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팔백여든두 번째
구원은 존재의 변화입니다
내 안에도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고, 기도보다 계산을 앞세우며, 순종보다 체면을 붙드는 작은 왕이 살아 있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기보다 내 아픔만 헤아렸고,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사랑은 피곤하다는 말 뒤에 숨겨 두었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순종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그 작은 습관이 나를 천국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거창한 신앙의 행위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솔직한 나의 기도가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줍니다. 남가주대학(USC) 철학과 교수이면서, 남침례교 소속 목회자였던 달라스 윌라드 Dallas Albert Willard는 간발의 차이로 천국을 놓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피하고 그분에게서 도망치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지옥에 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지옥에 가겠다고 꾸준히 노력할 사람은 없겠지만,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 그렇게 사는 우리에게 천국을 향한 마음을 놓치지 말라는 경고일 겁니다. 조정민 목사는 <왜 구원인가>에서 “구원은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사건”이며 “우리는 흔히 구원을 ‘문제 해결’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존재의 변화’”라고 정의합니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 간특한 지혜가 아니라 죽어 있던 내 영靈을 ‘살아있는 영靈’으로 변화시킨 일생일대 최고의 가치를 추구한 존재의 변화 사건이라는 뜻일 겁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원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의 세속화, 교회의 자본주의화에 대한 경고로 유명한 하비 콕스 Harvey Cox의 말처럼 복음과 말씀의 홍수 속에 외형적으로는 비대해졌지만 정작 예수님의 마음을 읽고 그 마음을 품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기계적 종교인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