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경 바디매오의 이야기.
눅18장
35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도중 여리고로 오신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 천국을 상징한다.
여리고는 타락한 죄악의 도시, 죄악 세상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오셔서 죄악 세상인 이 땅을 통과하여 다시 하늘 나라로 가신다.
그 때에 예수님은 두 사람의 죄인을 만난다.
한 사람은 소경 바디매오.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장 삭개오.
삭개오는 육신의 죄인을 상징.
소경 바디매오는 영적 죄인을 상징.
삭개오는 육신의 욕심, 곧 돈 때문에 세리가 된다.
소경은 영의 눈이 먼 것을 뜻한다.
육신의 욕심에서 오는 죄와 영의 눈이 멀어서 오는 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 두 죄인을 구원하신다.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십자가에 죽으신다.
소경 바디매오와 삭개오 이야기는 죄인들이 어떻게 어떤 방식을 통해 구원을 받는가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삭개오는 부자, 바디매오는 거지.
예수님은 부자도 거지도 똑같이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
삭개오는 부자였다.
반대로 바디매오는 거지였다.
그러나 삭개오와 바디매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 두사람 모두 자기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근본적으로 죽을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만나야 구원을 얻는다.
부자 청년은 그 많은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떠난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떠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는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켜 왔다.
그는 엄격히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의 경건한 가정의 출신이었다.
때문에 스스로 의인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영원히 죽을수 밖에 없는 죄인이다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한다.
그런 다음에 예수님을 내 심령 속에 영접해 들여야 한다.
바디매오 그는 소경이요 가난한 거지였다.
그는 자신이 소경이라는 사실을 통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그는 왜 길 가에 앉아 있었는가?
그야 뭐 거지라서 집이 없으니까 그렇지, 하고 생각할수도 있고 또 무리들이 지나갈 것을 알고 길가에 앉아 있을수 있다.
그런데 이 참에 길 에 대해 생각을 해 보자.
우리는 어디로 가기 위해서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은 우리의 인생길.
그리고 우리 믿는 자들이 천국을 향해 가는 길.
바리새인들은 천국 가는 길을 율법에서 찾았다.
율법이 그들의 천국 가는 유일한 길 이었다.
우리는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고 믿는다.
십자가의 도 만이 천국 가는 유일한 길 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길은 천국가는 길.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영적인 소경들은 천국 가는 길을 알지 못해 길가에 앉아 있다.
그러나 참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면 길 곧, 진리의 길에 들어 선다.
눈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다가 눈을 뜨게 된다.
영적으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된다.
바디매오는 거지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가 거지.
그 심령 안에 말씀이 없는 자는 영적 거지다.
바디매오가 비록 영적 소경으로 하나님을 알수 없었으나 하나님 만나기를 간절히 소원하였다.
소경 바디매오가 구원 받게 되는 절대적 원인.
렘29장
13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또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이름을 들었다.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의 이름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다.
행4장
12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소리 지른다.
38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겉으로 외치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말씀은 마음에 들어 오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간절히 주님께 나를 구원 하소서 소리질러야 한다.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중에서 오신다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나온 한 선지자 정도로 알고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불렀다.
무엇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인가?
자신이 소경이며 거지라는 것을. 영의 눈이 멀고 그 안에 말씀이 없어 길가에 앉아 있을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소서 라는 말이다.
41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천국을 향해 가는 자들은 믿는 자들.
천국을 향해 가지 않는 자들은 불신자들. 이방인들.
천국 가는 길에서 길 가에 앉아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나 영적 소경이요 그 심령에 말씀이 없는 자들이다.
예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이다.
천국 가는 길에서 주저앉아 있는 자들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영적 소경인줄 모르고 본다고 생각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는 커녕 배척하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았다.
소경 바디매오는 구원을 받기 전 길가에 앉아 있는 날때 부터 죄인이며 영적 소경이던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믿고 주여 주여 하면서도 그 마음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와 있지 않으면서 주님을 본다고 하며 자기의 의를 내 세우며 영적 소경인 상태에 있는 것이다.
길가에 앉아 있는 나는 소경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참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신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신다.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요 9장
4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