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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W 인생공감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시니어플래너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의 전설이 있는 소요산!!
원효대사가 당으로 가려던 유학길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와
불교의 교리를 전파하던 어느날~~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시오.
그러면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을테요”
이 노래를 들은 태종 무열왕이 궁으로 불러
남편을 잃고 혼자 있는 요석공주와 결혼을 하여
낳은 설총!!
오늘의 산행지는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는 소요산으로 향했다,
소요산은 2010년 동두천에 있는 태풍부대에 근무할 당시
산 아래 까지는 자주 가봤지만 산 정상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던 곳으로
블백을 하기 위해 도전을 향해^^
소요산[逍遙山]
경기도 동두천시와 포천시 신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36m이고,
산세가 웅장하지는 않으나 석영반암의 대암맥이 산능선에 병풍처럼 노출되어
성벽을 이루고 있는듯하며, 경기소금강(京畿小金剛)이라고 할 만큼 경승지이다.
소요산역에서 약 1㎞ 떨어져 있는데, 소요산 하면 진달래·단풍·두견과
폭포를 연상할 만큼 꽃과 단풍으로 알려진 산이다.
974년(광종 25)에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서화담양달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고 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소요산의 입구에 청량폭포(淸凉瀑布) 및 원효폭포가 있는데,
청량폭포가 있는 곳을 하백운대(下白雲臺)라 하고
그 위쪽의 원효폭포가 있는 곳을 중백운대라고 한다.
원효폭포 주변에는 방음봉·이필봉·약수봉 등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중백운대에는 신라시대에 원효가 세운 자재암(自在庵)이 있고,
다시 그 위쪽으로 나한대·의상대 등을 거쳐 30m 돌층계를 오르면
원효대에 닿는데 이 곳을 상백운대라고 부른다. 산의 정상에서 보면
북쪽으로는 한탄강이, 남쪽으로는 서울방면의 산맥이 굽이쳐 전망이 매우 좋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요산 [逍遙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요즈음은 가는곳 마다 단풍축제가 열리는 듯..
소요산 등산 안내도 입니다..
주차장 마지막에 있는 소요산 연리지문이네요.
이 문이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애뜻한 사랑을 표한하고 있네요.
곳곳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넘쳐 납니다.
포토존 인데 같이 앉을 사람이 없네요^^
요석공원(瑤石公園)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617~686)의 부인이었던
요석공주와 인연이 깊은데서 이름하였다.
이 요석공원은 신라의 고승(高僧) 원효대사(서기 617 ~ 686년)의
부인이었던 요석공주와 인연이 깊은데서 이름하였다.
요석공주는 신라 제29대 왕인 무열왕이 딸로서 일찌기 홀로 된 몸으로
요석궁에 머물러 있었다.
이 때 약 30대 나이의 원효라는 스님이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면서
" 그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당시 임금이었던 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는 "이 스님이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 하면서 요석궁에 홀로 있던
요석공주와 짝을 이루게 하여 후에 대유학자가 된 설총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원효는 파계승이 되어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큰 표주박을 두두르면서
수많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교화를 하던 중
이곳 소요산 원효대에 머물면서 다시 수행에 전념하였다고 하는데,
이 때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조그만 별궁을 짓고 살면서 아침 저녁으로 원효가 수도하는 원효대사를 향해서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 봉우리가 공주봉이며, 공주가 설던 별궁터는
요석궁터로 불리워지게 되었는데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요석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소요산에는 원효대를 비롯하여
원효폭포, 원효정, 공주봉, 요석궁터, 백운암, 자재암 등이 있다.
이 외에 의상대, 나한대, 금송굴, 선녀탕, 선녀폭포, 청량폭포 등이 있어
경관을 더해 주고 있다.
출처: http://100mountain.tistory.com/344 [한국 100대 명산 산행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포토존 설치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네요
아마 다음주 가시는 분들은 여기서 인증샷을 남기실 수 있을듯요^^
주차장에서 500m 걸어가면 드디어 매표소가 나옵니다.
입장료는 1,000원, 다른곳보다 저렴하네요
다행인건 문화재 입장료가 아니라 공원 입장료 라고 하네요^^
일주문에서 약 800m 걸으면 나오는 일주문..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약 1.3km이고요
20분 걸었습니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원효굴과 원효폭포가 나옵니다..
우측으로 등산로를 시작해야 하는데
일단 좌측에 있는 원효굴로 가봅니다..
원효대사가 수도 하였다는 원효굴 입니다.
이 원효굴 위에는 원효대가 수도했다는 원효대가 있네요..
원효굴 바로 앞에 있는 원효폭포.
이곳에서 목욕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소요산 등산 안내도 입니다
오늘의 코스는 공주봉~의상대~나한대~백운대~자재암코스로
정했습니다..
이곳으로도 공주봉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길은 잘 오르지 않고요 단풍이 아름다워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단풍을 즐기는 행락객들이 이용하는듯 하네요..
원효굴에서 나와 우측으로 오르자마자 나타난 또 다른 갈림길..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자재암으로 향하고요
우측으로 가면 공주봉으로 향합니다.
지금 이계단은 좌측으로 이어져 해탈문, 원효대를 지나
자재암으로 가는 길인데요.
계단이 108개라고 하여 108계단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산행을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공주봉까지는 계속해서 오르막입니다..
이런 암석길을 계속해서 올라야 하는데요..
공주를 만나러 가는길이 이렇게 험한 듯 합니다.
중간중간 휴식공간이 있어서 나름 쉬어갈수 있는 곳도 많지만요..
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나올줄 알았던 공주봉..
그러나 공주봉은 나오지 않습니다..
공주붕에 오르다 본 나한대의 단풍입니다.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낄수 있어서 좋네요..
단풍이 빨갛게 물들었죠?
드디어 공주봉에 올랐습니다..
이곳 공주봉까지는 약 2.6km로 1시간 10분 산행을 하였네요..
공주봉의 높이는 526m로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위해
봉우리 이름을 공주봉으로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네요..
공주봉에서 바라본 동두천시 전경..
바로 앞에가 미군 부대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안상 문제가 없는건가요??
공주봉 주변 입니다.
분명히 이 공주봉에 테크를 확장해서 완성했다고 하는데
찾아볼수는 없네요..
이제 오늘의 목적적인 의상대로 향합니다..
샘터 갈림길 입니다..
이곳은 조금전 지나온 108계단에서 공주봉 방향으로 오르다가
구절터 지점에서 바로 올라올 수 있는 길입니다..
공주봉에서 1km정도 떨어진 의상대 입니다..
이곳까지는 약 3.6km로 1시간 50분 걸었네요.
기둥에 의상대라고 적혀있지 않아
잘못하면 그냥 지나칠수도 있습니다..
이 안내도를 보고 좌측에 있는 바위로 올라가야 의상대 입니다..
의상대..
의상대는 조선 태조가 소요산에 머물며
자재암을 크게 일으킨 후에
자재암을 창건한 원효의 수행 동반자인
의상대사를 기려 소요산의 최고봉인
이 봉우리를 의상대라 불렀다 하네요..
대한민국 300대명산 92좌,
한국의산하 60좌 및 산림청 58좌,
블랙야크 67좌 도전 성공!!
오늘도 클린산행과 함께~~
의상대에서 약 200m떨어진 곳에 있는 나한대.
나한대는 소요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571m)로
오른편에는 의상대와 공주봉이 위치해 있고
왼편에는 선녀탕 하산로 칼바위와 상백운대가 위치해있다.
나한이라 의미는 불교를 수행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이르는 명칭으로 신라시대 원효에 의해 창건되고,
고려초에 나옹 등 여러 고승들이 수행하였던 장소이고,
특히 조선 태조가 이절에 머물며 절의 면모를 일신한 이후,
자재암이 크게 번성하자 절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봉우리들을
불교와 관련된 명칭으로 부르는 중에 이곳을 나한대라 부르게 되었다.
나한대에서 선녀탕 갈림길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이 계단도 생각보다 엄청 가파르네요..
선녀탕 갈림길 입니다
여기까지는 약 4.2km로 2시간 17분 산행하였네요^^
이곳으로 내려가면 선녀탕을 만날수 있고요
좀더 걷가가 상백운대에서 중 백운대 오르기전
선녀탕 하산로를 이용해서 갈수도 있네요..
선녀탕 갈림길에서 약 450m이동하면
칼바위 능선이 나오는데 칼바위 능선길은 상백운대까지
약 500m구간으로 이어집니다..
생각보다 암릉이 뾰족하여 걷기가 불편합니다.
그래서 이 소요산 산행이 낮은 산이지만 어렵다고 합니다..
칼바위 능선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생기고,
크고 작은 편마암들의 바위라는 의미로, 상백운대에서 시작하여
선녀탕입구 하산로까지 약 500m 가량 연속으로 이어진
조금은 긴장되는 구간이다. 수려한 소요산의 절경을 한층
더 뽐내주는 칼바위는 그 기세나 산세가 웅장하고
노송과 함께 절경을 이루며 뒷편으로 소요산 자락과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이 연결되어 마치 용의 등처럼
동두천의 동북쪽을 휘감고 있다
이 능선길을 보시면 대충 짐작이 되시죠..
상백운대 입니다.
이곳까지는 약 5.2km로 2시간 54분 산행하였습니다.
소요산 일주문에서 오르는 왼편 등산로를 백운대라 부르며
이를 다시 그 위치에 다라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로 나뉜다.
산세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는 단풍과 철량한 하늘
전체에 유유히 흐르는 흰구름이 어우러져 문자 그대로
작은 금강산이라고 부르는 이곳을 상백운대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왕자의 난으로 실각한 이후 이곳 소요산 아래
행궁을 짓고 머물며 불교 수행에 힘썼는데 그는 자주 이곳 백운대에 올라
경치를 즐기며 동시에 자신의 회한을 달랬다고 한다.
그가 백운대 올라 지은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한다.
넝쿨을 휘어잡으며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흰 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놓였네
내 나라 산천이 눈 아래 펼쳐지고
중국땅 강남조차 보일 듯 하이
상백운대 정상에 있는 우체통 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안내문도 없고
우체통을 열 수 있는 고리도 없네요^^
중백운대 입니다.
소요산 일주문 왼편 백운대 등산로의 상백운대, 하백운대의
중간봉우리로 푸른 산과 붉은 단풍 그리고 흰 구름이 어우러지는 명승이기에
이를 중백운대라 이른다. 고려말의 고승이자 해동불교의 법조인
태고 보우선사는 「백운암의 노래」 라는 시에서
이곳의 절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소요산 위의 흰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기묘한 경치 더욱 좋구나
중백운대에서 바라본 나한대 주변 풍경입니다
맨 좌측 뒷편으로 보이는 산 봉우리가 칠봉산이고요
중간에 높은 봉우리가 나한대.
그리고 맨 우측 높은 봉우리가 의상대 입니다..
하백운대 입니다.
이곳까지는 약 6.1km로 3시간 15분 산행하였네요.
소요산 백운대 능선의 제일 아래 봉우리로
이 위로 중백운대와 상백운대를 거쳐 의상대, 공주봉으로 이어지는
말굽모양의 등산로가 이어진다.
소요산은 일직이 절묘한 산세, 수려한 계곡 그리고
무엇보다고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단풍으로 작은 금강산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양사헌, 이율곡, 성혼, 허목 등 당대의 문인, 학자, 시인들이
이 산을 찾으며 그 절경을 노래하였다.
이산에 머물며 수행하던 매월당 김시습은 이렇게 노래하엿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이제 자재암으로 하산합니다.
이곳에서는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을 파시는 분도 계시네요^^
하백운대에서 자재암으로 하산하는
500m의 길이 가파르고 위험합니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서 또한 암릉을 하산하면서
느낀것은 정말 이곳으로 올라오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라것...
드디어 그 유명한 자재암에 도착하였네요..
이곳까지는 약 6.6km로 3시간 40분 산행하였네요..
654년(무열왕 1) 원효가 창건하여 자재암이라고 했다.
고려시대 974년(광종 25) 각규(覺圭)가 태조의 명으로 중건하여
소요사로 바꾸고, 1153년(의종 7)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각령(覺玲)이 대웅전과 요사채만을 복구하여 명맥만 이어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872년(고종 9) 원공(元空)과 제암(濟庵)이 퇴락한
이 절 44칸을 모두 중창하고 영원사(靈源寺)라 하였다.
이때 영산전· 만월보전(滿月寶殿)·독성각·산신각·별원(別院)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1907년 화재로 만월보전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1909년 성파(性坡)와 제암이 다시 중창하고 절 이름을 자재암으로 고쳤다.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1961년 진정(眞精)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이 요사채를, 1977년에는 삼성각을, 1982년에는 일주문을 각각 지었다. 이어 1984년에는 부설 유치원이 개원하였고,
1983~1985년에 오래된 건물이 헐리고 새로운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절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한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세속의 인연을 맺은 뒤,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행에 정진하고 있을 때,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이 유혹을 하였다.
설법으로 유혹을 물리친 원효는 이내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닫고
더욱 수행에 정진하는 한편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절을 짓고 자재암이라 했다고 전한다.
또한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의 승려이던 제암과 자재암의 주지인 원공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우연히 만나 절을 중창했다는 영험담도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재암 [自在庵] (두산백과)
자재암 나한전 입니다
이곳에서 스님이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있는
모습이 정겹네요^^
나한전 바로 옆에 있는 원효샘 입니다..
나한전과 원효샘 그리고 원효샘 위에 우뚝 솟은 저 바위는??
자재암 진입로에서 바라본 자재암의 모습.
그리 크지도 않으면서도 그윽한 암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원효대와 관음봉
이곳은 원효 스님이 정진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머물며 좌정하고 수도하던 장소로 원효대로 불리운 곳입니다.
관음봉은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중 관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설화로 인해 관음봉이라 불리웁니다
해탈문 이라고 하네요.
이 해탈문을 통과하기 위해 108계단을 오르고
해탈하였다고 해서 저 위에 매달아 놓은 종을 치는데
지나가는 모든이마다 종을 울리니 조금은
소음인듯~~~
108계단을 오르는 중생들의 모습입니다. ㅎㅎㅎ
하산길에 본 독립유공자추모비!!
이곳에 올라 추모하는 이는 찾아볼수 없네요^^
오늘의 등산코스 입니다..
#소요산 #동두천_소요산 #원효대사 #요석공주 #의상대
#자재암 #백운대 #선녀탕 #소요산산행코스 #소요산단풍
첫댓글 예쁜사진과 자세한설명까지
덕분에 소요산을 더 잘게되었씀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저 되십시요
풍경사진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