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때나마 생명의 별 지구의 북반구 코리아
한국말을 이야기하고 세종대왕 만드신 한글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고마워합니다
한 시절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하는 아들딸이었음이
더없이 고마운 일이고
자라면서 누군가의 둘도 없는 벗이요 나아가
누군가를 마음 깊이 사랑한 사람인 것을
눈물겹도록 고마워합니다
뿐인가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여행길에서 만나 인사 없이 헤어진 선한 눈빛의
낯선 사람들 하나하나까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끝내는 누군가와 가정을 이루어 아내와 남편으로
살아온 날들이 그럴 수 없는 축복입니다
힘겹게 자식 낳아 기르고 가르치고
나중에는 어른으로 내세워 혼사를 이루어
세상에 아름다운 가정을 보태게 함이
더더욱 보람찬 일이었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뿐, 끝내 내 몫은 없었나요?
오직 내 것,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오직 나만의 것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응어리말입니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요
끝내 숨길 수 없는 그리움
그것을 말씀으로 바꿀 때 한 편의 시가 됨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지상에 유언을 남기듯
나만의 말을 쏟아놓아야 할 일입니다
나만의 비밀한 하소연, 나만의 연서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시입니다
나도 실은 9년 전 죽어야만 할 때
순간 순간 끝내 죽을 수 없었던 것은
지상 위에 오직 아름다운 시 한 편
보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들 한 편의 시가 우리가 사는
또 다른 목숨입니다
한 편의 시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좋은 약이 됩니다
시와 시 안에서 만나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드디어 한 편의 시를 쓰셨나요!
드디어 당신은 또 다른 당신을 세상에 남긴 것이고
당신만의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고 감격은 없습니다
한 편의 시로서 승리한 당신의 인생을 축하합니다. < ‘죽기 전에 詩 한 편 쓰고 싶다(나태주, 리오북스, 2016)’에서 옮겨 적음. (2019.06.02.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