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설집 서평
화양 28, 광주와 같으면서 다른 무간지옥
──정유경, 『28』
오혜진
1. 계엄령의 도시
대한민국
역사상 계엄령이 내려진 때는 의외로 많다. 주로 정치적인 이유에서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했지만 여전히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않고, 경제적으로 불안할 때일수록, 군인들의 얼룩덜룩한 힘들이 나라를 장악할 때일수록, 계엄령은 발동했다. 그 중 가장 최근의 기억. 광주라는 한 지역에 봉쇄가 내려졌던 계엄령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남겼고, 여전히 완전하게 해결되지 못한 현재진행형의 역사적 증거이다. 이 소설, 정유경의 『28』도
계엄령이 내려져 한 도시가 완전히 봉쇄된다. 가상의 도시, 가상의
적. 화양과 빨간 눈 바이러스. 『28』과 함께 한 시간 동안 내내 광주가 떠올랐다. 분명, 시대도 다르고 그 원인도 다르지만, 같은 무언가가 있어 자꾸만 그
도시가 맴돌았다.
정유정의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바로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그 내용과 전개가 압도적이다. 이는 3년 전 『7년의 밤』(은행나무, 2011)에 힘입은 바도 크다. 치밀한 사건 전개와 숨막힐 듯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주인공들이 원했건 원치 않았건 서서히 육박해 들어가는 비극적 운명으로의, 종국에는 파멸할 수밖에 없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그 빡빡한 조임을
정유정은 너무나 능수능란하게 이 소설에서 구사했다. 그 이전의 우리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빠른 전개와
클라이맥스를 향해 그야말로 ‘직진’하는 뚝심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참혹하면서도 시원하게 터지는 댐의
물(『7년의 밤』에는 실제로 댐이 터져 한 마을이 수몰된다.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처럼 정유정의 소설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으로 밀려왔다. 역시 독자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28』은 벼리고 벼린 운명과 욕망들이 뒤엉켜 더욱 더 치열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보여준다. 오로지 앞만 보고 ‘진격’하는 것도 전 작품과 유사하다. 사실 나
같이 괜한 딴죽을 걸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진격이 다소 불만이기도 하다. 1980년도 아닌, 인터넷과 모든 이동통신이 발달한 지금, 한 지역을 폐쇄하고 봉쇄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또한 화양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봉쇄를 순순히 받아들일 것인지, 다른 도시로 빨간 눈 바이러스가 퍼져나가지 않는 것이 가능한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약도, 해결책도 없는 것인지 등등 삼천포로 빠지는 질문들이 책을 읽는 동안 스멀스멀 올라왔다.
작가는
나와 같은 독자들은 독자들대로 놔둔 채 작가 스타일대로 밀어 붙인다. 한눈팔지 않는 이 뚝심은 그래서
오로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빨간 눈 바이러스”라 불리는 가상의 적과 싸우는 화양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용광로처럼
들끓는 화양으로 이제 들어가 보자.
2. 5명의 사람과 1명의 개
시점은
총 6개로 이루어져 있다. 기자인 윤주는 동물병원 ‘드림랜드’
원장인 서재형에 관한 폭로 기사를 쓰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화양을 방문한다.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자 아마도 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수의사 재형은 알래스카 개썰매 경주에서 자신의 썰매와
경주견들을 늑대에게 모두 잃은 아픈 상처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사람과 개 사이의 연결고리이자 주요
인물들과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의 학대와 집안 식구들의 냉대로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보이는 동해는 한 개인의 광기가 집단적 광기 혹은 특수한 상황을 만나 더욱 그 전열戰列을 더하는 모습을 첨예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119 구급대원 기준과 병원응급실 간호사 수진 등 5명의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그리고 마지막 링고. 화양이란 도시에
던져진 링고는 다른 개들에 비해 매우 독립적이고 자신만이 삶의 영역이 확고하다. 링고에
의해 비로소 이 소설은 인수人獸공통 감염 바이러스인 빨간 눈 바이러스가 불러온 이 사태를 다른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화양맨션에부터
퍼진 ‘빨간 눈 바이러스’는 더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 전염병이다.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가자 드디어 정부의 결단이 내려진다.
여론은
화양 봉쇄의 당위성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접촉한 지 하루면 눈이 빨갛게 되고, 빨간 눈이 나타난 지 이삼 일 내에 사망에 이른다는 이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전 국민을 종교적 수준의 공포와
공황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각 언론사와 방송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0퍼센트가 대통령의 결단을 지지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군을 동원해서라도 빨간 눈의 서울 상륙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화양시민 29만의 문제가 아니라 5천만의 생명이 걸린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국민들에겐 화양과 빨간 눈이 동의어나 마찬가지였다.(230쪽)
이렇게
화양은 버려진다. 박노자는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한겨레출판, 2012)에서 국가는 일부 권력이나 돈을 가진 자들의 하수인에 불과하고, 국민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그들을 돌보는 척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은 국민이란
바로 적 아니면 타자로 취급된다. 예전의 광주가 ‘폭도’로 몰려 ‘적’이 되었듯이, 이제 화양이란 도시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29만의 시민들은 ‘전쟁’을
치러야할 대상으로 변한다. 이는 국가적 결정이자 국가라는 테두리에서 숨 쉬고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자
공포의 다른 이름이다.
이제
화양은 계엄군에 의해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는 공간으로 돌변한다.
화양이 버려졌듯 화양도 우선 자신들 내부의 적이라 여겨지는 대상을 정해 그들을 버린다. 그들은
‘빨간 눈 바이러스’의 진양지라 여겨지는 개들이다. 우선 동물병원인 ‘드림랜드’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반려견을 버리기 시작한다. 재형의 동물병원에서 같이 지내던 윤주는 버려진 개들을 돌보지만 그들의 병원으로
몰려든 것은 총을 든 군인이었다. 이것은 크나큰 재앙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10명의 군인들이 착검한
총을 들고 구덩이 삼면을 에워쌌다. 나머지 둘은 스키 폴만큼이나 긴 죽창을 쥐고 철장 문을 열었다. 덤프의 적재함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개들이 구덩이로
떨어져 내렸다. 처음엔 몇 마리씩, 곧 무더기로. 떨어진 개들은 곧장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누워 자빠진 동료의 몸을
딛고 서로의 머리를 밟으며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구덩이를 에워싼 군인들은 착검한 총 끝으로 개들을
찍어서 구덩이로 다시 떨어뜨렸다. 죽창 군인 둘은 철장 벽에 붙어 버티는 개들을 창으로 찍어 떼어냈다. 큰 개, 작은 개, 검은
개, 흰 개들이 눈을 찍히고, 뱃가죽이 뚫리고, 등을 꿰인 채 핏물을 내뿜으며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백구
한 마리가 창살을 발로 움켜쥐고 버둥거렸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피투성이가 돼서 구덩이로 떨어지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241쪽)
인간은
생태계의 피라미드 맨 위에 버티고 있다. 그것도 피라미드와는 상관없는 어마어마한 개체수로 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먹이를 위해 동물을 사육하지만, 자연을 벗어난 이러한
대량 사육은 결국 주기적으로 인간에게 경고를 내린다. 그리고 그 벌은 인간이 아닌 돼지나 소, 닭과 같은 가축들에게 내려진다. 여기 살처분을 당하는 개들도 마찬가지다. 극단에 몰린 인간의 잔인함은 빨간 눈이라는 보이지 않은 적들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빨간 눈이 되는 데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화양은
이제 그야말로 ‘무간지옥’이 된다. 군인들은 화양을 빠져나가려는 민간인들을 소리 소문 없이 없애고, 화양 내부는 무법천지로 변해간다. 빨간 눈의 공격을 피한 이들은
빨간 눈에 버금가는 무차별성을 발휘하며 그 잔인성을 마구 뻗쳐간다. 그 안에 동해가 있다. 자신이 있던 정신병원에 불을 지르고 아버지와 더불어 정신병원에 감금케 한 원흉이라 여겨지는 링고를 향한 복수심은
재형의 동물병원에도 피해를 입힌다. 링고 역시 자신의 짝인 스타를 죽인 기준과 동해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간다. 기준은 자신의 가족이 링고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고 오해하고 링고를 죽이려 한다. 빠져나갈 수 없는 폐쇄의 공간에서 그들은 처절한 최후를 준비한다. 이렇듯
인간은 전염병이라는 대재앙 속에 인간들 서로 간의 미움, 분노, 복수로
더 많은 죽음을 재촉한다. 또한 이 도시에 대한 봉쇄를 풀라는 시민들에게 이루어진 발포도 결코 적지
않은 죽음을 부른다.
화양은
활활 타올라 재가 되기 전에는 끝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오로지 충격, 죽음, 거짓, 분노, 좌절만이 있을 듯한 이곳에 재형과 윤주의 사랑은 따라서 돋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서서히 다가오는 빨간 눈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개들을 향한
도살, 곳곳에서 횡행하는 범죄라는 외부의 적들과 스타를 비롯해 자신이 키우던 개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재형과 화양의 진실을 외부로 알리기 위해 애쓰는 윤주의 노력은 그럼에도 지켜야 할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암시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노력에서도 아랑곳없이 사건을 진행시킨다. 빨간 눈이 어떤 사람이건
가리지 않고 죽음을 선사했듯이 5명의 인물들과 1명의 개
중 살아남는 것은 단지 둘뿐이라는 것이 바로 그 증좌다.
간호사
수진은 빨간 눈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던 응급실에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파트 안에서 윤간을 당한 후 죽는다. 동해 역시 아버지와의 마지막 처절한 사투 끝에 생애를 마감한다. 재형은
기준을 공격하는 링고를 막으며 그 마지막 숨을 거둔다. 링고 역시 총에 맞게 된다. 주요 인물들이 빨간 눈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죽게 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전염병과 폐쇄된 도시라는 극한의 상황에 인물들을 몰아넣고 그들이 그 안에서 벌이는 혹은 맞이하게 되는
운명을 냉정하게 그리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는 말이다. 이 무간지옥에서 그렇다면 살아남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3.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이 소설은
자칫 재난영화와도 비슷하다. 이런 유의 영화 엔딩은 대체로 주인공들이 모든 재난을 물리치고 넋을 놓고
있을 때 어디선가 경찰차나 아니면 총을 든 군인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의 포옹, 아니면 쓸쓸한 표정 뒤로 무너진 도시나 건물들의 잔해 사이로 숨어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주인공 주위로 몰려든다. 헬리콥터가 뜨고 “통행 재개 및 도시 정상화를 위한 복구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라는 방송이 나오는 것으로, 재난 영화마냥 『28』은 끔찍했던 화양을 마무리 짓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묻고, 그 화양에서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 이전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는 겪어보지 않은 자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자신만이 살아남는
것이 부끄러움 혹은 죄책감이 들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참담한 일이다. 광주와 그 외 수많은 계엄령의
시절에 익히 겪었던 일 아니던가.
작가는
결국 계엄령이라는 국가적 결단과 재난에 대처하는 인간의 허술함, 그럼에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욕망, 이기심, 분노, 여기에
더해 동물들에 가해지는 한없는 잔인함까지를 모두 섞어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용광로 화양이라는 도시를 우리 앞에 내놓는다. 당신이라면 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혹은 이 재난을
극복하려는지 등과 같은 어려운 숙제를 내놓고 작가는 소설의 마침표를 찍는다. 헐리우드 재난 영화와 같이
영화관을 나서며 후유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하기는커녕 더 많은 질문과 끊임없는 의문을 품게 하는 고약한, 그러면서 아주 영리한 책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윤주가 새긴 재형의 비문碑文은 작가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아닐까…. 인간은 인간으로 인해 가장 상처입고, 이 지구 역시 인간이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큰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닌지. 인간 없는 세상이 차라리 이 모든 재앙과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서재형,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다.
오혜진 /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엮은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와 논문 작업 틈틈이 읽었던 소설에 대한 서평 모음집 독서에세이 『소설과 수다떨기』가
있다. 현재 남서울대 교양과정부 교수로 재직중.