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41) - 절반이 넘는 배웅 길
설을 쇤지 며칠이 지났다. 연초에 아내와 함께 서울에 가서 아들가족들을 만났기에 이번 명절에는 단출하게 보냈다. 설날, 이른 아침에 아내와 함께 요양시설인 천혜경로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 인사를 드린 후 어른들의 식사자리에서 찬송과 기도를 함께하는 것으로 설맞이를 가름하였다. 정성 드려 장만한 메뉴가 풍성한데 어머니는 장염 증세가 있어 흰죽만 드신다.(아내는 부엌일을 거들고 나는 숟가락질이 어려운 분들의 식사를 도와 드렸다.)
이어서 친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촌동생 집에서 떡국을 들고 사촌과 함께 성묘길에 올랐다. 선영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접경에 있는 고창군 공음면에 있다. 광주에서 영광을 거쳐 선영에 이르는 길에 눈이 제법 내린다.
겨울철이면 고향에는 일본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묘사한 설국처럼 눈이 많이 온다. 천지가 하얗게 뒤덮인 산소를 한 바퀴 돌아보고 여니 때처럼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는 찬송을 부르며 조상들의 덕을 기리는 기도를 올린 후 발길을 돌려 가까운 곳에 있는 어릴 적의 나들이코스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어릴 적에 막내 숙부는 고향마을에서 30리 떨어진 영광군 법성포에 있는 법성상고의 교감으로 봉직하셨다. 방학이 되면 동생들(사촌 포함)과 함께 첫 번째 순례코스로 법성포를 찾는다. 그 다음 코스는 법성포에서 30리 떨어진 영광읍의 시골마을에 있는 큰누님 댁이다. 큰누님 댁을 나서면 그곳에서 20리 떨어진 영광군 대마면 소재지에 있는 외가로 간다.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은 외가에서 30리 떨어진 장성군 삼계면에 있는 사촌동생의 외가, 법성포와 영광읍은 버스노선이 있어서 차를 타고 나머지 구간은 걸어서 간다.
초등학교 시절의 어느 겨울날, 법성포를 거쳐 영광읍에서 10리 쯤 들어가는 큰누님 댁을 동생들과 함께 걸어가는데 눈이 심하게 내렸다. 눈보라치는 시골길에 힘들어하는 사촌여동생을 등에 업고 가던 추억이 아련하다.
한번은 큰누님이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시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님을 따라 나섰다. 어머니와 작은 누님은 큰누님의 배웅 길에 함께 하였다. 고향마을에서 누님 네 마을까지는 걸어서 40리 길, 버스를 타면 법성포에서 하루를 묵어야 하니 걸어가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와 작은 누님은 큰누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산하치 고개까지 따라오셨다. 그곳까지의 거리는 25리, 40리 길의 절반이 넘는 지점이다. 더는 나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 어머니는 북쪽으로, 딸은 남쪽으로 갈라졌다.
이번 기회에 그 고갯길을 찾아볼 마음이 들어 승용차의 방향을 그쪽으로 돌렸다. 어림짐작으로 옛 기억을 살려 시골길을 한참 올라가도 고개로 가는 길목을 찾기 어렵다. 길가의 어느 집에 들러 주인을 불러도 응답이 없다. 설 쇠러 도시의 아이들 집으로 나섰는가?
더 올라가노라니 길가의 어느 집에 신발이 많이 놓여 있다. 큰소리로 말 좀 묻겠다고 청하니 젊은 아낙이 문을 열고 내다본다. 산하치로 가는 고갯길을 찾는다고 말하니 안에 계시는 팔십 노옹이 그 길은 폐도로 숲이 우거져 다닐 수가 없다며 새로 난 신작로를 따라 가라고 친절하게 일러준다. 신작로를 따라 도의 경계를 지나 고개 너머 한 마을에 이르니 동네 이름이 산하치라고 적혀 있다. 어릴 적에는 산하치란 고개(산아치재라고 불렀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열 살 전후의 어릴 적 길을 더듬어 찾노라니 어느덧 어머니는 백수를 바라보고 새 색시 큰누님은 80대에, 앳된 처녀였던 작은 누님도 80을 바라보는 60년 세월이 지났구나. 며칠 전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보낸 송편을 받고 누님들이 감회에 젖어 전화를 주셨다. 열아홉에 시집와서 아홉 살, 다섯 살의 어린 딸들을 알뜰하게 키우신 어머니의 정을 그리워하며.
몇 년 전, 큰누님이 전주에 입원중인 형님을 문안하러 온 길에 광주에 오시겠다고 하여 어머니 모시고 고창에 가서 국화축제도 보며 서울, 광주, 고창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담소하는 시간에 산하치재 넘어가던 이야기를 하였더니 누님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국화 축제 때 찍은 사진을 보노라니 우리 고장 출신 서정주 시인의 명시, ‘국화 옆에서’가 생각난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은 꽃이여...’
오랜 세월 깊은 정 가꾸며 살아오신 어머니와 누님들, 남은 때에 더욱 강건하소서.
추신,
설날의 성묘나들이는 어릴 적의 순례길 탐사를 마치고 한국의 아름디운 길로 선정된 영광 백수해안도로를 일주하며 만산에 가득한 설경감상, 모래사장에 세차게 부딪히는 겨울 파도를 바라보며 눈길 걷기, 해수목욕탕에서의 휴식 등으로 알차게 이어졌다. 금년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데 고향나들이라서 그런가, 눈길에 발이 푹푹 빠져도 기분은 상쾌하다, 저물녘에 광주에 돌아오니 눈 내린 흔적이 없다. 서해안지역에만 뿌린 눈발이었나 보다.
이틀 후 다시 눈이 내렸다. 이번에는 광주에도 꽤 많은 눈이 쌓였다. 아내와 함께 창밖의 설경를 바라보며 김진섭의 백설부를 읽었다. 그 중 한 구절, “…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시는 백설. 이것이 정숙히 읊조리는 것이니… 눈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줌으로 의해서 하나같이 희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지만… 그 눈이 내리는 배후에는 알 수 없는 신비가 숨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후에 테니스코트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애썼지만 백설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