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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덤덤한 기분으로 일어나 다시 길을 출발했는데,
산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경북 봉화군...' 산골인데, '오지'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이야 했지만 정말 산 세상인 건 맞은 것 같고, 내가 산속 그 어디 쯤에 걸어가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조금 더 올라가는데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발동 걸리는 소리로는 경운기 같았는데,
'이런 산골에도 경운기가 있나?' 했지만, 이런 산골에는 차보다는 경운기가 더 효과적일지도 몰랐다.
그러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저 앞에서, 경운기 한 대가 나타났다.
나는 더 가까워지기 전에 얼른 그 경운기 사진 한 컷을 찍었다.
"안녕하세요?"
"예..."
"여기서 승부까지 넘어가는 길이 있나요?"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묻고 있었다.
"예... 이 길 타고 쭉 올라가면 되지예.. 저 위에 가면 또 집이 있을 겁니다..."
그 말만으로도 나는 안심이 되었다.
빈 용달인 걸로 봐서, 그분은 여기 가까운 곳에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 집에 돌아가는가 보았다.
그렇게 또 얼만가를 오르니, 아닌 게 아니라 집이 한 채 보였다. 그래서 다가가니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아마 겨울이라 사용하지 않나 보았다.
그런데 이 부근엔 눈이 제법 쌓여있는 것이었다. 아니, 얼마 전 설에 내렸던 눈이(당시엔 거의 전국적으로 내렸으니까.) 녹지를 않아 딱딱한 모습으로 굳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앞에는 입산 통제 방어문이 설치돼 있었다.
'어? 그렇다면 아까 그 경운기는 여기보다 아래에 왔다 가는 것이었나?'
기분이 좀 오싹했다.
여기서부터는 사람 통행이 더 뜸할 거라는 것이고, 적어도 아까 그 농부도 여기까지는 올라오지 않았었다는 말인데......
그래도 나는 그곳을 넘어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뭔가 조금은 두려운(무서운?)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올랐는데, 모퉁이를 돌 때마다 어떻게 보면 거의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 앞 쪽에 보이는 산들의 높이는 거기서 거기일 뿐 낮아지는 기색도 없었다. 그만큼 산마루가(길 정상이) 멀리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산이 깊다는 얘기일 터였다.
그래서 응달의 비교적 적게 녹은 길을 보면, 사람의 발자국보다는 짐승 발자국이 더 많이 눈에 띄는 것이었다.
얼마나 더 가야 길의 꼭대기에 닿을까?
일단 제일 높은 곳에 닿아야,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일 테니까......
그렇게 올라가다가 내가 지나온 곳을 돌아보니, 산이 겹겹이 겹쳐 보였다.
그럴 것이었다.
내가 얼마를 걸어 왔는데......
이제 산마루는 코앞인 것 같았다.
경사도 급해졌고 그 거리도 가까운 듯, 우뚝 선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길엔 더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여전히 사람의 발자국이 보이긴 했지만 한두 사람의 발자국이었을 뿐이다.
계속 산을 올랐다.
그런데 한 모퉁이를 돌 때마다 역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낮아져야 할 그만한 높이의 산이, 계속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도대체 얼마를 더 가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저 앞에 뭔가 길 안내 표시가 있었다.
'아, 살았다!'
반가운 마음에 이미 땀에 흠뻑 젖어있던 몸으로도 서둘러 올라갔는데,
분명 이정표는 이정표였는데, 거리 표시는 없었다.
'에이, 이런 덴 적어도 몇 km 정도라는 표시는 해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기왕에 길 안내를 할 거면, 거리 정보는 제공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연거푸 되지도 않는 불평을 해댔지만,
그게 지금 여기서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데 '고선' 쪽에는 발자국이 있었는데, '승부' 쪽에는 이제 발자국도 보이질 않았고, 산이 높아진 만큼 눈의 깊이도 조금씩 더 깊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한다지?'
덜컥! 겁이 났다.
'더 가야 할까? 아니면 이쯤에서 뭔가 포기를 하고 되돌아가야 할까?' 하다가,
'돌아가? 여기서?'
'내가 얼마를 걸어왔는데 여기서 돌아가? 그리고 돌아가는 것도 쉽기만 한 것도 아니잖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시계를 보니 한 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아직은 한낮이어서 다행이었다.
'앞으로 가나, 뒤로 돌아 가나?'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뒤로 돌아갈 순 없지 않겠는가.
'이거, 정말 내가 조난당한 건 아닐까?'
그, '조난'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나를 기가 질리게 만들었다.
'조난? 그럴지도 모른다......'
비록 시간이 많이 흐른 눈이라 딱딱하게 굳어 신발이 깊이 파묻히지는 않지만, 이제는 짐승 발자국 밖에 보이질 않는 깊고 높은 산중에서 헤매고 있는 나는, 어쩌면 조난당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그러고도 아직도 산의 정상은 먼 듯 여전히 눈 앞에 보이는 산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 어떡한다지?'
순간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문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어? 이건 뭐야!'
'통화권 이탈 중'
'도대체 이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내가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문구였다.
어쨌거나 여긴 통화가 안 된다는 뜻인가 보았다.
'아니, 전화도 안 터지면? 물론 여긴 깊은 산중이라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119에 조난 구조 신고도 못하게 된다는 말인가?'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춰 뒤를 돌아보니, 얼마 전에 길이 갈라졌던 3거리가 저 아래에 보였다.
또 다른 쪽엔 내가 올라왔던 길이 하얀 표시로 작게, 산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앞에는 여전히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아, 어떡해야 하나? 난 정말 조난당한 것이로구나......'
식은땀이 났다.
그나마 늦은 오후 시각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오후 세 시 정도가 넘었다고 한다면, 이건 정말 큰일일 것이었다. 겨울이라 낮이 짧은데......
만약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아까 지나온 집이 있긴 하지만, 거긴 문이 닫혀 있었고, 거기까지 내려가기도 만만찮을 거리일 뿐더러 내 몸엔 불을 지필 그 흔한 라이터도 하나 없으니, 그렇다면 그 아래 첫번 째 외딴집까진 가야 한다는 얘긴데......
'아, 이렇게 날이 어두워 간다면 어떻게 된다지? 전화는 안 터지고...... 아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여태까지 걸어온 게 얼만데, 아직도 많이 남았을까?) 이 길의 정상 부근에선 전화가 터질지도 모르겠다. 설사 그렇다 해도 지금 당장 119에 신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직은 한 낮이니까.'
그런데 한편으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내 자신의 사진을 찍어대고 있는 내 모습에......
허기야, 내가 조난을 당해 이대로 죽는다 해도(?) 사진을 찍어 둘 충분한 가치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죽어서(?) 이 눈이 녹은 뒤에 내가 발견된다면? 이 산속에서 한 나그네가 죽었다는 기록(?)은 생생하게 남을 테니까......
그런데, 한 편으론, 그것도 웃겼다.
'그렇담 나는 죽어가는 것도 기록에 남길 것인가?'
그 건 그랬다. 그 전에 내가 피를 토하고 쓰러질 때도(2002, 그 땐 디지틀 시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름 카메라로, 내 최후의 사진이 될 거라며... 방에 멀거니 앉아 있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적이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이런 식이었으니까.
'참, 이런 상황에서도... 별 생각을 다 하네!'
'어쨌거나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내 맘 내키는 대로 하자. 죽는 건 죽는 거고, 내가 할 일은 또 따로 있을 테니......'
'그건 그렇고, 이렇게 계속 산등성 길에 올라야 하나?
아무래도 오르긴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신고라도 하지.
내가 119에 신고를 하게 되면, 아마 헬리콥터가 올 거야...... 그렇담 그 헬리콥터의 눈에 잘 띄려면? 어쨌거나 지금 아래도 돌아가는 것보다는 위 정상 쪽으로 올라가는 게 현명할 거야. 그런 곳에선 전화가 터질 가능성도 있는 거니......
그래, 힘이 들긴 하지만 앞으로 가자. 꼭대기까지 가는 거야. 거기 도착하는 시각이 세 시가 넘으면 물론 안 되고(전화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전화가 터지긴 할까?), 한계 시간을 세 시로 잡아 놓고 그때까지도 못 오른다면 전화를 걸던지 다시 아까 그 집까진 돌아가야만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거까지도, 적어도 두 시간 정도는 가야 할 것 같은데, 어쨌거나 어두워지기 전에 닿으려면, 그것 역시 그리 쉬운 길은 아닐 것인데......
그때였다. 어젯밤 꾸었던 '죽는 꿈'이 떠 오른 게.
'그 꿈대로 내가 오늘 죽는 건가? 꿈에선 물에 잠겨 죽어갔는데, 현실에선 산 속에서?
꿈은 반대라던데, 그래서 어쩌면 죽는 꿈은 좋은 징조일지도 모른다는 나름대로 해몽도 해봤는데, 이건 꿈이 그대로 현실로 이어진단 말인가.
내 여태까지 꿈을 수도 없이 꾸어 보았지만, 그렇게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꿈을 꾸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죽으려고, 마지막으로(?) 그런 꿈이 꾸어졌단 말인가?'
나는 꿈까지 기억해 내면서, 내 자신을 불안과 공포의 세계로 몰아넣고 있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강한 위기의식에 휩싸여갔다.
'이대로 죽는다면? 허다 못해 '유서'라도 써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죽을까?
어쨌거나 가방에 종이는 있으니, 유서는 써 놓아야겠다. 그렇지만... 그것도 산마루에 올라간 뒤에 할 일이다.
일단, 산마루까지는 가야 한다.
119에 전화를 걸든, 유서를 쓰든, 그대로 죽어가든......
'그런데 산 이쪽은 해가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밝은 기운이 있는데, 왜 산 뒤쪽의 하늘은 시커멓고 음침하기만 하지?
에이, 그것도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이젠 서서히 몸도 지쳐갔다.
산에 오르느라 땀도 났지만, 눈에 빠지는 길을 걷는 건 그만큼의 체력이 더 소모 되었다. 걷는 속도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산의 능선길의 각도가 완만해져 간다는 것이었고, 아직도 세 시가 되려면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젯밤 찜질방에서 핸드폰 밧데리를 충전해 놓은 여분이 있어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 밧데리가 떨어져도 교체할 수 있는 여유도 큰 믿음이 되어 주었다.
그래도 산이 높긴 하지만 양지쪽은 제법 눈이 녹은 모습이어서, 그만큼의 위로도 돼 주었다.
수시로 변하고 있는 하늘에 따라 내 마음도 변해가고 있었다.
지금의 나에겐 햇볕은 곧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해라도 비치면 그만큼 마음이 녹아내렸고, 금방 구름이 몰려와 기분 나쁜 비에 섞인 가는 싸락눈이 뿌릴 때면 (하필이면 기분 나쁘게 싸락눈까지 내리고 있었다.) 절망의 신음소리까지 내뱉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산마루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몸은 흥건히 땀에 젖어 있었고, 마음은 겁에 질려... 아무 정신도 없었다.
오로지 '산(길)마루'만을 향해 정신없이 걸어갔다.
'도대체 여기 산 높이는 얼마지?'
사전에 지도도 보지 않고(허기야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로 떠나왔는데 어디 지도를 보고 온단 말인가.) 온 것이 후회도 됐다.
'저 가장 높은 봉우리는 몇 m나 될까?'
(나중에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비룡산'으로 1128 m였다.)
한가한 길을 걷고 싶은 욕심으로 산행을 택했던 거지만, 이렇게까지 산이 깊을 줄은 모르고 시작된 일이었다.
그저 봉화 부근이 오지라는 것만 생각하고 왔던 길이라......
얼추, 산마루에 닿은 것 같았다.
주변의 한두 굽이가 그런 높이로 보이긴 했지만, 더 이상 오를 길은 없을 것 같았다.
'아, 그렇담... 내가 살았단 말인가? 그건 그렇고, 119에 전활 걸어? 아니지! 여기가 길의 정상이라면, 앞으론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는 얘기고, 지금 눈의 상태가 이 정도라면, 여긴 숲이 아닌 어쨌거나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임도 林道) 이니, 내가 미끄러져봤자 계곡으로 굴러떨어질 리도 없으니, 별거 아니리라...... 그리고 아직은 두 시가 채 넘지 않았으니, 나 혼자의 힘으로도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담 내가 살아났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었다.
'그래, 119에 알릴 필요는 없다. 뭐 좋은 일(?)이라고 남들 귀찮게 한단 말인가. 아직은 한낮이니, 나 혼자의 힘으로도 내려갈 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눈이 남아있는 곳까진 어둡기 전에 내려갈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후엔 조금 어두워져도 어떻게든 민가가 있는 곳까진 닿을 것이다...... 그렇담, 희망이 있으니(?), 이제 됐다! 살았다!'
'아무렴, 내가 그렇게 쉽게 죽겠는가?'
'어? 그러고 보면 어젯밤 꿈이, 길몽(?)이었을까? 비록 조금 전까진 사경을 헤맸지만(?) 이렇게 살아난 걸로 보면... 꿈 대로,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 따지고 보면, 길몽(?) 아닐까?'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별의 별 해석을 다 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죽는 꿈은 좋다고 했고, 또 물 속에 잠겨 죽는(깨끗한 많은 물) 꿈이었으니, 물과 불 모두 좋은 꿈이라니.. . 실제로는 죽지 않는 꿈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