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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
안산동화읽는어른모임
이 희경
1. 행복을 나누는 책 읽어주기
드디어 여러분은 “행복을 여는 길”을 찾으셨네요^^ 네,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책 읽어주는 일이야말로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부모님들이 겪었던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심심할 때 굳이 친구를 찾아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놀이가 너무 많습니다. 어쩌면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컴퓨터 게임이 훨씬 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혼자서 도 재미있는 만화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인 친구들도 많습니다. 컴퓨터 게임이라든가 닌텐도, 핸드폰, 24시간 방송되는 만화영화 채널 등은 옆에 누가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린이들이 책을 선택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동생들에게 책 읽는 기쁨을 전해주는 일을 기꺼이 하려고 합니다.
<어린이와 그림책>의 내용을 쓴 마쓰이 다다시는 “자신이 얻은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가짐만큼 커다란 창조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기쁨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최대의 창조라는 사실을 현대인은 잊은 듯합니다.” 라고 하면서 책 읽는 기쁨을 나누는 일이 최대의 창조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책읽어주기를 통해 행복한 마음을 나누고 책 읽는 기쁨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창조자입니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2. 책 읽어주기 활동의 경험 나누기
제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바로 제가 여러분보다 조금 일찍 책읽어주는 일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다른 사람에게 책 읽어주기를 한다고 하면 누구나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몇 년 동안이나 책을 읽어준 경험이 있는 어머니들도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것이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은 떨림이 가라앉기도 하고 자신의 책 읽어주기 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저의 경험이 여러분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안산동화읽는어른모임에서 처음 책읽어주기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많이 걱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많이 읽어본 그림책을 골라 회원들 앞에서 책을 읽어주는 연습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집에서 여러 번 읽어오는 것은 당연했지요. 책을 읽어준 다음에 다른 회원들이 고쳐야 할 점이라든가 이런 점은 좋은 것 같다 등 품평을 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동화구연방법으로 책을 읽어주는 것은 피하기로 했습니다. 그림책은 짧은 글로 다듬어져 있어서 글도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되도록 원본에 충실하게 읽어주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유아들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었기 때문에 짧은 책을 선택했습니다. 2사람이 한 조가 되어 책을 잡아주기도 하고 목이 아프면 번갈아 읽어주기도 하였습니다. 5세 정도의 유아들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구분되어 있어 토끼나 다람쥐 등 귀여운 동물이 나오는 책들을 좋아합니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내용이 나오면 울기도 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냥 두고 앉아 있는 아이들과 마저 읽습니다. 또 너무 어린 유아들은 책 읽는 시간이 길면 힘들어하기 때문에 책의 분량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상록어린이도서관에서 유아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줄 때 읽어주는 책을 한 아이가 가져가겠다고 떼를 부린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일어나 서로 책을 빼앗으려고 다투게 되었습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일단 아이들을 구슬려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갈 때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가도 좋습니다. 또 도서관에 계신 선생님이나 아이 어머니께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간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비지땀이 나면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됩니다. 저는 책을 다 읽어준 다음에도 읽다가 멈춘 책은 읽어주지 않고 다른 아이들에게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규칙을 알려주었습니다. 여러분이 책읽어주기를 할 때에도 한 조의 친구들과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해서 규칙을 정해 두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읽어주려고 준비해 간 책 대신에 자기가 가지고 온 책을 읽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책을 들고 왔을 때는 읽어주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새 책의 내용에 집중하다 보면 아이들과 눈을 맞추지 못하게 되는데 그러면 아이들의 반응이 어떤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주면서 가끔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정재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 책을 읽어주러 갈 때에는 4명이 두 조를 이루어 격주로 가기로 했습니다. 방과후 교실에는 저학년이 대부분입니다. 책 읽어주기를 할 때는 대상이 되는 어린이의 학년을 먼저 알아 알맞은 책을 선정합니다. 보통 한 학기 정도의 책목록을 선정하는데 한 번 갈 때 3-4권의 책을 읽어줍니다. 이때는 1권은 반드시 옛이야기를 골라 읽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굉장히 경직되어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냥 읽어주고만 나오니까 너무 쉽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편하게 들으면 돼요.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보기에 안쓰럽네요.”하며 여유를 부렸습니다. 그런데 몇 번 보니까 편해졌는지 누워서 듣는 아이, 앞으로 바짝 다가오는 아이, 끼리끼리 둘러 앉아 수군대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너무 편해졌는지 서로 막 싸우기도 합니다. 서로 발길질을 하며 싸울 때는 책 읽어주는 일이 너무 힘이 들어 괜히 자유로운 분위기 운운 했나 하면서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적응이 되니까 너무 바른 자세로 앉아서 들을 때보다 자유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중에 한 여자아이(이름이 경은이였습니다)는 아주 조용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였습니다. 맨 뒷줄에 가만히 앉아서 벽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얼굴도 마주 하지 않아 조금 염려스러웠습니다. 책 읽어주는 것을 듣고 있는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반쪽이>를 읽어줄 때였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생선을 반 쪽 훔쳐 먹은 고양이가 낳은 새끼고양이도 반쪽고양이라고 보여 주었더니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그림을 보며 신기해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그림에도 반쪽고양이가 나오는 지 찾아보며 야단이었습니다. 벽만 쳐다보고 있던 경은이도 궁금했는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앉아 그림을 열심히 보고 있더군요. 그 때 우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딴 짓을 하는 듯이 보여도, 흥미 없어 하는 것처럼 보여도 책에 주의를 쏟고 있다는 것을요. 그 후 부터는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다 듣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6개월이 지났을 때 경은이는 제일 앞자리에서 듣는 아이중의 하나가 되었고 눈을 마주치면 배시시 웃어줍니다.
책을 읽어준다는 것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읽어주는 나에게도 큰 기쁨이라는 것을 이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 기분 좋았던 일은 아이들이 합창하듯이 책을 읽으면서 모두 하나가 되었던 때였습니다. 앞에서 열심히 듣는 여자아이가 책읽기를 끝내고 마치려고 할 때 읽어달라고 책 한권을 내밀었습니다. 전에 읽어주었던 <곰 사냥을 떠나자>라는 책이었는데 노래를 불러주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작하면서 “곰 잡으러 간단다. ~ ” 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함께 따라 부릅니다. 그러니까 옆의 다른 아이들도 함께 부르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로 노래를 부를 때부터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함께 부르더니 책의 내용도 함께 큰 소리로 읽어 냅니다. 너무나 재미있어하면서 교실이 떠나갈 듯이 합창을 합니다. 앞에서 작게 또는 점점 크게 읽으라고 손짓을 하며 내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너희들 너무 멋지구나!”, “와~ 대단해.”하는 감탄어린 말만 나왔습니다. 아이들도, 책 읽어주러 간 우리도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날의 경험을 한 아이들은 책 읽는 기쁨을 마음에 간직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들과 다음에 다시 만날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책 읽어주기를 오랫동안 해 오신 분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감동의 이야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잘 들어주지 않거나 반응이 없을 때는 허전하고 다시 올 일이 걱정이고 책읽어주는 일이 힘이 들기도 합니다. 자신이 없어지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책읽어주기를 하면서 아이들과 감동을 주고받고 교감을 느끼면 또 다시 새로운 힘이 솟아나고 행복해 집니다. 책 읽어주는 일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책읽어주기를 한 다음에 반드시 일지를 썼습니다. 날짜, 책읽어준 장소, 대상, 읽어준 책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주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자세히 살펴서 기록해 두면 좋습니다. 일지를 쓰면서 그날 책읽어준 일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점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책읽어주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지침이 됩니다. 열심히 기록한 일지는 책읽어주기를 시작하는 다른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3. 책읽어주기를 통해 얻는 마음의 연결
그림책을 통해서 얻는 기쁨은 마음속에 깊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커서도 책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그림책을 읽어준 사람에 대한 기억도 마음속에 남게 된다고 합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은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그림책 속의 신비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림책을 정성껏 읽어주는 사람과 귀를 기울여 듣는 사람 사이에는 풍부한 공감과 기쁨이 생겨납니다. 이 일은 정신적인 따뜻함을 공유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책 읽어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마음이 연결됩니다. 이런 마음의 연결은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어릴 때 형성된 인간에 대한 신뢰감은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큰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 중 <미스 럼피우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속에서 소녀의 할아버지는 소녀에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소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먼 훗날 마을을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하게 만듭니다. 그 책을 읽고 나서부터 제게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화두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책읽어주기야 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 읽어주기를 통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정말로 소중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앞으로 책읽어주기 활동을 하는 모임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는 모임”으로 이름지어도 좋겠습니다^^
4. 책읽어주기 ‘이렇게 하세요’
* 읽어주기에 알맞은 책을 고릅니다. 읽어주는 사람이 감동을 받았던 책이면 더 좋습니다.
* 읽어주기 전에 전체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여러 번 읽어 봅니다.
* 읽어줄 책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냥 바로 책 읽어주기 로 들어가도 좋습니다.)
* 눈을 맞추면서 읽어줍니다. 책 읽기를 통해 서로 마음을 나눈다는 생각이 중요 합니다.
* 책 읽어주기를 마치고 다른 독후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책 내용을 충실하게 전 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책을 읽어주고 나서 기록을 해 둡니다. 읽어준 날짜와 장소, 책 이름, 아이들의 반응과 읽어준 사람의 느낌 등을 간단히 기록해 두었다가 다음 책 읽어주기 활 동에 활용합니다.
5. 자부심 갖기
처음에 책읽어주기를 하는 분들에게 제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처 받지 마세요” 입니다. 책을 읽어주다 보면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또 그날의 기분에 따라 아이들의 태도도 무척이나 달라집니다. 책을 읽어줄 때마다 아이들과 기쁨을 나누고 마음이 연결되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런 날보다는 마음이 닫혀 서로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계속 민감하게 반응하면 책읽어주기가 힘이 듭니다.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책읽어주기를 하면서 내가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 책을 읽어주면 듣는 사람의 마음도 어느 때인가 열려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한 발 한 발 행복의 길을 찾아 나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면 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지!
첫댓글 선생님, 급하게 부탁을 드렸는데도 흔쾌히 써 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