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정리하는 것은 남은 시간 가벼워지기 위해 !!
이상호(李尙鎬) 시인(詩人)의 시집(詩集)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를 읽었다.
시(詩)중에 “감나무의 물관을 자르시다”가 있다. 아래의 내용이다.
【가을에 감을 따내신 우리 아버지 감나무에 더는 물이 오르지 않게 밑동에 뱅 둘러 물관을 자르셨다.
더는 감나무에 오르지 못하겠다고 목줄을 끊기로 작정하셨던가 보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집을 지키던 감나무에 생긴 톱날 자국에 잘려 나는 아득해졌다. 아들이 내려와 살지 않으리라 내다보신 아버지를 읽고 감나무처럼 숨이 턱 막혔다.】
90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감나무에 더는 오르지 못하겠다고 중얼거리면서 감나무 밑동을 삥 돌려가며 톱질을 했다.
나무가 더 이상 땅에서 수분(水分)을 빨아들이지 못하도록 물관(水管)을 잘랐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혈관(血管)을 자른 것이다. 물관(水管)을 톱으로 자르면 감나무는 차츰차츰 시들어 죽는다.
이 시(詩)에서 노인은 아마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는 것 같다. 도시로 나간 아들이 직장에서 정년(停年)을 하고 나면 혹시 아버지가 있는 시골로 내려오겠지 하던 바람을 접은 것 같다. 아버지 나이가 90이 가깝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짐작컨대 아버지가 20대에 감나무를 심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70년 가까이 마당에서 해마다 가을이면 붉은 감을 매달아 주었다. 자식들도 그 감을 먹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70이 된 감나무는 90이된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소임(所任)을 조용히 마쳤다. 감나무도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불삼숙상(不三宿桑)”이라는 고사(故事)가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 송(宋)나라 사람 범엽(范曄)이 쓴 역사서 후한서(後漢書)가 있다.
후한서(後漢書) 배해열전(裴楷列傳)에서 배해(裴楷)가 말했다. 배해(裴楷)는 삼국지 조조(曹操)가 세운 위(魏)나라의 신하다.
浮屠不三宿桑下 不欲久生恩愛, 精之至 승려(僧侶)는 뽕나무 아래에서 사흘 밤을 머무르지 않는다. 오래 머물러 사랑(恩愛)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미련과 정(情)은 깊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control)하는 지극(至極)함이라 하겠다.
불교에 관한 글을 읽어 보면 석가모니(釋迦牟尼) 시대에 출가(出家)한 사람들은 일정하게 정한 거처(居處)없이 걸식탁발(乞食托鉢)로 살았다고 한다. 인도(印度)는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밤중에는 대부분 나무 아래서 지냈기에 이런 말이 나왔다고 짐작된다.
※걸식탁발(乞食托鉢)-“발우(鉢盂 밥그릇)에 의탁한다”는 뜻으로서 곧 밥을 얻어먹는 것(乞食)을 말함을.
인도에는 복잡한 사회제도와 여러 가지 풍습이 많다고 한다. 그 중에 임서기(林棲期)라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인생을 4단계로 나누어 말하는 것 중이 하나다.
태어나서 25세까지는 공부하는 학습기(學習期)다. 주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경전(經典) 공부다. 다음 50세까지는 가주기(家住期)다. 가정을 꾸려 자식을 키우고, 돈을 벌며 가장(家長)의 의무를 다하는 시기다.
50세가 넘어가면서부터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 바로 임서기(林棲期)다. 대략50세~75세까지로 생각한다. “임서기(林棲期)”글자대로 해석하면 “숲 속에서 사는 시기”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가정을 완전히 떠나 방랑(放浪)하다가 길이나 산 들 자연에서 죽는다. 죽으면 시체는 짐승들의 식량(食糧)이다.
우리나라에는 졸혼(卒婚)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탤랜트 백일섭씨가 처음이라는 글을 읽었지만
졸혼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杉山由美子)가 2004년 쓴 책 “소쓰콘(卒婚졸혼)을 권함”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됐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윤기(尹愭)는 조선 영조(英祖)에서 순조(純祖)시대의 학자이며 문신(文臣)이다.
윤기(尹愭)는 집이 가난하였다. 생계(生計)가 어려워 살던 집을 팔았다. 그 심정(心情)을 賣荷麓宅有吟(매하록택유음)이라 ! “하록의 집을 팔고 나서 읊다”라는 아래의 시를 지었다.
非賈非農老轉踈-상인(商人)도 농사꾼도 아니라 늙을수록 가난해져 秋登不免賣蝸廬-수확하는 가을에도 오두막집 팔아야 했네 嗟無范子生塵甑-먼지 이는 범자(范子)의 가마솥마저 없고 謾羡張華載籍車-책을 많이 쓴 장화(張華)가 부러워라
桑下尙紆三宿戀-뽕나무 아래라도 사흘자면 정이 드는 법 城東况是十年居-하물며 성 동쪽에서 십년을 살았음에랴 家人莫歎長飄泊-가족들아 오랜 떠돌이 생활 탄식 말아라 只有身心却自如-몸과 마음만이라도 여유로우면 그만이니
다시 위의 감나무 이야기로 돌아간다. 가족의 역사를 함께 지켜본 감나무의 핏줄인 물관(水管)을 톱으로 자르던 아버지의 심정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내 죽고나면 감나무 너도 외로울 것이니---
나이가 들면 모든 집착을 끊고 미련을 쓸어내어야 남은 인생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일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방하착(放下着)이라! 쥐었던 것 다 내려놓고 지나간 일에 마음 두지 않고 무거운 다리지만 마음은 가볍게 걸어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