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8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9.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 》
창 3:7
〈 아버지와 아들 〉
2021년, KBS에서 방영한 드라마로 “연모”가 있습니다.
중전마마가 회임을 했는데 쌍둥이입니다. 얼굴은 똑같은 남녀쌍둥이입니다.
전통적으로 왕가에서는 쌍태아를 흉조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남녀쌍둥이라니~
드라마는 처음부터 이렇게 시작해야 시청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쌍둥이를 낳았는데, 아들은 장차 세자가 되어야 합니다. 딸은요?
잔인하지만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이렇게 전개되는 드라마인데, 그 속에 한 아버지와 아들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개천에서 난 용입니다. 자수성가하여 권세를 얻습니다.
권세를 얻기 위하여, 실세인 정승을 선택하고 무조건 복종으로 가문을 일으킵니다.
그러다보니 악행을 수없이 저질러야 합니다.
누군가를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복종, 맹종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가문을 일으키고 외아들 하나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와 다릅니다. 성품이 올곧고 나쁜 일이라면 결코 나서지 않습니다.
자연히 아버지와 아들이 부딪히게 됩니다.
드라마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애증 관계가 전개되고, 끝내 아버지가 죽습니다.
칼을 맞고 아들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이때 아들에게 유언을 합니다.
“아비에게 네가 가장 자랑스러운 때가 언제였는지 아느냐?”
“위중하니, 말씀을 아끼셔야 합니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네가 나를 닮지 않아서, 나는 그것이 가장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눈을 감습니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 지 ‘아슴아슴’ 보여줍니다.
☞ 아버지의 마음은 이렇게 때로 이율배반적입니다.
“자식들이 나를 닮아주었으면…”하지만, 한편 “나를 닮지 않아야 할 텐데…”합니다.
좋은 것은 닮기를 바라지만, 아버지도 인간이기에 안 좋은 것은 안 닮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혹시 어머니도 그러한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되신 하나님도, 육신의 아버지와 같은 두 가지 마음을 가지십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닮기 바라지만, 어떤 것은 닮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 하나님의 형상 〉
하나님은 어떤 것을 닮기를 바라시고, 어떤 것을 닮지 않기를 바라실까요?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지었습니다.
“자식들이 나를 닮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우리가 닮아야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8)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이 자기의 형상인 “사랑”을 따라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아버지로서 간절히 바라고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한편 ‘너희가 이것은 닮으면 안된다. 따라하지 말라!’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하는 이것, 너희는 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이 있습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자기 형상이 드러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선악을 아는 일”만은 “너희가 하면 안 된다!” 하십니다.
선악을 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다.
“이것은 선이고, 이것은 악이다!” 이렇게 결정하고 시행토록 하는 일입니다.
☞ 하나님은 선악을 분별하고 결정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면서, 다른 것은 다 나를 닮되,
선과 악에 대해서만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주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선악과 열매를 금하십니다.(창 2:17)
〈 메커니즘 mechanism, 작동원리 〉
아담 하와는 마음껏 따 먹어도 좋다는 생명과는 외면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닮으라는 것은 안 닮고, 닮지 말라는 것은 쪼르르 닮아갑니다.
사랑과 용서는 팽개치고, 저마다 이기적으로 선을 결정하고, 악으로 단정합니다.
세상의 부모와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부모님이 자녀를 향하여, 닮기를 바라는 것은 안 닮고, 닮지 말라는 것은 닮습니다.
☞ 이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입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말을 썼습니다.
조금 고상한 말로 하면, “세상의 작동원리”입니다.
“작동원리”는 영어로 “메커니즘(mechanism)”입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은 세상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관심이 높았습니다.
세상의 작동원리를 연구했습니다.
동양의 유교사상은 세상의 작동원리로 ‘음양오행설’을 내세웠습니다.
모든 것은 음과 양으로 되어있다는 주장입니다.
오행이란 수.화.목.금.토입니다. 물, 불, 나무, 쇠, 흙입니다.
음양오행설은 유교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공자는 세상의 작동원리가 음양오행이라고 보았습니다.
한국의 국기에 쓰인 태극과 건곤감리 4괘 역시 세상의 작동원리를 나타냅니다.
한국에도 나름대로 세상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이 있었습니다.
이기일원론, 이기이원론 등등, 모두가 세상의 작동원리를 해명해보겠다는 사상입니다.
☞ 서양의 철학도 세상의 작동원리를 밝히고자 노력했습니다.
서양의 철학에서는 세상의 작동원리에는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보이는 것은 ‘현상계’ 보이지 않는 것은 ‘예지계’ 혹은 ‘영계’라 합니다.
현상계는 악하고, 예지계는 선하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육신은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는 식입니다. 이분법입니다.
☞ 동서고금 수많은 이론과 학설 중에서 진정한 세상의 작동원리는 무엇일까요?
〈 하나님의 창조 섭리 〉
유교의 음양오행설, 한국의 태극과 건곤감리, 서양의 이분법 등등,
이 중에서 어떤 것이 진짜 세상의 작동원리일까요?
☞ 오늘 설교를 들으시는 여러분은, 무엇이 진짜배기 작동원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작동원리,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서 찾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잖습니까!
엿새째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의 파트너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하나님이 닮기 원하는 것은 팽개치고, 하나님이 닮기를 바라지 않은 것을 따랐습니다.
여기서부터 ‘세상의 작동원리’가 발현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 9.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 》입니다.
설교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은, 바로 이것이 ‘세상의 작동원리’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이 선악을 결정한다는 설교 제목에는 함의가 하나 있습니다.
본디 선악은 하나님이 결정하심이 타당하다는 당위성입니다.
하나님이 선악을 결정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결정해 주신 선악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첫 조상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선악 결정권을 가져왔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선과 악을 팽개치고, 사람이 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이것이 “세상의 작동원리” “세상의 메커니즘”이 되었습니다.
“선과 악을 사람이 결정하는 세상”
세상의 작동원리 첫 번째입니다.
“사람이 선과 악을 결정한다” 이 한 마디로서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한 마디로 세상의 현상을 설명할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선과 악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개념조차 없습니다.
사람이 선과 악을 결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결정해 주는 선과 악이 있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이 결정하는 선악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 〉
“하나님에게 선악 결정권이 있지만, 우리는 지금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에 삽니다.”
이 현실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설교 본문으로 삼은 창세기 3장 7절을 보겠습니다.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결정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처음 결정한 선과 악, 그것이 무엇입니까?
“부부간이라도 옷은 입어야 마땅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결정은 무엇이었습니까?
“부부간에는 발가벗고 사는 것이 선이다!”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아담 하와에게 옷을 해 입히지 않으셨습니다.
아담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결정한 선악의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8절)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선악과 이전에는 어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쫓아나가서 하나님을 반겼습니다. 품에 안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숨어야 한다!”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은 이렇게 흘렀습니다.
대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피하면서 살다보니, 이제는 아예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립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렇게 선과 악을 자기네가 결정하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두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입니다. 가인 아벨 형제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고 가인의 제사는 흠향치 않았습니다.
가인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내가 아벨을 죽이는 것이 “선”이다!’ 이렇게 결정합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깁니다.
☞ 끔찍한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입니다.
〈 세상의 작동원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있습니다 〉
세상의 작동원리 첫 번째가 《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이 한 마디만 가지고도,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해독할 수 있습니다.
《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 》이 한 마디는 세상을 해독하는 만능키입니다.
하나님이 선악을 결정해야 하는데, 사람이 선악을 결정합니다.
그 결과가 인류의 역사입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세상의 현실입니다.
개인과 개인간의 분쟁, 집단과 집단간의 분쟁, 나라와 나라간의 분쟁~
모두 《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 》이라서 나타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이 선악을 결정하고, 사람이 그에 순종한다면 일어나지 않을 현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허락하신 “특별한 계시”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기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성경은 우주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주신 책입니다.
성경 밖에서 세상의 작동원리를 찾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숭늉은 없습니다. 우물물 뿐입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세상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오리무중(五里霧中)입니다.
안개에 묻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세상의 작동원리를 찾아헤매고 있습니다.
유교의 음양오행설, 한국의 태극과 건곤감리, 서양철학의 이분법, 중국의 백가쟁명,
모두가 오리무중에서 만들어낸 허탄한 신화일 뿐입니다.
보십시오! 《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 》
이 한마디만 가지고도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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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은 물론 세상 구석구석 스며있는 모든 것들…
《 사람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 》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선악을 결정하시는 분이라는 진리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
하나님이 선악을 결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악을 결정하는 세상,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누려야 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