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846호
통일책방 1
강기희
살다가 생이 지루해질 무렵 덕산기 숲속책방 접고 북녘땅 물빛이 순하고 고운 어디쯤에다 작은 ‘통일책방’ 하나 열었으면 좋겠다
경상도 말투를 쓰는 시인과 전라도 말투를 쓰는 소설가와 충청도 말투를 쓰는 화가와 함경도 말투를 쓰는 무용수와 평안도 말투를 쓰는 소설가와 황해도 말투를 쓰는 소리꾼과 경기도 말투를 쓰는 장구잽이와 정선 말투를 쓰는 내가 책방 앞 평상에 모여 앉아,
통일을 꿈꾸다 죽어간 이들도 떠올리고 황진이와 논개 매창도 불러내고 백석과 소월도 불러내고 안중근도 불러내고 김일성도 불러내고 호치민과 모택동 레닌 스탈린 김구도 불러내어, 731부대 출신 왜놈 두엇과 노덕술 등 악질 친일파 몇 놈도 끌어내 술심부름 시키면서 몇 날 며칠 책 읽다 술 먹다 노래하다 춤추다 어느 순간 숨이 딱 멎었으면 좋겠다
-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 (달아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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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광복절이자 말복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일을 꿈꾸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정선 사람 강기희 형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집인 『양아치가 죽었다』가 드디어 전국 서점에 깔린 날입니다.
그래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에서 한 편 띄웁니다.
「통일책방 1」
한때는 "우리(모두)의 소원"이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정치적 수사(修辭)"이거나 "문학적 레토릭"으로 전락했지요.
그래도 아직 이렇게 통일을 꿈꾸고 통일을 노래하는 시인이 있긴 합니다.
통일만 된다면 친일 고문 경찰 노덕술마저 술심부름 정도로 봐주겠다니,
통일만 된다면 춤추고 노래하다 죽어도 좋겠다니,
그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겠습니다.
그 열망으로 그가 병마(폐암말기)를 딛고 일어섰으면 좋겠습니다.
진짜로 통일책방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 8. 15.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