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8일 (화)
제목 : 자족의 비결
오늘의 말씀 : 빌립보서 4:10-23 찬송가: 429장(구 489장)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중심 단어
자족, 비천, 풍부, 비결을 배우다
주제별 목록 작성
바울이 배운 일체의 비결
11절: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
12절: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다
13절: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알았다
도움말
1. 자족하기를(11절): ‘만족하다, 기쁘게 여기다’라는 뜻이다.
2. 마게도냐(15절): 그리스 반도 북쪽에 위치한 로마의 주(州)다. 대표적인 도시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이다. 바울이 제2·3차 선교 여행 때 방문했던 곳이다.
3. 문안하라(21절): 부둥켜안고 볼에 입을 맞추거나 비비는 유대식 인사법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바울이 배운 일체의 비결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후원에 대해 어떻게 축복하고 있습니까(17-19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이 문안하고 보살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며 감사드리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한마음 기도회’를 준비하면서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말씀을 느낄 수 있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만큼이나 공감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빌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말씀 앞에 설 때마다 내 감정, 내 상황에 따라 바울의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것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하고 궁금하지 않기도 하다. 나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배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는 말에 “그래도 받았으니까”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아니 이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거야! 라고 부정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또 13절은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해석하고 싶어진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을 할 있다!”
이렇게 마음이 삐딱해지는 이유를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왜 나는 자족할 수 없는 걸까?” “왜 나는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까?” “바울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왜 나는 왜 못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도대체 바울은 어떻게 배웠다고 말하는 것일까?
주님! 그래도 바울은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지 않습니까?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성도들에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축복할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왜 나는 풍부에 처했던 기억, 배부름의 기억은 어디로 사라지고 궁핍, 배고픔, 부족함에 처했던 것만 생각이 나는 것일까?
바울은 실제로 빌립보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받은 선물을 기뻐했고 에바브로디도의 섬김도 받았다. 하지만 배고픔도 경험했고 궁핍도 경험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나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배부름도 견딜 수 있고, 배고픔도 견딜 수 있다. 풍부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을 수 있고, 궁핍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내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신다. 마치 바울처럼 일체의 비결을 배운것처럼 부족하지 않은 척하고 싶지 않다. 바울처럼 자족할 수 있는 척하고 싶지 않다.
자족이 부족한 것이 풍성히 채워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 안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난 할 수 없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을 바로 잡아 주신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바울은 빌립보교회로부터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그 도움에 의존하지 않았다. 사람의 손을 통해 공급받았지만 공급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절에서 “나의 하나님이 …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축복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바울은 받았으니까’로 생각이 옮겨지는 것을 보고 다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언제나 온전히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공급처가 되심을 믿고 인정하게 될까? 언제나 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이시기에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을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주시는 도움도 감사하게 받을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풍성함이 있음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받은 것이 많고 풍성해서 자족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이시기에 내가 부족함이 없고 풍성하게 받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나눔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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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주님.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나는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는 말씀에 “그래도 받았으니까”라는 말로 부인하고 싶어지는 저에게 내게 부족한 것이 채워져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가운데서도 나의 공급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자족하고 나누는 삶을 배울 수 있도록 마음을 바꾸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공급으로 말미암아, 풍성함이 내게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누고 축복할 수 있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는 주님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시며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가 작은교회로 흘러가게 하옵시고, 그 흐름속에 사랑의 열매들이 풍성히 맺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lEbB3_d6LZ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