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이 오면, 아직 추운 날씨에도 가장 먼저 피어나는 매화꽃을 보려 나선다.
그 중에서도 경남 산청군에 산청 삼매를 보러 간다.
올 해는 지리산 자락 위치한 '지리산바우덕이 '에서 한식으로, 봄의 정취를 느껴보면서
산청에서 시천면,단성면을 둘러 본다. 방문일 2024.3.1.
지리산바우덕이 식당에서 깔끔한 분위기에 맛있는 식사를 했다.
바우덕식당에서 부터 산청 IC 방향으로 노선을 정하니 식사 후 '덕천서원'을 지나게 되어 들렸다.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의 제자들이 선조9년(1576)에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덕천서원
덕천서원 내 숭덕사
마음을 올바르게하는 '경'과 그것을 실천하는 '의'를 중요시 하였던 남명의 가르침을 따르는 서원
지리산바우덕이 식당에서 500여m 지나서 덕천서원. 다시 서원에서 800여m를 지나서 산천재가 나온다.
산천재는 남명 조식 선생이(1501~1572) 61살 때 부터 돌아가실 때 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장소이다
산천재 정문
산천재에 들어서니 하얀 눈으로 뒤덮혀 빛나는 지리산 천왕봉이 멀리 보이고
남명매가 만개하였다.
지리산 천왕봉과 남명매를 배경으로 인증샷
남명 조식선생이 손수 심어 지금까지 살아 꽃을 피우고 있는 이 매화 나무를
조식의 호를 부쳐 '남명매'라 한다. 450여년의 긴 세월에 남명의 품성처럼
굳굳하고 강한 지조를 지켜 매년 피어나는 남명매!
산천재
경과 의를 중시한 선생님의 뜻을 써 놓았다.
하얀 눈이 빛나고 있는 지리산 천왕봉
산천재에서 남명선생은 항상 이 경치를 보며 마음을 닦았으리..
수차례 방문했던 지난날에는 오늘처럼 활짝 핀 남명매는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이번은 정말 활짝 핀 꽃과, 삼월 까지 남아 있는 지리산 천왕봉의 흰눈을 보다니 행운이다.
작은 매화 아래서 책에 붉은 점 찍다가 큰 소리로 요전을 읽는다.
북두성이 낮아지니 창이 밝고 강물 넓은데 아련히 구름 떠 있네.
고고란 선비 정신
매화향 살짝 날리며 펴있는 남명매
산청 조식 유적
남명은 지금의 합천군 삼가면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과거에 급제하면서 서울에 옮겨가 살았다.
아버지가 별세한 후에 30세에 처가 김행에서 48세 부터 고향 합천 삼가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를 가르쳤다.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학자로 그 명성이 알려져 조정에서 수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며 명종 10년(1555)에 내려진 단성현감을 사양하며 '단성현감사직소'를 올려 민생 안정과 개혁을 제시하였다.
72세에 별세 후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문정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남명기념관
남명 동상
남명 기념관내 활짝 핀 매화
봄바람 불어 오니 은은한 매향으로 정신이 혼미하다!
기념관 옆 가묘 출입문
매화가 활짝 피었다.
깊이 성찰하여 답을 구하고 직접 실행에 옮기다.
하학상달을 강의하다.
임진왜란 때 제자들이 의병을 일으켜 그 빛을 발하다.
의병장 곽재우.정인홍.김면 등
경의 사상
출사 거부는 무도한 정치에 대한 저항자의 의로운 표현 행위였다.
대비를 '깊은 궁궐속의 과부, 국왕 명종을 '선왕의 고아'라 묘사한 을묘사직소는 대표적인 상소문이다.
조식 영정
단속사지동.서 3층 석탑
통일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단속사지 석탑 앞 매화나무
정당매
정당매
통정공 회백, 통계곡 회중 형제분이 지리산 신라고찰 단속사에서 수학 할 때 심은 매화나무다.
그후 통정선생이 정당문학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하여 후대인과 승려들이 정당매로 불리면서
630여년 오늘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정당매
정당매각
통정 정당매비
단속사지에는 동.서 삼층석탑과 정당매가 남아있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단속사지 까지는 네비로 찿아 가는데 막상 정당매는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그냥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있어 이렇게 같은 자리에 있슴을 알립니다.
남사예담마을의 매화나무
다음의 정책상 50장을 넘기는 사진이 올라가지 않아 삼청 삼매중 '원정매'는 다음 장에서 올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