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19.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루카 12,13-21)
-송영진 신부
탐욕을 조심하여라.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3-15)”
지금 이 상황은, 형제간에 유산 상속 문제로 다툼이 생겨서예수님께 그것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인데, 예수님께서는그 요청을 들어주기를 거절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이 듣는 앞에서 ‘탐욕’에 대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사람의 형뿐만 아니라 그 사람 자신도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라는 말씀은, 세속의 일에 개입하기를 거절하시는 말씀입니다. 1) 이 말씀에서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루카 9,60).” 라는 말씀이 연상됩니다. 유산 상속 문제로 형제가 다투는 것은 ‘죽은 이들의 다툼’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런 다툼을 해결하는 것도 ‘죽은 이들’이 할 일입니다. 2) 예수님 말씀을, “나는 너희의 탐욕을 채워주려고 온 것이 아니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속의 부귀영화를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께
청해야 할 것도세속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구원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3) 뒤의 말씀을(탐욕에 관한 가르침을) 그 사람의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즉 형제간의 다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신 말씀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형제 사이에 유산 상속 문제에 관한 다툼이 생긴 원인은 ‘탐욕’이기 때문에, 둘 다 탐욕을 버리면, 또는 한쪽이라도 탐욕을 버리면 그 다툼은 바로 해결됩니다. (만일에 둘 다 끝까지 탐욕을 버리지 않으면, 그 다툼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라는 말씀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25)”
라는 말씀에 연결됩니다. 신앙인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 생명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그런데 영원한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돈을 다 가진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그 돈으로 선행과 사랑 실천을 많이 할 수 있고, 그러면 그것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만일에 그렇게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선행과 사랑 실천으로 들어간 것입니다.(바로 그 부분을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선행과 사랑 실천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마음과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도 잊으면 안 됩니다. 마음속에 선도 없고 사랑도 없이 돈으로만 한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위선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고,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없습니다. (돈이 많아서 그 돈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서 더 유리하다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다는 뜻이고, 그러면 그 나라는 하느님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차별이 없는 나라입니다.) 어떤 부자가 진심으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한다면, 언젠가는 ‘빈손’이 될 것이고, ‘빈손’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어차피 돈이라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인 성녀들 가운데에는 ‘부자였던’ 사람이 많지만, ‘부자인 채로’ 생을 마친 사람은 없습니다.
탐욕에 관한 가르침 뒤에 이어지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많이 가진 자들이 잘난 체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혜가 아니고, 어리석은 탐욕일 뿐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16-21).”
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자기가 모은 재산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첫 번째 어리석음입니다.또 그는 자기의 목숨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두 번째 어리석음입니다. 또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세 번째 어리석음입니다.
세상 만물은 주님이신 하느님의 것입니다.재산도, 목숨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시간의 주인이신 분입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는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그래서 하느님께 봉헌하려는 생각도 없고, 또 이웃에게 고마워하지도 않고, 그래서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려는 생각도 없습니다. 그것이 그의 첫 번째 죄 - ‘탐욕’입니다. 또 그는 혼자서 먹고 마시며 즐길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두 번째 죄 - ‘방탕’입니다. 또 그는 내세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고,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세 번째 죄 - 교만입니다. 여기서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라는 말씀은, “누구의 차지도 되지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지금 당장’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오늘 밤에’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그에게 몇 시간의 여유는 주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몇 시간은 회개하라고 주신 시간입니다.
◈ 원문보기▶ Rev.S.Moyes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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