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식 무 저장법
-- 복효근
세상에 버릴 것 하나도 없더라
어머니가 무잎 한 가닥까지
한 두름 시래기로 엮는 동안
나는 무 구덩이를 팠다
얕아선 안되느니 구덩이가
얕으면 어설픈 추위에도
무 속이 곯는다 너무 깊어도
싹이 나고 바람들어 속이 빈단다
알맞게 파기는 늘 쉽지 않아서
어머니 꾸지람으로 구덩이가 파이면
싹이 돋지 못하게 거꾸로
나래세워 무를 쌓는다
무덤같은 어둠 속에서 무들은
거꾸로 서서 얼마나 매운 숨을 쉬는지
한겨울 어머니가 꺼내놓던
눈부시게 서슬푸른 조선무
다시 겨울이 오고
보닐게 깊지 못해 쉬 멍들어
턱없는 혈기에 삽질만 거칠어질 때
어머니 사투리조로
다시 복습하는 재래식 무 저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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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으로 탑을 쌓는 일, 공중에서 외줄을 타는 일, 자전거를 타는 일, 그리고 재래식으로 무를 저장하는 일...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내는 모습이 어쩌면 이들과 닮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성냥으로 탑을 쌓는 일...
큰 나무나 돌덩이로 탑을 짓는 대대적인 공사도 아닌데
요 조그만 거 하나 쌓질 못할까? 하고 섣불리 욕심내어 덤볐다가는 몇 층도 제대로 쌓지 못하고 무너지는 성냥과 함께 가슴도 덜컥 주저앉게 되지요.
공중에서 외줄을 타는 일...
높은 공중에 떠 있는 단 한 줄에 자신을 맡기고 서 있기가 너무도 두려워 떨리는 마음과 함께 심하게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채 몇 발자국도 걸어가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자전거를 타는 일...
어서 앞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좌우의 균형은 생각하지 않고 페달만 열심히 밟다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또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손에 너무 힘을 주게 되면 나중에 자전거에서 내려 온 뒤, 빨갛게 자국이 남은 손을 보게 되지요.
그리고... 재래식으로 무를 저장하는 일...
무를 저장할 구덩이를 얕게 파면 작은 추위에도 쉬이 곯게 되고 반대로 너무 깊게 파면 싹이 트고 바람이 들어 속이 비게 된답니다.
살아도 살아도 모르겠다싶은 우리의 삶...
하지만 삶은 이렇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잠깐씩 말해주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 삶을 잘.... 그리고 바르게 산다는 것은
나의 길을 걸어감에 자만하지 않는 용기와주저하지 않는 신중함을 가지는 일이라고요.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길에서 자주 주저앉게 되는 거겠지요.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하나씩 알아가게 됩니다.
오늘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보려 합니다.
지금껏 내가 파온 구덩이의 깊이는 어떠한지를요.
겨울이 오기 전에 무를 저장할 알맞은 깊이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