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훌륭한 다윗도 다듬어져 갔던 것이었나보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왜 다윗은 도망쳐 나왔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 때문에 라마 선지자 학교에 불편을 끼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까?
아니면 기도만 집중하게 하는 사무엘 선지자의 모습으로는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을까?
기름부음 받았으면 뭔가 일이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정적만 흐르는 그 시간이 버거웠을까?
’ 다윗이 도망하여 ‘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렵게 구한 과학교사.
자격이 충분하지 못한 것을 채용 후 2주 만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헤드미팅을 하고 뒷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스쳤습니다. 결국에 최종 결정을 해야 하고…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남의 말은 참 하기 쉽습니다.
도망치는 것은 아니지….
라마나욧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어야지….
이렇게 머리에서 훈수하는 제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제가 제 자신에게 하는 소리 같았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지게 만드는 것을 느낍니다.
모든 고민도, 어려움도 사라지지만 주님과의 관계는 남는 것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을 잡고 싶은데…
다른 기도가 나오지 않아
“예수님 사랑합니다”를 계속 고백합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20:17)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이해를 따지고 욕심많은 세상에서 자신을 내어 줄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고 아름다음 모습인 것 같습니다.
숨을 쉬는 것 조차 버겁게 느껴지던 어느 날 친구의 전화가 숨을 쉬게 해 주었을 때,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의 치부를 보이고도 부끄럽지 않음은, 도리어 위로받고 회복이 되게 하심은 그 또한 하나님의 피할 길을 열어 주심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요나단처럼 정말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계산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새의 아들이 살아 있는 한, 너는 절대로 왕이 될 수 없고, 나라를 가질 수도 없다. 그러니 이제 사람들을 보내어 다윗을 끌고 오너라. 다윗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31절)
아버지 사울왕을 이을 왕위 계승자 요나단.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 아닌 다윗을 왕으로 택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저라면 시기와 질투심으로 어려움에 처한 다윗을 돕기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질투하여 죽이려는 아버지 사울과는 정반대로, 아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며 다윗을 돕기에 힘을 씁니다.
그리고 다윗의 제안을 수락하며, 다윗에게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게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를 베풀어 달라 요청합니다.
모든 사건과 상황 속에서 자기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요나단처럼.
내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권리포기의 삶이 되길, 영혼 깊숙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부모와 함께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다윗을 돕는 요나단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면 따르는 것이 순종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악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고 기도합니다.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어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자손을 돌봐달라 부탁을 합니다.
본인이 왕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을 인정하고 축복까지 합니다. 이 모습이 청지기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때 매 순간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 한 해는 매 순간 감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사울에게 어떻게 저런 아들이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요나단은 너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정직하고 사울의 핏줄임에도 같은 편에 서지 않고 선과 죄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나단의 말과 행동을 보며 그냥 세상의 착한 사람, 정 많은 사람,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시고 인도하심을 알았기에 아버지의 행동이 바르지 않음을 알았기에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깨닫고 그대로 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등지고 친구에게 힘을 실어주는 그의 행동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핏줄은 끌리고 가족이란 존재는 분별력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른 믿음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요나단과 같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세상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으며 감정이 앞서지 않는 이가 되기 원합니다.
모든 선택에 앞서 하나님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며 그 삶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우리를 인도하심을 분별할 수 있는 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믿음으로 선하고 의롭고 정직함이 바로선 요나단과 같은 믿음의 자녀 되길 기도합니다.
제게도 요나단과 같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속상함을 쏟아낼때도, 믿음이 떨어져 방황할때에도, 함께 울어주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기도해주었던 믿음의 친구들...
다윗의 억울한 하소연을 듣고,
너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설득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계속 힘주어 말하며 위로하던 요나단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뜻을 따르기 원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위로는,
넘어진 저를 일으켜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가 믿음으로 서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을 나누며 함께 걸어가는 수고를 해준 친구 덕분에, 믿음이 회복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나도 또 누군가에게 요나단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하나님께로 같이 걸어가는 믿음의 동역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안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은혜안에 함께 세워져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