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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은... 현재를 두고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촛점을 맞추어갑니다.
이름난 옛 영광은 그야말로 역사책 속의 영광이죠... 합스부르크와 카페가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오늘날에는 그다지...
그러나 영국 왕실은 세계의 정치 및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다들 후하게 점수를 주죠.
오늘날 유럽에는 10여개 정도의 왕실이 존재할껍니다. 이들중 세계를 향해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왕실 가문은 거의 없죠.
그냥 왕관을 들고 화석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을 고대할 뿐... 이른바 현상유지?!
얼마전 윌리엄 왕자의 결혼 및 출산 소동은 그야말로 영국왕실이 민주주의의 가치관을 대의에 두고 무장한 민중들을 향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더군요... 그건 그거대로 꽤 성공인듯하네요. 워낙 얼굴빨이 받쳐주니... 다이애너에게 무한한 영광을... 윌리엄의 퍼포먼스에 따라 영국왕실은 그 수명을 더 늘려갈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기가막힌 원칙을 만들어서 자손대대로 잘먹고 잘살게 하는 놀라운 수단을 보여준 벨프 가문을 선택했습니다. 진실로... 이 가문의 정치적 역량은 가희 세계 최고입니다.
어찌 보면... 시대의 흐름에 부르봉 가문은 굽히지 않아서 부러져버렸고, 벨프 가문은 부드럽게 누그러뜨림으로써 후손들의 운명을 결정한 것입니다!!!
벨프 가문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문의 이름이 드러난 시점이 819년경이니... 그야말로 천년이 넘는 세월을 유지해온 셈입니다. 벨프 가문은 역사적으로 Elder House of Welf과 House of Welf로 구분합니다. 남계직속이 한번 단절되면서 구분된 것이죠. 보통 게임 내 1066년을 기점으로 구분될껍니다. 올드갓 시나리오는 Elder House of Welf이고 1066년 이후는 오늘날 영국왕실을 배출한 House of Welf입니다.
벨프는 게르만계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Altorf를 통치하는 영주 벨프(welf)는 색슨계 귀족의 딸 헤드비가와 결혼해 자손을 여럿 두었는데 그중 두 딸이 카를링거 왕가에 시집가면서 이른바 외척 집안으로 떠올랐습니다. 딸 Judith는 샤를마뉴 대제의 후계자 루트비히 1세의 두번째 왕비가 되었고 또 다른 딸 Hemma는 루트비히 1세의 아들이며 독일왕이 되는 루트비히 2세와 결혼하게 되었죠. 외손자들이 모두 금테를 두르면서 덩달아 벨프 가문의 영광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올드갓 시나리오에서는 플레이 가능한 벨프출신 영주가 네 명 나올껍니다. 나이 순서는 약간 다르더군요. 아마도 콘라드, 벨프, 휴고, 루돌프 순일터인데... 여기서는 네 명... 보시다시피....
울름의 벨프가 먼저 나오고...
앙주의 휴고군요... 프랑스식으로는 위그... 영국식으로는 휴입니다만...
상부르군드의 콘라드군요...
어느분은 형제 암살(?)을 통해 영지를 몽땅 수중에 넣게다고 하시던데... 역사적으로는 세 명 다 자손이 없어요... ㅋㅋㅋ
다 죽여도 될듯하네요... 가문의 상속은 그들의 사촌인... 성직자 형제를 배출한 Count of Auxerre인 콘라드입니다. 이 콘라드의 아들이 벨프 가문에 첫 금테를 두르게 해 줍니다. 루돌프 1세라고... 888년 부르군트 왕이 되죠. 루돌프 1세와 그 증손자인 루돌프 3세까지 국왕노릇 해먹습니다만... 남계후손의 대가 끊겨버려요. 물론 루돌프3세의 누님이신 베르타가 위그 카페의 아들이며 프랑스왕이 된 로베르 2세랑 결혼해서 많은 자손을 두지만... 겨우 왕위 뺏은 로베르 2세는 그만 파문먹고 왕관을 다시 카를링거 가문에 돌려줍니다... ㅋㅋㅋ 하여간 카페가의 후손들은 모두 베르타를 할머니로 두고 있어요.
이 사람이 진정한 승자?! 하여간 이 사람이 중시조가 될 남자죠...
이렇게 부르군트왕가의 벨프 가문은 단절됩니다. 이제 슈바벤 지역에 영지를 받은 막내아들 벨프의 후손들이 남았습니다. 벨프 1세는 Count of Auxerre 콘라드의 아들로 추정되고 있고... 흩어진 슈바벤 지방의 영지를 모아 재기를 꿈꿉니다.
재기를 기대하며 머무른 곳이 바로 Altdorf... 게임 내에서는 롬바르디아로 편입되어 있더군요. 슈바벤 분파에서 Count of Altdorf로 지내던 벨프 2세는 두 번 결혼에 1남1녀를 둡니다. 장남 벨프 3세는 카린티아 공작이자 베로나 후작이 되었지만1055년에 사망하면서 결혼도 안하고... 자손도 남기지 않습니다. 그럼 이 많은 영지는...?
이복누이였던 쿠니군데는 남겨진 잔여 영지를 모두 물러받는데 이 영지를 노리고... 밀라노 후작이었던 알베르토 아쪼2세라고... 데스테 가문 출신의 귀족이 모셔갑니다. 그도 외아들이라... 받은 영지도 많고... 마누라에게서도 또 영지 얻고... 결혼 잘해서 영지를 팍팍 늘려갑니다... 역시 결혼이 짱입니다~
게임 속에서 1066년 데스테 가문 열어보면 무엄하게도 벨프가 서자로 나와있더군요. 이건 아마도 Altdorf를 백작이 아닌 남작령으로 표기해서 나온 것이 아닐지... 쿠니군데는 1035년 알베르토 아쪼와 결혼해서 아들 벨프를 낳습니다. 이 벨프가 바로 하노버 왕가의 직계조상이죠...
그녀가 바로 쿠니군테... 기록에는 1054년 34살 정도 살다 죽었다고... 정부 아니에요~!!!
쿠니군테의 아버지인 벨프 2세... 정확이는 Count of Altdorf인데 여기서는 Schwyz 백작이네요...
쿠니군테의 오라버니이자 마지막 엘더 벨프 가문의 남계직계자손인 벨프 3세... 미혼에다 후손 없음~
여기서 벨프 1세라고 한 것은 카린티아 공작으로는 첫번째라는 소리입니다...
이 남자가 바로... 벨프 가문의 조상인 벨프 1세... 여기보시면 Altdorf의 남작이라고... 역사 고증한다고 이렇게 격하시키다니... 영지 이름은 맞는데... 이게 뭔지... 서자 달고 있네... 절대 서자 아님!!!
먼저 알베르토 아쪼2세(Alberto Azzo II, 1009-1097)에 대해 언급한다면...
아버지 알베르토 아쪼 1세가 처음 밀라노에 영지를 마련하고... 그는 외동아들이라 독차지합니다. 그리고 두 번 결혼을 통해 영지를 늘려가는데 첫 결혼이 바로 쿠니군테 벨프와 합니다. 장남 벨프만 낳고 마누라가 죽자 다시 재혼합니다. 벨프는 어머니가 물려준 영지를 받지만 아버지는 무정하게 차남에게만 부계 영지를 물려주죠.
그의 두번째 부인은 앙주지방의 멘 백작의 딸 Garsende였는데 그녀 자신도 두번째 결혼이었죠. 두 아들을 낳는데 풀코와 휴입니다. 그녀가 낳은 장남 풀코 1세(Fulco I)는 밀라노를 차지하였고 차남인 휴 5세는 멘 백작이 됩니다. 즉 모계 영지를 받아겠는데... 휴 5세는 교황에게 파문 먹고 영지를 상실하고 자손 없이 사망합니다.
그럼... 이제 알베르토 아쪼 2세의 아들들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벨프는 어머니 성인 벨프 가문을 따르고 그 영지를 물러받고 풀코는 아버지쪽 영지를 물려받고 데스테 가문을 이어갑니다. 이렇게 형제에 의해 두 가문이 형성되고... 이 둘 다 명문 가문으로 이름을 떨치겠죠... 그럼 데스테 가문은 마지막 끝에 넣는것이 좋을 듯 하네요. 이 가문 역시 이탈리아의 명문인지라... 참고지만 지금은 남계 단절이라 외손들 밖에 없어요. 이건 나중에 소개하죠.
벨프 1세는 부계로는 데스테 가문이지만 모계의 성을 따라 벨프 가문으로 칭하게 됩니다. 벨프 1세는 두 번 결혼을 하는데 미래를 예측한듯이 꽤 정략적이며 절묘한 결혼을 한 듯합니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첫 결혼은 바이에른 공작 오토 2세(Otto of Nordheim, 아마 어느분의 연대기 주인공일껍니다~ 9년동안만 공작노릇 했습니다)의 딸 Ethelinde랑 했는데, 오토가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을때 벨프는 황제의 편에 서서 친왕파 노릇을 한덕에... 결국 아내랑 이혼하고 바이에른 공작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전 장인 뒤를 이어서... 전 마누라는 다른 백작과 다시 재혼~
황제의 편에 서서 공작이 된 벨프는 재혼 자리를 구하게 되는데 흥미롭게도 아주 먼 곳에서 구해옵니다. 마지 자손들에게 내가 미리 씨 뿌려 놓을터이니 나중에 가꾸어서 거두어 먹으라는 식으로... 그녀의 이름은 Judith였고 플랑드르 공작의 딸이며 반 플란더즈 가문 출신의 과부였습니다. 그녀의 전 남편은 Tostig Godwinson... 이렇게 쓰면 한글판으로 게임하시는 분들 이해 하실려나... 윌리엄 정복왕에게 다굴당해 영국왕위 빼앗기는 해럴드 2세의 친동생... 올시다. 하여간 그녀는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었는데 그녀 족보가 탐난 고드윈 가문이 끌고 간듯 합니다. 즉 그녀는 보두엥4세와 노르망디 공작의 딸어었던 엘레오노어 사이에 난 딸인데... 족보가 연결되나요? 정복왕 윌리엄 본가의 고모가 낳은 따님... 참고로 윌리엄의 마누라가 아마 그녀랑 사촌쯤 될껍니다. 그쪽 족보 뒤지기 싫어서 그냥 패스...
하여간 그녀는 정복왕이 들어온 후 아들 둘 데리고 노르웨이로 망명가... 있는 중인데 결혼 콜이 들어온 겁니다. 그것도 공작 부인으로... 벨프 1세의 식견은 알아줄듯... 이 결혼으로 벨프 가문은 영국왕실과 끈을 연결합니다. 즉... 노르망디 가문을 진외가로 두는 셈이니... 그것도 적통 공주님 자손... 윌리엄은 서자라서 약간... 그렇죠.
이미 두 명을 아들을 낳았는데 또 결혼해서 2남 1녀를 더 낳습니다. 장남 벨프 2세는... 아~ 이분 참으로 유명하죠. 그리고 차남이 하인리히 4세... 딸은 시골 촌구석 백작에게 시집가서 기록이 없습니다. 현재 벨프 가문의 조상은 하인리히 4세입니다. 장남은 자손이 없어요... 그 결혼소동으로 말입니다...
그녀가 바로 유디스... 벨프 1세의 두번째 부인이며... 모든 벨프 가문의 할머니입니다...
그녀 가문을 좋아하시는 분들 많던데... 땅이 워낙 기름지고 돈이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동네죠...
저도 자주 플레이 합니다...ㅎㅎㅎ 참고로 그녀는 샤를마뉴 대제의 외손 후손이 되죠...
바이에른 공작 벨프 1세(벨프 가문의 수장으로 계산한다면 공식적으로 벨프 4세입니다)는 장남의 결혼을 통해 이탈리아를 꿀꺽할 생각을 합니다. 결혼은 짱이야... 그래서 며느리감으로 찍은 그녀가 바로... Matilda of Tuscany(1046–1115)... 다들 좋아하시던데... 영지 많은 여성 공작님... 벨프(1072–1120)는 아버지 명령으로 자신보다 무려 나이가 26세나 많으신 분이랑 결혼해야 했습니다... 마틸다 여사님은 영지 많아서 고생 많이~했습니다... 마틸다 여사님의 아버지인 보니파치오 3세는 영지 많은데 후계자를 얻기 어려워 첫 마누라 보내고 어린 후처 얻어서 겨우 자식 셋을 얻었습니다. 1남 2녀... 그런데 위로 둘이 요절하여 막내인 마틸다 여사만 남자... 시집 보내기 더 어려워졌음... 교황이 워낙 간섭을 하는 통에... 첫 결혼은 어머니 쪽 가문인... 다시 말하면 외숙부 아들인 강로렌공작이며 곱사등이 고트프리히랑 했는데... 남편이 못생겼다고 마누라와 이혼... 자식을 얻어야해서 다시 결혼하는데... 이번엔 26세 연하남... 진정한... 그녀~
이 결혼에 시비건 인물이 바로 신성로마황제... 벨프 가문이 이탈리아 영지 얻는건 절대 안돼~ 안그래도 벨프 가문 영지가 제국에 엄청 흩어져 있는데... 또 얻겠다고? 이 결혼 유지하면 바이에른 공작은 물건너갔다... 고 협박이 들어오자 결국 벨프 1시와 그의 아들 벨프 2세는 바이에른을 포기 못해 그냥... 이혼으로 결말... 그리고... 마틸다 여사 죽고 9년 후 벨프 2세도 사망... 어부지리를 얻은 건 차남이었던 하인리히 4세... 그는 검은 갑옷만 입고 사냥 다니다가 잘 먹고 잘 살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the Black...
그런데 이 남자가 결혼 하난 또 잘한겁니다... 역시 결혼이야... 형님이 이탈리아 먹으려다 실패하자 눈을 돌린 곳은 바로 작센... 더 넓은 북부의 영토를 꿈꾸며... 아시나요? 저 광대한 작센과 브라운슈바이크를 영지로 들고 제국을 흔들던 빌룽 가문이라고... 빌룽 가문의 수장이며 작센 공작이었던 마그누스에게는 딸만 둘... 마누라는 그 위엄찬 아르파디 가문의 벨라 1세의 딸인 헝가리의 소피아 공주... 이 공주님은 마이센 공작이랑 결혼해서 자녀 5인을 낳고 다시 재혼해서 딸 둘 낳으신 궁극의 공주님... 공주님 데리고 살던 마그누스는 아들이 없자 결국 딸 둘에게 영지를 나누어 줄것을 결정하고 장녀에게는 작센의 북쪽지방을, 차녀(그녀는 아스카니안 가문에 시집가서 대박을 안겨줌, 다음에 할 예정인 가문이기도 함)에게는 작센의 동쪽을 줘서 빌룽의 영지를 쪼개었습니다. 빌룽 덕에 대박난 두 가문... 바로 벨프와 아스카니안 가문이었습니다...
벨프 가문은 이제 작센과 바이에른, 슈바벤 일부을 차지한 거대한 가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신성로마황제 한번 해보는게 꿈이죠... 저도 카이저 칭호 좋아합니다~ 독수리 문장도 간지 나고...
이 꿈은 넘겨받은 인물이 바로 하인리히 7세(1129-1195)... 하인리히 4세부터 계산하시면 됨... 별칭이 더 위엄있어요... the Lion이라고... 소유 작위는 작센 공작이며 바이에른 공작, 슈바벤에도 영지 많음... 거기다가 덤이 더 있음... 결혼의 위엄... 그의 어머니는 신성로마황제 로타르 2세의 딸이어서... 그의 아버지 별명이 the proud였다면... 말 다함... 하여간 하인리히 7세는 외부의 동맹을 끌여들일 수 있는 절묘한 결혼을 합니다. 우리 할머니가 노르망디 가문이랑 플랑드르 가문의 적통 후손이자 울 엄마가 제국 공주... 헉헉헉... 하여간 서자 윌리엄으로 부터 나오며 앙주 백작의 후손인 플랜타지네트 가문 수준이랑 달라... 그러나 공주 넘겨줘... 하인리히 7세는 첫 결혼으로 체링겐 가문이랑 하는데 마누라가 1남 2녀를 낳았지만 둘째 딸만 살아남고 다 요절... 결국 재혼 자리로 공주를 선택했던겁니다... 재혼인데도 격이 왕국의 공주... 역쉬~ 시집 온 공주는 마틸다(1156-1189)로 남편보다 27세 연하... 이건 거의 도둑수준이야~ 아버지는 헨리 2세... 다들 아시는 영국왕... 엄마는 더 유명해... 아키텐의 엘레오노라... 오빠들은...? 그래 리처드랑 존 등등 많아... 프랑스 공주인 이부자매도 많아... 시집오니 남편은 독일의 제일 거대한 여지를 가진 공작님... 아들만 낳으면 바로 후계자...
객관적으로 본다면 왜 하인리히 7세가 황제가 되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워낙 라이벌이 출중하여 힘들었던듯... 마치 제갈량과 사마의가 동시대에 살아가 호각이었듯이 하인리히 7세도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롯사라는 인간이 있는한 힘들었는 듯... 참고로 프리드리히 1세의 어머니는 하인리히 4세의 딸이었음... 하인리히 7세에게는 당숙뻘... 어버지의 고종사촌이었으니...
결국 슈바벤 공작 가문이었던 호엔슈타우펜 가문이랑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벨프 가문... 어찌되었든 하인리히 7세는 황제가 못되었고 가문의 염원을 네째 오토가 슈바벤 공작이 되면서 이룩하게 됩니다. 아~ 신성로마황제... 황제로 오토 4세라 불리우는 이 인물은 최초이자 최후의 벨프 가문 황제입니다. 그리고 파문 먹고... 끝났죠... 어... 파문이여~
호엔슈타우펜 가문이랑 슈바벤을 두고 치열하게 격투 끝에 획득했지만 교황의 파문에 쫑... 그래서 교황을 봉신화시켜야됩니다... 파문 나면 이런 결론이... 어떻게 황제가 되었는데... ㅠ.ㅠ
하인리히 7세에게는 당대에 영지들을 황제에게 몰수당했을겁니다. 아마 바이에른과 슈바벤 지방을... 그래서 자손들은 모두 빌룽 가문의 할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북부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로 이동했고 여기에 정착해서 겨우 숨쉬고 살게 됩니다. 이후 자손들의 이름에는 브라운슈바이크(Brunswick, 영어말고 독일어로로)라 붙을겁니다. 장남 하인리히 가계는 Count Palatine of the Rhine으로 살다 2대 만에 단절되었고 황제 오토는 2번 결혼했으나 자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내 빌헬름만이 자손을 남겼고 이 분파는 모두 Lüneburg에 몰려가 거주하게 됩니다. 그 많은 영지가 없어져...
당시 빌헬름은 독일에 있을 수가 없어서 외가인 영국으로 도망가서 겨우 연명하는데... 정나미 다 떨어졌겠죠...
그리고 영국에 살면서 덴마크왕 발데마르 1세의 딸이랑 결혼해 외아들 한 명 얻고 죽습니다. 이가 유아공(the Child)이라 불리는 오토 1세(1204-1252)로 최초의 Duke of Brunswick-Lüneburg이 됩니다. 그 많은 영지 다 잃어버리고 북부 독일을 영지를 끌어모아서 새로운 공작령을 창설하고 눌러살게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벨프 가문의 쇠락이었죠... 얼마나 만만히 보이길래 별명이 어린애래... 아~ 옛날이여...
1187년의 벨프 가문입니다. 하인리히 7세 사자공이네요... 무슨노무 사자... 자손들 다 쪽박 찼는데...
오토 1세 이후로는 벨프 가문은 쥐죽은듯이 조용히 살아갑니다. 그저 목숨만 붙어있자... 황제...? 그건 과거의 일일뿐...
조용히 살았지만 남겨진 영지는 남계균분상속이라는 마술에 의해 쪼개어지고 또 쪼개어지고... 셀 수 없는 분파들이 등장했다 사라집니다. 균분상속의 위엄...
17세기에 이르러 칼렌베르크라는 쬐끔한 동네 공작노릇하던 게오르그에게서 약간 출중한 막내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의 이름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Ernest Augustus, 1629-1698)... 위로 세 명의 형들이 있었고 프로이센 지방의 하노버에 정착을 한 오토 1세의 남계 직속 후손 중의 하나였죠. 작은 두 형의 가계는 곧 단절되고 큰 형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의 자손들은 이어져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Duchy of Brunswick-Wolfenbüttel) 가문을 이루고 자신은 하노버를 중심으로 황제에게 손을 씁니다. 나... 선제후 하고 싶어용~
어찌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통하는냐구요? 이것도 결혼빨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헤센-다름슈타트 후작의 딸 앤 엘레오노어의 딸이었는데 이 분 족보 타고 올라가면 합스부르크 가문의 분가랑 만납니다. 루돌프 4세의 형제였던 알프레히트의 후손이었죠. 호엔쫄레른 가문도 만납니다. 이 족보를 타고 가면... 진짜 이 헤센 가문이 갑인데 크루세이더 세계에선 안보여서... 모르는 건 패스죠... 하여간 이 헤센 가문은 대단한 집안이에요. 물론 중세 이후로...
당시 투르크가 합스부르크 가문을 괴롭히고 있었어요. 그래서 레오폴드 1세는 머리가 아팠죠... 열씨미 정치운동을 하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결국 1692년 황제선출권을 가지는 선제후가 됩니다~ 만쉐....!!!
아~ 이분 독특하게 주교장 대리하신 분입니다... 막내아들이라 후계권이 없어서 그다지 가문에서는 내버려둔듯... 그래서 작위에 Prince-Bishopric of Osnabrück의 Diocesan administrator 있습니다. 이 지역 다 아실터이니... 중간에 두 형님이 요절하면서 볼펜뷔텔에 분가해버린 큰 형님 대신해 아버지의 영지인 Principality of Calenberg를 물려받습니다. 이 땅을 씨앗삼아 성장해 나갑니다. 늦게 장가가면서... 이런 혜안이 어디있나~ 할 정도로... 재밌는 결정을 내립니다.
1658년 팔츠 가문에서 소피아(1630-1714)를 데리고 옵니다. 이 팔츠 가문을 소개하자면... 이거 엄청 긴데... 휴~ 아마 따로 소개할 여유가 없어 잠시 소개합니다. 팔츠 가문은 원래 비텔스바흐 가문의 분가의 하나로 원래는 가톨릭 가문입니다. 비텔스바흐 가문의 본가가 바이에른에 있다면 팔츠는 독일 서부에 있었고 프랑스와 인접해서 동부에 꽈리틀고 있는 합스부르크 가문이랑은 영향력이 적었습니다. 팔츠는 지역상 거의 프랑스랑 북부 독일 가문이랑 연결되는 경향이 강했어요. 통혼권이 근처인지라... 그래서 팔츠는 프랑스 영향으로 종교개혁 때 칼뱅파에 물이 들고 말았습니다. 군주들이 신교도로 일제히 개종해버린거죠. 그래서 그 유명한 프리드리히 5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프랑스를 신교로 물들이고 싶었던 영국왕 제임스1세는 팔츠의 개종을 반겼죠. 앗싸~ 또 신교도 군주가 나왔다... 결혼동맹은 어떤 무엇보다도 강하죠. 참고로 종교개혁 결과 지역의 종교는 군주의 종교에 따라 결정한다고 했기 때문에... 군주 한 명의 개종은 그 지역 전체가 개종하는것이기 때문에... 뒷말 안해도 이해하실껍니다. 어떻게든 쪽수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1명이라도... 더~
아무튼 프리드리히 5세는 보헤미아 왕위 뿐만 아니라 팔츠 선제후 작위도 상실했습니다. 결국 네덜란드로 망명... 거기서 가난하게 살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는 무려 13명이나 낳았고... 나중에 아들 카를 루트비히는 황제에게 싹싹 빌고 1648년 구교로 개종하여 영지를 회복합니다... 그러나 다른 형제자매들은 가난하고 불우하게 살았어요. 심지어 자매들은 지참금 없어 시집도 못가고... 다른 남자 형제들은 영국에 와서 내전에 전사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자손들 수는 줄어갑니다. 그 많은 자녀들이 말입니다.
소피아는 13명 중 12번째 자녀였고 살아남은 자녀 중 유일하게 신교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박이 터진 겁니다... 바로 영국 스튜어드 가문이 구교로 돌아서자 내란이 발생... 신교도 왕족 구하기가 펼쳐진거죠.
소피아는 앤여왕 시절 의회에 의해 후계자로 지목됩니다. 앤은 남자 사촌들이 가톨릭으로 돌아선것에 대해 슬퍼했죠. 이 독일여편네에게 줄 바이에... 제임스의 자녀들을 다시 개종시키려고 앤이 노력했지만... 그 뒤에는 프랑스왕 루이14세가 버티면서 절대 개종 불가... 영국도 구교도로 복귀해야... 너네들 왕족 없지... 뭐 이런 정치적 씨름중...
영국놈들이 누군가요... 왕족은 구해오면 됩니다... 족보 뒤져서 신교도만 믿는 수준높은 군주 출신의 왕족을 찾는겁니다. 구교도는 빼고... 이랴저래 빼고 나니 영토를 갖고 있는 소피아가 눈에 띄인겁니다... 하노버라는 영지를 가진...
앤 여왕이 좀 오래 살아서 소피아가 먼저 죽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에게 대박이 씌워진겁니다... 아님 소피아 여왕이 있고 그 뒤를 이어서 등장했겠지만요... 소피아와 에른스트는 모계로 모두 덴마크 왕실로 연결되어 있어 6촌 형제간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7자녀가 태어났고 첫째가 바로 조지 1세 즉 첫 벨프 가문의 영국왕입니다. 그리고 아래 둘째와 세재는 모두 황제를 위해 봉직했고 네째 소피아 샤를롯은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1세와 결혼하여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를 낳았는데 그도 조지 1세 딸과 결혼해서 사촌끼리 이중 결혼... 신교도끼리 똘똘뭉치죠. 참 그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 바로 자칭 계몽군주라는 프리드리히 대왕... 어머니와 할머니가 모두 벨프 가문 출신...
조지 1세는 영어 할 줄 모랐고 별로 영국에 관심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느네들 알아서 해라... 독일의 쬐끔한 하노버를 무한히 사랑하였고 죽어도 이 땅을 놓지 않겠다고... 영국은 딴넘 줘도 이 땅은 못줘... 뼛속까지 독일인...
조지 3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국인이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여간 이 하노버 왕조는 철저히 독일귀족들하고 결혼해서 왕실 전체가 독일여인천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의회정치는 꽃피우죠... 왜냐... 잘 모르니까... 글고 알면 왕조차 단두대로 보내니... 겁나죠~ 루이 16세보다 먼저 목이 날라간 군주는 찰스 1세라는 점을 명심해야합니다. 알고보면 영국이 더 무서워요... 사례를 남겨주었으니...
이때 조지 1세의 소지작위는... 브라운슈바이크-뉘네부르크 공작, 하노버 선제후, 대브리튼 국왕, 아일랜드 국왕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조지 2세는 스튜어드 남계가문이 단절되자 Prince of Wales(잉글랜드 왕위 후계자 경칭), Duke of Cornwall(에드워드 흑태자가 첫 공작이었고 미래에 군주가 될 손자 리처드 2세가 물려받으면서 그후 맏아들이 지니는 타이틀로 자리잡음), Duke of Rothesay(이 작위는 스코틀랜드 왕위 후계자 경칭에서 유래)을 되찾았죠. 웨일즈 공작은 후계자의 경칭이고 콘웰 공작은 후계자의 부수입원 영지라 대대로 후계자가 동시에 지닙니다. 지금 찰스 왕자도 두 칭호를 다 들고 있어서 다이애너가 죽은 후 오랜 기간 지내온 그녀(?)랑 재혼할 때 국민들이 웨일즈 공작부인 칭호를 그녀(?)가 승계받는 것을 싫어하자, 급히 콘웰 공작부인으로 바꾸어 경칭하고 있죠... 다 의미가 있어요~
너무 기네요... 어떻게보면 베틴 가문보다 더 극적이다고 할까나... 신성로마제국 황위를 두고 싸움박질도 했으니...
하노버의 벨프 가문은 다산왕 조지3세 때 부터 아주 극적으로 흘러갑니다. 조지3세는 자식이 15명이었습니다. 장남 조지4세는 난봉꾼... 영화제작도 되었더군요. 사촌 샬럿과 결혼해서 딸 하나 두었는데 그녀도 샬럿입니다만... 이 공주가 바로 베틴 가문의 레오폴드랑 결혼했죠. 출산 중에 사망하여 레오폴드가 물먹었죠... 조지4세가 후손이 없자 동생들이 급하게 결혼합니다... 둘째 요크공작 프레데릭은 요절... 세째인 윌리엄 4세가 계승하죠. 이 사람 열나 웃기는 사생활릏 가지고 있어요... 조카가 죽자 급히 작센 마이닝겐 공주랑 결혼해서 딸을 두지만 모두 요절하는데 아일랜드 출신 정부 사이에는 무려 10명의 자식을 낳아요... 클라랜스 공작이라 자식들 성이 모두 피츠클라랜스... 살아남은 서자들에게는 백작 및 남작 지위가 수여됩니다. 장남 조지가 먼스터 백작이 되었죠. 그는 왕위계승에서 제외됩니다...
네째가 켄트공작 에드워드... 52세에 비로소 딸을 얻지만 곧 사망... 왕이 못되죠...
이어서 왕위를 노리는 사람은 다섯째 왕자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빅토리아가 없었다면 이 천박하고 싸구리 왕자가 영국을 차지했을거라고 역사서는 썼더군요... 영국인들은 다행이라고 한숨을... 빅토리아가 영국왕위를 차지하자 하노버는 이 싸구리 왕자가 차지하면서 동군이국이 떨어져나갑니다. 영국인들은 하노버가 이탈하는 것을 더 기뻐했다는... 대륙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싫다 이거죠... 결국 벨프 가문은 다시 분리되고 하노버왕국은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의 치세를 맞게되죠. 이렇게 4대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1913년 전쟁에서 패하면서 왕국을 상실합니다. 그는 독일황제 빌헬름 2세의 사위였죠... 장인과 함께 물먹고... 그 자손들은 재기를 노립니다. 물론 영국왕실 빽믿고... 현재 장손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저 카지노왕국 사위로 살고 있습니다. 어딘줄 아시죠? 자녀가 1남 1녀라서... 그 카지노왕국 얻을지 미지수네요. 다른 사촌들과는 달리 워낙 명문가 출신이다보니... 대머리 외숙부가 물려주실지... 1983년생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다시 영지를 얻을 수 있을지...
1337년 시나리오에서의 벨프 가문입니다... 오토 2세군요... 유아공 오토 1세의 손자입니다...
숨죽이고 살던 시절의 벨프 가문이네요... 아직 영국 갈려면 멀었어...
너무 장문이네요... 여기서 벨프 가문은 서둘러 종결하겠습니다. 지금 작업하면서 적으려니 5시간이 넘게 소비중...
쓰다 말고 쓰다 말고하나... 저도 일하는 중인데 이러고 있어요~ ㅠ.ㅠ
지금부터는 데스테 가문(House of Este)을 잠시 소개하죠. 영어로는 에스테인데 프랑스어 De(~의 라는 뜻, 영어로 of)는 단어의 첫 모음이랑 붙으면 연음이 되어서 데스테가 됩니다. 게임에서는 데스테(d'Este)...
벨프 1세의 이복동생 풀코 1세의 자손들 이야기입니다. 풀고(Fulco I, ?-1128)는 이탈리아 데스테 가문의 시조입니다.
게임의 족보를 보리 데브리 가문의 분파라고 하는데... 글쎄요...
이 가문은 밀라노 후작을 대표 작위로 가지고 있습니다. 집안 이름은 에스테라는 성에서 유래되었어요...
풀코의 후손 중 오비쪼 1세가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롯사랑 맞짱을 뜨죠... 이탈리아는 안돼!!!
아쪼 4세가 12세기 말에 만투아랑 베로나를 획득하죠... 명문가로 부상~ 13세기에 오비쪼 2세가 드뎌~ 1264년 페라라를 획득합니다. 거기다 모데나까지... 이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에꼴 1세(1384-1441)입니다.
이 가문의 특징은 황제와 교황 사이를 오고가면 외줄타기를 잘했죠... 그러면서 영지를 넓혀가며... 공작위 컬렉션을 차려서 겸직겸직... 결혼도 잘합니다... ㅋㅋㅋ
에꼴 1세는 아들 알폰소 1세를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랑 결혼시키죠... 루크레치아에겐 세번째 남편... 복겨운 녀자?!
이 사이에서 아들이 짜잔~ 태어납니다. 에꼴 2세(1508-1559)라고... 할배 이름 차용~ 이 인물은 더 결혼을 크게 합니다. 프랑스왕 루이 12세의 딸 르네 공주를 품에 안죠... 교황 외손자의 위엄?! 그 사이에서 난 아들 알폰소 2세는 더 크게 놉니다. 난 프랑스왕의 외손자... 내 딸을 황후로 만들어봐야지... 그래서 코지모 1세 데 메디치 플로렌스 공작의 딸 루크레치아와 사이에서 난 딸 바르바라(그녀는 과부였음... 첫 남편이 요절)를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부인으로 들이죠. 이 황제가 누구냐구요? 보헤미아의 왕이자 독일왕 그리고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왕 그리고 오스트리아 대공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빛나는 황제였습니다. 물론 첫 번째 부인인 스페인 공주 마리아가 무려 16명의 자녀를 낳아서... 두번째 결혼에는 그다지 의미가... 그냥 이탈리아 좀 가지고 놀려고 결혼했죠...
1066년의 데스테 가문이네요... 문장도 똑같네요... 다음에 기회되면 문장 소개도 한번 해보죠... ㅋㅋㅋ
위엄 넘치는 롬바르디아 공작... 원래는 밀라노 후작인데... 승격되었네요... 밑에 아들 셋 보이시나요?
그러나...! 이 결혼은 나중에 합스부르크가 데스테 가문을 먹는 찬스가 되기도 합니다. 역쉬 합스부르크는 결혼 뿐입니다. 자나깨나 결혼만 잘하면 영지가 들어옵니다... 데스테 가문은 교황령 좀 먹으려고 공작을 펼치다가 항상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프랑스랑 결혼 좀 해서 외교 줄다리기도 잘했죠...
모데나와 레기오 공작위를 들고 있던 마지막 데스테 가문은 프랑스와 제국의 충돌 속에 기로에 섭니다. 마지막 남계공작은 에꼴 3세(1727-1803)로 어머니는 오를레앙 공작 필립의 딸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적통 외동딸 마리아 비어트릭스를 누구에게... 장가오는 놈은 대박터지는 겁니다...
한 가지 아실일은... 장자계승을 하는 국가는 차남 이하 처리에 골몰합니다. 위신 땜에 차남 이하 아들을 그냥 둘수도 없고... 영지 주자니 아깝고... 그래서 아랫집안 중 딸만 있는 집안 골라서 아들 보내는겁니다. 이 방법 카페 가문이 써서 최고의 명문이 되었죠... 이제 합스부르크 가문도 넘쳐나는 황자들을 처리해야 할 시점이 온겁니다.
최고의 여결 마리아 테레지아은 자식을 너무 많이 낳았습니다... 무려 14명... 아들 귀해서 전쟁까지 치뤄가면서 모계결혼 했더니 이젠 아들이 넘쳐... 도저히 오스트리아 내에서 해결 불가능... 그래서 아들을 수출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 결혼이야! 이 방법이 최고야...
1771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네번째 아드님이시며 제국 황자에다... 브레시가우 공작... 하여간 명목상 감투가 다수인 페르디난트(1754-1806)는 모데나와 레기오 공작 먹으러 이탈리아에 옵니다. 데릴사위... 아들 많이 낳아야 될터인데...
기대대로 10명의 자녀를 생산... 5남5녀... 만족했을겁니다. 다섯째이며 삼남으로 생존한 장남인 페르디난트 4세가 외할배 가문 삼키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데스테란 이름을 버리지 않고 자손들에게 계속 쓰도록 하죠. 그래서 18세기 후반 등장하는 Austria-Este는 모두 이 사람의 후손들이죠...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입니다! 막내누이는 사촌인 프란츠 1세 황제와 결혼해서... 현존하는 합스부르크 종가도 이 후손들... 끼리끼리 결혼!
이렇게 해서 합스부르크는 전쟁도 없이 이탈리아 북부를 삼켜버렸습니다... 밀라노와 모데나와 페라라... 헐...
1337년 시나리오의 니꼴 1세군요... 아직 합스부르크는 손도 못댑니다~~!!!
여기서 벨프 가문 이야기는 종결하겠습니다. 저도 일하는 중에 계속 이짓을... ㅠ.ㅠ
점심 먹고 시작했는데 지금 저녁때가 되었네요... 밥이나 챙겨먹고 또 게임하러 가야겠네요...
오늘도 크킹의 세계는 평화로울겁니다...
첫댓글 한글자 한글자 씹으면서 정독 이런 글은 읽어보려해도 찾을수도 없더군요 역사블로그 위키백과 아니면 전공급서적인데 이게 취향? 분야?에 맞는걸 찾기가 힘들어서
잘 읽고있습니다
전공서적도 간혹 봅니다... 특히 논문을 주로 보는데... 내용이 참 어렵습니다. 자신들 나라 역사니까요. 저는 이방인...
보통은 위키백과를 봅니다. 이 방면으로 10년 넘게 공부했습니다. 해도해도 끝이 안보임...
많이 올라오면 좋겠습니다..ㅜ
와우 크킹의 세계는 정말 멋지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매 시나리오 할때마나 벨프의 성은 다르답니다. 그래서 전번에 귀찮지만 파일 열어서 그의 자식들 모조리 벨프로 바꾸어준적 있어요. 참으로 뻘짓을 했죠...
1066년 시나리오의 경우입니다... 이 시나리오를 가장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뻘짓했다는 건 안비밀... ㅋㅋㅋ
정독했습니다^^
재밌습니다 ㅎ
오호 베틴가문이 후에 하노버 선제후자리를 먹는거였군요 그냥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건줄 알았네 ㅋㅋㅋ
베틴 가문은 하노버 선제후를 얻고 다시 빈회의(아시죠? 나폴레옹 전쟁의 뒷처리 회의)를 통해 하노버 선제후국을 왕국으로 승격시켰습니다. 승리의 댓가죠.
그래서 왕국이 되었기 때문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훗날 국왕에 되었죠... 하노버의 계승법령은 남자장자상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빅토리아가 왕관을 벗었죠.
역시 선제후 자리를 먹어야 해요. 선제후 특권인 영지 불분할 없는 황제 따위 가문 박살나기 좋은 독이 든 성배죠.
아하!!! 조지 1세!!!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ㅎ 맞습니다. 저도 그 게임하면서... 영지 다 말아먹고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했는데... 결국 역사의 최종 승자는 자신 하인리히라고... 말하는듯하더군요. 서양인들은 이 역사적 사실을 두고 그렇게 평가를 내리는겁니다... 자손 대 안끊기고 살아남는 가문만이 최후의 승리자다... 역사게임에 관심있는 분으로 인정합니다~
글 보면서 이걸 언제 읽지 ㄷㄷ 했는데 어느새 다 읽었네요 ㅋㅋㅋ
귀중한 글 감사합니다
으아아아... 굉장한 글이네요.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베틴 가문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벨프 가문 얘기는 더 재미있네요 ㅋ
벨프가가 합스부르크처럼 뿌리를 못내려서 그렇지.. 다 차지했다는 가정하면.. ㅎㄷㄷ하죠.
가히 포스트 합스부르크라고 불러도 될 정도입니다.
작센, 바이에른, 토스카나, 부르군트왕국, 플랑드르 뺀 구 네우스트리아 지역... 루리코비치처럼 길게 이어갔따면 카롤링거 제국 재현이네요 ㄷㄷㄷ
그리고 알프스 산맥은 왕기가 서려있는지.. 이브레아(이탈리아 지명이며 지역축제로 유명한 동네) 가문, 합스부르크가, 벨프가 가 배출되네요.... 엄마 나 이거 무서워.ㅋ
토스카나 경우 이후 검은 하인리히의 아들인 벨프 5세가 이어 받아 다스리는데 바바로사에게 처음에 협조했다가 사자심공처럼 영지를 몰수당합니다.
사자심공이 건설한 도시가 뤼네부르크와 뮌헨였는데.. 뤼네부르크는 상대적으로 뜨지 못했지만.. 뮌헨은 비텔스바흐 치세하에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