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가지 꽃 [구수영]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아버지는 매일 화를 냈다 비 오는
마당에 팽개쳐진 부엌 찬장 올망졸망한 양념단지가
토해낸 어머니의 지문은 조금씩 지워졌다 어린
동생은 주저앉은 찬장 옆에서 날마다 아팠다.
막걸리 한잔이 불러세운 아버지의 슬픈 노래
겨울비 오는 세상 한가운데
부표도 없이 양념단지 같은 아이 다섯 두고 먼 길
가신 어머니
어머니가 사라진 집에서 도미노 게임을 했다
앞사람의 등을 보며 넘어지지 않으려 발끝에 힘을
모았지만 반드시 넘어져야 끝나는 게임
울지 말라고, 사나이는 우는 게 아니라던
아버지의 슬픈 노래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온 집안에 피어오르던 골가지 꽃
오래오래 지지 않던
* 갈대의 순정 중에서,
- 흙의 연대기, 도서출판 실천, 2021
* 골가지는 골마지의 사투리인데 일종의 곰팡이라고 보면 된다.
김치나 된장 고추장이 발효되면 질척질척한 곳에 허옇게 생기는 것이다.
먹어도 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걷어내는 편이다.
어머니가 먼 길 가지 않으셨으면 양념단지에 골가지 꽃이 필 리가 없었을 텐데
아버지도 아이 다섯도 골가지를 걷어내지 못했다.
슬픈 가정사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머니의 빈 자리를 조금씩이 아닌 대부분을 감당했을 테다.
아버지는 막걸리 한잔 하고 '사나이 우는 마음을~~'하고 노래 부르면 되지만
아이들은 참 막막했을 것인데 다 자라서 그 옛날을 돌아보며 골가지를 골가지 꽃이라 표현하니
그만큼의 세월에 마음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워졌을 게다.
이제는 시인께서 디카로 골가지 꽃을 찍어놓고 시 다섯 줄 쓰고 큰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