹게 자리를 지키는 것들도 본다. 나를 자유롭게 하는 그런 시간의 좋음과 비슷하다고 할까?
지금 세상에서 기대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꿈꿔 볼 수는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