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 가을호 반경환 {사상의 꽃들}에서
가시연꽃
최 윤 경
내 몸을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
내 아픔 견뎌준 내 사랑 고맙다
제 몸의 생살 갈가리 찢고 나서야 고맙다고
비로소 환하게 가슴 여는 가시연꽃
넌 나의 따뜻한 양수야
내 상처를 뿌리째 받쳐주는
뜨거운 눈물이야
우리 절절한 아픔이 있어
살갗 저미는 고통이 있어
같이 건네준 위로가 있어
서로의 몸 안에 삐적삐적 돋친 슬픔들
하나씩 온건히 터져
꽃가시로 가시꽃으로
울음을 꽃 피울 수 있었던 거야
어느 누가 고귀하고 위대한 인물인지, 아닌지의 가치평가의 기준은 ‘고통’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의 인생은 천하제일의 절경이 되고, ‘고통’이 작으면 작을수록 그의 인생은 별볼 일 없는 민둥산이 된다.
소크라테스의 독배毒盃와 데카르트의 해외망명생활,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과 톨스토이의 객사, 알렉산더 대왕의 세계정복과 때 이른 죽음, 보들레르와 랭보의 요절과 반 고호와 폴 고갱의 저주받은 운명, 베토벤과 이상 시인의 불운과 비명횡사, 마르크스의가난과 해외망명생활, 프리드리히 니체의 식물인간의 삶과 헨리 8세에게 사형을 당한 토마스 모어, 첩을 두고사생아를 낳았던 아우구스투스와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의 방탕한 생활을 했던 프란체스코 성자등, 이 전 인류의 영웅들은 자기 스스로 천형의 가시밭길을 걸으며, 그토록 아름답고 거룩한 ‘가시연꽃’을 피웠다고 할 수가 있다.
고통은 생산의 아버지이자 생산의 어머니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자웅동체의 힘은 천지창조의 힘이며, 이 천지창조의힘으로 이 세상의만물의 탄생과 죽음을 주재한다. 고통은 최윤경 시인의 따뜻한양수이고, 그의 상처를 뿌리째 받쳐주는 뜨거운 눈물이 된다. 시인과 고통은 암수 한몸과도 같고, “우리절절한 아픔이 있어/ 살갗 저미는 고통이 있어/ 같이 건네준 위로가 있어/ 서로의 몸 안에 삐적삐적 돋친 슬픔들/ 하나씩 온건히 터져/ 꽃가시로 가시꽃으로/ 울음을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삶은 고통이고, 고통은 자기가 자기 자신의 생살을 찢고 피어나는 가시연꽃과도 같다. 밥을 먹고일 하고 돈을 벌어야만 했던 가시연꽃, 남보다 더 잘 살고 돈과 명예와권력을 얻고 싶었던 가시연꽃, 타인을 질투하고 시기하며 끙끙 앓아 눕던 가시연꽃, 수많은 질투와 시기와 중상모략 앞에서 상처를 받았던 가시연꽃, 진정한 사랑으로부터배신을 당하고 목놓아 울어야만 했던 가시연꽃, 아버지와 어머니라는가시연꽃, 아들과 딸이라는 가시연꽃, 도덕과 법률과 전통과 역사라는 가시연꽃, 전 인류의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고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애송시’를쓰고 싶었던 가시연꽃―. 이 세상은 천형의 가시밭길이고, 가시연꽃의 세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사는가가 문제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들 모두가 다 같이 자기 자신의 행복의 연주자라면 불행의 모든 요소들, 즉, 고통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따라서 그의 행복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최윤경 시인에게 있어서 고통은 그의 충신忠臣이며, 그의 인생은 고통이라는 충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게 「가시연꽃」을 피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가시연꽃」은 “내몸을 함께 살아줘서 고맙다/ 내 아픔견뎌준 내 사랑 고맙다/ 제 몸의 생살 갈가리 찢고 나서야 고맙다고/ 비로소 환하게 가슴 여는 가시연꽃”이라는 시구에서처럼, 이 세상의 고통에 대한 헌시獻詩이자 이 세상의 삶의 찬가라고 할 수가 있다.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우리말인 「가시연꽃」, 이 14행의 짧은 단시에, 그러나 고통을 더 크게 끌어안고 그 고통과 함께 살아온 그의 삶의 진실과 그 역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단어 하나와 토씨 하나에도 생살을 찢는 듯한 고통과 그 아픔이 배어 있고, 이 ‘고통의 꽃’이 이처럼 「가시연꽃」으로 가장 찬란하고 화려하게 피어난 것이다.
생산의 아버지이자 생산의 어머니인 고통을 충신으로 삼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 최윤경 시인의 행복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