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있는 비밀
- 서 하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 학교 갔던 일
감자볶음 하면서 설탕을 소금으로 잘못 알고 저지른 일
방울토마토 먹으면서 토마토는 버리고 꼭지를 입에 넣었던 일
마른 제피 다듬으면서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만 모아 두었던 일
전화 통화 하면서 전화 찾던 일
입은 팬티 세탁기에 던져 넣고 깜빡! 노팬티로 옥상에 빨래 널러 갔던 일
순간순간 어색하고 낯설었던 일……
말할 수 있는 비밀은
비밀도 아니어서
분리수거함에 모인 비닐처럼
속이 환히 다 들여다보이는
비밀이 비밀이기를 포기할 때
드디어 바다는 바다가 된다*
* 사이토 마리코의 시 「하구」에서 빌림.
—시집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걷는사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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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비밀은 언제나 궁금해 하면서 본인의 비밀은 감추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 들통이 나면 얼굴 붉히며 변명을 하고 맙니다
단 둘이 있을 때 들려주는 '너만 알고 있으라'는 속삭임도 믿을 수 없는 세상살이입니다
얼마전 로또 당첨번호를 미리 알려주는 업체로부터 몇 번 전화와 문자를 받았는데요
게속 읽고 씹었더니 가입의사가 없다는 말이라도 해달래서 거절문자를 보냈네요^*^
남들에게 당첨 알리지 말고 본인들이 찍고 돈 벌라고...
비밀이 비밀이기를 포기하면 내로라하던 인물들도 그저 나같은 보통사람이 되고 마네요
순간순간 어색하고 낯설어보일 때 그누구일지라도 '아, 사람이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