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뜻을 아는데 평생이 걸릴 수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을 잘 꾸었고 그 꿈을 잘 기억하였다. 예닐곱 살에 꾼 꿈을 지금도 선명하게기억한다. 여섯 살 때 꾼 꿈을 기억한다고 하면 믿어줄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그 때 꾼 꿈을 기억하며 묵상한다. 그 꿈은 신묘하여 지금도 나를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동화와 동심의 세계로 인도한다.
우리 마을의 앞 논들이 경지정리가 되어 구불구불한 논길들이 다 쭉쭉 펴졌다. 반듯해진 논 사이로 작은 수로가 났고 그 수로에 물을 대줄 대수로가 마을 가까이로 지나갔다. 대수로에서 작은 수로로 물을 내려 보내는 곳에 작은 수문이 있었다. 그 수문을 들어 올리면 대수로에서 물이 작은 수로로 내려갔고 수문을 내려서 닫으면 물이 중단되었다. 아직 농사철이 되지 않아서 대수로에 물이 없을 때 우리들은 수로 안에서 뛰어 놀기도 하였고 수로를 따라서 백구정 과 제난리 가까이로 가기도 하였다. 드문드문 서있는 작은 콘크리트 수문이 신기해서 구조물 위로 올라온 쇠막대기로 된 수문 조절 장치를 만져보기도 하였다.
수로에서 마음껏 뛰어 놀았던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다. 나는 꿈속에서 수로 옆에 난 길을 타고 백구정 쪽으로 걸었다. 수로에는 물이 말라서 바닥이 다 들어났고 드넓은 들판 또한 가뭄으로 논들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졌다. 모든 풀들과 농작물들이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 나는 물! 물! 물!을 외치며 앞으로 걸어갔다. 작은 수문이 눈에 띄었다. 수문은 망가져 열고 닫는 쇠막대기 조절장치가 없어졌고 그 자리에 큰 구멍이 있었다. 나는 가다말고 서서 구멍 안을 들여다보았다. 구멍 속 심연에는 바다처럼 큰 호수가 있었고 물결들이 파도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땅 속에 바다가 있어. 바다! 이 물을 퍼 올리면 논밭을 살릴 수가 있어.” 그리고 눈을 들어 죽어가고 있는 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구멍 안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물이 없는 것이 아니야. 우리가 물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거지.” 꿈일망정 물을 찾은 기쁨이 컸지만 물을 끌어올리지 못하여 발을 동동거리다 잠에서 깨어났다.
이 꿈은 내 삶의 전 생애를 관통하였다. 꿈의 의미, 메시지를 해석하는데 긴 세월의 기도와 묵상이 필요하였다.
초등 시절에는 땅속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이 있다는 신비한 기억을 품고 지냈다.
중고 시절에는 땅속에 있는 물과 가뭄으로 갈라진 땅의 의미를 생각하며 기도하였다.
대학 시절 이후에는 땅속에 있는 물을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과 능력, 사랑과 권세로 이해를 하였고 가뭄으로 죽어가고 있는 땅위의 현실을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 인간의 곤고한 삶으로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땅속에 있는 물을 어떻게 지상으로 끌어 올려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것인가를 묵상하게 되었다.
어느 날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기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 때부터 나는 물질에 대한 염려걱정으로부터 놓임을 받았다.
이 꿈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였으며 나를 기도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숱한 기적들을 목격하게 만들었다. 어린 나에게 꿈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생각하며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으로 땅속의 물을 끌어 올릴 것이다. 그 물은 하나님의 생명수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드러낼 것이다.
꿈 중에는 나의 미래를 미리 보여준 것들이 많았다. 그런 꿈 중에서도 “황금 들판 속에서 받은 12개 가마솥”의 꿈은 정확히 10년 후 나의 일에 대한 꿈이었다.
인도에서 나는 떠돌이가 되었다. 한 달의 절반은 집에서 지내고 절반은 현장을 방문, 순회하며 지내는데 나이가 들수록 힘이 들었다. 그래서 한 곳에 종합 선교센터를 짓고 내가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와서 교육 훈련을 받는 프로젝트를 염원하게 되었다. 결국 2010년에 8월에 건물을 완성하고 “희망발전소”라는 이름을 명명하였다. 희망발전소에서 다양한 직업훈련 교육과 어학교육, 목회자 계속 교육 등을 실시하였다. 한참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 꿈을 꾸었다.
꿈속에 돌아가신 존경하는 선배님이 나에게 “정동진으로 가라.”는 말을 세 차례나 하였다. 정동진은 해맞이로 유명한 곳이므로 선교 사역을 정리하고 정동진으로 가라는 뜻인가 싶어 바짝 졸았다. 그러나 멋지게 지은 건물과 각종 프로젝트를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래서 정착하지 말고 '이동하며 일하라'는 특별 계시로 해석하고 멈추었던 순회 사역을 다시 시작하였다. 순회 사역과 센터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겸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정동진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또 꿈을 꾸었다.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고향 들판을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서 들판이 바다로 바뀌었다. 내 몸이 물밑으로 빠져드는 찰나에 겨우 한 사람이나 탈수 있는 앞뒤가 긴 빈배가 눈앞에 나타났다. 배에 올라탔는데 삿대도 돛대도 없는 배가 빠른 속도로 물위를 달렸다. 동서남북으로 한참 달리던 배가 어느 자리에서 멈추었다. 순식간에 물이 다 빠지고 비가 내리기 전과 똑 같은 상황 속에 내가 서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황금물결이 미풍에 나부끼고 내리쬐는 햇볕의 온기가 차지도 덮지도 아니한 아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나는 논과 논 사이에 나있는 작은 논둑으로 발길을 옮기었다. 늘어진 벼이삭들을 헤치며 논의 중간 지점에 왔을 때 우측 논 한가운데 초가집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밖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초가집이 논 한 가운데 있는 것이 수상하고 이상해서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다. 초가집은 집이 아니고 가마솥이 동서남북으로 3개씩 걸려있는 널찍한 부엌이었다. 가마솥은 절에서 4월 초파일에나 쓴다는 오백 명용의 밥솥이었다. 아궁이에는 장작이 타고 있었고 밥 냄새가 구수하게 나고 있는데 일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뒷문 쪽으로 나가 사람을 찾아보았다. 어디에도 사람이 없었다. 갈 길이 멀었지만 화재가 염려 되어 나오지 못하고 주춤 거리는데 어떤 나이든 여자가 들어와서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며 나를 환대해주었다.
“저를 아시나요?”
“예, 선생님이 이 밥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실 분이어요.”
“제가요? 왜요?”
“선생님이 뽑혔으니까요?”
나이든 여자는 애정과 신뢰가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꿈을 꾼 후 3년이 채 못 되어 한국으로 나오게 되어 정동진의 의미를 찾았다. 정동진은 한국의 정동진이 아니었고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였다. 그리하여 중국으로 들어가 3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북간도에서 있었던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찾아보며 중국선교와 북한선교를 엿보았다. 그 후 10년 뒤,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 내전이 일어났다. 첸나이에서 함께 지냈던 신학생이 11월에야 소식을 보내왔다. 미조람으로 피난을 왔는데 돈이 떨어져서 굶는 중이라며 구호를 요청하였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시작된 난민구호가 지난 5월 6일에 114차 구호가 되었다. 지금 115차 구호미를 준비하는데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심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후원의 손길이 끊이지 않아 하나님께서 가마솥 12개를 이미 마련하고 나를 심부름시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미얀마 난민뿐이 아니다. 마니푸르의 폭동 난민들, 네팔의 파키스탄 난민들, 네팔과 인도의 코로나 난민들에 이르기까지 나는 가마솥 밥을 퍼서 나르는 자가 되었다.
아직도 해석과 이해가 되지 않는 꿈이 있다. 그 꿈들은 남은 생애에 응답이 될 것이다. 꿈을 꾸었지만 말할 수 없는 꿈도 있다. 너무 엄청난 꿈이어서 사람들이 믿지 못할 허황된 꿈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마음에 담고 기도만 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꿈을 꾸고자 한다. 아무리 준비가 다 된 일도 꿈을 꾸고 꿈대로 뒤엎을 때가 있다. 진짜로 꿈 때문에 10여 년 동안 준비한 일을 다 내려놓기도 하였다. 꿈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메시지로 이해하기 때문이요, 나 자신보다도 하나님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꿈이 많이 사라졌다. 너무 절망해서 그럴까? 너무 낙관해서 일까? 아니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안일무사에 빠져서 일까? 어쨌든 꿈을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믿으며 순종한다.
미얀마 난민과 앞으로 몇 년 더 쌀을 나누어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주님께서 주시는 대로 나누고자한다. 안 주시면 나를 팔아야 할 것이다.
2026년 5월 10일 일요일 인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