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시대 기업혁신
지난 5월 24일 메타넷글로벌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연단에 오른 구글 CTO 산하 부서의 그레고르 호페 기술 이사, 번드 노드호슨 액센츄어 박사, 박지숙 메타넷글로벌 상무(왼쪽부터)가 `속도의 경제` 시대에 일하는 방식과 클라우드 컴퓨팅의 올바른 활용 방법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메타넷글로벌]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핵심 중 하나인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은 주로 인프라스트럭처 차원에서 이해돼 왔다. 이는 정보기술(IT) 인프라와 플랫폼 등을 자체 설치하거나 보유하지 않고 인터넷상에서 빌려 쓰는 개념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해당 분야 선두 공급자고, 나머지 기업을 포함한 소비자는 어떤 회사의 서비스를 도입할지 결정하는 게 지금까지 흐름이었다.
글로벌 IT 기업과 컨설팅 업체들은 클라우드 컴퓨팅을 인프라가 아닌 조직문화 관점에서 봐야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품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기업 전체의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과 액센츄어(Accenture)는 공동연구보고서에서 "디지털 전환을 잘 이해하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26% 더 수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24일 국내 컨설팅 기업 메타넷글로벌(옛 액센츄어코리아)은 '속도 경쟁의 경제 시대 각 기업에 맞는 새로운(Old to New) 혁신 방향'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조직문화와 업무 방식은 무엇인지 논의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구글의 그레고르 호페 기술 이사가 발표자로 나서 '구글이 일하는 법'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구글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 부서에서 기업들의 클라우드 도입·활용을 돕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속도'가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주목받았다. 빠르게 일할 수 있게 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호페 이사는 "클라우드를 비롯한 디지털 전환으로 '규모의 경제'가 끝나고 '속도의 경제'가 다가오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간 성공적인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잘 활용한 대기업인 경우가 많았지만 속도가 중요해지는 시대에서는 대기업이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번드 노드호슨 액센츄어 박사 역시 발표자로 참석해 빠른 속도를 강점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 사례를 제시했다. 그는 "넷플릭스(Netflix)는 클라우드에서 탄생한 기업"이라며 "클라우드의 강점을 활용해 새로운 버전의 서비스를 일주일에 3~4번 출시하며 빠르게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필요한 인프라는 클라우드에서 제공받으면서 애플리케이션(앱)과 서비스만 빠르게 수정·개선할 수 있는 민첩성, 쉽게 그 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확장성은 클라우드의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힌다.
호페 이사는 이렇게 일하는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일하던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철저히 계획하고 실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빠른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등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기존의 것을 파괴(disrupt)해보는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직 내 심리적 장벽을 낮출 것을 우선과제로 제시했다. 호페 이사는 "관련 소프트웨어가 준비되지 않아서, 보안상 이유로, 혹은 비용이 없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기업을 너무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혁신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반대 등 마찰(friction)이 너무 많으면 지지부진해지는 과정에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지고 그만큼 경영진의 통제도 심해져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된다, 된다' 순환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클라우드상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큰 위험 없이 실험을 할 수 있다"며 "반대 등 마찰 없이 빠르게 실험하고 그 결과로 지지를 확보해 다음 실험을 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호페 이사는 속도와 자동화, 피드백 등 혁신 역량을 갖추는 것이 오히려 보안과 비용 면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자동화는 효율화를 통해 유지·관리 비용을 줄이고,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체작동(failover) 등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또 방화벽 소프트웨어 등은 빠른 업데이트를 통해 더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발표자들은 특히 신규 사업 개발 속도를 강조했다. 기존 핵심 사업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빠른 실험과 피드백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디지털 기업 아마존(Amazon)과 알리바바(Alibaba)는 전자상거래로 시작해 현재는 각종 오프라인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박지숙 메타넷글로벌 상무는 글로벌로열티네트워크(GLN) 사업을 준비 중인 하나금융그룹을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GLN은 국내에서 모은 포인트와 마일리지 등 디지털머니를 해외에서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금융 로밍' 서비스다.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등 10여 개국에서 40여 곳의 금융·유통 업체가 회원사로 참여하며 올 하반기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 박 상무는 GLN 초기 기획·개발 단계에 참여했다. 그는 "카카오뱅크과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 출범이 서비스를 개발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기존 은행들이 신규 서비스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오히려 해당 서비스에 적극 진출함으로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GLN은 각국의 환율과 정산 등 측면에서 안전하면서도 신속한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블록체인도 도입할 계획이다.
호페 이사 역시 "디지털 세계에서 IT는 더 이상 최적화(optimization)에만 쓰이는 도구가 아니다"며 "새로운 앱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에 대해서도 "꼭 기술 기업인 것만은 아니다"며 "광고 기업일 수도 있고 에너지 기업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사업과 시스템을 건드리면 위험해진다는 사고부터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