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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이 아니로구나
(김준호 신부)
오랫동안 교구청에서 근무하다가 모처럼 본당 사목을 하게 됐다.
역시 사제는 사목자로서 신자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어느 해 성목요일. 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되는 성유축성미사에
본당 교우들과 함께 참석했다.
교구장 주교님이 주례하는 중요하고 큰 전례에 본당 교우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교회를 더 잘 이해하고 신심을 돈독히 라 수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날은 교구 내 모든 신부님들이 사제서품 때의 서약을
갱신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날을 사제들의 생일이라고 한다.
미사후 많은 교우들이 자기네 본당 신부님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면서 축하해 주었다.
나도 우리 본당 교우들에게서 멋진 꽃다발을 받았다.
소위 사제들의 생일. 처음으로 받는 꽃다발이 고맙고 감사했다.
나는 본당 교우들과 어울려 식당으로 향했다.
아. 그때 저 뒤에서 어머니는 나를 보고 계셨던 것이다.
신부님. 많은 교우들에 둘러싸여 멀어지는 신부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구. 이제 진짜 내 자식이 아니로구나.
하느님. 제 자식을 당신의 도구로 잘 쓰십시오.
인제야 당신께 제 자식을 드립니다...하고 기도했다요.
나는 모처럼 자식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쁘게
먼 길을 달려와 오늘 미사에 참석했다오.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미사 내내 제대에 있는
아들 신부님만 바라보면서 행복했
그런데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지요.
행여 신부님에게 누가 될까봐 그저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만 보았지요.
그러다가 교우들에게 둘러싸여 멀어지는 신부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진짜 내 자식이 아니로구나...생각했다요.
신부님. 잘 사시오.
내가 평생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했듯이.
저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 아들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하리다.
마지막 숨을 가쁘게 내쉬면서 힘겹게. 그러나 분명하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다시는 놓지 않으려는 듯이 내 손을 잡으셨다.
어머니의 손은 뼈만 남아 앙상하고 딱딱했지만.
그러나 너무도 따스했다.
빙긋이 웃으시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눈가의깊은 주름을 타고
가느다란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기뻐서도 아니었다.
그 무언가로 꽉 찬 가슴이 벅찼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두 손을 잡고 나도 말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나를 이 세상에 내셨듯이 이제는 제가 어머니를
하느님께 올려드립니다.
어머니가 하느님께 봉헌한 자식이 이제 어머니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기름을 정성스레 발라드리고 마지막 강복을 드렸다.
그리고 내 가슴에 어머님의 얼굴을 꼬옥 감싸 안았다.
신부님. 잘 사시오.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도 기도하리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 오늘도 나를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